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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에 빠진 앨리스

책읽는샤미 38
우신영 지음 | 주정민 그림
이지북

2024년 10월 02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10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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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6.56MB)
ISBN 979119391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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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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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수상작 『맨홀에 빠진 앨리스』가 출간되었다. 『언제나 다정죽집』으로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하고, 『시티 뷰』로 혼불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우신영 작가의 고학년 문학 작품이다.
사냥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시 쓰는 사자. 빠르게 달리기보다 달빛 아래 산책을 즐기고 싶은 타조. 먹물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영어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오징어. 그리고 늦게까지 학원을 떠돌며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다 맨홀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간 앨리스……. 이런 ‘이상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을까? 이들이 빨려 들어간 맨홀 속 토끼왕국에 대해서는?
『맨홀에 빠진 앨리스』는 어린이 문학의 영원한 고전이자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원작에 버금가는 탄탄한 문장력과 능숙한 스토리 전개, 개성 있는 등장인물과 시적인 장면이 돋보인다.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건강한 이야기꾼의 탄생”이라는 찬사 속에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된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 어린이들이 직면한 지나친 경쟁주의, 자본주의로 젖어 든 현대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한 맨홀 속 세계에서 저마다의 슬픈 사연을 지닌 주인공들이 우정과 연대의 힘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정한 목소리로 그려냈다.
맨홀 속 토끼왕국을 표현하는 생생한 묘사와 흥미로운 세계관, 발칙하고 다정한 대사와 지문은 주정민 작가의 생동감 넘치는 삽화를 입고 어린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1 맨홀 속의 침입자
2 길을 잃은 사람
3 끝없는 달리기
4 풀리지 않는 문제
5 위시, 디시, 퍼니시, 차일디시
6 래빗홀의 음식 창고
7 이백 년 만의 케이크
8 맨홀 뚜껑을 여는 자들
작가의 말

깊고 아득한 추락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이었다. 차가운 물웅덩이가 텀벙 소리를 냈다.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축축해졌다.
아빠가 사 준 빨간 구두 한 짝이 사라졌다. 벗겨진 왼쪽 발뒤꿈치가 쉼표 모양으로 까져 핏물이 살짝 배어났다. _7쪽

조금 전까지 나는 분명 ‘원더랜드 잉글리시’로 가고 있었다. 호비 줄넘기 학원에서 슬러시 파티를 하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두 학원은 걸어서 십 분 거리다. 엄마는 이동 시간을 딱 십 분으로 계산해 학원 스케줄을 짰다. 내가 중간에 다른 곳으로 샐 것을 염려한, 치밀한 전략이었다. _8쪽

그때 맨홀 뚜껑이 나타났다. ‘우수’라고 적힌, 밤하늘처럼 검고 보름달처럼 둥근 뚜껑이었다. 뚜껑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그것들은 다시 크고 작은 원을 이루었다. 마치 큰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처럼 둥근 맨홀 안에 무수히 많은 둥근 구멍들. 그 구멍들이 텅 빈 눈동자처럼 보여 무서웠다. _10쪽

낭창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유난히 귀가 큰 토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털이 어찌나 새하얀지 겨울밤에 내리는 눈처럼 어둠 속에서도 우윳빛으로 보얗게 반짝거렸다. 황금 당근이 조각된 지팡이를 들고 있는 토끼의 손목에 내 시계가 있었다.
“그거 돌려줘.”
“싫어.”
“내 시계야.”
“맘에 들어.” _13~14쪽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영원처럼 긴 꼬챙이였지. 뜨거운 피가 갈기를 적셔 왔지만 나는 꿈쩍하지 않을 작정이었어. 그때 저 멀리 엄마가 보였어. 내 눈을 보며 고개를 젓는 간절한 얼굴. 결국 앞발에 힘을 주고 링을 향해 달렸어. 어찌어찌 공연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뒤부터 난 서커스단의 문제아가 되었지. 인간들만 나를 괴롭혔다면 참을 수 있었는지도 몰라. 같은 서커스단의 사자들조차 마술사의 모자 속 토끼 앞에서도 벌벌 떠는 나를 무시하고 비웃었어. 더 아프고 더 슬픈 괴롭힘이었지.” _37쪽

“수학 퀴즈를 내기 싫으니?”
“내기도, 풀기도 싫어. 내가 하고 싶은 건…….”
“네가 하고 싶은 건?”
“풀밭에 누워 가만히 시상을 떠올리는 거야.”
“시 쓰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래. 시 쓰는 사자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 멋있다고 생각해.”
“진심이야?”
“그래. 이건 비밀인데 나도 엄마, 아빠한테 혼나면 침대에 누워서 일기를 써.” _40쪽

달리기 경기장에서는 치타와 영양, 타조가 미친 듯이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도 바로 다시 달리기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수영 경기장에서는 돌고래와 황새치, 오징어가 지친 몸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사자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백 미터 레인을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순서로 일 분 삼십 초 안에 통과해야 해.” _47쪽

“이 요상한 침입자는 누구냐?”
“난 침입자가 아니다. 맨홀을 밟고 여기 떨어졌다. 어서 여기서 나가 여덟 시 반에 시작하는 수학 학원에 가야 한다.”
“수학 학원? 그게 뭐냐?”
“설명하자면 길다. 남은 과일의 수를 세거나 시계 보는 법을 익히거나 나무토막의 부피를 구하는 곳이라 해 두지.”
“근사하군. 이 왕국에도 그런 수학 학원을 많이 세워 봐야겠구나.”
“그건 마음대로 하고, 일단 규칙대로 사자와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 줘.” _56쪽

“그럼! 우린 심장이 세 개, 다리가 열 개야. 너희처럼 생기다 만 종자들하곤 다르지. 게다가 이 먹물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 옛적부터 잉크랑 물감처럼 쓰여 왔다고. 귀한 책과 그림도 우리 오징어 없인 탄생하지 못했다 이거야. 너희 인간들이 쓰는 서예용 먹물보다 우리 오징어의 먹물이 훨씬 비싼 건 아니?”
“잘난 척하긴. 학습 만화에서 읽었는데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몇 년 지나면 말라 없어진댔어. 그래서 우리 인간이 믿을 수 없는 약속을 오징어 먹물로 쓴 약속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 _75~76쪽

“어, 내 이름은…… 학원에서 영어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지은 거고, 나는 순 한국인이야. 원래 이름은 애리야, 김애리. 사랑스럽고 영리하단 뜻이지. 한국 이름이랑 비슷한 걸 찾다가 앨리스라고 지은 거고. 영어는 음…… 학교에선 잘하는 편이지만, 동네 친구들에 비하면 옹알이 수준이지.” _83쪽

지금껏 어리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말도 커진 입으로는 마음껏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_88쪽

선반에 있는 수백 개의 쿠키 상자 중 가장 양이 많아 보이는 것을 골라잡았다. ‘JOLLY COOKIE(졸리 쿠키)’라고 쓰인 어여쁜 상자를 열었다. 깨소금보다 고소하고 초콜릿보다 달콤한 향기가 진동했다. 그러자 뱃속에서 난동이 일어났다. 얼른 쿠키를 하나 집어 들자 손가락에 버터의 녹진한 기름이 묻어났다.
“이건 맛없을 수가 없겠다.” _110쪽

“그래, 여기 있었다! 다른 동물에겐 초라한 음식을 주면서 너희 토끼 왕족만 이렇게 풍요로운 창고를 차지하고 있다니.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최악의 왕이구나, 넌!”_113쪽

“토끼 왕, 네 곁엔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복종하는 신하들뿐이지? 넌 시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꽉 짜인 스케줄이 어그러지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지? 네가 구경하는 그 많은 경기를 잘 떠올려 봐. 넌 그저 시간을 재고 상벌을 내릴 뿐 한 번도 네가 원하는 놀이를 하거나 땀 흘리며 경기를 해 본 적도 없잖아. 도대체 넌 누구와 어디로 가고 싶은 거야?” _116쪽

나는 말문이 턱 막혀 괜히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계량했다. 어려울 건 없었다. 매년 엄마 생신마다 아빠와 만들던 케이크니까. 당근을 깎아 주고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들어 주던 아빠가 없어서 좀 아쉬웠다. 하지만 사자와 타조, 오징어가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 왔던 것처럼 도와주었다.
“손발이 척척 맞는구나!” _124쪽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대상 『맨홀에 빠진 앨리스』
★★심사위원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만장일치 수상작!

흥미로운 주인공, 어디서도 본적 없는 판타지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강한 이야기꾼의 탄생!
_심사위원(유영진·박하익·송미경)

이상한 맨홀 속 세계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이가 된다
『맨홀에 빠진 앨리스』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 하나가 도착했다. 줄넘기 학원에서 영어 학원으로 가던 중 앨리스가 빨려 들어간 맨홀 속 토끼왕국이다. 이 익숙한 듯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맨홀 뚜껑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빨려 들어가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도 계산할 수도 없는 시간을 지나 문득 정신을 차리면 도착해 있는 낯선 맨홀 세계처럼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빨려 들어온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와도 같은 앨리스의 우렁우렁한 메아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조차 아껴야 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맨홀 뚜껑을 세게 밟았다. 빨간 구두가 ‘우수’의 ‘우’ 자를 꾹 누르는 순간, 발바닥에 느껴져야 할 바닥의 감촉이 없었다. 아찔한 어지러움과 함께 발밑이 푹 꺼졌다. 마개를 열면 욕조를 가득 채웠던 물이 빙글빙글 빨려 내려가는 것처럼 내 몸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끌려 들어갔다.
끝없이.
끝없이.
세상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연필심처럼 짙고 슬라임처럼 끈적한 어둠이 몸을 감싸고, 슬로 모션이 걸린 듯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이쯤이면 끝이 아닐까 싶었지만, 낙하는 계속되었다. 나는 하품이 날 정도로 지겨워졌고 급기야 깜빡 잠이 들었다.
털썩.
기나긴 낙하 끝에 차고 축축한 바닥이 느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드디어 바닥이군.”
“드디어 바닥이군.”
나는 그렇게 이곳에 도착했다. (12~13쪽)

앨리스가 맨홀 속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존재는 자신이 이 왕국의 왕자이며, 앨리스를 ‘불경한 침입자’라 칭하는 토끼 왕자다. 현실 세계에서 손목시계에 의지해 바쁜 하루를 살아가던 앨리스는, 자신의 시계를 빼앗아 간 토끼 왕자 덕분에 낯선 세계에서 시간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마저도 잊고 지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 낯선 세계를 의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바로 ‘어린이’에 가까워지는 경험이 아닐까. 인간 세계에서 흐르는 시간에 따라 ‘작은 어른’처럼 살아가던 앨리스는 시간의 흐름도 잊고, 새로운 세계를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자기다움의 의미를 찾아간다. 해서는 안 될 거라 여겨 꾹 참아 온 말들도, 자기 마음에 있던 발칙한 말들도 맘껏 내뱉어 본다. 발을 꼭 조이던 빨간 에나멜 구두와 양말까지 벗어 던진 채 낯선 세계를 누빈다. 맨발로 맨홀 속 세계를 자유롭게 쏘다니는 앨리스를 보며 독자들은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등장인물, 서로 다른 소외된 존재들의 연대
앨리스는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맨홀을 탈출할 수 있을까?
사냥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시 쓰는 사자. 빠르게 달리기보다 달빛 아래 산책을 즐기고 싶은 타조. 먹물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영어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오징어.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학원가를 떠돌며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다 맨홀 속 세계에 빨려 들어간 앨리스까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낯선 존재들은 저마다 맨홀 속 토끼 왕국에 오게 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영원처럼 긴 꼬챙이였지. 뜨거운 피가 갈기를 적셔 왔지만 나는 꿈쩍하지 않을 작정이었어. 그때 저 멀리 엄마가 보였어. 내 눈을 보며 고개를 젓는 간절한 얼굴. 결국 앞발에 힘을 주고 링을 향해 달렸어. 어찌어찌 공연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뒤부터 난 서커스단의 문제아가 되었지. 인간들만 날 괴롭혔다면 참을 수 있었는지도 몰라. 같은 서커스단의 사자들조차 마술사의 모자 속 토끼 앞에서도 벌벌 떠는 나를 무시하고 비웃었어. 더 아프고 더 슬픈 괴롭힘이었지.” (37쪽)

학대의 기억, 무리에서의 따돌림, 가족들에게도 존재를 부정당하며 살아온 이들의 사연은 곱씹을수록 씁쓸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이들이 친구가 되어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장면을 보며 우리는 과거의 아픔보다 더 큰 사랑이, 과거의 슬픔보다 더 큰 성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 가게 된다.

“나 맨홀을 탈출해서 오늘 일을 시로 쓰고 싶어. 너도 일기로 써 봐.”
“그러자. 여기를 무사히 탈출해서 내가 우리 집에, 네가 너희 집에 도착하게 된다면.”
“난 집이 없어. 서커스단에 돌아가도 나 같은 겁쟁이 사자는 받아 주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사자 무리로 갈 수도 없고.”
“시 쓰는 사자도 어딘가에선 사랑받을 거야. 다른 사자들의 지혜를 전수하고, 무리에 필요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기 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빚어내는 사자. 그런 사자는 정말 멋있을 거야.”
“내가…… 그런 사자가 될 수 있을까?” (41~42쪽)

처음에는 상처로 인해 서로를 오해하고 경계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친구가 되는 순간 역시 자신이 겪었던 아픔으로부터 찾아온다. 서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질문하는 태도와 반성, 아픔을 공유하는 경험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나아가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더 좋은 곳을 향해 함께 이곳을 탈출하자”고 손을 내미는 희망의 태도는 ‘이상한’ 존재이자 ‘서로 다른’ 존재를 ‘우리’라는 울타리로, 또 울타리 밖까지 확장한다.

“낚시랑 횟집 건은 인간을 대신해서 사과할게. 하지만 인간도 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단다. 너희랑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아. 특히 나 같은 어린이는 말이야. 아까 말한 우리 학원 있지?” (79쪽)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이유가 나보다 타인에 가까울 때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인을 치유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앨리스가 끝내 몰라도 되는 단 한 가지
위시, 디시, 퍼니시, 풀리시 그리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현실에 지쳐 있는 존재들을 맨홀 밖 세계로 이끄는 앨리스의 명랑함 속에는 진지하고 건강한 힘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앨리스가 잃지 않는 단 한 가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것’은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로 잇는 것은 물론, 성장을 거듭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이며, 이 작품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강요당하고, 계속해서 헤엄쳐야 하는 경쟁에 던져지고, 가족이 인간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던 오징어가 끝내 풀지 못한 문제의 답. 자신에게 손을 내민 앨리스와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풀어냈지만, 끝내 깨닫지도 알아내지도 못한 한 가지 의미. 바로 영단어 ‘childish(차일디시)’의 의미다.
childish(차일디시)는 주로 ‘유치한’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고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이 단어의 뜻을 다르게 해석해 보기로 하자. 명랑하고 발칙한 앨리스와 친구들의 힘을 맛본 독자들은 조금 달라져야 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 보곤 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고’, 유치한 것들을 영원히 알지 못해도 된다고. 그래서 이 작품이 영원히 유의미하기 때문에. 그래서 어린이의 존재가 더 아름답고 빛나기 때문에.

작가정보

저자(글) 우신영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명지대학교와 인천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맨홀에 빠진 앨리스』로 제1회 이지북 고학년 장르문학상, 『언제나 다정 죽집』으로 제30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림/만화 주정민

올바르지만 약간 이상한 것, 대화가 잘 통하는 것 같지만 먼 산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미묘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광고·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만화도 그리고 책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 『퓨마의 돌』이 있으며, 『다섯 명의 혜석』(공저) 등을 출간했습니다. 다수의 청소년 문학 표지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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