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2024년 08월 1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8월 0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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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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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199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뒤 약 20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전국 도서관에서 특정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져 뜯겨 나간 채 발견된 소설로 입소문이 나며 마침내 현지에서 재출간되었다. 국내에서는 양윤옥 번역가의 손길을 다시 거쳐 새로운 표지와 장정을 입고 국내 독자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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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아무도 진짜 나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제 새삼 내 입으로 모든 것을 고백할 수도 없다. 인간에게는 저마다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게 있고, 나는 지금까지 너무도 능숙하게 그 역할을 해내버렸다. 이제 와서 그걸 내던진다면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걸 피하려면 나는 이대로 계속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로 모든 게 지겨워진다. 이따금 내 손으로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을 만큼. _24쪽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의외로 있을 수 없는 일이 태연히 일어나는 게 이 세상인지도 모른다고. _102쪽
어째서 나를 이해해 보겠다는 둥의 생각을 할까. 나는 한 번도 미쓰히데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는데.
단지 그의 몸만 있으면 다른 건 하나도 필요 없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 몸을 가진 미쓰히데다. 육체를 뺀 그에게는 볼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 있을 때 서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어색하다고 음악을 트는 일도 없다. 함께 어딘가에 놀러 가지도 않는다. 물론 그의 방에 가서도 옷을 벗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_159쪽
나 자신을 불쌍해할 생각은 없다.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부모가 이혼한 것도 아버지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도 딱히 나 혼자만의 불행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정리해 두는 장소도 나는 마음속에 분명하게 갖고 있다.
그래도 이 만성적인 우울만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중세의 고문처럼 가슴 위에 무거운 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듯한 기분이다. _178쪽
거래라느니 계약이라느니, 어이없는 핑계를 내세워 그토록 그녀를 내 마음대로 하긴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뻔뻔한 소리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웃는 얼굴을 보여줘도 괜찮은 거 아닌가. 사실 에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너를 전혀 싫어하지 않아. 네가 친구들과 어울려 웃을 때의 그 얼굴, 제법 괜찮아. 정말로 하고 싶은 건 그런 종류의 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 말을 못하는가. 아니, 그녀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_193쪽
견딜 수가 없다.
정말 견딜 수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해 왔지만 내가 미야코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지겨울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을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여자들끼리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여 왔다. 설령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건 어렵더라도 곁에 있는 것쯤은 가능하니까. _325쪽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민에 그토록 괴로워했던 것은 그게 말끔히 해결되지 않는 한, 평생 나를 괴롭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이 몰고 오는 아픔에 익숙해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그 무렵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_327쪽
★★ 일본 3대 여성 작가 무라야마 유카의 기념비적 문제작 ★★
★★ 독자 요청 쇄도로 10년 만에 재출간 ★★
“이 녀석이 하필 그 자리에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그야말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될 이유도 없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답고 평온한 마을. 그곳에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자신의 존재로 고민하는 고등학생이 있다. 공부든 운동이든 모든 면에서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는 후지사와 에리다. 다들 에리를 천성적으로 ‘착한’ 아이이자 모범생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에리는 자신의 성별이 바뀐 채 태어났다고 느끼며 억누를 수 없는 욕구에 남몰래 괴로워하고 있다. 또 동성인 단짝 친구를 사랑한다고 자각한 뒤로는 친구 사이를 망칠까 봐 마음을 숨기고자 힘겹게 노력한다. 그럼에도 들끓는 욕망을 잠재울 수 없던 에리는 결국 파격적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미쓰히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핑부가 있는 이 고등학교의 대표 서퍼다. 일렁이는 파도의 리듬과 자신의 심장박동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느끼는 그는 수업 시간을 빼고는 질리는 줄도 모르고 바다에 뛰어들기 바쁘다. 늘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그를 보며 친구들은 아무 걱정 없어 보인다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미쓰히데는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 곁을 지키며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아버지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며 아들에게 존엄사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고, 미쓰히데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과정에 낙담한다.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를 수 있는 것인지, 정말로 그래도 되는 것인지.
각자의 괴로움으로 견딜 수 없어 하던 두 사람은 집에서 떨어진 도시, 요코하마의 한복판에서 마주친다. 에리가 고민 끝에 감행한 일을, 우연히 그 길을 지나던 미쓰히데가 목격하고 만 것이다. 학교에서는 거의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이었지만 에리는 혹여나 자신의 행동이 학교에 소문이 날까 봐 걱정하다가 미쓰히데에게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미쓰히데는 자신의 앞에 갑자기 등장한 에리로 인해 규칙적이었던 삶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며 그 거래에 응하고, 곧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관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의외로 있을 수 없는 일이 태연히 일어나는 게 이 세상인지도 모른다고. _본문 중에서
인생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하여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애초에 접점이라고는 없고 모든 면에서 미숙한 두 청춘이 서로를 견디고 부딪치다 각자의 모서리가 닳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에리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표준과 자기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자각한 뒤, 슬픔과 좌절,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미쓰히데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홀로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지를 짊어지며 외로워했다.
하지만 이는 “『인간 실격』처럼 아릿한 후유증을 남기는 책”이라는 독자 후기에서도 알 수 있듯, 청춘의 한 시기에 반드시 거쳐야만 했을 통과의례와 다름없었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피할 수도 없이 아픈 감정이 몰려올 때, 두 사람은 모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저항하지만 결국에는 고민이 주는 아픔을 받아들이고 점차 익숙해진다. 스스로에게 가차 없이 모질었던 에리는 미쓰히데를 만나면서, 또 자신의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미쓰히데는 에리를 만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마치 몰려왔던 파도가 모두 지나간 뒤 비로소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무라야마 유카는 누구에게나 깊은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을 내적 갈등이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결심, 스스로도 잘 인정할 수 없는 어리석음과 아픔을 꺼내 에리와 미쓰히데라는 인물로 조형해 내보였다. 그래서 독자에게 때로는 어렵고 불편한 기분을 안기지만 곧 숨기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경험을 안겨준다. 그리고 독자는 그제서야 흘려보냈던 아픔을 보듬을 용기를 내고 스스로를 치유하게 된다.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위태롭고 날카로운 청춘을 소재로 공감을 초월한 이입을 이끌어내는, 무라야마 유카만이 선보일 수 있는 역량이 남김없이 발휘된 소설이다.
날카롭게 깨진 유리가 파도에 밀려 바다의 보석이 되듯
출간된 지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독자의 영혼을 거듭해서 구원하는 소설
“독한 술을 빚어내는” 작가 무라야마 유카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일본 문단에 파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녀가 써내는 글은 기존의 고정된 인식을 해체하고 금기와 불온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안으로 들어가면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심연을 발견하게 된다. 차마 꺼내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또한 여성과 청소년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한 도발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단지 자극적인 소설로만 소비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부서지는 파도와 바다 내음이 풍기는 것만 같은 청량한 분위기에 더해, 지난날의 방황과 아픔, 그리고 몸 어딘가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던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미처 떨쳐내지 못한 지독한 성장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 도서관에서 특정 페이지가 뜯겨 나갔다”는 목격담과 “영혼을 거듭해서 구원하는 소설” 등의 후기를 모으며 20년이 넘도록 계속 읽히고 있는 진귀한 현상으로 증명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무라야마 유카가 빚어낸 “술에 깊이 취해 때로는 감미롭게 때로는 괴롭게 허우적거리겠지만, 이윽고 그 술에서 깨어난 우리의 시선은 이 세상을 그 전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포착”할 테니 말이다.
작가정보
村山由佳
196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릿쿄대학 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천사의 알』로 제6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1994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맛있는 커피 내리는 법』 시리즈는 ‘청춘 연애소설계의 혜성’으로 불리며 일본에서 누계 부수 550만 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2003년에 『별을 담은 배』로 제129회 나오키상을, 2009년 『더블 판타지』로 제4회 주오고론문예상과 제16회 시마세연애문학상, 제22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바람이여 폭풍이여』로 제55회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춘기에 겪는 불안과 외로움, 단절과 소통을 부서질 듯 섬세하게 그려낸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은 1999년 처음 발표된 이후로 ‘영원한 청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2023년에 현지에서 복간된 뒤로도 화제가 되며 ‘무라야마 유카 월드’가 건재함을 알렸다. 그 외 발표한 작품으로 『날개』 『모든 구름은 은빛』 등이 있다.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가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 『한 남자』, 『본심』,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빙평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악의』, 『라플라스의 마녀』, 『붉은 손가락』, 『유성의 인연』, 『매스커레이드 게임』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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