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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익 소설집

아버지의 정인

서동익 지음
도서출판 오린

2024년 07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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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0.80MB)
ISBN 9791198847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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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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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지난 30년간 우리 국민(또는 북한주민)의 실존적 삶을 8편의
중·단편 소설로 그려본 작품집으로,

<대청봉 가는 길>은 IMF 외환 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가 국가 부도를 선언한 후
우리 국민과 출판계 종사자들이 당해야만 했던 비극적인 수난사를 조명한 소설.

<밤길>은 IMF 돌풍이 남한 전역을 휩쓸고 갈 때 군사분계선 넘어 2000만 북한
주민들이 식량 배급제가 중단된 <미공급 시기> 식량을 구하려고 이승의 마지막
<밤길>을 헤매다 시체로 변해 공동묘지로 실려 간 평안도, 량강도, 자강도, 함경도
지역 주민 300만 명 아사 참사를 소설로 그린 작품.

<아버지의 정인>은 1970년 6월 5일 오후 1시경, 연평도 해상에서 NLL(북방한계선)을
몰래 넘어와 우리 어선을 보호 중이던 해군방송선을 향해 포격을 가해 승조원 20명
전원을 사상하게 한 후 그 시신과 방송선 선체를 북으로 끌고 간, 이른바 <해군방송선
피랍 사건>의 전모와 그 피랍자 유가족들이 남쪽에서 20여 년간 받아들여야만 했던
분단의 실제적 고통을 토로한 소설.

<그 마을>은 해마다 50,000명 이상 태어나는 선천성이상아, 즉 옛날 어른들의 말로
‘배냇병신’이 젊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계속 태어나고 있는 실상을 추적한 소설.
이 선천성이상아의 출생은 신의 실수일까?
아니면 신을 능멸한 오만한 인간에 대한 경고일까?
------------------------------------본서 <묵은 창작 노트를 펼쳐보며>에서 발췌
■ 차례

• 작가의 말
• 창작 메모_묵은 창작노트를 펼쳐보며
• 작가 약력

제1화_대청봉 가는 길

제2화_밤길

제3화_걸신

제4화_아버지의 정인

제5화_그 마을

제6화_때로는 달빛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제7화_아버지의 팔심

제8화_그해 4월의 체험

대청봉 가는 길



승용차가 용대리 삼거리에 도착했다.
차멀미에 곯아떨어진 인호를 부둥켜안으며 나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어 개의 민박집과 슈퍼마켓이 들어 서 있는 버스정류장 옆에 ‘백담사입구’라고 쓴 안내판이 서 있다. 아이엠에프(IMF) 강풍이 한창 몰아치던 재작년 가을, 갈채출판사 윤성두 사장과 이곳에 왔을 때도 저 표지판은 외롭게 용대리 삼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슈퍼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인호어머니가 길 옆에다 차를 세우며 말했다. 갈색 선글라스에다 물방울무늬가 박힌 스카프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얼굴이었지만 참 깨끗하고 귀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해맑고 아름다운 여인이 해마다 설악산을 찾을까?
홍천에서 점심을 먹으며 혜경이가 해주던 말을 되새기며 나는 얼른 다녀오시라고 고개를 숙였다.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혜경이도 덩달아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나는 인호어머니의 정중한 친절과 혜경이의 잔잔한 마음 씀씀이가 부담스러워 고개를 저었다.
“어, 없습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나는 인호를 부둥켜안은 채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혜경이는 해가 기울고 있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옆구리를 통통 두들겨 댔다. 그러다 언니를 따라 슈퍼 쪽으로 걸어갔다. 청바지에다 노란 등산용 재킷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한창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듯했다.
“저 애는 아마 평생 글을 쓰며 출판 분야 쪽에서 일을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좀 보살펴 주십시오.”
홍천에서 점심을 먹고 인제로 넘어왔을 때, 버스터미널 옆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인호어머니가 해주던 말이었다. 나는 그때 인호어머니가 왜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을까 하고 되짚어보다 갑자기 쓴 입맛을 다셨다.
일당 5만 원에 고용되어 온 일용직 잡부 같으면 분수에 맞게 처신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때 왜 그따위 쓸데없는 말까지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마포에서 10년간 글타래출판사를 운영해 왔다고 내 이력을 밝힌 것이 인호어머니의 입에서 그런 부탁의 말까지 나오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가 막심했다. 앞으로 인호어머니가 자기 동생의 앞날을 염려하며 자꾸 부탁의 손길을 뻗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결국 내가 처해 있는 상황까지 고백하며 나에게는 혜경이를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이실직고해야 할 것이 아닌가.
----------------------------------본서 <대청동 가는 길> 도입부 일부

이 소설집은 문단 등단 후 46년간의 작가 인생 전체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때는 후기 작품세계를 보여 주는 소설집이고, 내용적으로 볼 때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 즉 한반도의 시간적 · 공간적 배경과 그 배경 안에서 실존적 삶을 영위한 일반 국민(또는 인민)들의 30년간의 삶을 저자 나름대로 짚어보며 소설로 그려본 작품집이다. ​

작가는 지난 1976년 문단 등단 이후 한국 현대소설문학의 <반쪽의 문학현상>과 <왜소성>을 발견한 후, 이를 극복하는 장편소설을 집필하다 북한 동포들의 일상적 라이프 스타일과 생활용어, 특히 일상생활용어 속의 정치용어, 경제용어, 은어 따위에 막혀 실패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직장을 대북전문기관인 자유의소리방송(전문집필위원)과 통일부(학술용역), 국방일보(객원논설위원) 인천남동신보(주간 겸 논설위원) 등으로 옮겨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북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 끝에 <북에서 사는 모습(북한연구소, 1987년)>, <인민이 사는 모습 1, 2권(자료원, 1996년)>,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사회주의헌법 문장연구(북방문제연구소, 2007년)>,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조선로동당 규약 문장연구(북방문제연구소, 2007년)>와 같은 북한 관련 연구서를 펴내며 군사분계선 이북의 북한지역을 그의 문학적 공간 속으로 끌어들여 한국 현대소설문학의 <반쪽의 문학현상>을 극복하는 데 나름대로 많은 힘을 쏟아온 작가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는 그런 노력들이 만들어 낸 작품들을 3편이나 수록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많은 뿌듯함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첫머리의 <대청봉 가는 길>은 김영삼 정부가 아무 대책없이 IMF 외환 위기를 불러들여 국가 부도를 선언한 후 우리 국민과 출판계 종사자들이 당해야만 했던 비극적인 수난사를 조명해본 소설. 1997년에 발생한 IMF 외환위기 사태는 햇수로 만 25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이 사태로 말미암아 저자는 딸과 아들의 돌반지, 거주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구민문화상 수상 때 부상으로 받은 묵직한 황금열쇠까지 나라 빚 갚는 <금 모으기 캠페인>에 갖다 바쳤고, 출판사 사옥을 마련하려고 전국 주요 서적도매상으로부터 받아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문방구 어음을 죄다 찢어버리며 주거와 출판사 사무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남의 집 월세살이를 10여 년간 더 해야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시절 그 혼자만 당한 수난사가 아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6·25 이후 처음 맞이한 국가 부도 사태로 인해 각양각색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고, 그나마 저자는 전국 주요 도시 서적도매상으로부터 받은 <문방구 어음>을 인쇄소나 지업사에 다시 배서해서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음 액면가의 100% 금액만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매월 전국 각 소매서점으로부터 현금으로 들어오는 돈은 출판사 직원과 사무실 월세 주는데 우선 지급하고, 신간을 출간하기 위해 사들이는 인쇄용 용지대와 제판비, 인쇄비 따위는 서적도매상으로부터 받은 어음을 배서해서 돌려버린 동료 출판사 대표들은 서적도매상으로부터 받을 돈을 못 받아 어음 액면가의 100% 손해를 보았다. 또 자신이 배서한 어음의 액면가를 어음 발행자를 대신해 물어주느라고 또다시 100% 손해를 보아 대다수가 수갑을 차고 붙잡혀 가서 경제범으로 감옥살이를 하여야 했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는 평생 신용불구자가 되어 현재까지 은행 통장이나 핸드폰 하나 자기 명의로 개설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두 번째 <밤길>은 IMF 국가 부도 사태 돌풍이 남한 전역을 휩쓸고 갈 때 군사분계선 넘어 북한 주민들이 1인 독재자의 명령 한마디에 선택의 여지없이 <고난의 행군>을 하며, 식량 배급제가 끊긴 <미공급 시기> 2000만 북한 주민들 중 300여 만 명이 초근목피로 생명을 이어가며 기아에 허덕이다 마침내는 식량을 구하려고 이승의 마지막 <밤길>을 헤매다 산간 오지 신작로에서, 때로는 동네 어귀 큰길에서 까무러쳐 시체로 굳어가다 시체처리반 트럭에 통나무처럼 포개져 공동묘지로 실려 간 평안도, 량강도, 자강도, 함경도 지역 주민 아사 참사를 소설로 그린 작품이다.

북한은 남북분단 이후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연중 서너 달 정도는 다른 나라에서 식량을 수입해 와야만 2000만 전체 주민이 하루 500∼600g 정도씩 식량을 배급받아 생명을 연명해 갈 수 있는 사회주의 경제체제 국가이다. 그런데 19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줄이 붕괴되고, 1991년에는 급기야 소비엔트 연방마저 해체되며 구소련을 종주국으로 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교역은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북한은 경제적으로 고립된 데다,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 후 미국에 의한 경제 봉쇄로 농업 기계를 가동할 석유 및 식량의 수입이 제한되어 농업 생산력은 현저하게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냉해 피해로 수년간 흉작의 고통을 이어오다 1995년 대홍수를 고비로 농지의 대규모 파괴가 겹쳐지면서 마침내는 농민들마저 기아 사태에 내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식량 배급 미공급 시기에는 평안도, 량강도, 자강도, 함경도 지역에서 20여 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한꺼번에 속출했다고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유엔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1996~2000년간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미국 통계청에서는 1995년에서 2000년까지 경제난에 의해 직간접적 영향으로 사망한 북한 인구를 5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탈북한 고 황장엽 씨의 회고록에는 당시 아사자 수를 300만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황장엽 씨는 5∼6년 이상 기아의 고통에 허덕이다 그에 뒤따라 찾아오는 다른 합병증에 그대로 노출되어 각 세대마다 죽어 나간 전체 인민들의 주검까지 포함하지 않았나 하는 추론이 뒤따르고 있으나 이때도 북한은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곡물 중 일부를 은밀히 중국 등 제3국으로 빼내어 핵 개발 자금을 마련한 사실이 한때 뉴스를 타곤 했다.

세 번째 <걸신>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도 같은 <식탐>과 <물질적 탐욕>을 주인공의 내면세계와 연계시킨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20세기가 다 저물어가는 1999년 12월 27일 자신의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산 박사가 지도하는 단식수련원에 들어간다. 이때 주인공은 자연연령이 51세며, 인생의 최전성기를 살아가고 있다. 가정적으로도 아내와 함께 아들딸 낳아 잘 키우며 그런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여지는 주인공의 모습일뿐이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주인공은 서른셋에 결혼해 서른다섯에 첫딸을 받았고, 서른여덟에 아들을 얻어 당시 자식들은 아직도 한참은 어린데, 그 자식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주인공은 육체적으로 간암으로 진행되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알코올성 간염과 지방간을 앓으며 하루하루를 몹시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꽉 찬 일정 속에 묶여서 낮잠 한번 마음 놓고 잘 수 없는 형편이다.

주인공은 작중에서 “울고 싶고, 어디론가 꺼져버리고도 싶다.”고 중얼거린다. 그러다간 ‘내가 오늘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긴긴날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는데……’ 하는 족적의 무게감에 도로 짓눌려 더 새로워지고, 다시 태어나고 싶고, 현재보다 매사를 더 탁월하게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입신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한 달여의 고뇌 끝에 단식수련원에 입원하기로 최종 결단을 내리며 가족들과 이별하는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네 번째 <아버지의 정인>은 10여 년 전에 시작해 작품을 거의 다 써놓고, 작가의 손에서는 더이상 손댈 수 없는 작품 속 희생자 유가족의 사회적 문제를 ‘시간을 두고 좀 더 고민해보자.’ 하고 수년간 고뇌하다 최근에야 마지막 방점을 찍은, 200자 원고지 250매 분량의 미발표 중편이지만 작품 속 시간적 배경이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30년간 이어지고, 공간적 배경은 사건이 발발한 연평도 해상과 그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살고있는 한반도 전역에서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까지 뻗어 나간, 조국광복 후 현재까지 계속되는 남북분단의 고통을 내부자 시각에서 그린 소설이다.

이야기는 1970년 6월 5일 오후 1시경, 연평도 해상에서 어로작업 중이던 민간어선들을 보호하다 안개 낀 북쪽 바다 저편에서 NLL(북방한계선)을 몰래 넘어와 우리 어선을 보호 중인 해군방송선을 향해 불시에 포격을 가해 승조원 20명 전원을 사상하게 한 후 그 시신과 방송선 선체를 북으로 끌고 간, 이른바 <해군방송선 피랍 사건>의 전모와 남쪽에 남은 피랍자 유족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실존적 고통을 관계자 입장에서 계속 지켜본 작품이다.

이 소설은 7.27 휴전협정 체결 이후 남북 간 교전이 수차례 발발한 서해 연평바다의 자연적 특성과 조선조 인조 14년 연간에 김경업 장군에 의해 조기잡이 어로법이 개발된 이후 330여 년간 전승돼 오던 <조기파시어장> 진풍경을 목격자가 작중에서 진술하고 있어 NLL(북방한계선)이 그어지기 전, 그러니까 남북분단 전의 연평 앞바다가 눈물 나도록 그리워지고, 그러다 보니 더더욱 통일이 뼈에 사무치는 소설이다.

다섯 번째 <그 마을>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우리마을> 이야기다. 이 마을에는 90여 명의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다. 이 90여 명의 발달장애인은 우리 사회가 이른바 <배냇병신>으로 취급하며, 외면적인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며 교육을 받을 권리, 초·중·고 교육 이수 후 취업을 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권리는 물론 그들 나름대로 인생을 설계해 사회적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전 국민적 기본권은 물론, 집단적 시설에서 협동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마저도 우리 사회는 ‘집값이 떨어진다, 혐오시설이다, 건강한 내 자식의 교육에 걸림돌이 된다, 눈꼴사납다.’라는 이유로 박탈한 채 도회의 주거 복지 공간에서 밀어내버린 사람들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하는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6년도 우리나라 출생 신생아 수는 406,300명이다. 근데 이 중 10.3%, 대략 50,000명 가까운 신생아가 해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선천성이상아로 태어났다. 시대별로 그들을 지칭하는 호칭은 ‘선천성 지적장애아, 정신박약아, 발달장애아’ 등으로 불러왔으나 이렇게 태어난 신생아 100명 중 3명은 아직도 그 발병의 원인도 알 수 없고 이유도 알 수 없다는 출생의 비밀이 우리를 더욱 숨 막히게 한다.

현대의학이 규명해낸 국민건강보험공단 Q코드(선천성이상아) 출생아의 4,000여 가지 원인 중 100명 중 3명은 아직도 그 원인이나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선청성이상아는 계속 태어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이 창작되던 2019년까지의 현실이다.

원인과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발달장애아의 출생은 신의 실수일까? 아니면 신을 능멸한 오만한 인간에 대한 경고일까?

여섯 번째 <때로는 달빛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38선 이남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청년 또는 장년으로 살아온 지식층 계열의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들이 1945년 조국광복 이후 정치적 억압이나 강권없이 자발적 의지로 북으로 넘어간 월북 1세대와 그들의 자식 세대들이 공산화된 북녘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추적한 소설이다.

사람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열정이 넘치던 청년 시절에는 대다수가 다 정신적으로 진보주의자요, 육체적으로는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행동주의자다. 그들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 세대들을 향해 ‘꼰대 세대’니 ‘뒷방늙은이’라고 답답해하면서 자신의 진로 문제나 일상적 삶의 문제도 소통하기를 꺼린다. 그렇지만 패기만만하던 청장년 시절은 남가일몽처럼 자신도 모르게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매달 보름만 되면 밤하늘 높이 떠올라 어디론가 거침없이 흘러가는 둥근달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보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 그렇게 자신있게, 패기만만하게 외쳐댔던 사회주의는 3대로 이어진 김일성주의로 변질돼 자신의 신상을 더욱더 옥죄어오고, 그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은 그의 고향이 있는 남쪽 사회를 분열시키고 북녘사회가 필요로 하는 남쪽의 주요 인사들을 소리소문없이 납치해 북으로 끌고 오는 임무를 수행하는 남파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도리어 자신이 버린 남쪽 땅 흙 한 줌을 갖다 달라고 애원하는, 북으로 간 어느 공산주의자의 가족사를 소설로 그려본 작품이다.

일곱 번째 일곱 번째 <아버지의 팔심>은 전통적 가부장제 아래서 한 가정의 울타리가 되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던 아버지의 <팔심>이 탈선하거나 자가당착의 가치관에 매몰돼 가정폭력의 근원으로 변질될 때 폭력을 일삼는 당자는 물론 제3세대 페미니즘 사회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는 자녀들의 의식세계를 어떻게 병들게 만들어 황폐화하여 버리는가? 그리고 그 야만의 폭력 아래서 허덕이던 가족 구성원들 전체가 종국에는 어떻게 망가지고 해체되면서 마침내는 우리 사회마저 병들게 하는가를 서간체 문체로 그려본 가정소설이다.

여덟 번째 <그해 4월의 체험>은 인간의 통과의례 중 이승에서 한평생을 다 살고 저승으로 떠나간 조상의 주검 문제를 다룬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화장이 과연 자기 조상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인가?” 하는 문제 제기와 “300년 전 찾기 힘든 명당에 모셨다는 저자의 종가 16대조 할아버지 묘지를 그 후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파묘했을 때 그 무덤 속 실상은 어떠한가?” 하면서 육안으로 확인해 본 풍수지리설의 참모습을 그 후손들이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이야기이므로, 굳이 이 소설의 제목을 좀 촌스럽고 학생 백일장 같은 데서나 만나 볼 수 있는 <그해 4월의 체험>이라 명명했다고 저자는 토로했다.

‘그해 4월’은 300년 전, 어느 영남학파 명문대가 조상의 명당 묘지가 백일하에 파묘된 시점을 의미하고, ‘체험’은 풍수지리설의 실질적 진상과 허상을 그날 모인 수십 명의 후손들이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굳이 ‘그해 4월’ 다음에 ‘체험’이라는 명사를 덧붙여 길게 지었다고 말했다.

작가정보

저자(글) 서동익

▶저자 : 서동익

소설가. 북한전문가.
저자 서동익은 1948년 경북 안강(安康)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성장기를 보내다 1968년 해군에 지원 입대하여 7년간 현역으로 복무했다. 만기 전 역 후,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후 남북 관계와 북한 동포들의 삶을 연구해오다 1997년 국가정보대학원을 수료했다.

1976년 중편소설 <갱(坑)>으로 제11회 세대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 등단 후 남북분단으로 인한 <한국현대소설문학의 반쪽현상>과 <왜소성>을 발견, 나름대로 이를 극복하는 장편소설을 집필하다 북한 동포들의 일상적 라이프스타일과 생활용어 속의 정치용어, 경제용어, 은어 등에 막혀 실패했다. 이후 직장을 대북전문기관인 자유의 소리방송(전문집필위원), 통일부(학술용역), 국방일보(객원논설위원), 인천남동신보(주간 겸 논설위원), 사)북방문제연구소(부소장 겸 연구이사) 등에서 근무하며 30여 년간 북한을 연구해 왔다.

주요 북한연구 저서로는 《북에서 사는 모습(북한연구소, 1987)》, 《인민이 사는 모습 1, 2권(자료원, 1996)》,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사회주의헌법 문장 연구(사단법인 북방문제연구소, 2007)》, 《남북한 맞춤법 통일을 위한 조선로동당 규약 문장 연구(북방문제연구소, 2007)》 외 다수 논문이 있다.

문학창작집으로는 서동익 소설집 《갱(坑, 자료원, 1996)》, 장편소설집 《하늘 강냉이 1∼2권(자료원, 2000)》, 《청해당의 아침(자료원, 2001)》, 《퇴함 1∼2권(메세나, 2003)》, 《장군의 여자 1∼2권(메세나, 2010)》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청해당의 아침》이 1960년대 한국의 문화원형과 전후 세대의 삶을 밀도 있게 묘 사한 작품으로 선정되어 2010년 6월 1일부터 한 달간 KBS 라디오 드라 마극장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국내는 KBS AM 972khz로, 국외는 KBS 한민족방송망을 타고 중국 동북3성 〮 러시아 연해주 〮 사할린 〮 일본 〮 미국 등지로 방송된 바 있다.

고소설 편역(번역) 작품집으로는 저자 불명 한문소설 《강도몽유록(OLIN, 2013)》, 윤계선 한문소설 《달천몽유록(OLIN, 2013)》, 임제 한문소설 《원생몽유록(OLIN, 2013)》, 신광한 한문소설 《안빙몽유록(OLIN, 2013)》, 저자 불명 한문소설 《수성궁 몽유록(OLIN, 2013)》, 《피생명몽록(OLIN,2014)》, 김시습 한문소설 금오신화 전집 내 《용궁부연록(OLIN, 2015)》, 《남염부주지(OLIN, 2015)》, 《취유부벽정기(OLIN, 2015)》, 《이생규장전(OLIN, 2015)》 외 《인현왕후전(OLIN, 2015)》, 《계축일기(OLIN, 2015)》, 《최치원전(OLIN, 2015)》, 신채호 원저 《조선상고사 1, 2권(OLIN, 2018년)>, 《조선사연구초(OLIN, 2019년)》, 《조선사론(OLIN, 2019년)》, 《독사신론(OLIN, 2019년)》 등이 있다.

또 한국 근현대 소설문학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신소설 현대어 편역 작품집으로는 이인직 신소설 《혈의 누(OLIN, 2020)》, 《귀의 성 1, 2권(OLIN, 2020)》, 《은세계 1, 2권(OLIN, 2020)》, 《치악산 상, 하권(OLIN, 2020)》, 장지연 신소설 《애국부인전(OLIN, 2021)》, 이해조 신소설 《구마검(OLIN, 2021)》, 《모란병(OLIN, 2021)》, 《빈상설(OLIN, 2021)》, 《원앙도(OLIN, 2021)》, 《자유종(OLIN, 2021)》, 《화의 혈(OLIN, 2021)》, 구연학 신소설 《설중매(OLIN, 2022)》, 안국선 신소설 《금수회의록(OLIN, 2022)》, 《공진회(OLIN, 2022)》, 최찬식 신소설 《추월색(OLIN, 2022)》, 《안의 성(OLIN, 2022)》, 《금강문(OLIN, 2022)》 등이 있다.

그동안의 창작활동으로 《제11회 세대신인문학상(1976)》, 《제8회 인천문학상(1996)》, 《남동구민상(1996)》, 《인천광역시문화상(2004)》, 《남동예술인상(2011)》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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