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2024년 09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9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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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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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관한 이야기부터 SF의 대표 격인 초능력을 소재로 한 작품까지 다양한 주제를 선보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상상력과 재미를 가져다준다. 특히, 2020년대 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MBTI를 소재로 한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와 〈영웅의 탄생〉은 작금의 사회 현상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 이 작품을 통해 그가 왜 MZ 세대의 대표 SF 작가 중 한 명인지 입증한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총 6년 동안 쓴 작품을 읽다 보면 점점 변화하는 작가의 문체를 발견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영웅의 탄생
싹둑
클리셰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달에서 온 불법 체류자
키스의 기원
찰나의 기념비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2029년, 한국 고용노동부에서 MBTI를 통한 청년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화룡점정이었다. 청년들에게 그 들의 MBTI 유형에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여, 심연 밑바닥 에서 구르고 있는 고용률도 잡고 개인화된 복지도 제공하겠다 는 시도였다. ESFJ 지원자에게는 영업직이 우선으로 배정됐고 INTP 지원자에게는 프로그래밍 교육이 국비로 제공됐다.
처음엔 당혹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건 그냥 농담 같은 것 아니었어? 하지만 공공의 영역, 그것도 구직의 영역에서 MBTI가 활용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여러 대기업이 자기소개서에서 모호한 성격적 강점 따위를 묻는 대신 MBTI 검사 결과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
심리학에 여러 성격 모델들이 있다면, 그 성격 모델에서 가장 유용한 모델을 판가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격 모델 중 개인의 행동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고 또 예측할 수 있는 모델, 그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성격 모델일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모델이 현상을 잘 설명하지 않나? 모델이 현상에 영향을 줘서, 현상이 모델에 부합하도록 뒤틀린다면? 그렇다면 그 성격 모델은 훌륭한 성격 모델인가? 성격 모델은 인간의 좀 더 본질적인 특성을 잡아내야 하지 않을까? 선후 관계가 뒤바뀐 듯하지만, 어쨌든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체계니까 과학적인 것 맞지 않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
204X년 가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은 기이할 정도의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300석의 의석을 가득 채운 국회의원들도, 방청석에 앉아 있는 모든 관료와 기자들도, 기타 참관인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
“투표 결과,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번 개헌안은 흔히 초지능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인공지능이 국정 전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헌안이었다.
- 영웅의 탄생
국가 존망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KCAI에 도움을 청했다. 수백 명의 전문가가 정성스럽게 써 내린 수백 장의 보고서에 KCAI는 잠시간 생각한 뒤 단 한 마디로 답장했다.
“대형마트에 유통되는 대파의 가격이 3,200원을 넘지 않도록 통제하십시오.”
(…)
대파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꼬인 것 같았던 한국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었다.
- 영웅의 탄생
커넥텀은 뇌에 심는 쌀알 크기의 컴퓨터다. 이 커넥텀은 뇌세포의 발화를 스캔하여 바이너리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다른 커넥텀으로 송신할 수 있다. 100년 전 지구에서 이미 상용화되어 있던 간단한 기술이다. 지구인들은 이 기술을 인간 대 기계 상호작용에만 사용했지만, 설계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
사람들은 커넥텀으로 상호 연결된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직접 전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커넥텀은 인간이 자기 사고를 언어로 만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 싹둑
그렇다면 커넥텀을 통해 연결된 집단이 틀린 생각, 틀린 감정을 품는다면? 이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올리브는 죄책감을 느꼈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올리브는 소름이 돋았다. 올리브는 문득 의아했다. 원래 죄책감을 느끼면 소름이 돋나?
아니, 그건 다른 곳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올리브는 앞을 바라보았다. 올리브와 연결된 수십 명의 사람이 복도 끝에서 올리브에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커넥텀을 타고 구체화 된 적의가 몰려왔다.
- 싹둑
“내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내가 이 치석 같은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그렇게 믿었어. 인간이 누리지 못한 세상에 나름대로 적응한 존재를 만들 수 있다면, 내가 결코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래, 그래서 너는 해냈잖아. 신의 놀이를 즐기고 있잖아. 대체 무엇이 문제인데?”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수가 없다고. 그들은 인간이랑 너무 달라. 인간과 다른 지각, 인간과 다른 감각. 어떻게 내가 그 들이 생각하는 법을 알겠어? 그들 모두가 내가 만든 세상을 누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난 그 이야기를 경험할 수 없어. 나는 신이 아니니까.”
- 클리셰
“그럼 나를 두고 사라지겠다는 거니? 다른 방법을 찾을 순 없어? 적어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때까지 기다릴 순 있잖아.”
“아니, 기억이 사라지는 게 오히려 더 나아. 나는, 이 몸뚱어리는 그럼 잠시나마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기억이 없는 게 어떻게 너야?”
“내 자아는 컴퓨터 속에 녹아들 거야. 오빠는 나를 막을 게 아니라 축하를 해야 해. 나는 더 커진다고. 내가 만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마침내 인간의 이 답답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 싹둑
내 초능력은 공무원 시험을 치는 도중에 개화했다. 적합한 어휘를 고르는 문제에 가로막혀 있었는데, 보기의 어휘 네 개 모두가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모르면 그냥 빨리 찍고 지나가야 한다고 배웠는데도 그 압도적인 무지에 가로막히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 거기까지 생각이 가 닿자 과연 내가 공무원을 하기 적합한 사람일까, 하는 의문까지 피어올랐다. 하나같이 공무원 시험을 치면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좌절한 채로 시험지 위에 한 손을 올렸다. 그때 손끝에 찌리리 전기가 통했고, 타는 냄새가 풍겼다. 내 손가락 끝에 닿은 종이가 천천히 불타고 있었다.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감독관이 다급히 내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내게만 들리는 혼잣말을 속삭였다.
“능력 발현하셨네.”
-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이제 공시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내가 공시 준비를 시작한 이유는 나, 황기연이라는 존재에게 유별난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친화력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영업을 할 수도 없고, 몸을 쓰는 데도 미숙했다. 그렇다고 통닭을 바삭하 게 튀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 내겐, 누가 뭐래도 분명한 차별성이 있었다.
-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이걸 네 몸속에 넣을 거야.”
“예?”
“걱정 마. 튜시스의 능력을 이용하면 하나도 안 아프니까.”
튜시스의 손짓에 따라 내 왼쪽 가슴이 스스로 벌어지더니 그 특이점 렌즈를 집어삼켰다. 가슴이 살짝 볼록해졌다.
“이 특이점은 내 능력과 연결되어 있고, 네가 어딜 가든 그위치를 알 수 있어. 프로미넌스 애들이 여기로 들이닥친다면, 글쎄, 내 손짓에 따라 렌즈가 폭발하고 중력 붕괴가 일어나 겠지….”
중력 붕괴가 일어나면 어떤 아름다운 사건이 벌어지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레퓔라의 능력은 비교적 단순한 중력 조절이었지만, 그것을 응용하는 실력은 가장 잘 훈련받은 프로미넌스 요원보다 뛰어났다.
- 달에서 온 불법 체류자
여전히 둘은 서로 아주 달랐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다. 이는 그들의 삶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그래서 권인영이 잠들기 직전 유지하에게 가볍게 입 맞추려고 했을 때, 유지하가 구역질을 한 건 둘 모두에게 사뭇 기이한 사건이었다. 우웩!
“나 방금 양치했거든?”
권인영은 유지하가 이상한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었다. 입을 맞춘다는 행위, 그 행위 자체가 유지하에게는 지나치게 역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지하는 갑자기 가슴 속에 치밀어오르는 이 생경한 혐오감을 언어로 구체화할 수 없었다.
(…)
“난 괜찮아. 그런데 그냥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면 신경정신과 한번 가보는 게 어떨까? 왜, 공포증 같은 걸 수도 있잖아.”
“키스공포증이 있어?”
“없으란 법도 없잖아?”
- 키스의 기원
회색빛 공허로 녹아들고 있는 세상에 달 팽이 하나가 총천연색을 뽐내며 기어가고 있었다. --- 3번은 수십 년의 삶 동안 이만한 사치를 목격한 적이 없었다. 혹은, 그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3번은 산산조각이 난 기억 속에서 어떤 정보를 인출했다. 달팽이와 인간의 시간을 인식하는 해상도가 다르다는 정보를. 달팽이는 인간보다 훨씬 느린 시간 감각을 지니고 살아간다. 달팽이의 조그마한 뇌는 사람처럼 시간을 잘게 쪼개 인식할 능력이 없다. 인간과 달팽이가 산들바람이 부는 초원 위에 함께 있다면, 달팽이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풀들이 마치 뚝뚝 끊겨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낀다.
그것은 부서지는 세상이 탄식처럼 내뱉는 마지막 블랙 코 미디였다. 그에 대한 찬사로, ----번은 실로 공허한 웃음을 지었다. ----번은 생각을 쥐어짰다.
끝이야.
그 아무 유감도 없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깃든 모든 유의미한 정보가 사라졌다.
- 찰나의 기념비
“…점프를 딱 그만큼 하면 서버가 터져. 수현이 나가고 바로 어떤 미친놈이 게임에서 6만 5,536번 점프해서 서버 터뜨렸어. 지금도 그래.”
도저히 원인을 짐작하기 어려운 버그였다. 김 팀장은 일단 울며 겨자 먹기로 점프 기능 자체를 막아뒀다고 했다.
“어휴, 점프 없애면 싫어할 사람 진짜 많다고 했는데, 진짜 점프 막자마자 사용자 수가 10퍼센트는 줄었어요. 어쩔 수 없 는 거지만.”
기획자 김태흔이 대놓고 핀잔을 줬다. 김 팀장은 변호하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빨리 서버 개발하시는 분 구한 거 아냐. 우리 현희 씨가 잘해주시겠지.”
(…)
일단 테스트 서버를 열고 난 뒤 서버에 임시 캐릭터를 하나 만들고 그 캐릭터를 6만 5,536번 점프시켰다. 버튼을 그만큼 눌렀다는 건 아니고, 그저 점프를 했다는 신호를 서버로 6만 5,536번 보냈다. 점프 한 번에 1초 정도의 시간이 걸리니 18시간 12분 16초가 드는 일이었다. 6만 5,536번을 채우자마자 테스트 서버가 괴상한 오류를 토해내면서 강제 종료됐다.
“진짜로 점프 때문에 서버가 터지네….”
-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현희 씨, 서버 문제는 좀 해결됐나요? 우리 이제 새로 콘 텐츠도 추가해야 되고, 해야 할 패치가 많아서. 지금 서버 문 제 때문에 한 달이나 시간이 지체됐거든요. 유저들이 더 이상 참아줄 것 같지 않아요.”
개발자를 신으로 보는 건지 뭔지, 일한 지 이제 일주일 갓 넘은 사람이 아무런 설명도 되어 있지 않은 코드를 어찌 다 파 악하라는 건가. 나는 감정이 상한 채로 입을 열었다.
“저번 주 내내 김 팀장님하고 같이 서버에 매달렸는데요, 아무래도 전임자가 버그를 일부러 심은 것 같습니다.”
-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우주를 넘나드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심너울 표’ SF!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는 등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한국 SF 소설은 문학계와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가장 핫한 장르로 떠올랐다. 그런 가운데, MZ 세대가 호응하는 젊고 재기 넘치는 작가 심너울이 두 번째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를 선보인다. 작가는 기술 발전이 불러올 윤리적 문제, 계층 간 불평등, 기술의 독과점 등 우리가 머지않아 마주할 문제를 독창적인 세계관과 깊이 있는 서사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단순한 오락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순한 과학적인 상상력을 넘어, 기술의 발전과 인간 내면 그리고 인간 본질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는 ‘신분증에 MBTI를 새겨도 별문제 없을’ 만큼 MBTI가 농담거리를 넘어 공공의 영역에서 활용되기 시작한 202X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재미로 즐기는 걸 넘어, 적용해선 안 되는 곳까지 MBTI 기준으로 판단하고 분류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작품은 MBTI별 맞춤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과 그를 위한 컨설팅 회사가 성행하며, MBTI가 과학의 자리를 대체하는 현실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 웹진 ‘비유’에 기고하며 SNS에서 화제가 된 작품으로,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영웅의 탄생〉은 현대의 인공지능에 대한 가장 낙관적인 예측에 기반한 작품으로, 인간들은 인공지능에게 인간보다 큰 권력을 주고,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게 하는 등 의존한다. 그렇게 인공지능이 해를 거듭해 마침내 스스로를 발달시키는 초월적인 지능, 초지능이 되고 인간 문명은 특이점에 돌입하게 된다. 대파 가격 3,200원은 인간에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인류는 인공지능에게 어디까지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스스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 될까?
〈싹둑〉에서 기록보관소의 사서 올리브는 커넥텀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정원사 아이리스를 만나고, 그와 점차 가까워진다. 다른 가치관 속에 갈등하던 올리브는 커넥텀에 의존하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리며 아이리스를 구하기 위해 네트워크와의 연결을 끊는다. 개인과 집단, 연결과 독립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 SF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클리셰〉 속 곽현우는 무중력 우주선에서 기억을 잃은 승객들을 조사하는 치안관이다. 200년 이상 평화로운 우주선 사회는 기억 상실 사건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현우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여동생 현지는 가상 세계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에 몰두하지만, 기억 상실의 원인이 바로 그녀의 창작물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감각은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의 주인공 황기현은 공무원 시험을 치는 도중, 초능력이 개화했다. 덕분에 시험은 시원하게 말아먹었지만, 전기와 관련된 능력을 얻었다. 그는 극한의 평범함을 달리던 자신에게 드디어 차별적 능력이 생겼다며 좋아한다. 돈 벌어서 여자 친구에게 200만 원짜리 맥 북 프로를 사주겠다며 큰소리 떵떵 치는 기연. 국가 공인 초인이 된 그는 과연 180도 바뀐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작가 특유의 재치 넘치는 설정과 생활 밀착형 지질한 캐릭터가 만나 기존 히어로물과는 180도 다르게 초능력자를 다룬 유쾌한 작품이다.
〈달에서 온 불법 체류자〉는 무작위의 사람들이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부터 변해버린 사회로부터 출발한다. 초능력 발현율이 급증한 마산 앞바다.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프로미넌스 소속인 ‘나’는 초능력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마산에 도착했다. 마침 수상한 능력을 감지하고 능력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나’는 강인한 중력조절 능력을 자랑하는 ‘월인’, 레퓔라와 마주한다. 정신 접속, 달과 지구, 월인과 지구인 등 신비하고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유려하게 나열되어 있다.
묵직한 세계관에 가벼운 유머가 감초처럼 입혀진 소설로 리디와 위지윅스튜디오의 공동개발로 영상화 확정된 작품이다.
〈키스의 기원〉은 얼떨결에 외계인들의 지구 침략을 막아낸 한 커플에 관한 유쾌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다. 9년 차 커플인 유지하와 권인영은, 어느 날 찾아온 ‘키스 거부’ 사태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은 병원을 찾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일상을 토대로 벌어지는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찰나의 기념비〉는 가상의 세계와 그 안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가 가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세계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2133번은 백사병에 의해 소멸하면서도 벽 너머의 세계로 나가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이자 표제작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게임 서버 개발자인 송현희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입사하자마자 플레이어가 65,536번 점프를 하면 서버가 터지는 버그를 고쳐야만 한다. 해당 버그를 조사하던 그녀는 전임자가 남긴 의미 불명의 주석을 발견하고, 회사 동료들로부터 그의 수상한 행적을 듣는다. 단지 게임의 버그를 수정하려 했을 뿐인데…. 전임자를 찾자, 세상을 둘러싼 의외의 비밀이 베일을 벗는다.
직장인의 애환 한 스푼과 엉망진창 꼬인 코드 두 스푼, 그리고 위험한 외계인의 음모와 설계 세 스푼이 황금비율로 절묘하게 가미된 작품으로 심너울 표 SF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SF어워드 2019 중단편부문 대상, 2019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북투필름’ 선정 및 토리코믹스 어워드에서 수상하였으며, 연극 〈JUMP〉로도 각색되었다.
‘9편의 작품은 제각각 가장 자그마한 단위에서 시작하는,
아주 느리고 단단한 확장이다. - 작가 심완선’
심너울이 펼치는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정수!
코웃음과 지질함을 합성하면 드문 확률로 귀여움이 생겨난다. 적어도 웃을 일은 자주 발생한다.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우리가 멋모르던 시절에 적었던 일기처럼 낯부끄러우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다만 일기보다 훨씬 매끄럽고 흥미진진하다.
초능력을 각성하고 히어로가 되든, 세상의 은밀한 법칙을 알아내든, 소설 속 인물들은 도무지 위대해질 수가 없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잘난 척하다가도 전전긍긍하고, 침울해하다가도 뻔뻔하게 구는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지 않기는 어렵다. 동시에 이들을 둘러싼 서늘한 공기도 선명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무질서와 부조리가 너무나 거대하여 자기 삶 따위는 무의미한 발버둥일지 모른다는 섬뜩함이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하지만 어쩌면 미숙하고 보잘것없는 개인들이야말로 세상의 원자일지 모른다. 원자는 아주 작지만 촘촘히 무리를 지어 온 세상을 구성한다. 작중 어떤 인물은 다정함과 용기를 짜내어 이렇게 마음을 고백한다. “네가 나와 다른 존재여서 사랑해. 내 세상을 확장해 줘.” 가장 자그마한 단위에서 시작하는, 아주 느리고 단단한 확장이다. _ 심완선(소설가 및 평론가)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속 주인공들은 가상의 세계와 가상의 미래에서 살고 있지만, 이상하게 근처에 있을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취업을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는 취업 준비생이거나, 자의식이 과잉된 사회 초년생, 서로 아주 다른 커플 등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이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엉뚱하고도 기발하다. 작가 특유의 현실감 있는 아이디어와 문체로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일상 속 비일상의 균형을 이룬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SF라는 넓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회 부조리를 마주하기도 하고, 악당을 만나 싸우기도 하고, 풀지 못할 버그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광활하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온 덕분에 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지식과 이를 응용하는 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왔으며, 또 어떻게 바꿀 것이며, 우리 인간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상상하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흥미를 공유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하여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험하며, 새로운 흥미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맛을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9가지 다채로운 세계가 준비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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