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2024년 07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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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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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은 1924년에 발표된 〈쌍생아〉부터 1931년에 발표된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까지, 에도가와 란포만의 그로테스크하고 잔혹한 상상력으로 쓰인 기담 16편을 수록했다. 세계 3대 추리소설 작가, 일본 미스터리·추리소설계의 거장 등 에도가와 란포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수도 없이 존재하며, 그의 이름을 딴 ‘에도가와 란포 상’은 현재까지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에 실린 16편의 기담처럼 본격 추리물뿐만 아니라 괴기·에로틱·그로테스크·잔학성이 강조된 작품들도 연이어 발표하며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며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역사를 100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 에도가와 란포. 그의 핏빛 기담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당신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를 가져다줄 것이다.
붉은 방
백일몽
1인 2역
인간 의자
가면무도회
춤추는 난쟁이
독풀
화성의 운하
오세이의 등장
사람이 아닌 슬픔
거울 지옥
목마는 돌아간다
애벌레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
저는 형을 죽인 다음 날부터 거울이 두려워졌습니다. 거울뿐 아닙니다. 모습이 비치는 모든 것이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거울뿐 아니라 유리 종류는 모조리 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도시에는 건물마다 쇼윈도가 있고, 그 너머에는 거울이 빛나고 있습니다. 보지 않으려고 의식하면 할수록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유리나 거울 속에는 제가 죽인 남자가 (실은 제 모습이 비친 것뿐이지만) 기분 나쁜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_009쪽, 〈쌍생아〉 중에서
“3,721일 동안 우리 집 수도는 항상 좔좔 틀어져 있었단 말입니다. 다섯 토막 낸 아내의 사체를 넉 되짜리 됫박에 담아서 차갑게 식히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게 말이죠, 여러분…….”
여기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바로 비결이란 말입니다. 비결. 사체가 썩지 않는…… 시랍이 되는 거지요.”
‘시랍……!’
어떤 의학서에서 본 ‘시랍’이라는 항목이 그 의사가 그려놓은 생생한 그림과 함께 내 눈앞에 떠올랐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왠지 모를 불안과 공포가 내 심장을 풍선처럼 부풀려놓았다.
“……아내의 포동포동하고 새하얀 몸통과 손발은 귀여운 밀랍 세공품이 되고 말았지요.”
_066~067쪽, 〈백일몽〉 중에서
의자 속 사랑! 그게 얼마나 짜릿하고 매력적인지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오직 감각과 청각, 그리고 얼마 안 되는 후각만의 사랑이고, 어둠 속 세계의 사랑입니다.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악마가 사는 세상의 애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은 구석구석에서는 얼마나 기이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_099~100쪽, 〈인간 의자〉 중에서
“에……, 그럼 지금부터 보실 것은 기이하고도 기적적인 마술, 미인의 지옥문입니다. 여기 있는 소녀를 저 상자 속에 넣고, 열네 개의 일본도를 하나씩 하나씩 사방팔방에서 찔러 넣겠습니다. 에……, 그리고 또……, 이것만 가지고는 재미가 덜하실 테니까, 이렇게 칼에 찔린 소녀의 목을 싹둑 잘라서 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고대하십시오!”
(…) 드디어 공 타기 미인 오하나가 가볍게 인사하면서 나긋나긋한 육체를 그 관처럼 생긴 상자 속으로 숨겼다. 난쟁이는 상자의 뚜껑을 덮고 커다란 자물쇠를 채웠다.
150쪽, 〈춤추는 난쟁이〉 중에서
오세이는 설마 그 정도로 고통이 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겠지만,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도 남편의 고통스런 죽음을 가련히 여긴다거나 자신의 잔학함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악녀의 운명적인 불륜의 심정을 악녀 스스로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 벽장 앞에 서서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그리운 연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평생 놀고먹어도 될 정도로 막대한 남편의 유산, 거리낄 것 없는 연인과의 즐거운 생활, 그런 상상만으로도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를 잊기에 충분했다.
_199~200쪽, 〈오세이의 등장〉 중에서
그녀는 사납게 달려들어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잡아 뜯듯이 남편의 기모노를 벗겨버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몸뚱이가 굴러 나왔다.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목숨이 붙어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시 의학계가 떠들썩해지고 신문에서는 전대미문의 기담으로 대서특필했던 대로, 남편의 몸은 마치 수족을 뭉개버린 인형처럼 더 이상 심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고 꺼림칙한 상처투성이였다. 두 팔과 다리는 뿌리부터 잘려 나가 살짝 튀어나온 살덩이만 남은 것도 모자라, 몸통만 남은 괴물 같은 전신도 얼굴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무수한 상처들로 번뜩이고 있었다.
_295쪽, 〈애벌레〉 중에서
저는 두려운 예감에 몸을 떨면서 확인을 위해 창밖으로 목을 내밀었지만, 그쪽을 바로 볼 용기가 없어서 우선은 아득한 계곡 바닥을 내려다봤습니다. 달빛은 건너편 건물의 위를 살짝 비추고 있을 뿐,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완전한 어둠뿐이어서 바닥 모를 깊이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말을 듣지 않는 목을 무리하게 억지로 끌듯이 오른쪽으로 돌렸습니다. 건물 벽은 그늘이 져 있었지만 건너편의 달빛이 반사되어 물건의 형체가 아주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지요. 서서히 머리를 돌려보니 마침내 예상하고 있던 것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의 발이었지요. 축 늘어진 손목과 있는 대로 쭉 뻗은 상반신, 깊게 졸린 목, 그리고 두 개로 접힌 듯이 완전히 늘어져 버린 머리가 차례로 보였습니다. 호걸 사무원 역시 달빛의 요술에 걸려 그곳 전선 가로대에 목을 매었던 것입니다.
_366쪽,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 중에서
에도가와 란포를 읽지 않고서는 미스터리를 논하지 말라!
에도가와 란포의 핏빛 기담 16편
⦁일란성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 행세를 하며 계속된 살육을 벌이는 남자_〈쌍생아〉
⦁전쟁으로 인해 팔다리를 잃은 군인 남편을 보살피며 금지된 욕망에 눈을 뜬 아내_〈애벌레〉
⦁사람들의 무시와 핍박 속에 살인귀로 전락해버린 난쟁이 광대_〈춤추는 난쟁이〉
⦁3,721일간의 노력 끝에 아내를 밀랍 인형으로 만든 약사_〈백일몽〉
⦁자신만의 기이한 방법으로 99명을 살해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남자_〈붉은 방〉
⦁임산부들의 연쇄적인 유산 사건이 일어나는 음산한 마을_〈독풀〉
1955년 일본의 추리소설계에서는 란포의 업적을 기리며 ‘에도가와 란포상’이 제정되었고,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본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추리작가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 3대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며 미스터리·추리소설계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란포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미스터리를 가득 머금은 단편 기담에서 더 빛을 발한다. 인간의 불온한 내면과 불안한 시대상을 촘촘하게 엮어 구축한 ‘란포 세계’. 〈인간 의자〉나 〈화성의 운하〉처럼 살인이나 죽음이 깃들지 않더라도 그의 손에서 탄생한 이야기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자들의 예상을 뒤집으며 소름 끼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로테스크와 공포,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란포 세계’
각 장을 마칠 때마다 기괴한 전율이 당신과 함께한다!
여기, ‘란포 세계’에는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마치 살덩이로 만든 팽이처럼 몸을 들썩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인이 있다._〈애벌레〉 그는 불구자가 된 자신을 보살피며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처절한 육욕에 빠져버린 아내를 향해 (당신을) “용서해”라는 세 글자를 남긴다.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군인 스나가는 아내를 위해 결국 풀이 무성한 정원을 애벌레처럼 기어가며 죽음을 갈구한다. 란포 세계에는 아내를 향해 메시지를 남긴 또 다른 남편 가쿠타로가 있다._〈오세이의 등장〉 실수로 거대한 장궤에 갇혀 생사를 헤맬 때, 병약한 남편의 죽음을 바라며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장궤를 닫아버린 아내 오세이. 이후 남편의 기괴한 시체와 함께 발견된 장궤의 내부에는 손톱 자국과 함께 피로 쓰인 ‘오세이’라는 이름 석 자가 단말마처럼 남아있다.
여기의 두 남편이 아내를 향해 남긴 죽음보다 더 끔찍한 메시지는 불쾌함이나 그로테스크한 것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상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생의 아이러니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심연 속에서 찾아낸 끔찍한 환상의 행진
그의 단편 하나하나에 담긴 생의 아이러니 때문에, 에도가와의 글은 단순히 잔혹하고 기괴한 기담을 넘어서는,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처절한 내면이 담긴 ‘란포 세계’로 완성된다. 단편 소설 〈애벌레〉는 태명양 전쟁에서 공로를 세운 군인에게 수여되는 금치훈장을 받은 주인공의 모습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훈장을 경멸하는 듯한 묘사가 포함되어 반전 소설로 낙인찍히고 일본 내에서 발매 금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란포는 그저 인간의 잔혹한 야수성과 공포, 그리고 비애를 담고자 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몸뚱이만 남은 인간의 기괴한 실루엣이나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끔찍한 살인마이기 때문이 아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고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든, 혹은 자신의 이익(혹은 즐거움)을 위해 생명의 끊은 하찮은 듯 끊어버리든, 그 또한 여느 사람들과 같이 고뇌와 외로움과 괴로움,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의 삶이란 소설 속 비현실적인 세계만큼이나 미스터리하고 기괴한 기담이라는 사실을 서늘하게 담아낸 이 소설집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심연에도 살고 있을 어느 끔찍한 괴물을 얼굴을 마주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작가정보
아서 코난 도일,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며,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역사를 100년 앞당긴 일본 미스터리·추리소설계의 거장이라 평가된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平井太郞지만 미국의 대문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평생 사용했다.
1894년 미에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그 후 무역회사, 조선소, 헌책방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23년 문예지 《신청년新青年》을 통해 단편 추리소설 〈2전짜리 동전〉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925년 그의 첫 탐정소설 《D언덕의 살인사건》에서 명탐정 주인공 아케치 고고로를 탄생시키며 일본 문학계 최초로 사립 탐정 캐릭터를 창조했다. 본격 추리소설 외에도 괴기 소설이나 에로틱·그로테스크·잔학성이 강조된 작품들도 연이어 발표하며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지만, 1929년 발표한 단편 〈애벌레〉는 반전 소설로 낙인찍히며 검열당하고 전면 판매 금지 처분을 받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1947년 ‘일본 탐정작가클럽’을 창설(1963년 ‘일본 추리작가협회’로 명칭 변경)하고 잡지를 발간했으며 신인 작가 발굴에도 주력하는 등 일본 추리·탐정소설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다. 1955년 일본 탐정작가클럽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상’을 제정했으며, 추리작가의 등용문이 된 에도가와 란포 상은 현재까지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치바대학교 일문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다양한 분야의 단행본을 번역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생각의 연금술》, 《마음의 연금술》, 《행복의 연금술》, 《미안해 스이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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