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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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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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같은 글쓰기』는 아니 에르노의 굴곡 많은 문학적 도정을 되짚어본 대담집이다. 대담을 제안한 이는 소설가이자 문학 교수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에르노와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자전적 글쓰기에 대하여 깊은 탐구를 하는 소설가인 동시에 평론가적 관점에서 그녀의 글쓰기를 지켜보고 있는 자네는 대담 내내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내보이지 않은 채, 에르노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단계별로 질문을 던지며 용의주도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그렇기에 이 대담집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모든 것이자 그녀 자신”인 글쓰기를 A부터 Z까지 이야기하는 내밀한 독백이기도 하다.
내게 있는 두 가지 형태의 글쓰기
난 소설이라는 단어 안에 문학을 위치시키고 있었어요
칼 같은 글쓰기
용해되고 싶은 욕망
작업장 같은 것
위험한 어떤 것
새로운 형태 찾기
죄책감을 떠안은 재능
변절자
피지배 세계의 문화
세계에 대한 이해와 해명
내 내면에 있는 여성으로서의 역사
이중적 외설
자시의 삶을 쓰고, 자신의 글쓰기를 살다
구원을 위한 글쓰기
글쓰기와 삶 사이의 유대
내가 보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사물
욕망과 필요성
자율적인 생명체처럼
하나의 존재방식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허구와 자전의 경계에 서서
에르노의 소설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있다. 그녀의 글이 소설인가 아닌가, 더 나아가 문학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무릇 문학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한다’는 보수주의적 관점과 충돌을 일으켜 발생한다. 실제로 그녀가 펴낸 두 권의 일기(『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탐닉』)는 ‘소설’이라고 분류하기에 망설여지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런 논쟁은 에르노에게 무의미하다. 그녀에게 소설이란 문학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일 뿐, 소설을 씀으로써 ‘문학을 한다’는 생각은 현실을 변형함으로써 가면을 쓸 수 있는 가능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의 문제이다. “진실을 저버리는 자전적 이야기보다는 진실에 가닿은 소설”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문학이다. 그녀의 자전적 글쓰기가 날것 그대로의 ‘노출증’이라는 시각은 큰 오해다. 그녀는 오히려 치밀한 계산과 엄정한 거리두기를 통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하고 집단적으로 승화시킨다. 그렇기에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글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야말로 에르노가 작가로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주는 기쁨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이 뭔지 아세요? 누군가 내게 ‘당신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는 ‘이 책은 바로 나예요’라고 말할 때랍니다.” (본문 145쪽)
변절자의 래디컬한 속죄법
1984년 에르노에게 르노도상을 안겨준 『자리』 첫머리에는 장 주네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글을 쓴다는 것은 배반자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막연한 아름다움으로서의 문학을 동경하던 젊은 여성이 소설 쓰기를 결심한 것은 우연히 서점에서 부르디외가 쓴 『상속자들』을 본 순간이다. 그녀는 그때를, 그 책이 자신에게 글쓰기를 ‘허락’해준 순간으로 기억한다. 카페를 겸한 식료품점의 딸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에서 프티부르주아로의 계급 상승을 실현한 에르노는 출신계급을 변절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고, 결국 그것이 그녀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그녀가 ‘사치’라고까지 말한 글쓰기는 변절에 대한 속죄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합법적’ 언어 행위들을 운반하는 어휘와 민중이 구사하는 문장구조를 통해 실현되는 난폭한 글쓰기다. 그 전복을 통해 그녀는 피지배자들의 관점을 문학 속으로 난입시키는 것이다. 현실의 전복을 꾀한 초현실주의 운동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소설을 꿈꾼 누보로망에 경도된 에르노는 자신의 전 존재를 대가로 지불하는 글쓰기로 세상에 대한 지배적 관점을 뒤집고자 한다.
여성, 그리고 억압받던 자로서의 자의식
고급함이라고는 없는 언어로 소설을 쓰는 에르노가 문화계의 보수 인사들의 반발을 샀음은 물론이다. 육체의 언어와 문학에 대한 숙고가 뒤섞이고, 문화적인 소재들과 일상의 소재들이 혼재하는 글쓰기를 폭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계층과 통속문학, 그리고 그녀가 속해 있는 성에 빗대 가해진 비방은 그녀의 말마따나 ‘이중적’이다. 피지배 계층 출신 여성이라는 자의식은 에르노에게 문화계에 팽배해 있는 성적/계급적 억압에 맞설 수 있는 힘과 대담성을 부여해주었다. 실제로 그녀는 급진적 여성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좌파적 정치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에르노에게 문학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무엇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사랑의 행로를 통해 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그녀 자신의 시선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성 정치적 관점에서 파헤치고, 평생을 프롤레타리아로 산 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민족학적, 사회학적 지형도를 그린다. 그렇게 그녀는 실재적이며 진정한 무엇이 깃든 리얼리티를 복원하고, 그로써 그녀만의 시학(詩學)을 완성하는 것이다.
피와 살의 글쓰기
에르노에게 문학이란 ‘구원’이다. 그녀는 “나는 구원하고자 하는,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 그러나 우선은 구원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 책들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중에서)라고 쓴 바 있다. 그녀는 “문학 때문에 고통 받으므로 문학은 존재한다”고 말하며, 그 실체의 어느 곳에 자신의 글쓰기를 위치시킬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그곳은 “살과 피의 영역”이다. 그녀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실제 사물들의 무게를 싣고 단어들이 단어이길 그치고 감각이 되고 이미지가 되기를” 바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녀의 글쓰기는 ‘파토스의 전적인 거부’를 통해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글쓰기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에 있는 어떤 진실을 탐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녀의 글쓰기가 ‘노출’을 극복하고 “문학과 사회학과 역사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리고 그 진실이라는 것은 위험천만한 무엇이다. “그 진실은 내가 위험을 무릅써서 얻어낼 가치가 있는 것이며, 내가 위험을 무릅쓸 것을 요구하는 진실이지요. (…) 난 오직 그 위험을 대가로 치르고서야 그 진실을 얻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본문 150쪽)
『칼 같은 글쓰기』에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가 스스로 신화화되기를 경계하며 지극히 조심스레 드러낸 진실의 단면이다. 그래서 이 대담의 초점은 에르노의 상상계의 궤적이 아니라, 그녀가 행해온 글쓰기의 윤곽과 그 글쓰기에 흉터처럼 남아 있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더듬어보는 데 있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를 외설과 스캔들의 작가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에겐 훌륭한 해명이, 위험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쓰기에 열광하는 이들에겐 좀더 깊은 이해로 이끄는 단서가 될 것이다.
작가정보
Annie Ernaux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루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까지 문학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옷장』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얼어붙은 여자』를 발표하며 문제적 작가로 떠올랐다.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자리』로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1991년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담은 『단순한 열정』을 발표, 선정성과 그 서술의 사실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십 년 후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라 할 수 있는 『탐닉』을 출간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집착』 『부끄러움』 『사건』 『사진 사용법』 및 비평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교수와의 이메일 대담집인 『칼 같은 글쓰기』 등이 있다.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08년 『세월』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9년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가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콰르토 총서에 편입되었으며, 2020년 『삶을 쓰다』에 실렸던 글 중 엄선하여 새롭게 『카사노바 호텔』을 출간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Frédéric-Yves Jeannet
1959년 프랑스 태생의 멕시코 작가로, 불어와 스페인어로 글을 쓰는 작가이자 불문학 교수다. 1975년 프랑스를 떠나 1977년 멕시코에 정착해 1987년 멕시코 시민권을 획득했다. 1985년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를 시작으로 『사이클론』 『자비』 『회복』 등의 소설을 썼으며, 미셸 뷔토르(1990), 엘렌 식수(2005), 로베르 기용(2006) 등을 인터뷰해 책을 내기도 했다. 현재 멕시코에 거주중이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Le Voyeur a l’écoute』가 있으며, 『문학텍스트의 정신분석』(공역)과 『아프리카인』 『꿈』 『충격과 교감』 『엿보는 자』 『사랑에 빠진 악마』 등을 우리말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를 프랑스어로 옮겼다.
작가의 말
“내 책에는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여성작가에서 기대하는 로맨스도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 책이 외설로 치부되는 것입니다.
그런 그런 멸시와 모욕은 나를 단련시켜줄 뿐입니다.”
_아니 에르노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좋아한다.
그녀의 문장들은 부싯돌 같은 날카로움으로
살아 있는 살점을 도려내고 살갗을 벗겨낸다.”
_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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