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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드

힐러리 맨틀 지음 | 이경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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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2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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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10.23MB)
ISBN 9788937456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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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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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문학 최고의 상인 맨부커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업적을 이뤘으며, 노벨상 유력 수상 작가로 꼽혔으나 2년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작가 힐러리 맨틀. 그에게 첫 대중적 성공을 안겨 주었으며 위니프리드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플러드』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맨틀의 장편소설은 맨부커 상 수상작인 『울프 홀』과 『브링 업 더 보디스』(한국판 제목 『튜더스, 앤 불린의 몰락』), 그리고 『보다 안전한 곳』(한국판 제목 『혁명 극장』)까지 모두 장중한 역사 소설들이라 작가의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작가의 1989년 작인 『플러드』는 그와 사뭇 결을 달리하는 작품으로, 그간 한국 독자들은 만날 수 없었던 맨틀의 재치와 희극에 대한 안목을 맛보게 한다. 맨틀의 대작 역사 소설들에 견주면 날렵해 보일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 ‘플러드’처럼 많은 것을 숨긴 작은 보석과도 같은, 결코 그 깊이가 뒤지지 않는 작품이다.

『플러드』는 1950년대 후반 영국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새 보좌신부 플러드가 부임해 오면서 잇따라 일어나는 신비로운 사건들과 그로 인해 등장인물들의 삶을 완전히 바꿀 변화를 그린 소설로, 어린 시절 맨틀이 겪은 실제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다. 종교가 예전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산업화 이후의 20세기에도 여전히 본질을 호도하는 종교의 위선을 그리며 그에 대한 풍자를 통해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한편, 잃어버린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며 영혼을 되찾는 기적 같은 변화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또한 『플러드』는 문학적 야심으로 가득 찬 젊은 작가 맨틀을 만나는 기쁨이기도 하다. 아직 완숙기에 이르기 전이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과 인물들의 면면을 드러내는 맨틀의 소설 기교는 능수능란하며, 중심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1950년대 스타일로 구사한 문체는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국 작가 아이리스 머독과 그레이엄 그린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노트 9

1장 13
2장 38
3장 64
4장 89
5장 116
6장 145
7장 170
8장 201
9장 224
10장 246

“치워 버리게.” 주교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디로 치우든 그건 상관하지 않겠네. 앵윈 신부, 어떻게든 내가 자네와 자네의 교회, 교구민을 1950년대로 끌어내겠네. 1950년대야말로 우리가 확실히 속한 곳이니까. 나는 이런 가식을 두고 볼 수 없네, 신부. 나는 이런 우상 숭배를 묵과할 수가 없어.”
“하지만 저 성상들은 우상이 아닙니다. 그저 조각상입니다. 단순히 재현한 거라고요.”
“신부, 내가 지금 길로 나가서 자네의 교구민 중 아무나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우리가 성인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숭배와 하느님께 바치는 열렬한 사랑을 내가 만족할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36~37쪽)

“신앙은 죽었어요.” 앵윈 신부가 말했다. “신앙의 시대는 끝났다고요. 신앙이 죽었으니, 우리가 자동 로봇이 되지 않으려면 있는 힘껏 미신에 매달려야 할 거예요.” 신부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 말대로예요, 애그니스. 그것들을 낡은 잡동사니처럼 차고에 두는 건 온당치 않아요. 교구 여기저기에 나눠 줘서 길모퉁이에 방치되도록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것들을 한곳에 모아 두는 거예요. 어디인지 우리가 모를 수가 없는 곳에. 땅에 묻읍시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그거예요. 그 성상들을 성당의 땅에 묻어 버리는 거예요.”
“오, 하느님 맙소사.” 공포와 분노의 눈물이 애그니스의 눈에서 샘솟았다. “저를 용서하세요, 신부님. 하지만 그 계획은 말은 잘 못 하겠지만 어딘지 무시무시해요.” (45쪽)

미스 뎀프시가 문을 살짝 열었다. 밖은 푸르스름한 어둠으로 덮여 있었고 빗물이 그녀를 지나 홀에 후드득 떨어졌다. 다음 순간 그녀 앞에 키가 크고 어둑한 형체가 나타났다. 망토로 몸을 감쌌으며 입과 눈 자리에 구멍이 있고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였다. 마침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왼손에 의사의 검은색 왕진 가방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플러드입니다.” 그 유령이 말했다.
“정말 그래요. 물난리가 지독하겠어요.”
“아뇨.” 그가 반박했다. “F-L-U-D-D입니다.” (67쪽)

앵윈 신부가 고개를 들어 보좌신부를 볼 때마다 위스키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 같았는데 위스키는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플러드는 때때로 술병으로 손을 뻗어 직접 잔을 채웠다. 그들의 늦은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플러드 신부의 접시에는 저녁으로 (협동조합 푸주한으로부터 받은) 소시지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소시지를 자르고 포크로 한 조각을 찍었다. 그는 입을 꼭 다문 채 요란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우물거렸다. 그런데도 그의 접시에 놓인 소시지는 여전히 세 개였는데, 급기야, 갑자기, 접시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 앵윈 신부는 플러드가 자그마한 개 한 마리를 몸 어딘가에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신인 여배우가 자신의 개를 세관 검사원 눈에 안 띄게 숨기는 식으로 말이다. 신부는 신문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플러드는 신인 여배우와 달리 목을
모피 코트에 푹 파묻고 있지 않았다. 그게 아니어도 개가 그렇게 위스키를 들이켤 것 같지도 않았다. (73쪽)

공평함은 부족하지 않다.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불평하면, 그들을 경멸하는 적은 고소해하며 이런 말로 두려움을 불어넣는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고. 그런데 인생을 멀리 보면 물난리, 불난리, 머리 손상, 일반적인 불운이 아니라면 결국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그것이 만사를 관장하는 숨겨진 평등의 법칙이다. 놀라운 점은 인생은 공평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미 말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비다. (115쪽)

“성상이 썩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세요? 수녀님도?”
“오, 겁주시네요.” 그녀는 목에 건 끈에 매달린 검은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썩는다는 건 제가 입버릇처럼 쓰는 표현일 뿐이에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뭔가가 썩고 있어요.”
“네. 그 문제의 해결을 도우러 오셨나요?”
“모르겠어요. 그건 제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저 자신만 도울 수 있겠죠. 그리고 어쩌면 이 교구에서 소소한 개선 정도는 한두 가지 이룰 수 있을 테고요.”
“저를 위해서 뭔가를 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거기에서 내려오세요.” 그가 손을 내밀었다. (127쪽)

“방금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옥에도 끝이 있다면 천국도 그럴까요?” 그녀는 발로 땅바닥을 긁다가 멈추고 그에게 다가가 깨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사제가 되어 대답하시려 한
질문이 이런 종류인가요?”
플러드가 몸을 떨었다. “술이 있으면 좋겠군요.”
“저는 점점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듯도 했다. 그는 목재의 눅눅한 섬유 속으로 불길이 스며들기라도 한 것처럼 헛간의 벽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159쪽)

“쉬랭 신부님은 신에 대한 믿음을 모두 잃었어요. 그리고 우울증에 걸렸죠. 그분의 병은 이십 년이나 이어졌습니다. 종국에는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습니다. 걷지도 못해서 어딜 가든 누군가가 옮겨 주어야 했고요. 그분은 자신의 팔을 들어 옷매무새를 매만질 힘도 없었죠. 간병하던 이들은 그분을 구타했어요. 점점 늙고 온몸이 마비된 채 미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치유되었습니다, 아닌가요? 결국에는 말이죠.”
“무엇이 우울감을 치료해 줍니까, 플러드 신부?”
플러드가 대답했다. “행동이죠.” (197쪽)

맨부커 상 2회 수상에 빛나는 힐러리 맨틀
그가 남긴 작은 보석 같은 소설

“『플러드』로 맨틀은 오늘날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맨 앞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_《가디언》

“나는 당신을 변화시키려고 왔어요.
변화가 내 일이지요.”

1956년 영국 북부, 황무지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퇴락한 방직 공장 마을 페더호턴. 가난한 아일랜드인들이 생계를 위해 이주해와 형성된 이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문맹에, 상거래를 위해서는 조합에 기대야 하고 몇몇 개신교도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을 성당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보내는 폐쇄적인 공동체이다. 이야기는 전근대와 현대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는 그곳에 주교가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교회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로마 가톨릭의 정책에 따라 주교는 앵윈 신부의 수하에 있는 페더호턴의 전근대적 교회를 20세기에 걸맞게 개혁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그간 라틴어로 행해 온 미사를 현지어로 바꿔 집전하고, 그에 더해 성당 안에 있는 성상들을 폐기하라는 명을 내린다. “시칠리아의 무지렁이들도 수치스러워할 미신을 믿는” 주민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어야 하는 앵윈 신부는 고뇌에 빠진다. 사소한 종교 규율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그에게는 사실 비밀이 하나 있다.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 20여 년 전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사라진 믿음은 지금도 돌아오지 않은 채이지만 그는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 안온한 기만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이다.
주교는 자신의 명령을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될 조수를 보내겠다고 하고 돌아가고, 며칠 후 앵윈 신부와 마을 수녀원에서 파견한 아일랜드 출신 수녀 필로메나와 성당 청년회 신자들이 함께 성상을 땅에 묻는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사제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정부 애그니스가 문을 열자 사제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플러드’라고 소개하며, 이곳에 머무르러 왔다고 말한다. 애그니스는 그가 주교가 보낸 보좌신부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인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몸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미세하지만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작은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앵윈 신부는 새로운 보좌신부를 맞아 그날 밤 함께 위스키 한잔을 한다. 그런데 추위를 가시기에 늘 모자란 벽난로 불이 그날따라 활활 타올라 응접실은 후끈후끈할 지경이고, 플러드 신부의 접시 위의 소시지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앵윈 신부의 술병 속 위스키는 어느새인가 다시 차올라 있다. 애그니스는 플러드가 온 날 밤, 처음으로 싱크대에 설거짓감을 놓아두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 그녀 깊은 곳에서 은밀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나는 당신을 변화시키러 왔어요. 변화가 내 일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선 뭔가가 썩고 있어요.”
“네. 그 문제의 해결을 도우러 오셨나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플러드를 만나는 이들이 모두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는다. 앵윈 신부는 자신이 무신론자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폭군처럼 수녀원을 운영하는 페르페투아 원장 수녀는 수녀들이 입회할 때 입고 온 옷들을 보관해둔 궤짝을 플러드 앞에서 활짝 열어젖힌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당에 남은 몇 안 되는 성상을 손보는 젊은 수녀 필로메나를 만난다. 필로메나는 자신의 몸에 생긴 피부병을 성흔(聖痕)이라고 주장하는 광신자 어머니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페르페투아 수녀에게 학대에 가까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수도자의 삶에 열의가 없다. 그녀는 플러드에게 자신이 품은 회의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두 사람은 들판에 있는 헛간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기로 한다. 헛간에서 플러드는 필로메나의 손금을 봐 주고는 그녀의 운명에 대한 힌트를 주고, 필로메나 역시 자기 안에서 따뜻하게 차오르는 변화의 열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플러드 역시 필로메나로 인해 자기 안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다음 날 밤. 앵윈 신부와 그의 가정부 애그니스, 그리고 필로메나 수녀는 자정 가까운 시각 불현듯 잠에서 깨어난다. 세 사람은 바깥으로 나와 한 장소에서 마주친다. 그곳에 플러드가 매장한 성상들을 꺼내기 위해 땅을 파헤치고 있다. 세 사람은 즉시 함께 성상들을 다시 파헤치는 작업에 착수하고, 거기에 앵윈 신부가 악마라고 굳게 믿고 있는 성당 신자이자 마을에서 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매커보이가 가세한다. 이번에도 신비로운 힘의 작용으로 아침이 오기 전 발굴 작업은 완료된다. 모두가 각자의 잠자리로 돌아가고, 플러드와 필로메나 수녀는 눈이 내리는 가운데 수녀원으로 향한다. 플러드는 필로메나에게 교회 당국의 허가를 기다릴 것 없이 자신의 길을 떠날 것을 부추기며 입맞춤을 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눈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가정부 애그니스는 습관처럼 거울을 보다가 얼굴에 있던 사마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같은 시각, 수녀원을 떠나기 망설이는 젊은 수녀 필로메나에게 선배인 안토니오 수녀는 말한다. 간밤에 원장 수녀 페르페투아의 입술에 사마귀가 돋았다고. 필로메나는 수녀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궤짝 안에 보관되어 있던 평상복 중 한 벌을 골라 입고 다시 세속의 세계로 떠난다. 그곳에는 플러드가 그녀를 위해 예비해 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의 자아에는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것들이 있죠.
익숙한 세계를 도끼로 내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힐러리 맨틀이 작가 노트에 미리 밝혔듯 플러드는 16~17세기에 활동한 의사이자 학자이며 연금술사인 실존 인물 플러드를 모티프로 창조한 인물이다. 왜 연금술일까. 다시 맨틀에 따르면, “연금술에서는 만물에 문자 그대로의 사실에 기반한 설명이 있으며 그에 더해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설명도 있다.” 그렇다면 연금술사란 그 설명에 어긋나 있는 것에 제 자리를 찾아주는 존재일까. 그런데 주인공 플러드는 “요즘 들어 금속 대신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예측성은 떨어지지만 더 만족스럽고 더 위험한 기술이었다.” 필로메나 수녀는 플러드에게 예지 능력이 있음을 단번에 알아본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음을.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그녀에게 플러드는 예전에 자신은 “물질에서 영을 뽑아내”고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갇힌 영혼”을 해방해 주는 것이었다고 말하며, “익숙한 세계를 도끼로 내리쳐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정화가 되려면 먼저 부패해야 한다. (…) 분리와 건조, 가습, 용해, 응고, 발효를 거친 후에야 정화, 즉 재조합을 맞이할 수 있다. 그 결과 세상이 지금까지 한 번도 목도하지 못한 물질이 창조된다.” 플러드는 완전한 작별을 통해 새로이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등장인물들은 그의 연금술에 따라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힐러리 맨틀 특유의 무자비함과 신랄함, 블랙 유머가 포진해 있지만 결국 『플러드』는 삶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델 피옴보의 그림 「나사로의 부활」에서 앞으로 남은 5라운드라는 생의 시간을, 베르고뇨의 성모자(聖母子) 그림에서 그럼에도 계속되는 삶을 읽어내는 작가의 혜안은 더없이 인간적이면서도 세속을 초월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 인간 가장 깊은 곳을 꿰뚫어 보았던 작가 힐러리 맨틀. 『플러드』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연금술이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금술은 사랑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 그러니 소설 속 한 구절대로, “놀라운 점은 인생은 공평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미 말했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비”일 것이다.

작가정보

Hilary Mantel
1952년 잉글랜드 더비셔에서 태어났다. 런던정경대학과 셰필드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사회 복지사, 백화점 점원 등으로 일하며 글을 썼다. 1977년부터 아프리카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여 년을 지낸 뒤 영국으로 돌아와 1987년부터 약 5년간 주간지 《스펙테이터》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1985년 장편소설 『매일이 어머니날(Everyday is Mother’s Day)』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인종 문제와 성적 억압 문제를 다룬 『가자 거리에서 보낸 8개월(Eight Months on Ghazzah Street)』, 제도화된 종교 사회를 유머러스한 문체로 고발한 『플러드(Fludd)』, 프랑스 혁명을 새로운 시각에서 그린 역사 소설 『보다 안전한 곳(A Place of Greater Safety)』, 잉글랜드 북부 출신 세 젊은이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소설 『사랑 실험(An Experiment in Love)』, 런던 교외를 무대로 한 블랙 코미디 『비욘드 블랙(Beyond Black)』 등의 소설과 회고록인 『유령을 포기하다(Giving Up the Ghost)』를 썼다. 작품 대다수가 영연방작가 상, 코스타 상, 호손덴 상, 첼튼햄 상 등 영국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대영제국 훈작사 훈장을 받았고, 2014년에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대영제국 데임 커맨더 훈장을 수여받았다. 2010년에 발표한 『울프 홀(Wolf Hall)』과 2013년에 발표한 후속작 『브링 업 더 보디스(Bring UP the Bodies)』로 맨부커 상을 수상해 전례 없는 업적을 이뤘다. 2022년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와 동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노과를 졸업하고 영어와 러시아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프랑켄슈타인』, 『요크셔 시골에서 보낸 한 달』, 『비밀의 화원』,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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