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손

권흥기 지음

석벽 2024년 09월 27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권흥기 소설가의 작품은 오랜 삶의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은은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세대간의 갈등, 가부장제도의 전통적인 가치관, 노인세대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가슴 먹먹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작가에게 작품이란 나름대로 소중하고 귀하게 마련이지만, 바깥 세상에 선보이고자 하면 언제나 망설여져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 되는 것 같다. 주제를 제대로 형상화하여 독자에게 조금이나마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으리라 본다.

목차

차 례
1. 작가의 말
2. 동거인(同居人)
3. 요양원으로 가는 치술이할아버지
4. 배나뭇골 저택
5. 도장 찍는 사람
6. 아내의 손
7. 의과대학(醫科大學)

책 속으로

오규원은 누운 몸을 슬며시 일으켰다. 앉은 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보았던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두 손을 활짝 펴 빤히 들여다본다. 아내 윤순희의 손이 잡을 수 없이 멀리 있다는 사실을 뒤늦어 깨닫는다.
‘손도 손 나름이다. 연인이든 부부든 과거에 쌓아 놓은 소행에 따라 손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는 손도 얼마든지 있는 모양이다.’ 오규원이 거실 바로 앞 벽에 걸린 11월의 달력을 보면서 흘리듯 말한다.
몽둥이로 온 몸을 후려치듯 거센 공격을 당했는데도 아내 윤순희의 얇은 피부에 가려진 손가락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지우려고 해도 야윈 손을 잡았던 감촉이 생생하다. 곤혹스럽고 당혹스러운가 하면 안쓰러운 감정을 자아낸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형편없이 꼬여버린 이 일을. 오규원이 머릿속을 샅샅이 뒤지며 골똘히 생각을 파고든다. 그러더니 난제가 풀린 듯 고개를 가벼이 숙였다가 세운다.
‘뿌리치고 말 내 손으로 아내의 손을 잡을 것이 아니라 아내 윤순희가 내 손을 잡으려 손을 내밀면 된다. 나는 아내의 손을 거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러자면 무슨 감격적인 일이 아내에게 주어져야 하는데 선뜻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오래 전, 병원에 있을 때였다. 밤늦도록 괴로워 잠 못 이루는 오규원을 바라보며 아내 윤순희가 귓바퀴에 입을 가까이 하고서 귀엣말처럼 ‘여보, 희망은 언제나 있어요. 어느 책에서 읽은 글귀예요.’라던 까마득히 잊었던 말이 되살아난다. 오규원의 얼굴이 무심한가 하면 보기에 따라서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온하다.
밤이 지나면 해가 뜨고 날이 밝는다. 오규원은 내일 새아침쯤이면 반가운 손님처럼 묘안이 머릿속을 찾아올 것이라고 여기면서 11월 달력에 시선을 못 박은 채 한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한번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두고두고, 하나씩 하나씩 실행하면 마침내 아내 윤순희가 감동에 겨워 내 손을 으스러지도록 잡는다. 정이 뚝뚝 듣는 그윽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작가정보

저자(글) 권흥기

권흥기(權興基)

경북 봉화 출생
월간문학 : 수필 「산수화(山水畵)」 당선
한국소설 : 단편 「배나뭇골 저택」 추천
단편 「도장 찍는 사람」
「요양원으로 가는 치술이 할아버지」
「동거인(同居人)」 발표
한국문인협회 경북 봉화지회장(전)
수필집 : 『서로에게 등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아름답습니다』
수필집(교보e-book) : 『산수화(山水畵)』
시사에세이(교보e-book) :『사람 사람들 1,2.3』
수필과 소설 :『어느 초겨울 초저녁에 생긴 일』
소설집(교보e-book) :『동거인(同居人)』
: 『외아들은 비혼자(非婚者)』
『여인(女人)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