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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지음
한겨레출판사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4년 09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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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3.93MB)
ISBN 979117213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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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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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 19세기 말~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대륙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횡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당대의 사고 체계나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종으로 횡단하는 교양 역사서다.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3ㆍ1운동, 제1차 상하이사변, 베를린 올림픽,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정치인과 군인, 연예인과 작가, 과학자와 지식인, 성을 파는 여성과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와 밀정, 평범한 생활인 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향유한 소설과 영화, 노래도 다수 인용된다. 그 모든 것들이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역사의 본질을 연결과 연루로 파악하는 이 책은 선과 악, 승리와 패배, 피해와 가해로 요약되는 국가ㆍ민족 단위의 익숙한 역사 내러티브 대신 움직이고 반응하는 개인의 마음과 태도에 주목한다. 사랑하고 실수하고 꿈꾸고 욕망하는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얽히며 주고받는 역동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과 역사가 이들에게 져야 할 책임, 나아가 연루된 주체로서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함께 살핀다.
서문

1. 역사의 후퇴 앞에서 리샹란을 생각하다
2. 〈너의 이름은〉, 기억함으로써 잊는 것
3.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4. 카스바에서의 망향, 자기 연민의 서사를 넘어서기
5. 한국인을 혐오한 어떤 서구인 이야기
6. 세계 일주의 꿈, 돌아와서 만나는 나
7. 에레나를 아시나요?
8. 서구의 시선이 동양 여성을 그릴 때
9.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까?
10. 압록강을 건넌 의사들
11. 재난의 공동체, 무정과 동정을 넘어
12. 식민지에도 스타는 탄생하는가?
13. 사할린 한인, 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14. 혁명과 사랑의 이중주
15. 레니 리펜슈탈,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16. 작은 사람은 어떻게 성숙해질까?
17. 〈사운드 오브 뮤직〉 너머 들리지 않는 이야기
18. 별 없이 걸었다 캄캄한 식민의 밤을

‘콰이강의 다리’의 실제 역사는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을 재고하라고 요청한다. 어떤 인식일까? 역사는 국가 나 민족 단위로 흐르며 가해자도 피해자도 분명하다는 인식이다. 실제의 역사는 종종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만들며 바꾼다. 콰이강의 다리에 얽힌 실제 역사도 영국, 일본, 한국, 태국, 미얀마가 함께 연루된 ‘어긋나는 공동의 역사’다. _9~10쪽


이향란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서도 인기가 높던 일본인 리샹란은 1990년대에 위안부 문제에 깊이 개입한다. 그녀의 사죄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 한국인이라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장면 은 리펜슈탈의 대표작 〈올림피아〉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나치 연루자로 비판받았던 리펜슈탈은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원주민을 사진으로 포착하면서 다시 명성을 얻는다. 그녀의 명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런가 하면 독일에서 리펜슈탈의 라이벌이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할리우드의 스타 시스템에서 성공한 다음 스크린 위에서 조선을 비롯한 만국의 연인이 되었다. 서구 남성의 동양 여성 판타지의 원조 격인 ‘상하이 릴’로 분했고 나치에 맞섰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_10~11쪽

포로감시원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잘 감시하는지 늘 감시받았다. 잘 때리라고 늘 맞았다. 피에르 불은 《콰이강의 다리》에서 이렇게 적는다. “(니컬슨) 대령은 다시 구타를 당했고, 고릴라 같은 조선인은 처음 며칠 동안의 가혹한 체제를 재개하라는 엄명을 받았다. 사이토는 감시원까지 때렸다. 그는 … 죄수뿐만 아니라 간수에게도 권총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중첩된 운명의 희생자였다. 조선인 B, C급 전범의 비극을 연구한 일본의 사회학자 우쓰미 아이코는 포로감시원들의 개인적 학대가 없지 않았지만,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해 포로를 학대할 수밖에 없던 상황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_60~61쪽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일제의 전쟁 수행에 협력한 가해자였다. 이런 사례들을 근거로 한국도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현실적 함의는 일본에 동조한 같은 전범국이니 일본에 대해 전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논리에 동조하는 논리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한편에는 그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이니 그저 순전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있다. 구조적 악이 있다면 그에 동조한 개인의 윤리적 책임은 간단히 면제될 수 있을까? 이학래가 수기에서 고백하듯 결코 그렇지 않다. 일본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져야 할 몫의 역사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때에만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_62~63쪽

훨씬 사소한 이야기도 있다. 영국인 포로 어쿼트는 회고록에서 짐짝처럼 열차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이송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떠올린다. 그렇게 또 이송되던 어느 날, 포로들이 조선인 포로감시원에게 제발 문을 닫지 말아 달라고, 탈출하지 않겠다고, 도착하면 문을 닫겠다고 애원한다. 놀랍게도 그는 문을 닫지 않았다. “우리가 움직일 때 쾌적한 바람이 불었다. … 나는 감시원이 문을 열어두는 걸 허락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고, 감시원 중 한 명에게 받은 첫 번째 친절과 동정심을 잊을 수 없었다.”
아무도 탈출하지 않았다. 탈출은커녕 도착하자마자 문을 닫음으로써 호의를 베푼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의심받지 않도록 보답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작은 호의를 베푼 이들이 있었다. 참담한 비극 앞에 이토록 작은 호의가 도무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게도 된다. 다만 어쿼트는 이를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됐다. 희망은 어쩌면 여기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_65~66쪽

윤치호(1865~1945)도 미국 유학 중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 인종차별을 겪고 오히려 ‘힘이 곧 정의’라는 사회진화론의 주장을 수용하게 된다. 물론 윤치호는 유길준보다는 내면이 복잡한 인물이었다. 특히 기독교 신앙과 사회진화론 사이의 부조화로 고민했다. 1892년 어느 날의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고뇌한다. “나의 신앙이나 믿음의 가장 큰 방해물은 인종 간의 불평등과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해악들이다. 왜 하나님께서 코카시안과 몽골리안, 아프리카인 등에게 평등한 기회와 동등한 심신의 능력을 부여하시지 않았는가? …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자 하심에도 못하셨을까? 그렇다면 그의 지혜는 어떤 것인가?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심에도 일부러 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오호, 수수께끼로다!” _93쪽

이순탁이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와 만난 현실은 나혜석과 박인덕이 돌아와 만난 현실과 달랐다. 지식인 엘리트 남성에게 세계 일주는 삶을 맞바꿔야 하는 모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현실이 장밋빛일 리도 없었다. 이순탁은 1938년 4월, ‘연희전문 경제 연구회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같은 학과의 백남운, 노동규 교수,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구속됐다. 실형을 선고받고 1940년 7월까지 복역했다. 출소 후에도 복직하지 못했다. 다만 학교의 배려로 세브란스병원의 경리과장으로 재직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이후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기획처장으로 참여해 농지개혁안 마련에 힘썼다. 남한의 농지개혁에는 농림부장관 조봉암과 기획처장 이순탁 등 중도좌파가 기여한 흔적이 뚜렷하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모르다가 후일 1950년 10월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_114~115쪽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에 힘과 문화적 상상력의 위계가 엄연했던 만큼이나 성애의 판타지도 가파르게 위계화되었다. 승리한 나라의 남성이 점령지 여인과의 가벼운 로맨스를 꿈꿀 때, 패배한 나라, 약소국 남성은 수치심과 회한으로, 때로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_125쪽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제국의 시대(1875~1914)라고 부른 시절이었다. 열강들의 팽창 경쟁은 식민주의 초기의 원거리 교역과 자원 약탈을 넘어 대규모 이주와 자본 수출로 고도화되고 있었다. 서구의 팽창 욕망을 북돋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문화적 상상력,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오직 서구만이 비서구, 동양(오리엔트)에 대해 정의하고 표현할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서구의 시선으로 동양을 묘사하고 분석하던 온갖 담론과 지식, 문화적 재현물들이 급기야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고 규율하는 하나의 스타일로 변화해갔다.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포착한,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극에 달한 시대였다. 〈나비부인〉은 오리엔탈리즘 문화상품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_134쪽

독가스 개발로 비난받게 되자 하버는 항변했다. “평화의 시기에 과학자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의 시기에 그는 조국에 속한다.” 가정 파괴를 무릅쓸 정도로 독일에 대한 애국심이 넘쳤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망명을 떠나야 했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이듬해 스위스에서 죽었다. 하버가 개발진으로 참여해서 만든 살충제 치클론 B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널리 쓰였다. 즉사시키지 않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만드는 참혹한 독가스였다. 그가 이 참극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장남 헤르만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46년에 미국에서 자살했다. 헤르만의 딸 클레어는 미국에서 화학자로 성장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염소가스의 해독제를 개발하는 데 전념하던 중 연구 예산이 핵폭탄 개발에 우선 투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목숨을 끊었다. 1949년이었다. 과학이 세상을 구원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어떤 과학자를 구원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_157~158쪽

과학에 대한 이광수의 관심은 지속되지 않았다. 대신 1930년대에 그가 몰입한 것은 나치즘, 파시즘 등의 전체주의 사상이었다. 나치가 집권하기도 전인 1930년에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발췌ㆍ번역했다. 전체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린 것도 그였다. 과학이 전체주의로 바뀌었지만 그 속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힘에 대한 숭배’다. 돌이켜보자. 《무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식이 “과학! 과학!” 하고 부르짖기 직전 그가 다짐한 말은 무엇이었나?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해서 생활의 근거를 안전하게 하여주어야 하겠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힘에 대한 동경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숭배로 바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_161쪽

미국에서 활동하던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영화 촬영을 위해 런던에 머물던 1936년 무렵, 그녀에게 나치가 접근해왔다.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독일 귀환을 요청했던 것. 사실 디트리히는 히틀러가 가장 좋아한 배우였다. 그녀는 제안을 거절하고 1937년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다. 같은 해 〈갑옷 없는 기사〉 출연료 45만 달러를 독일 유대인의 탈출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했다. 전쟁이 터지자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한 국채 판매에 앞장섰고, 전장을 누비며 순회공연과 병원위문을 다녔다. 리펜슈탈이 나치를 위해 영화를 만들 때 디트리히는 나치에 맞섰다. 종전 후 독일에서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생전에 독일과 화해하지 못했다. 독일도, 미국도 아니고 파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디트리히가 죽은 지 10년 후인 2002년, 독일 정부는 그녀를 독일 명예시민으로 추서하고, 고향에 그녀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었다. 파리에 있던 묘지도 옮겨왔다. _253~254쪽

“이런 ‘옛날이야기’라면 하염없이 읽고 싶다.” _장일호(《시사IN》 기자, 《슬픔의 방문》 저자)

“무엇보다 이 책은 재밌다. 역사와 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앎의 의지를 자극한다.” _김만권(정치철학자, 《외로움의 습격》 저자)

리샹란과 최승희, 히틀러와 손기정, 안창호와 파농,
잭 런던과 윤치호, 나혜석과 아인슈타인…

19세기 말~20세기 중반, 대륙을 넘어 연결된 인물들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남겨진 가파른 마음들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세상이 서로 깊이 연루된 시기”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틀 지은 가장 가까운 과거”인 19세기 말~20세기 중반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 책은 대륙을 넘어 상호작용하는 동시대 인물들의 연결을 횡으로,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당대의 사고 체계나 인식, 감수성 등의 유산을 종으로 횡단하는 교양 역사서다. 파리코뮌, 러일전쟁, 의화단운동, 제1차 세계대전, 3ㆍ1운동, 제1차 상하이사변, 베를린 올림픽,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정치인과 군인, 연예인과 작가, 과학자와 지식인, 성을 파는 여성과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와 밀정, 평범한 생활인 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향유한 소설과 영화, 노래도 다수 인용된다. 그 모든 것들이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2023년 5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시사IN》에서 〈조형근의 ‘역사의 뒤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글 가운데 18편을 고르고 보완해 엮은 책이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보다 개개인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복각해내는 것에 집중하는 이 책에는 순전한 악마나 가엾은 희생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하고 실수하고 꿈꾸고 욕망하는 인물들의 입체적인 모습과 이들이 서로 스치고 얽히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때로 숭고하기도 비열하기도 한 선택들과, 이 선택들이 불러오는 또 다른 사건의 연쇄는 국가와 민족, 선과 악, 승리와 패배, 피해와 가해 등 기존의 역사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를 만들고 바꾸어간다.
제목에 활용된 ‘콰이강의 다리’ 또한 이렇듯 경계를 넘어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동남아시아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은 버마(미얀마)를 넘어 인도까지 넘보고 있었다. 이를 위해 태국-버마 철도 건설을 결정하고, 연합군 포로와 현지 민간인을 강제 동원했다. 험지에서의 난공사에 수만 명이 죽어갔다. 그 ‘죽음의 철도’에 1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강제 징용되어 포로감시원 노릇을 한 이들은 일본군에게 맞고 포로들을 학대하며 현장을 이끌었다. 어느 영국군 포로에겐 가장 끔찍한 가해자의 모습이 조선인의 얼굴이기도 한 것이다. 전후, 이들은 전범 재판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그곳에 징용되어 갔다는 사실, 그들의 일본인 상관 다수는 재판을 받기는커녕 그대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없이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명령에 따라 저지른 폭력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학대받은 포로들을 찾아가 사죄하는 동시에, 일본 정부에는 책임을 물었다. 당한 폭력에 분개하며 행한 폭력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려 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중첩된 운명의 당사자가 된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신분을 숨기고 일제 괴뢰 만주국의 스타가 된 인물이자 전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한 일본의 평화운동가 리샹란(야마구치 요시코), 질소비료 개발로 식량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염소가스 제조법을 발명하며 대량학살의 시대를 불러온 유대인 프리츠 하버, 약육강식의 질서를 내면화한 인물이자 세간의 비난 속에서 ‘이혼녀’ 나혜석과 박인덕을 공개 변호한 계몽 지식인 윤치호, 서구 남성의 동양 여성 판타지에 일조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나치에 맞선 독일인 마를레네 디트리히, 아프리카 원주민의 사라져가는 삶을 사명을 다해 기록한 나치 연루자 레니 리펜슈탈, ‘전후 독일의 양심’이 된 나치 친위대원 귄터 그라스 등 국가나 민족,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논리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다종다양한 면모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거대한 역사의 힘도, 격랑의 사건들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이 책은 인간의 이야기로 썼다. 다수의 인물들이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는 서로 얽혀 있고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이들을 순전한 악마나 가엾은 희생자로 그리지 않으려 애썼다. 사랑하고 실수하는 인간, 꿈과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그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보려 했다.(〈서문〉에서)


무정과 동정을 넘어
‘연루된 주체’로서 읽는 공동의 역사

제국주의 시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줄곧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피해와 가해의 사실이 명확히 분별된다고 여기고, 과거사는 책임보다 요구와 관계된 문제로 이해한다. 피해 사실을 인정받아 적절한 배ㆍ보상을 이루어내는 것이 이 시기를 건너오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이야기된다. 이 책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문제의 모든 것으로 보는 익숙한 관점을 넘어 그러한 폭력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사고 체계, 인식, 감수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성찰의 계기로 삼을 때만 이 시기와의 진정한 단절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9장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까?’는 ‘과학’을 ‘힘’으로 해석하는 소설 《무정》의 마지막 장면과 《무정》의 작가 이광수의 나치즘ㆍ파시즘에 관한 관심, 황우석 붐과 초전도체 논란,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한 노벨화학상 수상 과학자이자 염소가스 개발로 화학전과 대량학살의 시대를 연 유대인 프리츠 하버의 일생 등을 포개어 살피며, 과학을 오직 힘과 경쟁력으로 환원해온 역사 속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식민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일본 조계지 상하이에서 꽃핀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 남성의 환상과 이에 부응하는 각종 문화상품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감수성이 일본에서는 미군 상대 직업여성 ‘팡팡걸’로, 남한에서는 양공주 ‘에레나’로, 베트남에서는 ‘미스 사이공’으로 이어지며 형성된 성 착취의 역사 또한 이 책 전반에서 거듭 다뤄지는 주제다. 국가에 의해 동원되고 국가에 의해 잊힌 이들에게 ‘과거사 청산’이란 어떤 의미이며, 우리 자신을 이러한 역사로부터 얼마나 타자화할 수 있는지를 현재적 맥락에서 반성적으로 보게 한다.
기억하는 주체로서 우리는 언제나 역사에 연루되어 있음을 환기하는 것도 이 책의 중요한 시도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국과 미국이 공적인 자리에서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을 짚는다. 베트남인 희생자, 부도덕한 전쟁에 끌려가길 거부하며 감옥행을 택했던 사람, 반전운동가 들을 누락하며 참전 군인만을 추모하고 연민하는 선택적 기억과, 베트남전쟁 참전군 추모 행사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향한 이질적인 반응들이 그것이다. 저자는 전쟁을 기억하는 우리의 방식이, 거듭되는 참사에 ‘국가적 애도’를 표하면서도 비극을 야기하는 구조에 대한 성찰은 부재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정(無情)도 동정(同情)도 넘어, 역사가 우리‘에게’ 져야 할 책임만큼이나 우리‘가’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을 철저히 돌아볼 때에만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파국의 역사 속에서 돌아보는
섬광 같은 마음과 태도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며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이 태도를 선택하고 취할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섬세하게 따라가는 이 책은 대문자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다시 새겨볼 만한 섬광 같은 마음의 유산을 빼곡히 소개하는 귀한 기록이기도 하다.
화학전과 대량학살 시대를 연 천재 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만든 독가스의 해독제를 개발하는 데 전념하다 연구 예산이 핵폭탄 개발에 우선 투입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목숨을 끊는다.(158쪽) 어느 영국인 포로는 콰이강으로 향하는 화물선 안에서 질식의 공포를 느끼며 이송되던 와중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상관 몰래 열차의 문을 열어주었던 순간을 회상한다. 그때 불었던 쾌적한 바람과, 열린 문으로 아무도 탈출하지 않던 일, 감시원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도착 후 얼른 문을 닫아주던 포로들의 모습을 기억했다.(65쪽) 정사(正史)에 남아 회자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은 이러한 ‘사소한’ 선택들을 역사의 무대 위에 세우며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한다. 이념, 국적, 인종 등의 경계를 넘어 ‘보편’을 향했던 작은 선택들을 돌아보고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어쩌면 아주 다른 역사를 가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정보

저자(글) 조형근

사회학자. 늦은 나이에 정규직(한림대) 교수가 되었으나 적성을 찾아 사직하고,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에서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동네살이의 일환으로 합창단과 미얀마연대 활동에도 참여 중이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헤쳐나간 사람들의 삶, 사랑과 상처에 관심을 기울여온 역사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저서로 《우리 안의 친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사회》, 공저로 《근대주체와 식민지 규율권력》 《식민지의 일상》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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