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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매

유은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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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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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43MB)
ISBN 9791141607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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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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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출간된 한국형 오컬트 장편소설 『귀매』가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로 개정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오컬트 장르는 ‘악마’라는 존재가 종교적ㆍ문화적으로 폭넓게 자리잡은 서양의 전유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만의 문화와 민족성을 오컬트에 접목시켜 흥행에 성공한 〈곡성〉(2016), 〈사바하〉(2019), 〈파묘〉(2024) 등의 작품을 거치며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잠재되어 있던 영적 본능이 깨어난 듯하다. 한국의 전통 신앙인 무속을 대대적으로 소설화한 장편 『귀매』는 ‘K-오컬트’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한 바로 지금 독자들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켜줄 단 한 권의 소설이다.
『귀매』는 무속이 지금처럼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는커녕 오히려 터부시되었던 2002년, 한국 고유의 종교로서 무속을 재정의하기 위해 발표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미신이라 탄압되며 우리의 기억에서 잊히고 만 무속이 일본의 경우처럼 보전되었다면 얼마만큼의 문화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을지 『귀매』는 보여준다. 울창한 자연 한가운데서 문득 느껴지는 오싹함과 경외감이 뭉쳐 태어난 영적 존재인 ‘귀매’부터, 깊은 원념에 이끌려 인간을 해하려는 물귀신과 서낭신, 치명적인 힘을 지녔지만 어딘지 어리숙해 친근하게 여겨지는 도깨비, 인간을 수호하려는 인자한 성정의 당할머니신 등, 우리나라 고유의 다양한 귀신들이 지닌 신비롭고 매력적인 특성을 탄탄히 응집된 서사 구조 위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생생한 묘사와 함께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작가 유은지의 이력 또한 흥미롭다. 깊이 있는 독해를 돕기 위해 작품 내외의 정보를 풍부하게 수록한 ‘코멘터리 북’ 속 인터뷰에 따르면, 유은지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인 『귀매』를 대학교 1학년 학부생이던 스무 살에 썼다.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한국의 도깨비 신앙에 관한 자료를 재미삼아 읽고는 단숨에 이 작품을 집필하여 1년 만에 단행본 출간까지 해냈다. 짜릿한 함정을 내포한 꽉 짜인 기승전결, 뚜렷한 특색을 뽐내는 캐릭터, 굵직한 줄거리와 부수적인 에피소드를 오가는 리듬, 제때 공포감을 고조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탁월한 감각까지, 독자를 사로잡는 데 필요한 재능을 이 작가는 천부적으로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작가가 소설쓰기를 공부한 적 없는 이공계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귀매』를 쓰며 민속학에 매료된 작가는 전공 분야를 바꾸어 민속학 연구자가 되었고, 그후 20여 년간 작가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이번에 재출간된 『귀매』 개정판에 십분 녹아들었다. 한국의 무속을 제대로 다루면서 한여름의 엔터테인먼트로도 손색없는 진정한 K-오컬트 호러가 일찍이 존재해왔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귀매』 개정판 출간은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본능적으로 공유하는 문화와 정서를 건드리며 강한 몰입감을 안겨주는 이 소설은 오직 한국만이 선사할 수 있는 공포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매력을 지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귀매 _007

초판 작가의 말 _413
개정판 작가의 말 _416

위이이이잉.
등뒤에서 다시 컴퓨터 켜지는 소리가 났다. 형섭은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방금 덮었던 노트북이 다시 열려 있었다. 놀란 형섭의 눈에 화면이 팟 하는 소리를 내며 켜지는 것이 보였다. 다시 화면에 파란 빛이 가득찼다. 형섭은 놀라서 전원 스위치를 꾹 눌러 컴퓨터를 껐다. 그러나 화면은 잠시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68쪽)

그들은 말없이 각자 오늘 있었던 믿을 수 없는 일을 떠올리며 그것을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때, 성진의 뒤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유정이 흠칫하며 놀랐다.
“왜? 무슨 일이야?”
성진은 눈을 비비며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아무 말도 없는 유정의 등을 타고 떨림이 느껴져왔다. 성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유정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길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 어떤 흰 물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물체는 점점 커지며 뚜렷한 형태를 드러냈다. 흰옷을 입은 한 중년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연신 손을 흰 앞치마에 닦으며 산길을 걸어왔다. 그녀가 가까이 오자 그녀의 손과 흰 앞치마에 묻은 어두운 색의 얼룩을 볼 수 있었다.
‘피?’
셋은 동시에 같은 생각이 들었다.(96~97쪽)

하얀 안개 사이로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물체들이 안개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물체들은 점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물체들은 성진과 혜린이 등을 맞대고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얼마간 빈 공간을 형성하며 빙 둘러쌌다.
성진과 혜린은 그제야 그 물체들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조악하게 만든 천 인형이었다. 여성의 모습을 한 등신대 인형으로 얼굴은 눈, 코, 입 없이 흰 천으로만 되어 있었고 알록달록한 한복이 입혀져 있었다.(181~182쪽)

“비나이다, 비나이다. 파평 윤에 이름은 흥신이요, 첨사 윤흥신 대장군께 비나이다. 물에서 올라온 자들이 백성을 괴롭히고 있사오니, 부디 강림하시어 백성을 구제해주시옵소서. 물에서 올라온 자들이 백성을 괴롭히고 있사오니, 부디 강림하시어 그들을 물리쳐주시옵소서.”
성진의 이마에 땀이 솟았다.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그는 몸속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한마디, 한마디를 그 뜻을 새기며 천천히 되뇌었다.
그때, 사당 안에 놓인 제기祭器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당의 안쪽에 그려진 어떤 장군의 영정에서 희미한 영기靈氣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분노의 기운이 서린 그 영기는 마치 연기처럼 사당의 창문 틈새로 빠져나와, 홍살문까지 서서히 흘러왔다.(213쪽)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디세이, 구다사이.”
학생 둘이 눈을 지그시 감고 간절한 표정으로 주문을 외었다.
혜린은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엉터리니까.’
그녀는 팔짱을 끼고 그들의 의식을 지켜보았다.
혜린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붉은 볼펜이 요동을 치며 하얀 종이 위에 동그란 점을 그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우산을 떨어뜨릴 뻔했다. 붉은 볼펜 위에 무언가 검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연기가 뿌옇게 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쳐다볼수록 멍한 기분이 드는 빛깔을 띠는 연기였다. 붉은 볼펜 꼭대기에 서린 연기는 아이들이 점점 큰 소리로 주문을 외자 함께 짙어지기 시작했다.(249~250쪽)

혜린은 자신의 목소리가 십대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의 울부짖는 목소리였다. 혜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온통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혜린은 다시 비명을 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소녀의 울부짖는 소리만이 귀를 쟁쟁 울릴 뿐이었다. 소녀는 마치 세상의 모든 악귀를 불러모을 듯 짐승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순간, 혜린의 몸이 자석처럼 주위의 공기를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땅속 깊은 곳부터 그늘진 숲과 서늘한 물속까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던 모든 기이한 형체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주위에 포진하기 시작했다. 혜린은 그들이 모두 귀매라는 것을 알았다.(256~257쪽)

“흰옷을 입은 무녀가
왼손에는 손가락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기둥을 가리키며 들어가라 하니
즐겁기 그지없도다.”

한국의 민간신앙을 연구하는 대학생들이
부산의 한 마을을 조사하다 위험에 빠진다
비밀스러운 제의가 이어져온 그 마을 곳곳에는
거대한 원한이 불러모은 요귀들이 포진해 있는데……!

오컬트 유행에 발맞춰 후속적으로 파생된 소설이 아니라, 일찍이 진정한 K-오컬트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완성되어 있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매』는 한국의 오컬트 소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세계관과 설정, 시공간적 배경이 폭넓으며 주제의식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 덕분에 특정한 시대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독자층이 즐길 수 있는 대형 다크 판타지가 펼쳐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일제 치하 부산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참극과 그로 인한 거대한 원한을 현대의 영능력자 대학생들이 해소해나간다는 줄거리를 통해, 『귀매』는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되짚는 한편 개발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의해 소실되어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안타까움, 때로는 귀신보다 인간의 탐욕이 더 무섭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꼬집는다.

소설은 곧 사라질 마을 제의를 연구하기 위해 부산을 찾은 대학생들의 활기찬 에너지로 시작된다. 열렬한 개신교 신자이자 교회 집사이면서 전국의 굿판을 쫓아다니며 연구하는 독특한 캐릭터 ‘김재관 교수’의 주도하에 결성된 민속조사단은 대학원생 ‘혜린’과 ‘형섭’, 학부생 ‘성진’과 ‘유정’으로 이루어졌다.
혜린은 부산에 정착한 옛 친구 ‘민경’을 만나러 갔다가 괴이한 이야기를 듣는다. 혜린 일행이 앞으로 조사할 마을에서 자살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그 죽음이 하나같이 끔찍하다는 것,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 마을에 살기 시작한 민경 또한 자꾸만 자살하게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민경은 귀신을 보는 능력을 지닌 혜린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혜린은 민경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혜린에게도 마을을 뒤덮은 강한 요기妖氣가 느껴지고, 급기야 혜린은 민경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 요기에 이끌려 성진을 차로 칠 뻔하기에 이른다.

차가운 기운이 핸들을 잡은 손에서 어깨까지 스쳐지나갔다. 혜린은 급히 핸들을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 이상한 느낌 때문에 차를 멈추지 않았다면 자동차는 그대로 성진을 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이건 분명히 귀매야. 이렇게 강한 귀매는 처음 봐.’
혜린은 놀라서 멈춰 선 성진을 보며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26쪽)

민속조사에 호의적이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조사단을 경계하며 취재를 거부하는 등,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지만 조사는 예정대로 강행된다. 혜린과 성진은 마을 사람들 몰래 ‘도깨비 고사’를 취재하기 위해 한밤중에 산속으로 향한다. 도깨비 고사는 산에 사는 도깨비에게 바닷가로 내려와 부정한 기운을 쓸어내려서 마을에 풍요를 가져와달라고 비는 의식이다. 바닷가로 내려가려다 실패한 도깨비를 산길에서 맞닥뜨린 혜린은 마을에 몰려든 요물들이 도깨비의 정화 의식을 방해해 세력을 불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있던 성진 또한 도깨비 같은 존재들을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깨비는 혜린과 성진에게 마을에 포진한 요귀들을 물리쳐줄 것을 호탕하게 부탁한 뒤 사라져버리고, 도깨비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해코지를 당하게 되기에 혜린과 성진은 힘을 합쳐 귀신들을 쫓아내기로 마음먹는다.

조사가 계속되면서, 조사단의 분위기 메이커를 맡던 형섭과 유정까지 영안이 없음에도 오싹한 초자연현상을 여러 차례 겪고, 조사단의 분위기는 한결 가라앉는다. 혜린 또한 마을에서 만나는 귀신을 물리칠 때마다 평소보다 강한 사념으로 뭉쳐 강력해진 요물들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친구 민경이 정말로 귀매에 홀려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민경의 죽음을 추적하던 혜린은 강한 영력을 지닌 존재의 원한이 마을의 귀매들을 조종해 비극적인 죽음을 일으키고 있음을 감지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지…… 산 자의 두려움을 먹고 살아.
까르르 웃는 소리가 다시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차가운 바람이 훅 끼쳐와 성진과 혜린의 몸을 휘감았다.
“그게 뭔데?”
성진이 혜린의 귀에 대고 물었다. 혜린은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리며 나직이 답했다.
“귀매를 말하는 거야.”
혜린이 다시 고개를 바로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넌 왜 여기서 사람들을 죽이는 거지?”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가 웃음소리같이 귓가에 스쳐지나갔다.
(…)
-통제할 수 없는 나를 부른 자.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자가 사라졌어……
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혜린은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이고, 성진에게 말했다.
“이 마을에 강력한 귀매를 불러낸 주술사가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사람이 사라졌고, 귀매는 여전히 속박된 채로 마을을 휘젓게 된 거지.”(190~191쪽)

마을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이곳에 서린 깊은 원한의 정체를 밝혀내야 한다. 원한의 주인은 어떤 존재이고, 대체 과거에 이 마을에서는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게다가 형섭이 김재관 교수에게서 듣게 된 뒷이야기가 혜린 일행의 의혹을 한층 키운다. 이번 조사는 부산이 근거지인 재벌 가문으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는데 후원의 조건은 단 한 가지, 혜린과 성진을 조사에 참여시켜 이 마을로 데려오는 것이었다는 사실. 혜린과 성진이 이를 알게 된 순간, 기다렸다는 듯 후원자 ‘임재호’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난다. 임재호는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추적할 단서를 제공하며 혜린과 성진이 마을을 구할 수 있도록 돕는 듯 보이지만, 어딘지 두 사람을 그 비밀의 실체로 유인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럼, 혜린씨의 능력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재호는 혜린에게 슬며시 묵례를 하고, 그녀를 남겨둔 채 호텔로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혜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이라도 하듯이 말을 던졌다.
“근데 성진이는 왜?”
재호는 혜린의 말에 잠깐 걸음을 멈추고 대답을 망설이다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린씨에게나 우리에게나 도움이 될 테니까요.”
“도움?”
혜린이 양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되물었다.
“그렇죠. 그의 능력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그의 혈통도.”(167쪽)

그리고 임재호가 건네준 단서들을 바탕으로 조사를 계속한 끝에, 혜린 일행은 이 마을에서 치러지던 제의가 일제의 개입으로 잔인하게 변질되었고, 그 제의로 희생된 무녀의 깊은 원한이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원흉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지금부터야.”
“그게 뭔데?”
“이 마을에서 신녀를 계승하는 방법이야.”
“그게 어떤데?”
혜린이 재촉하듯이 물었다.
“『황금가지』라는 책, 기억하고 있어?”
“제임스 프레이저? 영국 인류학자?”
혜린이 재빨리 대답했다. 형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노다 히로오는 거기 나온 일화를 인용하고 있거든. 숲의 왕 계승. 무슨 뜻인지 알겠니? 과거 여기서……”
“합의된 살인이 일어났다?”(262쪽)

그 잔인한 제의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임재호와 그의 가문은 마을의 비극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 것일까. 임재호는 혜린과 성진을 이 마을로 데려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일까. 혜린과 성진은 도깨비의 부탁대로 요귀들로부터 마을을 구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스무 살 이공계 대학생이 생애 처음으로 구상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워질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짜인 서사가 독자를 소설이 감춘 진실 속으로 이끌고 간다. 귀신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듯 소름 끼치는 감각 묘사, 스릴 넘치는 조사와 추적, 한국의 무속 의식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 비밀스럽게 이어져온 마을 제의에서 풍기는 오컬트 장르만의 오싹한 매력이 어우러진 장편소설 『귀매』는 K-오컬트 소설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하며 귀중한 원형이 되어줄 것이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써본 이 『귀매』라는 소설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더이상 박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서투르게나마 표현하고 싶었다.
(…) 물론 여기 나오는 내용들 중 상당 부분은 실제가 아니다. 그러나 몇몇 대목은 실제 인명과 사건들을 그대로 혹은 약간 왜곡해서 써놓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에 나온 여러 이름과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약간 미안한 감도 있지만, 이름의 주인 대부분은 고인이고 여러 사건들 또한 세인들에게 잊혀져가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어줍은 변명으로 그들에게 할 사과를 대신하고 싶다. _‘초판 작가의 말’ 중에서

머릿속에서 강렬하게 맴도는 이야기를 끄집어내 천대당하고 무시당하며 사라져가는 무속과 민간신앙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제일 익숙했던 공간, 그러니까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던 부산의 다대포를 배경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귀매』는 그렇게 아주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_‘개정판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유은지

물리학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던 2001년, 갑자기 민속학에 매료되어 『귀매』를 쓰게 되었고 그러다 민속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다양한 필명으로 소설과 에세이를 써왔으며 현재는 남부지방의 한 도시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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