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스토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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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1부 사건과 사연
1장 역사와 유물, 그 숨은 연결 고리를 찾다
1. 짱돌로 지구를 정복하다: 360만 년 전 직립보행한 인류의 삶
2. 태풍 매미가 가져온 뜻밖의 선물: 신석기인의 배와 똥 화석이 둥실 떠오르다
3. 금제 띠고리의 주인공 낙랑인: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4. 침몰선이 전해준 900년 만의 증언: 고려청자를 꿀병과 참기름병으로 썼다고?
5. 기적의 극초정밀 유물 발견: 0.05mm 금박 화조도 선각단화쌍조문금박
6. 광화문광장 엿보기: 중국 사신 홀리고, 무대 붕괴 인재도 있었다
7. 백제 멸망의 장면들: 1,400년 전 최후의 순간을 증언하다
2장 과학부터 외교까지, 시대를 뒤흔든 사건들
8. 선도적 천문 기록: 케플러보다 먼저 초신성 폭발을 관측하다
9. 임진왜란 때 투항한 1만 명의 일본인: 그들은 왜 조선을 위해 싸웠나
10. 실록에 기록된 요절복통 사건 파일: 어전에서 방귀를 뀌었다고?
11. 외교 선물이 애물단지가 되다: 코끼리 유배 사건의 전모
12. 인간의 똥에서 추출한 화약: 화약 제조 비법서를 밀수한 역관의 용기
13.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 단돈 180프랑에 팔리다
14. 조선 호랑이는 왜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 한반도 침략 야욕의 희생양
15. 제2의 광개토대왕비인가: 향토 모임이 우연히 발견한 충주 고구려비
2부 인물과 인연
3장 왕과 백성들이 남긴 흥미로운 기록들
16. 동굴 속에서 발견한 비밀 통로: 신라 진흥왕의 낙서를 만나다
17. 민간인이 쓴 ‘난중 일기’: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전쟁의 비통함을 기록하다
18. 춤을 사랑한 효명세자: 궁중 예술의 총감독이 되다
19. 어진에 담긴 정신: 어진은 초상화가 아니라 사진이다
20. 임금도 눈치를 봐야 했던 현판 쓰기: 전하가 연예인입니까?
21. 왕조시대 군주들의 재난 대처법: 모두 과인의 책임이다!
22. 국새에 찍힌 기막힌 영어 낙서: 국새와 어보는 우리의 자산
23. ‘신일본인’을 선택한 이봉창: 그는 왜 일왕을 처단하려 했을까
4장 그때도 지금도 사람 사는 것은 다르지 않다
24. 1,500년 전 무덤에 묻힌 개의 정체: 신라인의 반려견, 가야인의 경비견
25. 신라에서 유행한 이모티콘과 줄임말: ‘수전(水田)’ 대신 ‘답(畓)’을 쓴 이유
26. 〈오징어 게임〉은 가라, 나한이 납신다: 호주도 열광한 ‘볼매’ 얼굴
27. 기로소가 무엇이기에: 50대에 노인 대접 요구한 숙종과 영조
28. 나라의 운명을 바꾼 소주: 세종조차 ‘임금도 못 막는다’고 인정하다
29. 조선 최초의 패션모델: 여성해방을 그린 혜원 신윤복
30. 최고 5만 대 1의 극한 경쟁률: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비밀
31. 조선이 조용한 은자의 나라?: 분통 터진 미국인 독립투사
32. 100년 전부터 시작된 꼴값 영어: 조선을 뒤흔든 영어 열풍
33. 19세기를 풍미한 조선판 댓글 문화: 쌍욕에 음담패설, 신상 털기까지
참고 문헌
비봉리 유물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역시 ‘똥(糞) 화석’일 겁니다. 발굴 때 파낸 흙을 0.2~1mm 그물망으로 일일이 체질한 결과 찾아낸 보물이죠. 어떤 신석기인이 시원하게 배설을 했는데, 그게 따가운 햇볕에 굳어버렸고, 그 위에 계속 흙이 쌓여 결국 화석으로 변한 겁니다. 발굴에 참여한 당시 이정근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똥 화석을 보면 팥알 반 크기의 알갱이가 있습니다. 똥 속에 음식물 잔해가 남아 있는 겁니다.” 고고학 발굴 사상 처음으로 똥 화석을 찾아낸 조사단은 흥분 상태에 빠졌고, 이후 발굴 현장에서는 “똥 찾았어요?” 하는 게 인사였다고 합니다. _33~34쪽
연구소는 이 작은 금박을 완전체로 복원한 뒤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0.3g의 금박 순도가 포 나인(four nine), 즉 99.99%였던 겁니다. 불순물이 0에 가까운 고순도 정련 기술을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확보했다는 이야기니까요. 참고로 신라시대 금관(6점)의 금 함유량은 80~89%(19~21K)입니다. 무엇보다 끌이나 정으로 새긴 선의 굵기가 신비롭기 그지없는데,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0.08mm)보다 얇은 0.05mm 이하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가무형유산 김용운 조각장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요. “컴퓨
터로 도안한 그림을 레이저로 쏘면 가능할까요? 한번 시도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0.05mm 문양을 새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_61쪽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는 2만~3만 명(일본 측 자료) 또는 10만~40만 명(조선 측 자료)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일본군 포로는 얼마나 됐을까요? 다음은 1597년(선조 30) 5월 18일 도원수 권율이 적진에 밀파한 첩자들의 보고를 정리해서 조정에 알린 내용입니다. “왜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항왜(항복한 일본인)의 수가 이미 1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일본의 용병술을 다 털어놓았을 테니 심히 걱정된다고 수군거립니다.” 한 연구자가 실록에 등장하는 항왜의 수를 집계했는데, 모두 42건 600명에 달합니다. 기록된 것만 이 정도이니, 갖가지 이유로 항복하거나 귀화한 왜인이 꽤 많았겠죠. 그들 중에는 김귀순, 김향의, 이귀명 등의 이름도 보이는데, 귀순하고(귀순), 의를 좇았으며(향의), 천명에 귀의했다(귀명)는 뜻에서 조선 조정이 하사한 이름임이 분명합니다. _104~105쪽
그런데 ‘유근’이라는 이름 뒤에 작은 글씨로 쓰인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유근-임금의 지척에서 감히 방귀를 뀌었으니 이는 위인이 경솔한 소치다.” 유근이 감히 임금을 치료하는 엄중한 자리에서 방귀를 뀌었다는 겁니다. 상상해보면 얼마나 ‘갑분싸’였겠으며, 방귀를 뀐 유근 본인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모두 망극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짐짓 모른 체하느라 애를 썼겠죠. 몇몇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런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그곳에 입시한 사관의 붓끝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유근의 사람됨이 경솔하다고 ‘디스’한 거죠. 그 때문에 예조판서와 좌찬성 등을 지낸 유근은 ‘임금 앞에서 감히 방귀를 뀐 인물’로 역사서에 기록되고 말았고요. 별것을 다 평가한 사관도 그렇고, 그걸 걸러내지 않고 실록에 실은 편수관들도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는 당시 어전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상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_114~115쪽
이와 같은 ‘사진 정신’으로 초상화를 그렸으니 자타 공인의 무결점 미남이 아니고서야 자기 사진에 만족하는 사람이 드물었겠죠. 더욱이 만백성의 어버이이자 지존인 임금은 더했을 겁니다. 그래도 지존의 얼굴인데 요즘 말로 ‘뽀샵’ 처리를 하지는 않았을까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시죠. 태조 재위 당시 제작한 이 어진은 1409년(태종 9) 모사, 1763년(영조 39) 수리, 1872년(고종 9) 재모사를 거친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진의 오른쪽 눈썹 위를 자세히 보면 지름 약 0.7~0.8cm가량의 사마귀 같은 점(모반)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난 점을 세 번이나 모사 및 수리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털 한 올 고치지 않고 그린 초상화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_210쪽
이봉창 의사를 보면 몇 가지 상념이 떠오릅니다. 이봉창은 서른 즈음까지도 식민지 조선에서 한일합병 후 탄생한 ‘신일본인’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에게 나라를 빼앗긴 설움 따위는 없었죠. 어떻게 하면 차별받지 않고 신일본인 대접을 받을까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때때로 조선인이라는 자각도 했지만 이내 철저히 ‘기노시타 쇼조’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고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봉창 의사는 서울-오사카-도쿄-상하이 등의 역정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고 깨져가며 드디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자각을 하는 순간, 이봉창은 독립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별받지 않으려면 조선인의 나라가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죠. _258~259쪽
배재학당 설립자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는 이미 1886년 무렵 “조선인에게 ‘왜 영어를 배우려 하느냐’고 물으면 ‘관직에 나서려고 배운다’고 대답했다”고 밝혔습니다. 당대의 영어 열풍을 보여주는 광고가 있습니다. 영국인 원어민 강사가 〈독립신문〉에 낸 사상 첫 영어 과외 광고입니다. “영국 선비 하나가 특별히 밤이면 몇 시간씩 가르치려 하니 이 기회를 타서 조용히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독립신문사로 와서 물으면 자세한 말을 알지어다.”(1898년 7월 4일) “월전(7월 4일) 광고했던 영어 가르치는 사람이 9월 1일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가르칠 터이니 (…) 교사의 월급은 다 선급이요 (…) 다만 며칠만 배웠더라도 월급은 한 달 셈으로 할 터이니 그리들 아시오.”(1898년 8월 26일) _342~343쪽
“왜 우리 국새에 영어 이름 ‘톰’이 새겨져 있을까?”
시공간을 초월한 33번의 흥미진진한 역사 여행
흩어진 유물ㆍ유적ㆍ문헌을 통해 봉인된 역사와 시간을 깨우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고고학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 대부분은 오랜 세월 훼손되어 원형을 잃고 파편화된 상태. 그렇기에 그 안에 깊숙이 봉인된 정보를 복원하는 작업은 지난하고, 내용 또한 전문적이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각계각층의 노력이 있었는데 《하이, 스토리 한국사》도 그중 하나다. 이 책은 미지의 세계로 남겨진 역사의 장면들을 하나하나 핀셋으로 가려 뽑듯 찾아내 서사를 만들고, 그 안에 온축된 옛사람들의 삶, 그들이 창출한 문화의 실타래를 생동감 있게 풀어낸 문화유산 탐사기다. ‘하이, 스토리(Hi-Story)’는 ‘역사(History)’를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난다는 뜻이다.
저자 이기환은 고고역사학자이자 히스토리텔러이다. 지난 30여 년간 역사 속 다양한 유물과 유적, 인물과 사건에 얽힌 에피소드를 깊이 있는 분석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개하며 ‘역사 저널리즘’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역사는 무궁무진한 소재가 넘쳐나는 보물창고와 같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을 대중에 전달해온 방식이 지나치게 학문적이라는 것. 여기서 저자 특유의 종합 능력과 글솜씨가 빛을 발한다. 학자로서의 전문성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예리한 통찰로 흩어진 파편을 붙이고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음미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 책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국사의 기막힌 발견과 반전의 순간들을 33개의 주제로 풀어내고 있다. 신석기인의 똥 화석으로 당시 고인류의 삶을 입체적으로 복원하고, 얼굴 모양 토기를 통해 신라시대 유행한 문화와 사회상을 조명하고, 낙서를 좋아하는 인류의 본능이 낳은 역사적 기록들을 추적하고, 민간인이 쓴 난중 일기와 시대를 풍미한 댓글 문화를 통해 백성들의 애환을 그려내고, 국새나 문헌 등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어떻게 해외로 반출됐는지 그 경로를 낱낱이 밝히며 봉인된 역사와 시간을 깨운다. 특히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당시 현장 전문가들의 증언과 뒷이야기,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발품을 판 방대한 사료들, 사회ㆍ문화ㆍ예술 등 다방면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흡인력 있는 서술로 독자들을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다채로운 이면을 만나는 시간!
사건과 사연부터 인물과 인연까지,
새로운 발견과 기막힌 반전의 스토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하이, 스토리 한국사》는 새롭게 발굴된 유적과 유물, 현재 진행 중인 역사적 이슈, 유명한 위인들의 색다른 면모,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살피는 반성의 시선까지, 우리 역사의 면면들을 다채롭게 담아냈다. 각각의 사건을 주제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조망함으로써 역사 지식을 한 차원 높인 점 또한 탁월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저자가 옛날 이 땅을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현대적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본성, 감정, 그리고 삶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글을 읽을 때마다 “그때도!”라며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 구석기판 맥가이버 칼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등장
: 세계 구석기 학계를 뒤집은 동아시아 최초의 발견
1978년 4월, 여자친구와 연천 전곡리의 한탄강 유원지를 찾은 미군 그레그 보웬의 눈에 돌멩이 하나가 포착된다. 자연석 같으면서도 누군가 인공적으로 깎은 흔적이 있는 차돌이었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심상치 않은 석기의 발견’을 세상에 알렸고, 곧 이것이 ‘아슐리안 주먹도끼’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동아시아 최초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세계 구석기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동아시아에서는 단순한 ‘찍개 문화’만 유행했다는 ‘모비우스의 가설’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찍기ㆍ찌르기ㆍ자르기ㆍ썰기ㆍ부수기ㆍ파기 등의 기능을 겸비한 ‘구석기판 맥가이버 칼’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조사에서 한탄강 변 전곡리 유적 24만 평에서 구석기 유물이 고루 출토되었다. 이곳이 구석기인의 집단 주거지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3년부터 해마다 5월이면 전곡리에서 구석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
■ 케플러보다 4일 앞서 ‘케플러 초신성’을 발견한 조선
: 우리 선조들의 선도적인 천문 기록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1604년 10월 17일에 관측한 초신성 폭발 현상을 ‘케플러 초신성’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4일 전인 10월 13일, 조선 천문학자들이 먼저 이 우주 쇼를 관측했다는 사실이다. “1경(오후 7~9시)에 객성(客星)이 미수(尾宿) 10도의 위치에 있었다. 형체는 목성보다 작고 색깔은 황적색이었다.” 2017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ㆍ영국 등 6개국 연구진이 2016년 칠레에서 전갈자리 꼬리 부분에 있는 별을 둘러싼 가스구름을 관측했는데, 그들이 참고한 기록이 〈세종실록〉이었다. “객성이 미성(尾星)의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14일간이나 나타났다.” 그 가스구름이 바로 1437년 폭발한 신성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관측 기록이 최첨단 기구로 무장한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결정적 자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천문 관측은 어떻게 당대 최고 수준이었을까? 왕조시대 임금은 하늘이 내리는 상서로움과 재앙, 길흉의 조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월식, 지진, 혜성, 신성 등의 이변은 불길한 징조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책임이 임금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천문학에 관심을 쏟고 천문 관측이 정교해진 것이다.
■ 고려시대 왕들의 초상화는 왜 남아 있지 않을까?
: 분영갱상의 만행을 저지른 성군의 대명사 세종
현재 고려 왕들의 초상화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세종이 모조리 불태우고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종은 즉위 후 도화원에 있던 고려 역대 군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두 불살라버리라고 명했다. 더 나아가 고려 태조의 진영과 쇠로 만든 주물상 및 공신들의 영정을 모두 각각의 무덤에 묻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어진들도 모조리 찾아내 없앴다. 한마디로 고려 임금들의 초상화를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이른바 ‘분영갱상(焚影坑像)’의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세종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마치 살아 있는 듯 사실적으로 그려진 고려 임금들의 초상화를 보는 일이 꽤 불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진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왕조를 상징한다고 봤기 때문에 색출 작업까지 해서 없애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려 임금들의 어진은 거의 사라졌다. 만약 고려ㆍ조선의 역대 임금 초상화가 모두 남아 있었다면, 그야말로 숱한 이야깃거리와 연구거리가 탄생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 왜 우리 국새에 영어 이름 ‘Tom’이 새겨져 있을까?
: 국가를 상징하는 국새와 어보의 수난사
1882년에 제작된 국새 대군주보에는 생뚱맞은 낙서가 새겨져 있다. 바로 ‘W B. Tom’이라는 영어 이름이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대군주보는 일본에 압수당한 뒤 일왕의 진상품이 되어 궁내청으로 들어가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1945년 해방을 맞자 미 군정청이 국새를 모두 인수해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인계하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대한제국기에 제작한 국새는 물론, 종묘에 보관하던 어보까지 행방불명되고 만다. 당시 국새를 관리하던 기관은 “전쟁 중 괴뢰군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당시 신문 기사를 통해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다. 어보와 국새의 상당수가 도난당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급기야 미국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미군이 옥새를 감정 중이라는 첩보를 듣고 금은방 현장을 급습해 압수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심지어는 “국민 중 몰지각한 분자들이 외국인의 환심을 사려고 국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선물했다.” 대군주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어느 미국인이 이를 수중에 넣고는 자기 이름을 버젓이 새겨넣은 것이다.
■ 쌍욕에 신상 털기까지, 19세기를 풍미한 조선의 댓글 문화
: 그때도 지금도 사람 사는 것은 다르지 않다
19세기 말 전후로 당시에도 댓글 문화가 있었다. 세책점(도서 대여점)에서 빌린 소설책에 독자들이 툭툭 써 내려간 낙서가 그것이다. 특히 국권이 침탈되던 당대 소설책에는 암울한 시대 상황을 꼬집고 풍자하는 ‘시국 댓글’이 줄을 이었다. 주공격 대상은 매국노였다. “대역부도 이완용아, 천하의 몹쓸 놈 아무 때 죽어도 내 손에 죽으리라. 총리대신 이완용 개자식!” 대놓고 욕할 수 없었던 민중의 울분이 고스란히 담겼다. 익명성에 기댄 욕설 등의 악플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책 주인아, 예전같이 돈을 받으면 감옥소에 보내 종신징역 하게 될 터이니 조심해!”라며 대여비가 비싸다고 주인을 겨냥한 낙서도 줄을 잇는다. 낙서한 사람을 욕하는 유치한 악플 릴레이도 펼쳐졌다. “이것 쓴 사람은 개자식”이라든지, “만약 이 낙서를 보고 욕하는 놈은 내 아들이다” 하는 식이다. 낙서나 댓글은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는 일종의 쌍방 간 의사소통이다. 지독한 악플은 문제이지만 이 역시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니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 자료임이 틀림없다.
작가정보
히스토리텔러. 고고역사학자. 우리 역사 속 다양한 유물과 유적, 인물과 사건에 얽힌 에피소드를 깊이 있는 분석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개하며 ‘역사 저널리즘’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성균관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한 뒤 기자로서의 꿈을 좇아 1986년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여러 부서를 거친 후 2000년부터 문화부에서 문화유산 담당 기자로 일했다.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보다 기획기사로 독자들과 호흡하자는 생각으로 고고학 발굴과 역사를 접목한 다양한 칼럼을 기획했다. ‘한국사 미스터리’, ‘한국사 기행’,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분단의 섬 민통선’ 등 대중의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던 글들이 이때 탄생했다. 이즈음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문화유산 전문기자가 되었다. 2011년부터 〈경향신문〉에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연재하기 시작해 현재까지 400편 넘게 이어오고 있다. 2021년부터는 3년간 〈주간경향〉에서 ‘이기환의 하이스토리(Hi-Story)’도 연재했다. 신문 외에도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이기환의 하이스토리), KBS, MBC, 국군방송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왔다. 지은 책으로 《흔적의 역사》 《성산 장기려》 《한국사 기행》 《분단의 섬 민통선》 《코리안루트를 찾아서》(공저) 《한국사 미스터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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