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길어서 미치도록 다양한 칠레
2024년 09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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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역사에서부터 정치·경제, 외교·자원, 사회·문화를 모두를 아우르며
미친 지리, 미친 다양성의 나라 칠레를 말한다!
삼프로TV ‘신과의 대화’, ‘칠레 5부작’ 누적 조회 140만,
위즈덤 칼리지 ‘중남미 탐구생활’ 누적 조회 100만 기록
전 명문 칠레가톨릭대학교 민원정 교수가
17년 칠레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쓴
국내 첫 칠레 입문서이자 비즈니스·외교·여행을 위한 최신의 칠레 안내서
들어가며
1장 바케다노 광장과 지하철 요금 30원
#역사·정치·경제
1 기나긴 군부독재가 끝나고
◆ 비야 그리말디
2 신자유주의의 늪에 빠지다
3 넘을 수 없는 빈부격차
4 높디높은 칠레 엘리트들의 벽
◆ 산티아고
2장 유럽과 남미 그 사이
#정체성·계급
1 원주민과 정복자들
◆ 테무코
2 다문화 속 타문화, 혼종의 공간
◆ 이스터섬
3 칠레는 남미가 아니다
◆ 발파라이소 역사 지구
4 유럽중심주의를 파고든 ‘양키’ 문화
◆ 푸에르토바라스
3장 가깝고도 먼 이웃들
#외교·자원
1 넘치는 자원의 땅, 누가 주인인가?
2 페루, 사라지지 않은 적대감
3 볼리비아, 자원을 둘러싼 경쟁
◆ 아타카마사막
4 ‘괜찮은 이웃’ 아르헨티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5 칠레에 손 뻗는 마약 카르텔
4장 칠레인의 일상 풍경
#사회·문화
1 칠레는 커피? 칠레는 와인!
◆ 벤디미아 축제
2 타코 없는 남미 나라
3 홀로서야만 하는 어머니
◆ 라세레나
4 가능하지도 불가능하지 않은 임신중지
5 다정다감한 마초이즘
6 꿈틀대는 아시안 혐오
5장 칠레의 미래
#새로운 세대
1 인터넷 세대, 세상을 만나다
2 능력보다는 출신?
3 결혼 말고 시민결합
4 칠레 사회를 뒤흔드는 한류
본문의 주
이미지 출처
칠레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엉뚱하게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을 말하고 386세대는 아옌데와 피노체트를 떠올렸으며 또 다른 이들은 살사, 탱고, 와인, 돼지고기, 홍어 등 각자가 가진 이미지를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중남미 최고 명문대에서 교수씩이나 하고 온 사람이 아닌, 그저 제3세계 남미에 혼자 오래 살다 온 조금 별난 여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칠레가 리튬 보유국 1위로 화제에 올랐다. 중남미는 … 멀어도 가까워져야만 할 곳으로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감히 칠레를 제대로 알려주고,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에 대한 편견을 깨보고 싶었다. … 월급쟁이로 살아가면서 칠레 사회를 깊이 알게 되었고, 특히 한국 사람들은 모르는 칠레 엘리트 사회를 경험했으니, 이런 드문 경험을 한 내가 누구보다 자세하고 정확하며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머리말〉 중에서
와이너리는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칠레 중부에 몰려 있다. 8,800헥타르 이상의 칠레 중부 계곡 지대에서 여러 품종의 포도가 재배된다. 그중 칠레의 최대 재배 품종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는 카르메네르(Carmenere)다. 이 품종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이 원산지이지만, 19세기 필록세라 전염병으로 정작 프랑스에서는 사라졌다. 칠레는 포도를 재배하는 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카르메네르가 칠레에서 살아남은 이유도 안데스산맥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칠레의 지형과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 덕이다. ―〈칠레는 커피? 칠레는 와인!〉 중에서
칠레는 리튬을 국가경제발전과 글로벌 수준의 녹색 경제로의 변화를 연결하는 핵심 산업 개발의 축으로 활용해 국가의 부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개발의 이면에는 자연환경 파괴라는 변수가 있다.… 칠레를 비롯한 리튬 생산국들은 최근에서야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 접근성, 지역사회의 이익, 지속가능성과 수익성 있는 운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도전과 노력은 비단 리튬 산업뿐만 아니라 구리, 금 등 칠레 광산업 전체의 과제다. … 무엇이 잘사는 길인가. 안타깝게도 선택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넘치는 자원의 땅, 누가 주인인가?〉 중에서
칠레 사람들은 독일 맥주를 마시고, 영국식 티타임을 즐기며,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프랑스 와인을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다. 매년 10월이면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온세라고 부르는 티타임을 즐기며, 프랑스에서는 사라진 카르메네르가 칠레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잡았으니 말이다. 가히 ‘짝퉁 유럽’이라 할 정도로 칠레 곳곳에 유럽의 흔적이 넘친다. … 유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칠레의 삶을 지배한다. 유럽은 칠레인들의 뿌리인 동시에 칠레 사회가 하나로 통합하기 어려운 딜레마로 작동하기도 한다. ―〈칠레는 남미가 아니다〉 중에서
칠레, 특히 산티아고는 구역에 따라 계급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산티아고의 중앙을 관통하는 바케다노 광장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갈수록 부촌, 서남쪽으로 갈수록 빈촌이다. … 칠레는 여타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최고 상류층에 부가 집중되어 있으며 부자 아홉 명이 국가 전체 부의 49.6%를 소유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소득과 부의 측면뿐 아니라, 교육과 건강에서도 나타난다. 거주지 이외에도 출신 초·중·고등학교를 알면 그 사람이 속한 사회·경제적 계층이 드러난다. ―〈넘을 수 없는 빈부격차〉 중에서
2019년 10월 칠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단순히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만이 아닌, 근본적으로 식민 시기부터 이어온 공고한 엘리트층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위대는 산티아고의 바케다노 광장에 세워진 바케다노 장군 동상을 밟고 올라가 깃발을 꽂았다. 마누엘 헤수스 바케다노 곤살레스는 칠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으며 아라우카니아 지역에서 마푸체 인디오의 영토를 점령하고, 태평양전쟁에서 칠레가 페루-볼리비아 연합에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오랜 불평등과 계급,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던 시위대는 이 광장을 ‘존엄 광장(Plaza de Dignidad)’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높디높은 칠레 엘리트들의 벽〉 중에서
칠레는 1980년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 시절 제정된 헌법에 따라 물을 사유재로 삼은 세계 유일의 나라다. … 인터넷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수돗물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계약한 회사의 수돗물을 사용해야 한다. … 칠레 거의 모든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에넬도 민간 전력회사다. 대중교통은 공공 서비스이지만 이 또한 민간기업에서 운영한다. … 공공부문 민영화는 피노체트 독재정권 당시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며 시작되어 이후 정권과 상관없이 이어져 왔다. 2019년 10월 칠레 거리에는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단 2주 만에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큰 시위를 촉발한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을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지난 30년에 비유한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늪에 빠지다〉 중에서
칠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성·동성 모두 공식적인 결혼, 시민결합(union civil), 동거 등의 형태로 함께할 수 있다. 비록 시민결합과 동거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 결혼보다는 시민결합이나 동거를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더 많다. 한 칠레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요즘 결혼하는 사람은 동성애자들뿐일 거라고 말했다. 이혼 후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을 피하고 싶은 사람, 번거로움에 이혼하지 않고 별거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 사랑하는 데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등 이유는 각기 다르다. ―〈결혼 말고 시민결합〉 중에서
눈에 보이는 케이팝 팬 대부분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중·하류층 소녀들로 주류에 섞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여겨졌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남성 팬들은 게이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는 칠레 및 중남미 사회의 유럽중심주의와 남성우월주의, 모든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치부하며 차별하는 치노이즘에 기인한 것이다. …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는 칠레의 사회·경제·문화적 약자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엿볼 기회를 주었다. … 주변화는 오히려 팬들로 하여금 소셜미디어라는 공간을 활용해 더 큰 유대감을 형성했으며 이러한 유대감은 2019년 시위 당시 케이팝 팬들의 커버댄스 시위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칠레 사회를 뒤흔드는 한류〉 중에서
1. 낯선 나라 ‘칠레’를 제대로 만나고 이해하는 첫걸음
-정치와 경제, 역사와 사회·문화 모두를 아우른 국내 첫 칠레 입문서
-저자의 17년 칠레 거주 경험이 묻어난 최신의 생생한 칠레 이야기
한국인들에게 칠레는 지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고 낯선 나라다. ‘칠레’ 하면 와인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아옌데의 민중연합정권과 피노체트 군사정권, 요즘은 리튬 등 자원 같은 파편적인 것들만 떠오를 뿐, 칠레가 어떤 나라인지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남미 대륙에 있다는 이유로 오해와 선입견도 존재한다. 그뿐일까. 지진 같은 지리적 변수는 물론, 극단적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대규모 시위 등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 변수들로 칠레라는 나라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2차 전지 원료인 리튬이 각광을 받으며 리튬 산지이자 자원의 보고인 남미, 특히 칠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유행하고 있는 지금 칠레는 중남미 한류의 견인차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남미 한류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외교 관계 확장이나 비즈니스 진출과 투자, 문화 교류의 확대 가능성이 높은 칠레는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2004년부터 17년간 칠레에 거주하며 명문 칠레가톨리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쳐 온 민원정 교수가 칠레가 궁금한 한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칠레 안내서다. 오늘날 칠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에서부터 정치와 사회, 외교와 자원 정책, 사회·문화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며 칠레의 참모습을 들려주고, 칠레 사회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 선보이는 칠레에만 주목한 역사·문화 입문서로, 뻔한 관광지가 아닌 칠레의 면면을 속속들이 보고 싶고, 자원보유국으로 주목받는 칠레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싶고, 알 길이 없던 칠레인들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전에 없던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칠레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엉뚱하게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을 말하고 386세대는 아옌데와 피노체트를 떠올렸으며 또 다른 이들은 살사, 탱고, 와인, 돼지고기, 홍어 등 각자가 가진 이미지를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는 중남미 최고 명문대에서 교수씩이나 하고 온 사람이 아닌, 그저 제3세계 남미에 혼자 오래 살다 온 조금 별난 여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칠레가 리튬 보유국 1위로 화제에 올랐다. 중남미는 … 멀어도 가까워져야만 할 곳으로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감히 칠레를 제대로 알려주고,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에 대한 편견을 깨보고 싶었다. … 월급쟁이로 살아가면서 칠레 사회를 깊이 알게 되었고, 특히 한국 사람들은 모르는 칠레 엘리트 사회를 경험했으니, 이런 드문 경험을 한 내가 누구보다 자세하고 정확하며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머리말〉 중에서
2. 미친 지리, 미친 다양성의 나라
-다양한 지리적 환경이 만들어 낸 다양한 자원과 문화
-오랜 거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칠레의 명소 안내
칠레 하면 지리를 빼놓을 수 없다. 칠레 작가 벤하민 수베르카소스가 “미친 지리”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칠레는 독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칠레는 고작 평균 117킬로미터의 폭에 남북으로는 장장 4,300킬로미터에 달하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좁고 나라다. 전 세계 최대 구리 광산과 리튬 산지가 모여 있는 북쪽의 아타카마 사막지대에서 출발해 남쪽 땅끝 혼곶과 남극 빙하지대에까지 이르면 세계 모든 기후를 만날 수 있다. 동쪽에는 높고 웅장한 안데스산맥이, 서쪽으로는 남태평양 위 이스터섬같이 신비한 섬들이 즐비하다.
이런 지리적 조건 덕분에 풍경과 기후는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자원 또한 다양하다. 프랑스에서는 사라진 카르메네르 품종이 칠레 와인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달콤한 칠레산 과일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칠레의 주요 수출품이 광물 자원에서부터 농·수·임산물까지 다양한 것도 사막과 안데스산맥과 남극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지형 덕분이다. 그러나 그 탓에 지진과 해일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자원을 둘러싼 페루, 볼리비아 등 주변 나라들과의 긴장도 끊이지 않는다. 칠레의 지리적 환경은 칠레의 정치, 경제, 외교는 물론 칠레인들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칠레를 이해하는 기본적 요소다.
이 책에서는 ‘미친 지리’가 만들어낸 칠레의 풍경, 자원, 문화와 일상을 상세하게 소개함과 동시에 여행자로서 가볼 만한 명소들을 오랫동안 현지에 거주한 저자가 친절하게 안내하는 칼럼을 별도로 마련해 독서하면서 지구 반대편 칠레를 여행하는 기분도 느끼게 한다.
와이너리는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칠레 중부에 몰려 있다. 8,800헥타르 이상의 칠레 중부 계곡 지대에서 여러 품종의 포도가 재배된다. 그중 칠레의 최대 재배 품종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는 카르메네르(Carmenere)다. 이 품종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이 원산지이지만, 19세기 필록세라 전염병으로 정작 프랑스에서는 사라졌다. 칠레는 포도를 재배하는 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카르메네르가 칠레에서 살아남은 이유도 안데스산맥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인 칠레의 지형과 건조하고 뜨거운 기후 덕이다.
-〈칠레는 커피? 칠레는 와인!〉 중에서
칠레는 리튬을 국가경제발전과 글로벌 수준의 녹색 경제로의 변화를 연결하는 핵심 산업 개발의 축으로 활용해 국가의 부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개발의 이면에는 자연환경 파괴라는 변수가 있다.… 칠레를 비롯한 리튬 생산국들은 최근에서야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 접근성, 지역사회의 이익, 지속가능성과 수익성 있는 운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도전과 노력은 비단 리튬 산업뿐만 아니라 구리, 금 등 칠레 광산업 전체의 과제다. … 무엇이 잘사는 길인가. 안타깝게도 선택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손을 떠난 지 오래다.
-〈넘치는 자원의 땅, 누가 주인인가?〉 중에서
3. 우리는 남미가 아니라 유럽!
-칠레의 기원과 칠레인의 정체성을 알면 보이는 칠레
칠레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펼쳐진 역사를 알아야 한다. 칠레는 남미 대륙에 위치하지만 ‘신대륙’을 발견한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지배했고, 1810년 독립 이후에도 정복자들의 후손인 백인 크리오요들이 엘리트층으로 견고히 자리하며 칠레 사회를 이끌었다. 독립 이후 ‘백인 국가’를 지향하며 적극적으로 유럽인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백인과 인디오 혼혈인 메스티소가 증가하며, 지금은 크리오요와 유럽인 이민자의 후손, 메스티소가 칠레 인구의 95%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칠레를 ‘남미가 아닌 유럽’이라 자부한다. 그들의 고향은 남미나 칠레가 아닌 선조들의 고향 유럽이다.
정복과 식민의 역사에서 기인한 칠레의 유럽중심주의와 백인을 우월시하는 인종주의, 신분 계급의 선을 긋는 엘리트주의는 여전히 칠레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도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칠레의 민낯을 숨기지 않는 동시에, 인디오를 포함한 많은 칠레인의 변화에 대한 갈망과 희망 또한 놓치지 않고 들려준다.
칠레 사람들은 독일 맥주를 마시고, 영국식 티타임을 즐기며,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프랑스 와인을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다. 매년 10월이면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온세라고 부르는 티타임을 즐기며, 프랑스에서는 사라진 카르메네르가 칠레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잡았으니 말이다. 가히 ‘짝퉁 유럽’이라 할 정도로 칠레 곳곳에 유럽의 흔적이 넘친다. … 유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칠레의 삶을 지배한다. 유럽은 칠레인들의 뿌리인 동시에 칠레 사회가 하나로 통합하기 어려운 딜레마로 작동하기도 한다.
-〈칠레는 남미가 아니다〉 중에서
칠레, 특히 산티아고는 구역에 따라 계급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산티아고의 중앙을 관통하는 바케다노 광장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갈수록 부촌, 서남쪽으로 갈수록 빈촌이다. … 칠레는 여타 중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최고 상류층에 부가 집중되어 있으며 부자 아홉 명이 국가 전체 부의 49.6%를 소유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소득과 부의 측면뿐 아니라, 교육과 건강에서도 나타난다. 거주지 이외에도 출신 초·중·고등학교를 알면 그 사람이 속한 사회·경제적 계층이 드러난다.
-〈넘을 수 없는 빈부격차〉 중에서
2019년 10월 칠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단순히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만이 아닌, 근본적으로 식민 시기부터 이어온 공고한 엘리트층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위대는 산티아고의 바케다노 광장에 세워진 바케다노 장군 동상을 밟고 올라가 깃발을 꽂았다. 마누엘 헤수스 바케다노 곤살레스는 칠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으며 아라우카니아 지역에서 마푸체 인디오의 영토를 점령하고, 태평양전쟁에서 칠레가 페루-볼리비아 연합에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오랜 불평등과 계급,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던 시위대는 이 광장을 ‘존엄 광장(Plaza de Dignidad)’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높디높은 칠레 엘리트들의 벽〉 중에서
4. 오늘날의 칠레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이슈들
-신주자유주의에서부터 사랑과 결혼, 한류의 유행까지
저자가 칠레에서 거주하는 17년 동안 다양한 계층의 칠레인들을 만나고 칠레 사회의 변화를 직접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글인 만큼, 칠레 사람들의 음식 문화와 사랑과 결혼, 학업과 취업, 은퇴 같은 가장 최신의 칠레 사회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남미 나라인데 타코가 없고, 결혼이 아닌 ‘시민결합’을 하고, 다정다감한 마초이즘에 반기를 들고, 아시아 시장은 필요해도 아시안 혐오가 꿈틀대는 한국인이 자세히 알 수 없던 요즘 칠레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들여다본다. 또 2019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대규모 시위를 불러일으킨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와 더불어 인터넷과 한류를 통해 칠레를 넘어 세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현실의 차별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세대의 모습도 살펴본다.
가장 최신의 칠레 사회의 변화를 조목조목 전하는 이 책은 비즈니스, 여행, 외교, 연구 등으로 칠레와 만나려는 독자에게 칠레인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도록 도울 진정한 칠레 안내서이다.
칠레는 1980년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 시절 제정된 헌법에 따라 물을 사유재로 삼은 세계 유일의 나라다. … 인터넷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수돗물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계약한 회사의 수돗물을 사용해야 한다. … 칠레 거의 모든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에넬도 민간 전력회사다. 대중교통은 공공 서비스이지만 이 또한 민간기업에서 운영한다. … 공공부문 민영화는 피노체트 독재정권 당시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며 시작되어 이후 정권과 상관없이 이어져 왔다. 2019년 10월 칠레 거리에는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단 2주 만에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큰 시위를 촉발한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을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지난 30년에 비유한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늪에 빠지다〉 중에서
칠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성·동성 모두 공식적인 결혼, 시민결합(union civil), 동거 등의 형태로 함께할 수 있다. 비록 시민결합과 동거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 결혼보다는 시민결합이나 동거를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더 많다. 한 칠레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요즘 결혼하는 사람은 동성애자들뿐일 거라고 말했다. 이혼 후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을 피하고 싶은 사람, 번거로움에 이혼하지 않고 별거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 사랑하는 데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등 이유는 각기 다르다.
-〈결혼 말고 시민결합〉 중에서
눈에 보이는 케이팝 팬 대부분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중·하류층 소녀들로 주류에 섞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여겨졌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남성 팬들은 게이로 오해받기도 했다. 이는 칠레 및 중남미 사회의 유럽중심주의와 남성우월주의, 모든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치부하며 차별하는 치노이즘에 기인한 것이다. …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는 칠레의 사회·경제·문화적 약자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엿볼 기회를 주었다. … 주변화는 오히려 팬들로 하여금 소셜미디어라는 공간을 활용해 더 큰 유대감을 형성했으며 이러한 유대감은 2019년 시위 당시 케이팝 팬들의 커버댄스 시위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칠레 사회를 뒤흔드는 한류〉 중에서
작가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에서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의 텍스트 분석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칠레로 이주해 2006년부터 칠레가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아시아센터 집행위원으로 재직했고, 2023년부터 아시아센터 협력교수로 있다. 2020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제한국학연구원 규장각 펠로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시민사회프로그램 객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칠레에서 처음으로 한국학 관련 강좌를 개설했으며, 한국과 칠레 양국의 학술·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식민경험이 중남미 정체성 형성에 미친 영향과 중남미 사회의 인종·젠더·계급 문제에 기반해 에스파냐어권 화자들이 한류를 비롯한 아시아 대중문화를 수용·소비·재해석하는 양상을 연구한다. 한국 역사와 문화, 한·중남미 비교 문화 등을 강의했고, 미국 미시간대학교,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도 한류에 관한 강의를 했다.
최근 칠레와 중남미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종 방송과 강연을 통해 정확하고 생생하게 칠레와 중남미를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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