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미술
2024년 10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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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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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는 그림틀 통해 글보다 더 정확하고 노골적으로 작가와 동시대 인류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글은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을 꾸며 서술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지극히 의도된 내용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림은 작가 자신도 모르게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곤 하므로 그만큼 솔직하다. 단지 그림을 그린 작가 개인뿐 아니라 동시대인들의 사고방식을 살펴보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그림을 통해 사회변화의 전주곡을 발견하기도 한다. 역사적 변동의 징조가 예술 분야에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어 서구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축인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르네상스와 만난다. 르네상스가 품었던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이 뿌리 역할을 한다. 인간의 재발견은 이성의 발달과 개인에 기초한 사회로의 변화를 추동했다. 자연의 발견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증진하고 산업혁명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만큼 예술영역은 시대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고, 한발 더 나아가 선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술작품을 통해 사회변화를 탐구하고 고민하는 작업은 매우 유익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통해 문제의 끄트머리를 잡아내고 나면 이와 관련하여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의문을 던지고 생각을 자극하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그림과 글을 보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고민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1부] 현대문명의 그늘
내가 살해하는 시간과 공간
― 모네 <생 라자르 역>
폭력미학에 열광하는 현대인
― 벨로스 <사키의 남자들>
도시, 밤과 익명성의 공간
― 호퍼 <밤샘하는 사람들>
세계사는 투석기에서 핵폭탄
― 고야 <1808년 5월의 처형>
타히티의 원주민 예수
―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틈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 마티스 <춤>
벼룩이 된 사람들의 슬픈 눈
― 모딜리아니 <젊은 하녀>
[2부] 사회적 약자와 차별
케테 콜비츠와 마른 젖가슴
― 콜비츠 <방직공의 봉기>
밤배? … 방빼!
― 도미에 <세탁부>
나는 ‘남성적’인 것이 싫다
― 고야 <거인>
여자의 연약함은 도덕의 결과
― 아르테미시아 <유디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 마네 <올랭피아>
로트레크와 매매춘 논란
― 로트레크 <물랭 가 살롱>
모나리자가 트랜스젠더?
― 다 빈치 <모나리자>
[3부] 미술과 삶, 그리고 내면
상처받은 영혼의 일기장
― 칼로 <작은 사슴>
소년과 해골, 그리고 죽음
― 엔켈 <소년과 해골>
쾌락이나 욕망은 죄악인가?
― 블레이크 <지옥의 회오리>
통속적 사랑에 대하여
― 로댕 <키스>
친숙함에서 오는 신선함
― 밀레 <만종>
열린 미술과 그 적들
― 미켈란젤로 <리비아 무녀>
풍경화 속에서 찾는 자유
― 모네 <양귀비꽃이 핀 들판>
[그림은 인간과 사회의 창문]
미술작품과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림이 주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누리는 방법도 좋다. 또한 표현형식이나 미학적 측면에 주목해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미술작품을 통해 주로 사회적‧철학적 ‘의미’를 찾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림과 작가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한다. 작가의 개인적 사색과 성찰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하여 문제의식을 확장한다. 특히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사고 및 행동 방식과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 저자의 말에서
[내가 살해하는 시간과 공간]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생 라자르 역>에서 연기를 뿜어대는 기차가 당장이라도 그림을 뚫고 앞으로 달려 나올 듯하다. 기차가 세상의 주인공이고, 주변을 서성이는 몇 명의 사람이 오히려 풍경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 철도는 단순히 운송 수단의 의미를 넘어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살해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느끼는 공간의 연장과 시간의 연장이 사라져버렸다. 과정이 살해당했다. 도보로 여행할 때는 주변의 산과 들이 우리와 함께 움직인다. 나무를 스치는 산들바람이나 손끝에 느껴지는 풀잎의 간지러움이 여행의 일부 과정이었다. - 본문 중에서
[폭력 미학에 열광하는 현대인]
미국 화가 벨로스의 <샤키의 남자들>은 권투 연작의 하나다. 사각의 좁은 링에서 두 남자가 혈투를 벌인다. 얼굴과 팔의 붉은색이 피가 아닐까 싶을 만큼 서로 격렬한 펀치를 날린다. 몸동작이 거친 붓 터치를 통해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 권투는 인간의 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요즘에는 종합 격투기까지 등장하여 폭력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난다. 폭력에도 한계효용의 법칙이 작용해서 더 강렬한 폭력적 자극을 추구하고 조장한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서 폭력 자체를 심미화하는 폭력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타히티의 원주민 예수]
고갱의 <이아 오라나 마리아>에 나오는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는 황색 피부의 폴리네시아인 모습이다. 예수 얼굴도 서구인과는 전혀 다른 전형적 원주민의 윤곽이다. (…) 유럽의 배타적·폐쇄적 종교관에 회의를 느꼈기에 원주민 예수와 마리아를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종교의 관용성과 개방성은 현대사회에 와서 더 사라졌다. 사랑과 관용은커녕 갈등과 분쟁의 최전선에 종교적 극단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미술작품이 종교적 극단주의의 선전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또 하나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 본문 중에서
[케테 콜비츠와 마른 젖가슴]
케테 콜비츠의 <방직공의 봉기>에 나오는 여인은 아이에게 먹일 젖도 바짝 말라버린 젖가슴과 원래 그렇게 태어난 듯 굳어진 구부정한 허리로 다가온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죽음과도 같은 노동에 찌들대로 찌든 모습 그대로다. (…) 한 손으로 우는 아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굶주림에 지쳐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은 저 여인이 약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가녀린 팔뚝과 구부정한 허리의 그들이 역사를 움직여왔다. ‘노예근성’에 찌들어 보이던 그들이 움직일 때 산이 흔들렸고 하늘이 변했다. 리얼리즘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의 소산이다. - 본문 중에서
[모나리자가 트랜스젠더?]
다 빈치의 <세례자 요한>을 보면 입술 꼬리가 요염하게 살짝 올라간 모습이나 가는 입술 선이 영락없는 여성이다. 치켜든 손가락은 모나리자의 손보다 더 섬세한 느낌이다. 가슴에 올려놓은 손 또한 여성을 묘사한 그림이나 사진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자세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남자 요한이다. (…) 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프로이트도 이 그림에 나타나는 양성의 느낌을 분석한다. 주인공이 남성임에도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다 빈치의 몇몇 작품을 예로 들면서 그의 유아기 성장 배경으로부터 무의식의 근원을 추적한다. - 본문 중에서
그림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림이 주는 느낌 자체를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도 미술과 만나는 좋은 방법이다. 그 그림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그려졌는지, 작가가 어떤 삶의 과정을 겪었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감상이 불가능하거나 틀린 감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감성적‧직관적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미술 감상일 수 있다.
또한 표현양식이나 순수 미학적 측면에 주목해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기존의 미술 평론 중에는 이렇게 표현양식 변화를 작가 개인사와 잘 버무려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우가 꽤 있다. 표현 기법의 변화를 통해 원시미술과 중세미술, 근대미술, 현대미술 등 미술의 변화과정을 추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미술작품을 통해 주로 사회적‧철학적 ‘의미’를 찾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그림과 작가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한다. 작가의 개인적 사색과 성찰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하여 문제의식을 확장한다. 특히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사고 및 행동 방식과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작업에 관심을 둔다. 지금 우리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인 학문과 마찬가지로 미술 평론에서도 ‘지금, 여기’에 의미를 주지 못하는 사실이나 고민은 화석처럼 죽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홍순
뒤돌아볼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성찰 기회를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허약한 인문학적 토양에 깊은 갈증을 느꼈다. 인문학적인 르네상스 없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일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향한 관심과 탐구에 기여하고픈 마음에서 글을 써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기에 동서양 고전을 친근한 벗으로 만드는 일, 고전의 정수를 가까이하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으로 철학적 사유가 ‘지금, 여기’, 즉 오늘 나와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으며 일상의 삶에 밀착하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엄밀한 독서와 치열한 토론만이 고전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의 결과물로서 다수의 저서를 내놓았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과 사회로 인식 지평을 확장한 《미술관 옆 인문학》, 우리 헌법을 인문학을 통해 해석한 《헌법의 발견》을 비롯하여 철학·심리·사회·경제·역사·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수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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