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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그네

하명희 지음
교유서가

2024년 08월 08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2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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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22.21MB)
ISBN 9791193710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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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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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았길래 떨어지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까.”

“그것은 누구나 각자의 페이지가 있고,
각자의 문장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의 합창이었다.”

유대에서 함께하는 연대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 하명희의 신작 소설집
작년에 내린 눈
먼 곳으로 보내는
모르는 사람들
그 여름 저녁 강이 우리에게 준 것
오래된 서점에서
다정의 순간
마산행
밤 그네

해설│사람의 자리, 문학의 자리_고영직(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숨이란 게 자기가 내보내고 받아들여야 숨인 거야. 그건 자기 몫인 거야. 그래서 목숨이라고 안 하나. 그 숨을 자기가 관장하지 못하면 그때부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작년에 내린 눈」에서(13쪽)

또 올게 대신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 말만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왼쪽 귀에 대고 그 말을 하려고 했으나 “엄마, 우리한테 돌아와줘서 고마워요”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돌아오다와 돌아가다 사이 어디쯤, 아직도 명치가 아픈 날들이 체한 것처럼 얹혀 있었다.
-「작년에 내린 눈」에서(15쪽)

“네 엄마가 그걸 다 풀어줬다니까. 가족들 아무도 나한테 그렇게 안 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지. 근데 언니가,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그때라도 내게 손을 내밀어서 이모가 거기서 풀려나온 거야. 이모가 이만큼 살아보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 내가 지나쳤던 일을 되돌아가서 풀어내는 게.”
-「작년에 내린 눈」에서(19-20쪽)

여자는 망설이다가 “담배 하나만 주실래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반가웠다. 상복을 입은 내가 그 새벽, 엄마와 같은 중환자실에 있었던 고인의 아내에게 줄 수 있는 게 우습게도 담배밖에 없었고, 그것은 그때 내가 가진 전부였다.
-「작년에 내린 눈」에서(32쪽))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선숙이는 나보다 더 가난하구나. 친구 같은 아빠가 있는 연숙이가 부러웠던 것처럼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구나, 선숙이도 나를 부러워하겠구나 하는 안도감. 그게 솔직한 감정이었어.
-「먼 곳으로 보내는」에서(49쪽)

너는 전환이 뭐 별건가? 하고 말했어. 아저씨가 그날 우리 딸들 축하한다고 해주지 않았다면 생리는 불편하고 힘들고 더럽고 귀찮은 거로 여기며 살아왔을 거라고.
-「먼 곳으로 보내는」에서(52쪽)

이 작은 책은 뭐지? 책 속에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차력을 하고, 곡마단에서 묘기를 보여주고, 도시에서 꽃을 팔고, 공원에서 매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서(85쪽)

“흔히 작가의 글을 무슨 요술이나 마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실려 있는 글들은 요술도 마술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다.”
-「모르는 사람들」에서(93-94쪽)

그것은 누구나 각자의 페이지가 있고, 각자의 문장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의 합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이 던진 돌멩이가 저항한 오랜 투쟁 같았다. 선생님, 지금은 외롭지 않으시죠? *-「모르는 사람들」에서(94쪽)

늘 짐작하게 하고, 표정을 살피게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속으로 삼켰다가 1년 있다가 네가 그때 그랬지, 라고 말하는 사람. 일어난 일보다 감정과 표정만으로 짐작하고 표현하면서 어떻게 20년을 같이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그의 등에 대고 허탈한 숨을 뱉었다.
-「그 여름 저녁 강이 우리에게 준 것」에서(111쪽)

그와 사는 동안 그가 말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잃어버렸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걸까. 그가 입을 닫아버리곤 하던 순간에 그는 이런 말을 하려고 했을 텐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언어를 버리고 여기까지 온 걸까.
-「그 여름 저녁 강이 우리에게 준 것」에서(114쪽)

나는 내 앞에 침을 퉤하고 뱉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자기도 침을 뱉고 가던 길로 걸어갔다.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오래된 서점에서」에서(133-134쪽)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얼어붙었고, 그들은 “뭘 째려봐, 썅! 눈깔을 지져놓을까보다” 하며 담뱃불을 들이댔다. 물러서지 말아야 했을까. 아니면 눈에 더 힘을 주고 내가 그걸 사려고 이명래 고약에서 얼마나 많은 고약을 포장했는지 아느냐고 소리쳐야 했을까.
-「오래된 서점에서」에서(134-135쪽)

그동안 그와 관련된 것들은 잊고 있었으니 잘 숨긴 셈이었다. 그런데 그 봄날이 30년 동안 서점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통해 되살아나다니. 기억이란 아무리 묻어두어도 어느 순간에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현재로구나 싶었다.
-「오래된 서점에서」에서(149-150쪽)

어깨너머로 보니 여자는 날짜 칸에 볼펜으로 꾹꾹 누른 글씨로 ‘오늘’이라고 적고 있었다. 옆줄에 있던 중년 남자가 여자를 보고는 웃어댔다. 여자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울컥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이 사람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해왔을까. 날짜를 적는 칸에 ‘오늘’을 적는 사람.
-「다정의 순간」에서(173쪽)

“요즘은 다정, 다정함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이 작업을 하며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책에서 했으니 이제는 우리 안에 있는 그 다정을 열어주셨으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정의 순간」에서(181쪽)

10월 그날에 진짜 비가 왔거든. 저녁부터 내렸으니까 데모한 사람들은 옷이 젖었을 거잖아. 경찰서 끌려온 사람들 중에 옷이 젖은 사람은 등에 붉은 펜으로 A라고 적더라고. A급은 적극 가담자로 지하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거든. 그때 어떤 중학생도 머리통이 깨져서 붙잡혀왔어. 그애 옷을 보니까 다 젖었더라고. 그애 옷에도 A라고 적힌 걸 봤어. 얼마나 슬픈 일이요. 그 어린애가 A급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으니.
-「마산행」에서(209쪽)

그날 이후 너와 네 아빠는 밤마다 그네를 타며 그곳에 있어. 흰 눈이 쌓이고 연둣빛 잎사귀가 녹색으로 뒤덮이다가 아카시아 향기가 밤나무 꽃향기로 바뀌던 날들을 지나, 지금은 다시 잎사귀 떨어지는 계절인데, 웃다가 울다가 흔들리며 그림자를 짜는 밤은 이어지고 있어.
-「밤 그네」에서(222쪽)

내가 느끼기에도 말이 길어지고 있었어. 여자는 나를 보며 활짝 웃더라.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은 너무 오랜만이었어. 나는 그때 알았어. 아파 보인다거나 기운 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왜 거부하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억울해졌는지. 난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 그런 유일한 사람인 네 아빠와 너를 잃어버렸던 거야. 나는 이 낯선 만남이 반가웠어.
-「밤 그네」에서(239쪽)

안나는 꿈에서 너를 만났었대. 너무 반가워서 달려가서 너를 안으려다가 한 발짝 앞에 두고 멈췄다고 했어. 너를 안으면 네가 답답할 것 같았대. 꿈이었는데도 네가 답답할까봐, 숨쉬기 힘들까봐 안지도 못하고 마주보며 눈인사를 했다고 하더라. 안나는 돌다리를 놓듯 조심스럽게 10분, 20분, 띄엄띄엄 내게 문자로 그 이야기를 해주었어.
-「밤 그네」에서(246쪽)

“서로의 그네를 밀어주고 마음을 믿어주던 시간은 지나갔어도 내 안의 다정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되돌리고 싶은 것들을 향한 애도의 문장들이 가슴으로 스며들어 가만히 숨을 쉬게 한다.”
_박소영(퇴촌 베짱이도서관 관장)

‘인간은 인간에 대해 인간적이어야 한다’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하명희의 새 소설집. 2009년 〈문학사상〉에 택배 청년의 하루를 그린 단편소설 「꽃 땀」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1991년 ‘5월 투쟁’에 참여했던 고등학생 운동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로 제22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70미터 고공 크레인의 여성 기사가 주인공인 단편집 『불편한 온도』로 2019년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과 백신애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집 『고요는 어디 있나요』(2019)에 이어 8편을 모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온기’ 있는 작가라 평가받는 저자의 시선은 여전히 따스하다. “사람의 자리를 걱정하며 사람들의 ‘안녕’을 묻는 데 진심”(해설)인 작가는 “다정”(「다정의 순간」)이 유대를 넘어선 연대의 고리가 될 수 있고 아픔이 개개인의 몫인 각자가 아닌 이해와 지지가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정갈한 문체로 담담히 전한다. 또한 주연부터 조연까지 한 명 한 명의 배우가 살아 있는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생동감은 작가의 인간에 대한 밀도 있는 통찰력과 온기 있는 시선을 오롯이 담고 있다.

사람의 자리를 생각하며, 문학의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 자문자답하는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하명희는 특히 ‘온기’ 있는 문장으로 인기척 있는 작은 커뮤니티를 보여주는 데 여느 작가보다 진심이었다.
-해설에서


다종의 사회적 폭력에 움츠리고 치유받지 못한 이들

이번 작품집에는 공통의 아픔이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아픈 일’을 당하고 스님이 된 이모와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아픈 일’을 당한 엄마(「작년에 내린 눈」), 중환자실 앞에서 면회 시간에 맞추어 대기하고 있는 가족들(「작년에 내린 눈」), 연숙의 아버지로부터 생리 축하 인사를 들었던 선숙, 연숙, 미숙(나), 진숙(「먼 곳으로 보내는」), 고인이 된 소설가의 장례식장에 모인 고인의 작품 속 인물인 곡마단 소녀, 공중그네 소년, 차력사, 꽃시장 장미 여인, 파고다공원 이야기꾼(「모르는 사람들」), 오래된 서점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오래된 서점에서」), 중학교 시절 고모집에서 식모 노릇을 하며 차별과 학대를 당한 언니(「다정의 순간」), 부마민주항쟁 당시 열다섯 살 나이에 파출소 방화범으로 몰려 42일 동안 고문을 당했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마산행」), 이태원 참사로 남편과 딸을 잃고 남겨진 엄마와 딸의 친구들(「밤 그네」). 뇌졸중으로 언어를 잃은 남편 ‘송민호’.(「그 여름 저녁 강이 우리에게 준 것)

다종의 사회적 폭력 앞에 움츠리고 치유받지 못한 채 남모르는 족쇄로 안고 살아왔던 이들의 고통은 같은 아픔을 나누는 유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이 있던 당시 충격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던 이모는 절에 맡겨져 가족과 연을 끓고 살았고 엄마는 그런 이모를 찾아가 미안했다고 손을 내민다. 엄마의 죽음 뒤 들려주는 이모의 이야기는 딸들에게 엄마의 생을 온전하게 이해받고 떠날 수 있도록 한다.(「작년에 내린 눈」) 연숙의 아버지의 말이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진숙은 시한부 진단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뺑소니 사고로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연숙이 아빠를 돌보는 재가요양 간병인을 자청한다.(「먼 곳으로 보내는」) 주인공과 함께 세월호 관련 서적 북토크에 참가한 언니는 세월호 참사 후유증을 앓고 있는 동수에게 보내는 “다정”의 온기에 스스로도 치유를 받는다.(「다정의 순간」) 부마항쟁 4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 아버지는 카메라 앞에 서서 40년 동안 감추었던 이야기를 밝힌다.(「마산행」)

인물들의 아픔은 ‘온기’를 지닌 이해와 지지가 함께하면서 연대로 나아간다.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저의 소설 속에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면서 “우리는 이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밝힌 바람이 온전히 느껴진다.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온기’

따뜻함에도 여러 색깔과 방향이 존재한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리얼리즘”(문학평론가 복도훈)이라는 평을 받는 작가의 ‘온기’는 단호하다. “그의 따뜻함에는 확실한 방향성이 있다. 그의 따뜻함은 이 세상의 뒤틀림과 그릇됨에 의해 상처받은 존재들을 향해서만 열려 있다. 그것은 따뜻함이되 ‘당파적 따뜻함’이”(김명인 문학평론가)라는 평처럼 이번 작품집에 등장하는 ‘국가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뺑소니’ 따위 폭력의 피해자들을 향한 연대(지지)에 대한 작가의 바람은 낱낱으로 흩어진 삶에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전할 것이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점점 사라져가는가, 왜 아름다운 것들은 점점 가난해져가는가”라는 50년 전 문장을 나도 품고 있다고,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말

작가정보

저자(글) 하명희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꽃 땀」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함. 2014년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로 전태일문학상 수상,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19년 단편집 『불편한 온도』로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백신애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장편소설 『슬픈 구름』(『나무에게서 온 편지』 복간), 단편집 『불편한 온도』 『고요는 어디 있나요』, 공동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 『5월 18일, 잠수함 토끼 드림』 『여덟 편의 안부 인사』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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