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우묵한 정원
2024년 08월 07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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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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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소설 출간
대체 불가능하며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를 선보이는 소설가 배수아의 신작 장편소설 《속삭임 우묵한 정원》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배수아를 수식하는 단어들 중 가장 즐겨 사용되었던 단어는 ‘낯섦’ 혹은 ‘이국적인’일 것이다. 두 단어의 이면에 구축하고 있는 의미는 아마도 ‘새로움’일 텐데, 이를테면 ‘누구도 말하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혹은 목소리. 문학의 오래된 질서 같은 ‘새로움’을, 문학의 그 미지(未知)를 배수아는 기록해왔다.
추상화된 언어. 강제되지 않은 서사. 명확하지 않은 화자. 산문과 시의 경계에 서서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서사의 물결에 저항하기도, 물살의 리듬에 순간을 맡기기도 한 작가 배수아. 한국문학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장르로써, 하나의 질서로 만들어온 배수아가 5년 만에 신작을 들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스스로를 영원히 읽지 않은 책과 같이 느끼는-완독되지 않고자-자신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을 것만 같은 어느 한 사람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들 속 ‘배수아’라는 글의 영토에 자리를 잡는다. 아주 멀고도 우묵한 곳에서 올라오는 속삭임들이 홑씨처럼 퍼져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영토에 내려앉아 발아된다. 인생의 어떤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최초의 여행, 한 사람의 탄생과 여정을 뒤쫓아 회귀하며 발견하게 되는 생의 웅얼거림과 속삭임들. 배수아가 못박아둔 활자들의 뭉치와 낯선 목소리들이 때론 정박으로 혹은 불협화음으로 공존하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영원히 갇힌 기억에서 걷어올린,
속삭이는 나의 모든 것들
“이것은 최초의 여행에 관한 글이다. 여행은 편지와 함께 시작되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첫 문장. 편지는 MJ로부터 온 것. 나는 그 편지를 받았고 읽지 않은 채로 여행가방을 싸려 한다.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된 여행. 그 여행을 앞둔 채 불현듯 찾아온 편지를 보냈던 MJ에 대한 기억, 그에 대한 기억에 묻혀 따라온 풍경과 시간, 감정들이 복원된다.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연락 없이 살았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사람인데, 그는 왜 내게 편지를 쓴 것일까. 그 이유를, 무심코 당도한 편지의 의도는 생각지도 못한 채 나는, 나의 세계에서 나의 기억에서 MJ를 조형한다. 하나의 기억조각을 모으고,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상을 만든다. 시간을 거슬러간다. 어느 지점인지도 어느 때인지도 모를 기억의 한 점에서 멈추고 MJ라 생각되는, MJ의 세계에 살았던 모든 것들을 회상한다. 유추할 수 있는, 호출할 수 있는 증거들을 수집한다. MJ의 하숙집과 그 장소에 잠시라도 멈추었던 사람들, 풍경들, 이야기들이 빨려 들어온다.
쏟아지며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장면들. 그 시절에만 알고 지낸 사람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도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았던 누군가를 충동적으로 찾아가고 싶어지는. 여행의 시작은 그렇게 느닷없는 감정의 동요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문득 보고 싶어지는 그 열망에 사로잡혀 주저 없이 떠나고 만 여행. 그런데 편지를 보낸 MJ의 주소뿐 아니라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한때 잘 알고 지낸,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MJ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게 되면 알아볼 수 있을까?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또한 찾아간 그 풍경이 내가 불현듯 찾아가고픈 그 풍경이 정말 맞는 것인지조차 신뢰할 수 없다.
한 통의 편지가 불러일으킨, 나를 건축했던 나의 과거들. MJ의 하숙집에 드나들던 무수히 많은 하숙인들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몰려온다. 그리고 정체 없이 들려오는 속삭임들. 드나드는 것을 넘어 실제로 하숙집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증거로 나는, 나의 과거로, 과거의 장면들을 만난다. 그 여정의 목적지는 내 기억 속 불특정한 시간과 미지의 풍경이다. 회상에서만 머물렀던 흐릿한 사건들. 특정한 장소를 다시 찾아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풍경들을 마주하며 건져 올린 기억의 조각들이 결국엔, 나의 과거를, 내가 잊고 있었던 인생의 어떤 하나의 사건이라 부를 만한 이야기의 하나의 상을 조형해내기 시작한다.
아주 멀고도 우묵한 곳에서 올라오는 속삭임
여러 겹의 기억의 시간대, 여러 사람의 기억과 회상의 미묘한 엇갈림. 《속삭임 우묵한 정원》 속에서의 현재는 현재의 시간대로 발화하고 과거는 기억이 겹으로 쌓이면서 흐른다. 여러 겹의 시간대가 나열되고 여러 개의 기억과 회상들이 중첩된다. 그런 가운데 ‘나’를 중심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에서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풍경들이 소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흐름을 만들어낸다. 본래 인간의 기억이나 회상이 그러하듯, 불특정하게, 비정형적인 운동성을 지닌 채 소설이 구성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속삭임’은 기억의 복원, 회상의 도슨트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의 과거를 관할하고 있는, 나에게 고용당한 이성 혹은 지혜 혹은 감정 같은 것들. 말을 통제하고 생각과 사유를 조절하는 것들. 때로는 내가 알 수 없게 통제를 잃어버린 채 무심코 솟아오른 어떤 말들이 있다. 내가 그때에는 알지 못했던 어떤 말들이 현재의 나에게 다시 되돌아와 건네는 속삭임. 그런 속삭임들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인생을, 한 사람의 여정을 다시 복원케한다는 이야기가 이 소설 기저에 매우 깊숙이 깔려 있다.
작가의 말 --- 362
작가정보
저자(글) 배수아 저자
소설가이자 번역가. 지은 책으로《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올빼미의 없음》 〈뱀과 물〉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작별들 순간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달걀과 닭》,《GH에 따른 수난》 아글라야 페터라니《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등이 있다.
작가의 말
친애하는,
당신이 대문에 걸어둔 꽃을 여행에서 돌아온 어제서야 발견했습니다. 내 여행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흘러 노란 들꽃은 갈색으로 바싹 마르고 시들어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나는 한 편의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는 아마도 내 이름과 함께 당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름은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겠지만, 그리고 물론 당연히 당신은 내 책을 읽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알려드리고 싶군요. 그런데 내 글에는 항상 당신의 이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모습을 감추며 멀리 화면 뒤편에서 사다리를 들고 지나가는 정원사의 뒷모습으로 말이죠. 혹은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의 형태로, 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이-일생 동안-매주 두 번씩 만나 기나긴 숲을 가로지르는 산책에 함께하는 동행자의 모습으로. 혹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바로 그런 속삭임의 형태로.
친애하는,
우리가 단 한 번도 실제로는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오늘 숲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날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순간. 며칠 전 폭풍이 친 이후 바람에 절반 이상이나 꺾여 기울어진 커다란 나무줄기가, 내가 그 아래를 지나온 직후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통째로 부러지며 땅으로 쓰러졌습니다. 그 다음에 찾아온 경악스러운 정적을 당신도 들었는지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하는 채로, 머리 위로 오늘과 영원이 한꺼번에 흘러갈 것입니다.
당신의 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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