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의 두건
2024년 08월 0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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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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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기탁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겠다고 수도원에 찾아온 한 영주가 독살을 당한다. 그리고 범행에 쓰인 독극물은 캐드펠 수사가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풀로 제조한 맹독성 약물임이 밝혀진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캐드펠 수사 앞에 피해자를 둘러싼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가족사가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에는 젊은 날 캐드펠 수사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가 서 있는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는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생생한 캐릭터, 선과 악, 삶과 죽음, 신과 인간 등 인간사 최고 난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 녹아 있는 역사추리소설의 클래식이다.
수도사의 두건 11
주(註) 334
“수도사의 두건이라고도 불리는 투구꽃의 덩이뿌리를 겨자기름과 아마기름에 섞은 겁니다. 독성이 강해 조금만 삼켜도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조심해서 다루고 반드시 손을 씻으십시오. 하지만 관절염에는 아주 그만이지요. 바르면 처음에는 욱신거리다가 이내 고통이 잦아들고 한결 좋아질 겁니다. 자, 이제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조만간 제가 직접 가서 약 바르는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아픈 부위도 금방 찾을 수 있고, 게다가 이건 힘껏 잘 발라줘야 하는 약이니까요.”
_36쪽
캐드펠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열일곱 살 이후 처음이었다. 그때 두 사람은 남들 모르게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가족이 알았다면 둘의 만남을 인정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십자군에 참가하기 위해 성지로 떠나야 했다. 많은 무공을 세우고 돌아와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고 떠났으나, 병사로서 또 선원으로서 겪어야 했던 숱한 열광과 흥분과 위험 속에서 모든 것을 잊고 말았다. 그는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캐드펠을 기다리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마침내 기다림에 지치고 부모의 권유에 못 이겨 보다 안정적인 남자와 결합하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재회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_60~61쪽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알려드리는 거요. 행정관께 도움이 될지 모르고,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실수를 방지하도록 말이오.” 캐드펠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범인 검거가 급선무라고 봅니다.” 행정관은 문간에 서서 어깨너머로 그를 돌아보며 대꾸했다. “일단 그자만 잡으면 수사님의 박식한 조언은 그다지 필요 없으리라 여겨지는데요.”
_88쪽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것이, 새벽녘에는 서리가 매섭게 내릴 성싶었다. 약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약을 저을 때 캐드펠의 소맷자락이 스치는 소리만이 간간이 밤의 정적을 끼뜨리고 있었다. 밤 10시가 지난 시각, 캐드펠이 자신이 던진 미끼가 허사로 돌아갔구나 생각할 즈음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빗장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실내로 들이닥쳤다. 캐드펠은 상대가 행여 겁을 먹고 경계하지나 않을까 싶어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숨죽인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_116쪽
페트러스 수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종교나 소명에 관한 광적인 믿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그에게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니까. 페트러스 수사가 광기를 보이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의 요리였다. 신성한 화덕불이 그의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시뻘겋게 물들였고, 그의 몸속을 흐르는 북부 지역의 피는 가마솥의 물처럼 펄펄 끓었으며, 변경 지방 출신의 거친 기질은 찜통처럼 타올랐다. 그 뜨거운 열정으로 그는 헤리버트 수도원장을 사랑했고, 로버트 부수도원장을 증오했다.
_138쪽
저수지 너머에 자리한 집 부엌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덧창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그랬다! 캐드펠이 잊고 있던 또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부엌 창문은 저수지 쪽으로 나 있고, 거리로 보아도 도로보다는 저수지에 훨씬 가까웠다. 창 바로 아래 화로가 있어서 연기를 내보내느라 어제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작은 병을 던져버리기에 그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거기서 힘껏 던지면 병은 저수지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옷에 냄새도 배이지 않게 하고 자국도 묻히지 않으면서 증거를 인멸하기로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리라.
_162~163쪽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캐드펠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휘하의 수사들 사이에서 불륜의 소문이 돌 경우 부수도원장은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이를 덮고 당사자를 옹호하려 들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편 이 일은 늘 거북스러운 존재였던 저 자유분방한 인물에게 재갈을 물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캐드펠의 착실하고 관대한 모습 뒤편에 숨겨진 은밀한 구석을 본 듯해 부수도원장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는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제롬 수사의 이야기에 숨겨진 속뜻을 모를 리 없었다.
_177쪽
사이먼 수사는 캐드펠의 말대로 했다. 자신이 모르는 전문 지식을 가진 이를 보면 아이처럼 무조건 믿고 따를 사람이었다. 캐드펠은 사이먼 수사가 켜놓은 촛불 아래서 밤새도록 바르나바스 수사를 정성껏 간호했다. 먼저 뜨겁게 달군 돌을 웨일스산産 플란넬에 둘둘 싸서 환자의 발에 대고, 가슴과 목과 갈비뼈에서 허리까지 겨자와 열을 내는 허브 몇 종을 섞은 거위 기름 연고를 바르고, 다시 가슴과 목에 플란넬 붕대를 친친 감고 이마에는 찬 수건을 올려놓은 다음, 향신료와 꿀과 해열용 허브를 탄 뜨거운 포도주 한 잔을 마시게 했다. 환자는 자면서도 괴로운 듯 이따금 경련을 일으켰고, 한밤중에는 땀을 비 오듯 흘려 침대를 온통 적셨다. 정성스러운 두 간병인은 힘을 합해 환자를 안아 올리고 깨끗한 새 시트로 갈아준 다음, 다시 따뜻하게 환자의 몸을 감싸 침대에 뉘었다.
_241~242쪽
“수사님이 여기 이틀쯤 더 계시면 모레 란실린에서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날 그분 토지에 관한 재판이 열리거든요. 저번에 오아인 씨가 소송을 낸 건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는데, 재판관들이 먼저 그 땅을 둘러본 다음 판결을 내리기로 한 게 바로 모레예요.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어떻게든 처리할 건가 봐요. 오아인 씨 땅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날 란실린 교회에 가면 틀림없이 그분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이웃이 토지 경계석을 옮겼다고 해서 소송을 걸었댔어요.”
저도 모르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이, 소년은 자신이 캐드펠에게 하나의 질문,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_255쪽
뜰은 잠시 깊은 정적에 휩싸였고, 잠시 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가 수사들 사이에서 파문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마크 수사는 캐드펠의 팔에 얼굴을 묻은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제롬 수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당장에라도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싸움에 이긴 닭처럼 고성을 질렀지만 그 소리는 금세 멈추었고 사람들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페트러스 수사가 아닌가 싶었다. 일이 절정에 이른 순간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저 신임 수도원장을 위해 그는 벌써 부엌으로 달려가 요리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_319~320쪽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독초로 독살당한 부유한 영주
그리고 캐드펠 앞에 나타난 옛사랑의 그림자
내란의 상처가 차츰 아물어갈 무렵,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는 뜻밖의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스티븐 왕에게 미움을 산 헤리버트 수도원장의 거취가 불안해진 상태로 종교회의 참석을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고, 내심 수도원장의 지위를 노리던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수도원장 대행을 맡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전 재산을 내놓고 수도원에 노년을 의탁하기로 한 영주 거베이스 보넬이 독살당하면서 수도원은 삽시간에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독살 사건에 캐드펠 수사가 제조해 병자들을 치료하던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약초가 사용된 것이 밝혀지면서 캐드펠은 이 사건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사건을 조사하던 캐드펠은 독살당한 영주의 아내를 보고 충격에 휩싸이는데…….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 접경지대에서 벌어진
두 지역 간의 갈등과 복잡한 가족사가 얽혀 불러온 비극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수도사의 두건》(원제: Monk’s hood)에는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의 과거가 드러난다. 독살 사건에 희생된 영주의 아내 리힐디스가 바로 캐드펠 수사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기 전 그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사랑을 노년이 되어 만난 재회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보넬을 살해한 범인으로 리힐디스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에드윈이 지목되고, 시간이 흐르며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가족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한 구성국이지만 잉글랜드의 치세와는 별개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 및 사회문화적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 캐드펠 수사 역시 웨일스 출신으로, 웨일스어 통역이 필요한 상황에 투입되곤 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두 지역 모두를 이해하고 있던 캐드펠 수사는 결국 웨일스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다채롭고 생생한 캐릭터의 매력과
인간 감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수작
이 작품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독보적인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매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신에게 귀의하였지만 치열하고 드라마틱했던 과거 젊은 시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캐드펠 수사, 경건한 신심 외에도 지극히 인간적인 시기, 질투, 욕망 등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수사들, 리힐디스의 아들 에드윈과 동생 에드위의 우정과 용기, 증오에 휩싸여 살인을 저지르고 두 번째 살인까지 저지를 뻔했지만 후회하고 속죄하는 범인 등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다양한 캐릭터들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내는 이 이야기는 페이지 터너로서 엘리스 피터스의 재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라고 보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작가정보
(Ellis Peters)
움베르트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슈롭셔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덜리 지역 약국에서 조수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녀가 쌓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39년 첫 소설 『네로의 친구 호르텐시우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죽음과 즐거운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앨런 포 상을 받았다.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발표하며 시작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81년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의 한 권인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았다.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받았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문학적 성취와 함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드러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손꼽힌다.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슈롭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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