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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 김선형 옮김
문예출판사

2024년 09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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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6.58MB)
ISBN 978893102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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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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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상력의 죽음이다.”
비극적이며 매혹적인 한 시인의 격정적인 삶과 예민한 영혼의 기록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국내 번역 출간 2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신화의 베일에 갇힌 한 여성 시인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듣는다

실비아 플라스는 1963년에 서른 살 나이로 자살한 미국의 천재 여성 시인이다.
많은 사람은 궁금해한다. 왜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해야만 했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일기 안에서 그녀의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재능을,
그리고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열정과 야망을 품고 성공하고자 했던
한 비범한 천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비아는 자신이 겪은 사랑과 슬픔, 광기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면
어떤 새로운 경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장영희(수필가, 번역가, 영문학자)

실비아 플라스만큼 ‘신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아름다운 미국 여성 시인이 핸섬한 당대 최고의 영국 시인과 결혼하면서 시작된 현대 영미문학계 최대의 로맨스는, 남편인 테드 휴스의 외도와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로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 책은 격정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예민한 영혼에 대한 기록이며, 남성에게 희생된 여성 예술가의 전형이라는 ‘신화’에 가려졌던 시인의 고뇌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문예출판사는 2004년에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하여 소개했고, 2024년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에디션으로 새롭게 출간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빼어난 문학작품이며 자아의 내부 투쟁을 기록한 실비아 플라스의 자서전이다. 시인의 강렬하면서도 적나라한 감정 표현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삶과 자신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번득인다. 또한 사춘기 소녀의 팽팽한 감수성과 불안한 심리에서부터 원고 수락 편지를 기다리는 작가 지망생의 모습, 자기혐오와 타자에 대한 공격성에 이르기까지, 일기 속 실비아 플라스는 치열하게 한 생을 살아낸 한 사람이자 시인으로서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편집자의 말
서문

1부
스미스대학 1950~1955

2부
케임브리지 1955~1957
스미스대학 1957~1958

3부
보스턴 1958~1959
영국 1960~1962

옮긴이의 말
연대기

■나는 영영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밤만은 만족스럽다. 고작해야 텅 빈 집과, 딸기 포기들을 세우느라 지샌 하루 뒤에 찾아오는 다사롭고 몽롱한 나른함과, 차갑고 달콤한 우유 한 컵, 생크림을 듬뿍 얹은 블루베리 한 접시가 전부지만. 이제는 나도 사람들이 어떻게 책도 없이, 대학도 없이 살아갈 수가 있는지를 안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쓰러져 잠이 들고, 다음 날 새벽이 되면 또 손질해야 할 딸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렇게 흙을 벗 삼아 살아가는 거지. 지금 같은 때엔, 더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바보스럽게만 여겨진다……. -35페이지

■내게 있어, 현재는 영원이고, 영원은 무상하게 그 모습을 바꾸며, 처연히 흘러가다가는 형체 없이 녹아내린다. 찰나의 순간은 삶 그 자체. 순간이 사라지면 삶도 죽는다. 그러나 매 순간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는 없으니, 기왕 죽어버린 시간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이건 마치 물에 밀려 흘러가는 모래와 같다……. 헤어날 가망이라곤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소설 한 편, 그림 한 점이 어느 정도 과거의 감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으론 충분치가 못하다, 아니 턱없이 모자란다. 실존하는 것은 현재뿐인데, 벌써부터 나는 수백 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힌다. 백 년 전에도 어느 여자아이가 지금 나처럼 살아 있었겠지. 그러다 죽어갔으리라. 지금은 내가 현재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흐르면 나 또한 사라지리라는 것을 안다. 절정에 이르는 찰나, 태어나자마자 사라지는 찬란한 섬광, 쉼 없이 물에 밀려 흘러가는 모래. 그렇지만 나는 죽고 싶지가 않은걸. -37~38페이지

■오늘 밤 나는 추녀다.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을 모두 상실하고 말았다. 여자라는 동물에게는 참 딱한 질병이다. 사회적 접촉도 최저점에 닿아 있다. 나를 토요일 밤의 쾌락과 이어주던 유일한 끈마저 끊어져버리고, 이제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나 역시 하나도 아쉽지 않으니 피차 미련 따위는 없는 셈이다. 이성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란 도대체 뭘까? -62페이지

■잘생긴 외모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일시적인 위안을 주기 때문에? 뛰어난 두뇌는 또 무슨 소용이람? 그저 “나는 보았노라, 이해했노라” 따위의 말을 하기 위해서? 그렇다, 사실은 나는 자연스럽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밉다. 여기 이렇게 앉아 마음속 불가사의한 갈등에 주체 못 하는 내가 증오스럽다. -66페이지

■그러니 내게는 하나 또는 두 개 정도의 선택밖에 남지 않는단 말이지요!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습작을 열심히 하면 글을 쓰게 될까요? 쓸 만한 작가가 될 재목인지 알아보기 전에, 일단 얼마나 많은 걸 글쓰기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걸까요? 그 무엇보다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시기심 덩어리에 상상력도 없는 여자가 빌어먹을 가치가 있는 글 한 줄이나 써낼 수 있을까요? -98페이지

■가고, 보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욕망하고. 눈과 뇌와 내장과 질을 활용하고. 나는 이제 달라졌고, 더는 작년의 비활동적이고(대학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소심하고, 내성적인 개인은 없다. 나는 유명해지겠다는 일념으로 직함을 좇으며 스스로 부끄러울 일을 일삼지는 않았으나, 공적이면서도 내 창조적 목적과 필요에 부합하는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108페이지

■그런데 존재의 오류라는 게 있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면서, 또한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일련의 성취를 이루어가면서 늙어간다는 생각. 버지니아 울프는 왜 자살했을까? 사라 티즈데일을 비롯해 그 수많은 영민한 여성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신경증 때문에? 그들의 글은 과연 깊은 본능적 욕구의 승화(아, 이 끔찍스러운 단어)였던 것일까? 그 해답을 알 수만 있다면. 내가 삶의 목표를, 삶의 조건을 얼마나 높이 내걸어야 하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마치 가치를 계산하는 자를 갖고 노는 눈먼 소녀가 된 느낌이다. 나의 계산 능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149페이지

■여전히 계속이다. 과학은 무시하고, 우편물이 오나 창문 밖만 쳐다보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침대에서, 고요하고, 정체되고, 고약하게 부패하고, 힘세고 풍요로운, 내 잠재의식의 바다 밑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내 어린 시절의 복잡한 모자이크를 하나로 맞추는 일을 하고 싶다. 모호하고 형체 없이 끓어오르는 기억에서 감정과 경험 들을 포착해 타이프라이터에 흑백으로 토해놓도록. -167페이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상력의 죽음이라고 생각된다. 바깥의 하늘이 단순한 분홍색에 불과해 보이고, 지붕이 단순히 검은색에 불과하게 되는 그날. 세계에 대해 역설적으로 진실을, 하지만 가치 없는 진실을 말하는 사진 같은 정신이. 그건 내가 욕망하는 하느님보다 더 왕성한 창작력으로 풍요롭게 싹틔우고 번식하며 자기 나름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합성의 힘,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힘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축 늘어진 드럼처럼 아무 의미 없이 계속 둥둥 소리를 내며 흘러가리라. 우리는 움직이고, 일하고, 꿈을 만들어나가야만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다. 꿈이 없는 삶의 빈곤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하기도 싫다. 그건 광기 중에서도 최악의 부류다. 공상과 환각 들이 딸린 그런 광기는 보쉬 전동 공구 정도의 위안이나 되면 다행이지. -242페이지

■나는 울프를 정말 사랑하고-크로켓 교수 수업 때문에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부터-《등대로》의 한 대목을 읽을 때는 거대한 스미스대학 강의실 한가운데서 온몸에 전율이 좌르륵 흐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 1953년 여름, 나는 그녀의 자살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익사할 수 없었다는 게 다를 뿐. 나는 항상 지나치게 상처받기 쉽고, 약간 편집증적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한 빌어먹을, 건강하고 쉽게 원기를 회복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과파이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다만 글을 써야 한다는 게 다를 뿐. 이번 주에는, 최근 아무것도 써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소설 쓰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되어야 한다니, 와락 겁이 나는 거다. -321페이지

■우편물은 오지 않는다. 10월 1일 이후로 단 한 편의 시도 게재 허락을 받지 못했다. 시와 단편 들을 산더미처럼 써서 보냈는데도. 시집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시집 경연대회 수상과 관련해 자세한 상금 내역을 알려주는 테드의 편지도 오지 않았으니, 대리 만족조차 박탈당한 셈이다. 청구서들은 온다.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325페이지

■온 세상이 뿔뿔이 흩어지는 해체에 맞서, 흘러가는 유전에 맞서, 다시 돌아와 만들고 또 만들었노라. 그리하여 영속을 닮은 순간을 만들어내다. 이것이야말로 평생의 역작. 나는 밑줄을 긋고 또 그었다. 반복해 읽었다. 울프보다 더 잘해내리라. 그전에 아이는 갖지 않으리라. 건강 덕분에 경험에 기반한 단편, 시, 소설을 낳고 있다. 그래서 아마 그토록 고통을 겪고 지옥(물론 다른 지옥들도 많겠지만)에 빠졌던 경험이 좋은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삶 그 자체를 위해서 살 수는 없다. 그보다는 흐르는 세월을 막아낼 언어를 위해 살리라. -345페이지

■나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과거도 미래도 없는 지금 이 순간, 이 장소라는 끔찍한 공포로 위축되어버리곤 한다. 삶은 죽은 자들의 납골당을 열어젖히고, 예언하는 천사들이 뒤에 숨어 있는 하늘을 활짝 열어젖힌다. 마음은 만들고 만들며, 거미줄을 뽑아낸다. -346페이지

■나는 정말 질투가 많은 여자다. 눈을 초록색으로 떠서, 악의가 이글이글 불타는. 《영미 신인 시인선》에 실린 여섯 명의 여성 시인들 작품을 읽었다. 지루하고, 과장되고. 메이 스웬슨과 에이드리엔 리치를 제외하면, 나보다 더 낫거나 더 많은 시를 출간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유명한 다른 여자들보다 더 나은 시를 쓴 나로서는, 말없이 마땅한 악의를 품을 수밖에. 유월까지만 기다려라. 유월? 유월이 오기 훨씬 전에 혓바닥에 녹이 슬어버리겠다. 아무튼, 시를 쓰기 위해서는, 내 앞에 끝없이 영원한 시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383페이지

■어째서 나는 두려움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끽할 정도의 배짱이 없는 걸까? 로렌스는 그의 언어 속에 세계를 체현한다. 희망, 경력-글쓰기는 내게 너무 버겁다. 글을 쓰면서 행복할 때까지는 일자리를 갖고 싶지 않다-하지만 절박하게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뭔가 외부적 현실로 내 안을 채워야겠기에-전화비 청구서며, 끼니를 때울 때 돈을 버는 것, 아기, 결혼, 이런 일들이 우주의 존재 목적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는 세계. 영광을 꿈꾸는 목적 없는 여인. 내가 단 한 가지 바라는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어머니한테 다 털어놓는 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525페이지

■글쓰기는 종교적인 행위이다. 이 세상과 인간에게, 또 세상과 인간이 품고 있는 가능성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을 개선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사랑하는 일이다. 하루 종일 타이핑을 하거나 강의를 하는 일로 지나쳐버리지 않는, 형성의 작업이다. 글은 영속적으로 남는다. 혼자 남아 이 세상에서 돌아다닌다. -545페이지

■최악의 상황은, 이 모든 상황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은, 글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소소한 악마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며, 이 악마들이 계속 하찮은 것으로 남아 있게 하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545페이지

■그런데 어머니는 내 자살 시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내가 글을 쓰지 않은 결과라고, 틀림없이 그렇게 이해하셨겠지. 나는 어머니가 차압할까 봐 글을 쓸 수 없다고 느꼈는데. 그게 다일까? 내가 글을 쓰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인간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나 자신의 대체물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글을 사랑해주고, 내 글을 좋아한다면 나를 사랑해주세요. 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체험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또 질서를 재정립하는 방법. -561페이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상력의 죽음이다.”

비극적이며 매혹적인 한 시인의 격정적인 삶과 예민한 영혼의 기록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국내 번역 출간 2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신화의 베일에 갇힌 한 여성 시인의 살아 있는 목소리
“지독히 아름답다”, “심오하고 끔찍하게 탁월하다”, “감탄을 자아내는 글쓰기”, “사랑의 찬가이자 한 예술가의 창조적 열정”, “탁월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실비아 플라스와 그녀의 일기에 쏟아진 언론의 찬사다. 문예출판사는 2004년에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했고, 2024년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에디션으로 새롭게 출간했다. 이 책은 격정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예민한 영혼의 기록이며, 남성에게 희생된 여성 예술가의 전형이라는 ‘신화’에 가려진 실비아 플라스의 치열한 삶과 고뇌를 담고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빼어난 문학작품이며 자아의 내부 투쟁을 기록한 실비아 플라스의 자서전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에는 시인의 강렬하면서도 적나라한 감정 표현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삶과 자신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번득인다. 또한 사춘기 소녀의 팽팽한 감수성과 불안한 심리와 욕망에서부터 원고 수락 편지를 기다리는 작가 지망생의 모습, 자기혐오와 타자에 대한 공격성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하고 입체적이며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실비아 플라스의 모습이 들어 있다.


여성해방운동의 신화적 순교자가 되다
실비아 플라스만큼 ‘신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아름다운 금발의 유망한 미국 여성 시인이 핸섬한 당대 최고의 천재 영국 시인과 결혼하면서 시작된 현대 영미문학계 최고의 황금빛 로맨스는, 플라스가 남편인 테드 휴스의 외도와 그에 따른 별거 이후 100년 만에 찾아온 런던의 혹한 속에서 우울증과 생활고에 홀로 시달리다가, 옆방에서 노는 두 아이가 배고프지 않도록 우유와 빵을 놓아두고 가스가 아이 방으로 새어 들어가지 않게 꼼꼼하게 문틈에 테이프를 바른 후, 가스 오븐에 서른 살의 젊디젊은 머리를 처박고 자살한 바로 그 순간 완벽한 악몽이 되어 참혹한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녀의 충격적인 죽음은 그 이름과 함께 수많은 맥락을 타고 신화로 재창조되었다. 있는 그대로 아무런 의미도 투사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개인적 비극으로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도 상징적이었기에 이 사건은 일약 전설의 반열에 올라 한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되었다. 그녀의 신화는 평단과 대중의 매혹에 반사되고 증폭되어, 자연인 실비아 플라스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추상적이고 원형적인 거대한 상징적 존재로서 계속 부풀어만 갔다.
실비아 플라스의 신화화를 그 무엇보다 열렬하게 부추긴 것은, 당시, 즉 1960년대 초반 꿈틀거리며 태동하던 본격 페미니즘의 시류였다. 이 강력한 시대적 조류를 타고 실비아 플라스의 삶과 작품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당장 남성의 세계에 희생된 여성 시인의 전형,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피 흘리는 여신으로 등극했다. 여성의 야망과 성적인 생명력을 용서하지 않은 남성의 세계, 여성적 감성을 난도질한 남성적 이성, 나아가 남편 테드 휴스의 외도로 상징되는 폭압적 남성성 그 자체에 희생된 신화적인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계관시인까지 지낸 20세기의 대문호 테드 휴스는 ‘실비아 플라스’의 살인자라는 오명을 낙인처럼 평생 달고 다녀야 했고, 강연이나 시 낭독회마다 시위대를 무슨 팬클럽처럼 몰고 다녀야 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무덤 묘비명에 새겨진 남편의 성인 ‘휴스(Hughes)’라는 글자들은 새로 새기고 또 새겨도 분노한 실비아의 추종자들이 지우고 또 지웠다. 실비아 플라스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폭풍처럼 흥성한 페미니즘의 조류를 예고하고 체현하며, 자기도 모르게 여성해방운동의 신화적 순교자라는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신화 속에 외면당한 그녀의 진실을 찾아서
실비아 플라스를 뒤덮은 이 신화들은 매혹적이고 강렬한 만큼이나, 세상의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일방적이고 왜곡되고 폭압적이며, 또한 허구적이었을지 모른다. 총체적이고 삼차원적인 진실 그 자체보다는 그 진실을 읽거나 읽고 싶어 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시각들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진정 ‘신화’다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죽음과 순교의 신화화 과정에서 상실된 것은, 바로 어머니였고 아내였고 또 투쟁하는 생활인이었던 자연인 실비아 플라스의 피와 살이 덧붙여진 개별성과 인간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화 속에 부재하는 것은 바로 실비아 플라스 자신의 육성이요, 삶이요,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아주 특별한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천재 시인들의 사생활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멜로 드라마에 매혹되는 대중에게도, 가부장제에 희생된 여성 시인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플라스의 시학을 연구하는 비평가들에게도, 이 사적이고 내밀한 한 여성의 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1986년 플라스 작품의 판권을 지닌 테드 휴스가 프랜시스 매컬로와 공동 편집해 ‘일기’라는 사적 기록을 책으로 출판한 것은, 대중과 학계 모두에게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단순한 대중적 관음주의나 가십 취향을 넘어서 플라스의 작품 성향을 비평적으로 이해하는 해석 행위에서도 중요했다.

고통스러운 한 ‘사람’의 기록
이 일기들을 읽어나가는 건 가끔씩 정말로 고통스럽다. 실비아 플라스는 냉혹할 정도로 정직했고, 그 적나라한 솔직함과 무서운 신랄함 때문에 결코 쉽게 정을 붙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 일기에 드러나는 플라스의 치사하고 범속한 욕망에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모순 덩이에다 끔찍스러운 이기주의자. 끝내 소통과 공감에 실패하고 악에 받친 외로운 모래알.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자기혐오와 타자에 대한 공격성. 하지만 결국 그러한 치부는 실비아만의 것이 아니다. 직시할 용기가 없었을 뿐, 우리 모두의 치부였고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바로 그 직시의 고통일지 모른다.
결국 독자들은 책장을 덮으며 페미니즘의 순교자나 거대한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을 만나는 게 아니라,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눈부신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추하고 때로는 불쌍하고 때로는 표독스럽던, 그러면서도 끝없이 ‘도와달라’고 손을 뻗던 한 ‘사람’의 너무나 사람다운 인생에 연민과 공감을 느끼게 된다. 이 일기를 읽으며 결국 우리네 삶의 조건을 성찰하게 되고, 실비아 플라스가 맞닥뜨렸던 문제와 고민은 보편적인 인간(여성)의 경험이라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를 둘러싼 평면적 신화를, 건강치 못한 관음주의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작가정보

Sylvia Plath
1932년 10월 27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스미스대학에서 공부했고 1955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유학했다. 영국 유학 중에 시인 테드 휴스와 만나 1956년에 결혼했고 미국으로 돌아와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일했다. 이후 다시 영국 런던으로 갔으며 1960년 10월 자신의 첫 번째 시집 《거상》을 출간했다. 1962년 남편 테드 휴스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별거에 들어갔으며, 이 시기에 많은 시를 썼다. 1963년 1월 《벨 자》를 출간하여 호평을 받았지만 1963년 2월 11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65년에 유고 시집 《에어리얼》이, 1981년에는 《시 전집》이 출간되었으며 작가 사후에 시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영시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녀 이야기》, 《미 포 유》, 《프랑켄슈타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 《테일러 스위프트》 등 다수의 책을 옮겼고, 2010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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