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2024년 09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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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끝없는 밤 | 손보미
수상작가 자선작 천생연분
수상소감 소설이 비로소 완성될 때
작품론 파도가 되는 문장들, 표류하는 진실(들) | 정실비
인터뷰 삶과 고통이라는 진자운동에 관한 거대한 은유 | 김유태
우수작품상 수상작
허리케인 나이트 | 문지혁
리틀 프라이드 | 서장원
혼모노 | 성해나
담담 | 안윤
그 개와 혁명 | 예소연
기수상작가 자선작
그날의 정모 | 안보윤
심사평 고통의 실로 엮는 자기-바느질
이효석 작가 연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자신을 떠올리는 일은 점차 사라졌다. 엄청난 부자니 뭐니 하는 말들도, 사주 카페에 갔던 시절도 모두 다 잊어버렸다.
그랬던 그녀가 아주 오랜만에 그 말-“개인 요트를 타거나 명품 쇼핑을 하러 다니게 될 거라니까?”-을 떠올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합당한 이유가. 바로 지금, 그녀가 요트 위에 있기 때문에. _손보미 「끝없는 밤」, 13쪽
놀라웠다. 출렁이는 배 안에서, 커다랗게 일렁거리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어떤 감정들이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해진다는 것. 아니다. (그녀는 결국 이 표현을 쓰기로 결정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명징하고 진실한 감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_손보미 「끝없는 밤」, 46~47쪽
저 여자들이 혹시 지금, 피를 흘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어떻게 그러고 살아? 세상의 모든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할 리가 없었다. 세상에는 분명히 그런 일에서 제외되는 여성이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여성 중 한 명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_손보미 「천생연분」, 102~103쪽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
물론 그는 할 말이 있었다. 그녀를 몰아붙일 수 있었다. 네가 먼저 나를 유혹한 거 아니냐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냐고, 동네 망신, 미친 여자, 정말로 미쳐버린 거냐고 따져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 차 안에는 그의 자식이 있었다. 그녀의 자식이 아니라, 그의 자식이. 그러므로 무슨 수를 쓴다 한들, 그는 완전히 패배할 것이었다. _손보미 「천생연분」, 140쪽
피터의 아내는 지난 식사 때 처음 만났다.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피터가 그녀와 함께 등장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존재할 수 있구나. 그건 예쁘거나 매력적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놀라움이나 경외감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생명체를 조우하는 기분이었다. _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199~200쪽
엉뚱하게도 순간 나는 오래전 학교 운동장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고, 그제야 피터가 롤렉스를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잃어버려도 괜찮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잃어버려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고, 그게 무엇이든 도무지 잃어버릴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_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207~208쪽
오스틴은 신장이 164센티미터인 나보다 키가 작은 극소수의 남자 중 하나였고, 그런 점에서 나는 그에게 미약한 동지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 외모가 멋지지 못한 남자가 여러 사람에게 호감을 사고 주목받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캐릭터를 그가 아주 잘 연기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건 내가 트랜스남성으로서 될 수 있는 한 익혀야 했던, 그러나 전혀 익히지 못했던 것 중 하나였다. _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228쪽
문워크 춤을 췄다는 트랜스맨을 두고 혜령이 한 말을 되새기는 데 이르렀다. 혜령은 그가 아주 멋졌다고 말했지만, 그렇지만, 그에게 매혹되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내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_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247쪽
장수 할멈이 점지해줬어. 네놈 앞집에 들어가라고. (……)
뭐라고…… 하셨습니까?
신애기가 조소하며 대꾸했다.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 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그 애는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똑바로 주시했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_성해나 「혼모노」, 256쪽
30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_성해나 「혼모노」, 283쪽
저는 바이예요.
왜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설명하기가 힘들다. 분명한 것은 초면인 그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무례하게 굴고 싶은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은석이 좋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마흔을 갓 넘긴 이 진솔한 남자가 황금 같은 주말에 시간을 허비하며 더 가여워질 상황이 못내 미안스러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_안윤 「담담」, 294쪽
은석은 수윤이 아닌 모든 것, 내가 사귀었던 모든 연인 중 수윤을 닮지 않은, 그 애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_안윤 「담담」, 298쪽
나도 태수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태수 씨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러냐, 했다. 그러더니 내가 어떤 사람인데, 되물었다.“모든 일에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 _예소연 「그 개와 혁명」, 340쪽
유자는 태수 씨의 바람대로 길길이 날뛰었다. 화환과 국화꽃을 물어뜯고 이곳저곳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향해 짖어댔다. (……) 성식이 형은 끌려 나가면서도 유자의 만행을 끝까지 지켜보려고 했다. 나는 비록 눈물이 차올랐지만, 활짝 웃고 있는 태수 씨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같이 웃어 보였다. 수진도 그랬다. 그것이 태수 씨의 마지막 지령이었기에. _예소연 「그 개와 혁명」, 350쪽
-하이고, 어쩌다가.
-네?
의사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들이 발병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햇볕을 충분히 쬐질 못하니 비타민 합성이 잘 안 되잖아요? 비타민D 결핍증이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발병률을 높이거든요. 이거 모르셨어요? _안보윤 「그날의 정모」, 369쪽
말하지 않은 것이 또 있다.
나는 ‘괴물출현방’의 존재를 가족에게 끝끝내 숨긴다.
시작은 호의였을 것이다. 정모가 자주 사라졌으니까, 우리 가족이 애타게 찾아다니는 걸 목격한 사람이 여럿이니까, 겨우 찾아낸 정모는 누군가에게 얻어맞거나 욕을 먹고 있었으니까. 정모가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거나 어떤 소란에 휘말렸다면 꼭 나한테 알려줘. _안보윤 「그날의 정모」, 376쪽
파도가 되는 문장들, 표류하는 진실(들)
표면적 사실과 숨겨진 진실 사이의 낙차
대상 수상작 손보미의 「끝없는 밤」은 순항하던 요트가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하룻밤 동안 주인공(‘그녀’)이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을 담아낸 소설로, 단연 압도적인 긴장감을 갖춘 작품이다. 10억이 넘는 요트의 전복은 가장 중요한 사건이면서 동시에 소설을 관통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하는데, 미래에 대한 예상, 현재에 대한 짐작, 과거에 대한 기억이 모두 흔들리고 뒤집히기 때문이다. 돌풍으로 인한 격랑 속에서 ‘표면적 사실’과 ‘숨겨진 진실’ 사이의 낙차가 드러날수록 주인공은 자기 삶 내면의 통증에 접근해간다.
수상작품집에 함께 실린 자선작 「천생연분」 역시 반년 정도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남긴 앤티크 가구를 가지러 한밤 눈길 속을 달리면서, 주인공은 사실과 진실, 자기기만과 진심 사이의 낙차를 예민하게 감각한다. 이처럼 손보미는 「끝없는 밤」을 통해 “흔들리고 침몰할 것 같은 진실을 현기증 나는 세계 안에서 끈기 있게 추적하고 있다”. 또한 “그 소설적 물음의 끈기가 삶의 고통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고고학적인 소설가적 태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자기만의 고유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이방인인 주인공 ‘나’가 허리케인이 들이닥쳐 고급 주택가에 있는 피터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풍경 속에 잠복한 심리적 위태로움이 효과적으로 그려진다. 이 시공간 속에서 과거에 피터의 롤렉스 시계를 훔치게 만들었던 동경과 질투가 사실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결코 훔칠 수 없는 계급적 실체를 절감하는 박탈감이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중산층 소설에 대한 경계의 재조정이라는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는 자신의 저신장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사지연장술’을 선택한 오스틴이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토미(주인공)에게 제멋대로 전우(戰友)라고 일컬으며 문제의식을 촉발하는 작품으로, 이 시대 젠더성과 차이(들)에 관해 첨예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정체성, 인정, 불안과 욕망 사이의 간단치 않은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문제작이다.
성해나의 「혼모노」는 ‘신빨’이 다한 박수무당 문수(주인공)가 모시던 장수 할멈이 자신에게 빠져나가 신애기에게로 옮겨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굿판을 벌이듯 질주한다. 세대 간의 문제를 ‘무속’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소화하며,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완결성 있는 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안윤의 「담담」은 혜재(주인공)가 소개팅 자리에서 자신이 바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시작되는 이야기로, 정체성을 둘러싼 복합적 현실 속에서 한 인간에 대한 직시와 이해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또한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부단한 대화처럼 느껴지는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은 운동권 세대였던 아빠 태수의 장례식 풍경을 상주를 맡은 딸 수민(주인공)의 시선으로 그려내며, 생전에 태수가 입양한 유기견 유자로 인해 난장판이 된 장례식장과 과거 세대의 투쟁과 실패한 혁명의 모습을 겹쳐 보이며 오늘날 혁명의 전유와 재의미화를 이끌어낸 문제작이다. 마지막으로 2023년 제24회 대상 수상자인 안보윤의 자선작 「그날의 정모」도 함께 실렸다. ‘나’(주인공)의 남동생 정모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함부로’ 단정 짓고, 시시때때로 사라지는 정모를 괴물 쫓듯 몰아가는 ‘나’의 친구들처럼 ‘함부로’ 대하는 외부의 시선을 그려내며, 세상에 정말 유해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제25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끝없는 밤은」은 물론이고, 이 책에 함께 수록된 우수작품상 수상작들은 삶과 문학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반복하며 자기만의 고유한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좋은 소설이 그렇듯 오래도록 울림을 지속하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독자들과 공명할 것이다.
■ 심사평
손보미 「끝없는 밤」
이 소설이 갖춘 형식적 완미함의 미덕뿐만 아니라 그 소설적 물음의 끈기가 삶의 고통을 온전히 복원하려는 고고학적인 소설가적 태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있기에 「끝없는 밤」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_제25회 이효석문학상 심사평에서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분명 그의 롤렉스를 훔쳤는데 그가 어떠한 상실감도 가지지 않는 듯 보인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훔친 것일까. 훔쳤으나 훔쳐지지 않는 것. 이 역설은 고가의 시계 하나로 가뿐히 넘어서지 못하는 ‘계급’이라는 벽과 훔쳤음에도 가지지 못하는 이의 박탈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_이지은(문학평론가)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이 시대의 젠더성과 차이(들)에 관해 첨예한 질문을 촉발하는 문제작인 동시에 정체성, 인정, 불안과 욕망 사이의 간단치 않은 관계를 탐구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_정이현(소설가)
성해나 「혼모노」
‘신빨’이 다한 박수무당 문수가 모시던 장수 할멈이 자신에게 빠져나가 신애기에게로 옮겨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굿판을 벌이듯 질주한다. 세대 간의 문제를 새로운 소재로 소화하며,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완결성 있는 배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_편혜영(소설가)
안윤 「담담」
이 소설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부단한 대화처럼 보인다. 또한 이야기를 크게 벌이지 않음에도 미묘하게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이 돋보인 작품으로, 우리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부분에 주목하게 만든다. _전성태(소설가)
예소연 「그 개와 혁명」
운동권 세대였던 아빠 태수의 장례식 풍경을 상주를 맡은 딸 수민의 시선으로 그려내며, 생전에 태수가 입양한 유기견 유자로 인해 난장판이 된 장례식장과 과거 세대의 투쟁과 실패한 혁명의 모습을 겹쳐 보이며 오늘날 혁명의 전유와 재미의화를 이끌어낸 문제작이다. _박인성(문학평론가)
작가정보
저자(글) 문지혁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고잉 홈』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사자와의 이틀 밤』, 장편소설 『중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비블리온』 『P의 도시』 『체이서』가 있으며, 『라이팅 픽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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