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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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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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분식(粉飾) _ 113
제3장 의뢰서 _ 195
제4장 반도체 _ 241
제5장 회수 _ 313
옮긴이의 말 _ 403
어머니를 여의었을 때의 충격은 기억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흡사 인두로 지지기라도 한 것처럼 뚜렷이 남아 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어머니를 지금도 뚜렷이 떠올릴 수 있다. 숨을 거두기 전에 오랫동안 내 손을 어루만지며 내 표정을 눈에 새기려고 가만히 바라보던 어머니. 그 눈동자에서 넘친 눈물이 창백한 뺨을 타고 흐르던 모습을 나 자신의 눈물로 흔들리던 시야에 대한 기억과 함께 지금도 때때로 떠올리며 가슴이 짓이겨지는 듯한 슬픔을 맛본다.
_ 51p
끈질김, 정확하고 치밀한 사무 관리, 전문적인 법률 지식, 교섭 능력. 채권 회수는 일반적으로 은행원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이 평균 이상으로 요구되는 가혹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그런 지저분한 일을 사카모토는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담담히 해냄으로써 스스로와 균형을 맞춰왔다. 거친 교섭이 이어지면 마지막 날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으레 말이 없어졌다. 쾌활한 사람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온후하고 다정한 사람이 감정 없는 톱니바퀴로 변모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_ 57p
인생에서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란 대체 얼마나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아버지는 늘 쓸쓸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가 급사했을 때 현세에서는 오래 함께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분명 다시 맺어진 거라고 나 자신을 타일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부모자식 셋이서 행복하게 살던 그 시절 기억은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다. 여기로 돌아온 것은 그 기억을 조금이라도 소중히 하고 싶어서였다. 어린 내 손을 잡고 동요를 부르면서 걷던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나 아버지의 다정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_ 94p
움직일 수 없었다. 앞발로 무거운 배를 끌던 벌은 우편함 끝까지 오더니 보이지 않는 폭포에 빨려 들어가듯 바닥에 떨어졌다. 내 발밑. 황급히 발을 뒤로 뺐다. 툭 하는 소리가 오싹했다. 긴다. 이놈은 살기를 바라며 기고 있다. 눈앞에 다가온 죽음과 열심히 싸우고 있다. 본능이 가르쳐주는 건가? 불완전해진 개체는 살겠다고 계속 긴다.
_ 162p
가게 안은 시끌벅적한 교성과 웃음소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 표정도 있는가 하면 가라앉아서 납빛을 한 눈을 가진 사람도 있다. 터질 것 같은 웃음도 있는가 하면 분노로 얼굴을 붉히고 뭔가를 필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인간이 있지만 집단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있는 것은 개인이다. 도시 특유의 단절된 감각에 오랜 시간에 걸쳐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내 가슴속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의 추함과 허무함이 표류할 뿐이다.
지킬 것이 필요하다. 무언가.
갈망하고 있었다. 추억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것으로서. 인생에서 키워갈 온기를 나는 갈망하고 있었다.
_ 309p
형태도 없고 개념도 없는 것. 있는 것은 단지 추한 사념뿐이다. 그야말로 암거다. 영혼의 심연, 끝없이 깊은 암담함. 그것은 단지 가치관 같은 척도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으며 계기조차 알 수 없는 광기. 이 이상 이놈을 살려둘 수는 없다. 사카모토를 위해. 사에를 위해. 요코를 위해. 나오를 위해. 야나기바를 위해. 후루카와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_ 312p
그 직감에 나는 동요했다.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을 사고가 경로에서 벗어난다. 이 사건에서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니시나의 시선이 쏘아보는 가운데 맹렬한 기세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가설을 다시 세운다. 손에서 빠져나간 진실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친다.
_ 365p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케이도 준의 데뷔작!
《끝없는 바닥》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비롯해 《하늘을 나는 타이어》, 《민왕》 등 많은 작품이 이미 국내에 소개된 작가 이케이도 준의 소설 데뷔작이다. 이케이도 준은 은행원으로 일하다 퇴사한 뒤 이 소설로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게 되며 엔터테인먼트 문학 작가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가 이케이도 준의 출발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지만,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추리소설인 동시에 은행을 배경으로 한 기업소설로서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당시 한 심사위원은 “은행 미스터리의 탄생을 선언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은행 미스터리의 탄생을 선언하는 작품
금융 미스터리’의 신기원을 열다!
“너, 나한테 빚진 거다?”
소설의 주인공인 대형 은행 직원 이기 하루카는 외근을 나가던 중 직장동료인 사카모토와 우연히 마주친다. 사카모토는 이기에게 웃으며 이와 같은 묘한 한마디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나고, 몇 시간 후 시체로 발견된다. 고객의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자, 사카모토의 업무를 인계받은 이기 하루카는 직장동료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과 기업이 얽힌 음모, 은행 안의 복잡한 파벌 싸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의도 불사하는 비열한 상사, 상상 이상으로 잔혹한 범죄자와도 맞서 싸우게 된다.
출세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없는 듯 표표히 살아가는 주인공 이기 하루카의 작품 속 활약은 은행 직원이 맞을까 싶을 정도의 기지와 액션을 선보여 하드보일드 소설을 연상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살인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추리소설 요소까지 충분히 담고 있다. 또한 은행을 배경으로 한 기업과의 유착, 금융 기업 내의 파벌 싸움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기업소설로서의 가치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 《끝없는 바닥》은 모든 요소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부족함이 없다.
소설의 제목은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바닥이 없이 계속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끝없는 전락일 수도 있겠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는 욕망의 무한함이거나 그 때문에 한계 없이 치닫는 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싸우는 인물의 강인함을, 그리고 그러한 강함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이다.
_ 심정명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작가 ‘이케이도 준’은 자신이 근무했던 은행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도산과 그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모티프로 했음을 밝히면서 “쓰고 싶어서 썼다기보다는 기필코 써야만 했다”라고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소감으로 토로했다. 기업이 인수되거나 도산하고 업계의 명암이 바뀌며 은행의 부정이 드러나는 등의 사건은 경제면에서 다뤄지는 뉴스기도 하지만,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곳에는 많은 사람의 복잡다단한 삶이 움직이고 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쉽게 찾을 수만은 없는 정의를 어떻게든 그려내는 데에 소설가 이케이도의 강점이 있음을 생각하면, 《끝없는 바닥》은 그야말로 작가로서의 시작을 장식하는 데에 걸맞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정보

(池井戸潤)
일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가 이케이도 준은 1963년 기후현에서 태어났다. 게이오 대학 졸업 후, 대형 은행에서 근무했다. 1998년에 《끝없는 바닥》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로 제136회 나오키상 및 제2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철의 뼈》로 제31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변두리 로켓》으로 제145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정교한 스토리,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그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가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본 국민 작가 반열에 올랐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는 이케이도 준 작품 최초로 영화화되어 수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민왕》, 《일곱 개의 회의》, 《루스벨트 게임》, 《육왕》, 《노사이드 게임》, 《아키라와 아키라》, 《샤일록의 아이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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