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
2024년 08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0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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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7096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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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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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외계인들 틈에서 자신의 구멍가게를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평범함을 꿈꾸며 살아왔던 그는 평범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다채로운 외계인들 틈에서 치유에 다가설 수 있는 온기 어린 손길을 건네받는다.
EP 1. 검고 질척한 무언가
EP 2. 그 모든 외딴 곳에서
EP 3. 영원히 부유하는 꽃
EP 4. 빈 자리에 남은 것
EP 5. 세상에서 제일 먼 만남의 광장
EP 6. 아주 오래된 미움
EP 7. 파랗고 반짝이는 마음
모두가 알다시피 지구가 위치한 제44 은하계는 생명 개체수가 희소하며 경제적, 문화적 가치가 적어 비교적 뒤떨어진 지역으로, 최근 교류를 시작한 몇몇 은하계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우주 지성체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던 곳이었다. 이 은하계의 유일한 생명활동이 있는 행성인 지구는,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 한, 즉 우주 지도에 조그맣게 표시는 되어있지만 굳이 가볼 생각을 하기 어려운 작은 무인도 같은 별이었다.
그런 제44 은하계에, 지구에, 그것도 봉천동 구석에 갑자기 우주 환승터미널이 생기게 된 것은 순전히 제38 은하계 내에 있던 블랙홀 하나가 소멸했기 때문이었다.
p. 11
“오늘 오전에, 터미널 이용객 몇 분의 민원이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이랑 말이 안 통한다고요. 좀 더 알아보니, 여기가 현지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교통공사 측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더군요.”
“외계인들이 돈을 안 내고 이상한 물건만 잔뜩 놓고 갔어!”
원동웅 씨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카운터에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을 가리켰다.
“아…… 그거 돈 맞아요. 교통공사에서 주기적으로 환전 처리를 해줄 겁니다. 그것도 공지하지 않았단 말이죠? 그리고 외계인이라는 용어는 멸칭이라, 웬만하면 쓰지 않는 게 좋아요. 아마 모르셔서 그런 거겠지만…….”
p. 34
공급처 직원은 의자에 등을 탁 기대고 눕다시피 하더니, 원동웅 씨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 제44 은하계에서 온 외계인인가?”
“외계…… 뭐? 지금 외계인이라고 한 거야?”
“44 은하계에서 왔다면서? 그럼 외계인이지.”
“맞긴 한데…….”
원동웅 씨는 가게를 시작한 첫날, 가게를 찾은 손님들을 서슴없이 외계인이라 부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38 은하계를 대상으로 한 장사에 익숙해지며, 외계인이라는 단어는 점차 손님이나 사람으로 대체되었다. 손님들이 자신을 아저씨니, 사장님이니, 친구니 하는데 저 혼자만 외계인, 외계인, 하고 부르는 것도 민망했던 것이다. ‘외계인’이 멸칭이라는 지적도 여러 번 받았고 말이다.
p. 67
원동웅 씨는 버드나무 씨앗 같기도 하고, 민들레 같기도 한 그 꽃을 다시 꾸러미에 싸서 넣다가, 칭칭 싸맨 손님이 대고 있던 수건이 푸른빛으로 물든 것을 보았다.
“나도 평범하진 않지만, 당신네 은하계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 일단 그 외투 좀 벗어봐요. 피가 이렇게 나는데. 이거 피 맞죠, 피?”
원동웅 씨가 구급 상자를 다시 열었다. 칭칭 싸맨 손님은 원동웅 씨가 천을 풀려고 하자 몸을 휙 돌려버렸다. 원동웅 씨가 소리쳤다.
“고집 그만 부리고 빨리 천 풀어봐요! 이놈의 천, 이놈의 천! 맨날 그렇게 수상하게 칭칭 싸매고 다니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녀! 그 차표 손님도, 경찰들도 바로 알아보잖아. 평범하게 좀 입고 다녀. 주변 사람들이랑 똑같이 꾸미고 다니면, 떠돌인지 DP인지 그놈들이 알게 뭐야.”
p. 135
“이걸 같이 쓰면 어떻겠습니까?”
기자 손님의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피 땅콩을 사러 온 정장 손님이었다. 정장 손님은 놓여있던 연필을 집어 들고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넣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기자 손님의 것과는 달리, 정갈한 글씨체였다. 기자 손님이 글씨를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오, 이냅스어를 할 줄 아시는가?”
“네. 대사 일을 하다 보니, 몇 가지는 대강이라도 알게 되더군요.”
원동웅 씨는 구불구불한 글씨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다, ‘구멍가게’라고 적힌 거라는 거지?”
“동웅…… 제발 다른 사람들 앞에선 그렇게 말하지 말게. 우리한테는 뭔가 다른 단어로 전달되는 것 같은데……. 뭐랄까, 매우 이상하게 들리네.”
“다 외행성 쪽 언어라는 것이 좀 걸리는군요. 내행성 쪽은 필요 없을까요?”
p. 235
원동웅 씨가 종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자 손님과 정장 손님 이후로도 몇몇 손님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구멍가게’라고 적어두고 간 종이였다. 원동웅 씨는 그 낯설기 짝이 없는 글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번역기 없이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글들. 통역기 없이는 영영 대화할 수 없을 사람들. 낯선 제38 은하계 이방인들이 드나드는 이 터미널 속에서 그의 가게는, 다시 말해 그의 삶은 어느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있어, 우주 저 너머에서 온 진정한 이방인들의 틈은 차라리 고향 같았다.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원동웅 씨는 이곳이 좋았다. 영원히 머무르고 싶을 만큼. 그럼에도 곧 떼어내기로 마음먹은 오래된 한글 간판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p. 251
“외계인을 외계인이라 하지, 뭐라 그래 그럼!”
영어조차 낯선 48세 원동웅 씨의
각양각색 외계인 틈 속 구멍가게 운영기!
어느 변두리 골목의 구멍가게를 가도 쉽게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틱틱대면서도 세심하고, 까칠한 듯하면서도 다정한 구멍가게 아저씨 붉은 머리 원동웅 씨. 그의 가게를 중심으로 돌연 생겨버린 은하계 환승터미널로 인해 구멍가게를 방문하게 된 외계 손님들은 원동웅 씨만큼이나 특이하다. 푸른 피를 흘린다거나 섬유유연제를 들고 와서 점심으로 먹겠다는 외계인은 예삿일이다.
신체가 최루성 물질로 구성되어 가까이하면 타인을 눈물짓게 하는 외계인, 세대마다 데시벨이 달라 소통 난항으로 거주 행성이 분리되어 가족을 그리워하는 외계인, 고향 행성이 폭발로 사라지고 난민이 되어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외계인, 내행성 차별로 인해 데이터-존재만 USB에 남긴 외계인 등 도저히 지구의 기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외계인들이 ‘환승터미널 구멍가게’를 방문한다. 구멍가게 주인 원동웅 씨는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방문하는 외계인, 아니 손님들에게 때론 다그치기도, 때론 말없이 미숫가루나 달고나를 쓱 건네며 위로하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돕는다.
원둥웅 씨는 손님들에게 위안의 공간을 선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도 미처 건네지 못했던 위로를 받는다. 혼혈로 태어나 설움을 겪으며 살아왔던 원동웅 씨는 마침내 자신의 붉은 머리를 보여도 불편하지 않은 공간을 찾은 것이다. 일생 평범함을 꿈꾸며 세상을 부유했지만, 평범함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은 제44 은하계 환승터미널에서 평생 당해온 차별로부터 맞서, 진정한 자신을 되찾을 용기를 얻는다.
“나도 평범하진 않지만, 당신네 은하계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
외로이 삶을 감당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차별이 아닌 차이를 직시하게 하는 온기 어린 손길
‘교보문고 제5회 테마 공모전’ 수상작인 《은하계 환승터미널 구멍가게》는 “SF 장르와 드라마를 잘 접목시킨 스토리로 상상력이 뛰어나고, 캐릭터와 설정에 대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고 극찬을 받았다. 심사평처럼 소설 속 캐릭터들은 굉장히 이색적이며 다채롭다. 원동웅 씨의 구멍가게에 방문하는 외계인들은 우리가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판타지 속 인물 같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찬찬히 귀를 기울여보면 어느새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 때론 내 자신이 투영되어 공감 가는 인물로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그들은 현실에서 흔히 누구나 갖고 있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면모를 하나씩 내보인다. 이는 우리가 명확하게 규정지어 버린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여겨 스스로 만든 장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인물이 가진 입체적인 모습에 스스로를 대입시키며 공감하고 위안받을 수 있게 한다.
작품에서 원동웅 씨는 구멍가게에 흘러 들어오게 된 손님들을 북돋아 주며, 평범하지 않은 손님들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간다. 동시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차별과 혐오, 외로움 혹은 사소하게나마 마음속 작은 불편함마저 어루만져준다. 소설 속 알록달록한 인물들과 독자들은 외롭고 치열하게 삶을 항해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애정을 건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두려움과 공포, 폭력, 혐오, 그리고 편견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어떤 호의들은 누군가에게 가닿기도 전에 스러지고 맙니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 자기 안의 혐오를 직시하고 또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들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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