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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

오항녕 지음
김영사 출판사SHOP 바로가기

2024년 07월 31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1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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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6.51MB)
ISBN 9788934933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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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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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어떻게 역사를 기록하고, 어떤 오류를 범하며,
그럼에도 역사는 어떻게 믿을 만해지는가?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쓰며, 역사가는 어떤 오류들을 범할까? 대표적인 조선사 연구자 오항녕 교수가 동서양의 문헌,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역사기록과 서술, 해석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실수와 왜곡을 다양한 사례와 비유로 설명한다. 사소하게는 글자를 잘못 읽어서, 때로는 무의식적인 편견 때문에, 드물게는 역사기록을 바로잡는다면서 엉뚱하게 고치는 바람에 역사가도 틀린다. 역사탐구가 어려운 이유는 시대와 상황을 온전히 담아내는 기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기록의 주체 역시 불완전한 기억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역사의 빈틈과 오류의 한계를 거꾸로 우리 역사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눈을 키움으로써, 역사학을 둘러싼 막연한 불신과 냉소를 물리치자는 것. 그리하여 독자들은 ‘역사의 오류’를 찾는 데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이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분투했던 앞선 역사가들의 ‘숭고한 여정’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서문_ 조화에는 벌레가 없다

1부 역사가도 틀릴 수 있다 ― 사실의 오류
1 내 몸 안의 메멘토
2 나는 아버지 무덤을 알았다
3 문명이라는 이름의 편견
4 300? 스파르타?
5 침, 위생, 그리고 봉건
6 콩쥐 팥쥐의 역사

2부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기억을 전할 것인가 ― 서술의 오류
7 사실과 허구의 거리
8 건강한 회의주의를 권함
9 역사학의 질문이란 무엇인가
10 최강희 감독 없는 전북현대FC?
11 정조는 1776년에 즉위하지 않았다
12 역사학과 상업주의의 거리
13 의심증은 오류가 아니라 질병
14 19세기 조선 위기론 비판
15 에펠탑이 왜곡하는 기억
16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 인과의 경계
17 역사 왜곡의 인간학

3부 어떻게 역사를 해석할 것인가 ― 해석의 오류
18 우리 속의 이광수를 찾아서
19 점입가경, 사도세자 왜곡
20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21 ‘비유’라는 양날의 칼
22 사실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23 ‘오항녕은 극우 파시스트다!’
24 역사의 진실, 삶의 희망

에필로그_ 역사공부는 나중에 하라?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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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깨끗하지 못하고 영양이 부족하면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역사학이 건강하지 못하면 역사학은 물론 다른 학문도 건강할 수 없다. 이 책은 건강한 역사 탐구를 위한 작은 노력이다. - 6~7면

어떤 흔적인들 온전하겠으며, 어떤 전달인들 정확하겠으며, 어떤 이야기인들 과거 자체의 재현이겠는가? 지나간 시공간의 사건을 다루는 역사학은 이렇듯 태생적 아포리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다른 벽임과 동시에 시작을 뜻하는 아포리아라는 말처럼, 역사학은 그 한계와 왜곡을 하나씩 닦고 벗겨내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학문이다. -16면

만일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견해가 옳다면, 우리가 역사의 패자에게 보내는 그 많은 관심은 어디서 온 것이라는 말인가?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는 견해조차도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관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승패가 나뉘고 그것이 기록될지라도 역사가 승자의 눈으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24면

빈(殯)이란 빈소를 차린다는 말도 있지만, 당시에는 얕게 묻는 임시 무덤을 의미했다. 임시로 묻는 가묘(假墓)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한편 깊이 묻는 심장(深葬)은 옮기지 않고 영원히 묻는 묘소를 말한다. 그러니까 공자는 아버지 묘소가 어디 있는지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오부의 사거리에 있는 아버지 무덤이 천장인지 심장인지, 곧 임시 무덤인지 영원히 쓸 무덤인지 몰랐던 것이다. - 53면

중세의 신체형은 잔인하지만 야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유, 절차와 과정, 양형, 효과 등이 치밀하게 계산된 문명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중세의 신체형을 야만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적 잔혹성’의 경우처럼 아직 다른 차원의 형벌이 온존하고 있는 세계를 ‘야만’으로 규정하려는 ‘문명세계’의 계략이다. ‘문명’이 ‘문명’을 대신한다고 하면 명분이 서겠는가? -66면

누구든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다. 그러므로 역사학도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오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좋은 방법 중 하나
가 의심이다. 나 자신도 의심하고 자료도 의심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미 제출된 연구논문이나 저서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47면

실학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실(實)과 허(虛)를 대립시킴으로써 성리학을 ‘허학(虛學)’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허수아비 오류의 가까운 실례일 텐데, 여기에 가학(家學)을 높이려는 사심이 덧붙여지면 자기 조상은 좋은 사람, 그렇지 않은 학자들은 나쁘거나 흠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159면

피셔는 ‘왜’라는 말을 거부하였다. 부정확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왜’라는 말은 원인일 때도 있고, 동기, 이유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묘사, 때로는 과정, 때로는 목적, 때로는 정당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는 방향과 명징성을 결여하고 있고, 이는 역사가의 에너지와 관심을 분산시킨다. 그래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가 중요하다. 훨씬 구체적이고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174~175면

“이동국 선수가 없었으면 현대가 우승할 수 있었을까?” 같은 질문은 역사학의 질문이 될 수 없다.
왜? 일어나지 않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이동국이 ‘없었다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은, 우습게도 이동국이 경기장에서 ‘실제로 뛰는 조건’에서 뽑아낸 것이었다. -182면

자본주의를 역사의 종말로 보든, 사회주의를 역사의 종말로 보든, 다시 말해 어느 쪽을 근대로 보든, 근대화를 절대 선善으로 생각하는 역사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에 실학은 유령처럼 조선 역사를 휘감아 돌았다. 그래서 조선사 연구는 정작 조선사 연구가 아니었다. 근대화를 설명하기 위한, 즉 현대사를 쓰기 위한 자료를 간헐적으로 제공하는 부수적 역사에 불과하였다. -272면

무적함대의 패배가 무척 강력한 역사적 사건이기는 했지만 그 결과는 별것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무적함대의 패배는 이후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우리는 큰 사건은 반드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무적함대의 패배와 결과를 둘러싼 인과에 대한 견해, 거기서 우리는 ‘그 이후에의 오류’를 발견한다.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그 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286면

명분에 사로잡혀 현실 판단을 그르쳤다는 평가의 가장 심각한 오류는 ‘책임을 원인으로 착각하는 오류’이다. 거듭 말하지만, 선조든 인조든 위정자는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이다. 그러나 이들 또는 이들의 정책이 전쟁의 원인은 아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왜군과 후금(청)의 침략이다. 이런 점을 혼동하면 우리는 원인의 늪에 빠져버린다. - 295-296면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게 된 원인은, 앞서 인용했듯이, 아버지의 광증과 비행을 덮으려고 했던 아들 정조에 의해 왜곡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정조의 왜곡을 재생산한 것은 그동안 학계의 불충분한 사료 검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사태의 비극적 성격 때문에 사실에 대한 접근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기보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비극을 선호하는 대중의 선정주의에 영합
하는 경향도 있었다. -345면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시대는 ‘빛’, 봉건시대는 ‘어둠’에 비유했다. ‘계몽(啓蒙)’이란 ‘Enlightenment(영), Aufklärung(독)’의 번역어인데, 암흑시대(Dark Age)와 광명시대의 비유를 적절히 표현해주는 번역어이다. ‘어리석음[蒙]을 깨우는[啓]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통해 중세〓봉건은 어둠, 야만, 정체 등의 의미를 띠게 되었고, 근대는 이성(理性), 문명, 자유, 해방의 시대로 묘사되었다. 이런 비유를 쓰는 순간 빛과 어둠이 선명히 대비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투적, 무의식적 비유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367면

역사의 사료가 중요한 이유는 관점이나 해석이 망상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이게 역사학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역사자료를 많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사료에 관심이 없다. ‘관점에만’ 관심이 있다. 역사학은 이러면 안 된다. -388면

역사학자들도 설득력을 높이려다 보면, ‘때때로’ 대신 ‘항상’, ‘가끔’ 대신 ‘때때로’, ‘드물게’ 대신 ‘가끔’, ‘한 번은’ 대신 ‘드물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가 ‘확실히’라고 말하면 ‘아마도’로 알아들어야 하고, ‘아마도’라고 말하면 ‘혹시’ 정도로 알아들어야 하며, ‘혹시’라고 말하면 ‘추정컨대’ 정도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390면

탐구나 논쟁에서 발견되는 오류는 저자가 지닌 악덕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유능한 역사가도 오류를 저지른다. 아니 유능한 역사가일수록 많이 읽고 저작을 남기므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독자를 속이려고 했는지 수사하는 것은 역사학의 몫이 아니다. 속였으면 속였다고 적고, 속인 듯하면 속인 듯하다고 적고, 그런 정황이 없으면 오류만 밝히면 그뿐이다. -418~419면

역사가는 어떻게 역사를 기록하고, 어떤 오류를 범하며,
그럼에도 역사는 어떻게 믿을 만해지는가?


할리우드 영화 〈300〉부터 조선왕조실록,
헤로도토스의 ≪역사≫부터 유지기의 ≪사통(史通)≫까지
건강한 역사적 사고를 위한 오항녕 교수의 역사 문해력 특강


역사가도 틀린다

사소하게는 글자를 잘못 읽어서, 때로는 무의식적인 편견 때문에, 드물게는 역사기록을 바로잡는다면서 엉뚱하게 고치는 바람에 역사가도 틀린다.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쓰며, 역사가는 어떤 오류들을 범할까? ≪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선사 연구자 오항녕 교수가 동서고금의 역사가들이 실수했던 사례를 유쾌하게 해설한 역사 교양서이다. 역사기록, 서술, 해석의 각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와 실수들을 역사학의 주요 개념들과 함께 테마별로 엮었다. 오랫동안 강단과 저술 활동을 통해 연구하고, 논쟁하고, 가르치면서 모은 흥미로운 사례들이다.
저자가 참고하고 인용하는 문헌들도 폭넓다. 동서양 역사학을 대표하는 두 거목인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의 저술(≪역사≫, ≪사기≫)이 빠질 수 없고, 인류 최초의 역사학개론서인 ≪사통(史通)≫부터 우리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조선왕조실록〉까지 중요한 역사 문헌들이 비중 있게 실렸다. 영화 〈300〉, 뮤지컬 〈레미제라블〉 등 대중문화, 스포츠를 통한 적절한 비유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내준 시험문제와 본인의 일기까지 인용하면서 교양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해설한다. 특히 한국 역사학의 논쟁적 이슈를 역사 오류의 사례로 적극적으로 끌어와 비평하는데,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사료 문제, 광해군과 사도세자에 대한 인물평, 실학/허학 논쟁,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둘러싼 논란 등 한국사의 중요한 쟁점들이 두루 담겼다. 역사에 대해 막연히 어렵고 부담을 느끼는 일반인들이라면 역사 읽기의 깊은 맛을 느끼고, 역사를 업으로 삼으려는 역사학도라면 사료를 읽고, 해석하고, 비평할 때 경계해야 할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오류를 읽는 방법

책의 제목은 좀 특이하다. ‘역사를 읽는 법’이 아니라 ‘역사의 오류를 읽는 법’이라니, ‘역사도 잘 모르는데… 그 오류까지 시시콜콜 알 필요가 있을까’ 하고 시큰둥해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학을 다른 모든 학문을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음식’에 비유한다.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우리의 몸(지적 토대)도 튼튼해지겠지만, 영양분이 부실하고 상한 음식을 먹으면 다른 모든 학문도 위태로워진다. 역사학은 “(과학사, 철학사, 심지어 역사학사 등) 모든 학문의 형식이자 학문의 성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오류’를 줄이고, 예방하는 것은 우리 학문의 근간을 지키는 일과 진배없다. 또한 어떤 분야든 실패 사례가 성공의 비밀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며, 역사가의 실수담만큼 역사공부에 더 요긴한 교재도 찾기 힘들다. ‘역사의 오류’라는 주제는 역사를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고민하면서 채택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다양한 역사 오류 사례가 제시된다. 공자의 경우, 그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예기≫를 후대 학자들이 표점(구두점)을 엉뚱한 데 찍어서 읽는 바람에 공자는 오랫동안 아버지 무덤도 모르는 사람으로 알려졌고, 중국의 5천 년 문명은 동양에 편견을 품은 영국인이 찍은 사진(왕웨이친 처형 사진) 한 장 때문에 야만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어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한 토막을 제시하며 박지원 자신의 중화 관념과 정반대되는 내용으로 소제목을 삼기도 했다. 물론 이런 오류는 이 책의 저자도 예외일 수 없는데, 그 역시 ≪자치통감≫ 연구자인 원나라 호삼성의 말을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처럼 역사학자의 논문이나 저술도, 중고등학교의 교과서도, 조선시대 왕릉의 안내문도, 심지어 동아시아에서 존경받는 유학의 대가들도 틀릴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고, 해석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오류의 사례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사실의 오류’에서는, 기록을 남기며 발생하는 오류,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사실에 접근하면서 생기는 오류를 다룬다. 특히 문자, 언어의 무지나 착각에서 생기는 오류를 설명한다. 2부 ‘서술의 오류’에서는, 사실을 적고 전달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다룬다. 가령 우리가 일상에서 별 고민 없이 던지는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조선은 망했을까?’와 같은 가상의 질문들도 여기서 검토한다. 왜 이런 질문을 역사학에 함부로 끌어들이면 안 되는지를 설명한다. 3부 ‘비판의 오류’에서는 역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발견될 수 있는 오류를 다룬다. ‘네 말은 믿을 수 없어!’ 하는 식으로 논제와 사람을 혼동하는 오류, 자신의 오류를 감추려고 편싸움을 유도하는 오류 등이다. 재밌는 사례로 역사학자들의 흔한 과장법을 주의하라는 지적이 있는데, “역사학자들도 설득력을 높이려다 보면, ‘때때로’ 대신 ‘항상’, ‘가끔’ 대신 ‘때때로’, ‘드물게’ 대신 ‘가끔’의 표현을 사용한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가 ‘확실히’라고 말하면 ‘아마도’로 알아들어야 하고, ‘아마도’라고 말하면 ‘혹시’ 정도로 알아들어야 하며, ‘혹시’라고 말하면 ‘추정컨대’ 정도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실린 오류의 사례 중 대표적인 개념 몇 가지만 소개한다.

◾ 허구 질문의 오류
일어나지 않은 가정에 기반하여 가상의 질문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사가 로버트 W. 포겔은 ≪철도와 경제 성장≫에서 19세기 미국 경제의 발전에서 고속도로와 운하로도 충분했고, 철도는 없어도 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각종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론인데, 사실 그 통계는 이미 철도가 이미 존재하는 세상에서 뽑아낸 것이다. 쉬운 예로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우리는 임진왜란에서 졌을까?”라는 익숙한 질문이 있다. 이순신 장군을 추앙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가 없었다면 왜군에게 졌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사실 그런 판단의 근거는 이미 이순신이 실제로 활약했던 시대 상황에서 뽑아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없을 때 그 자리를 대체할 인물이나 새로운 변수에 대해 우리는 전혀 데이터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가상의 질문에 대해 역사학이 답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설명해줄 사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학은 ‘사료’를 읽는 데서 시작한다.

◾ 허수아비의 오류
역사 독자라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어떤 사건을 특정한 적의 탓으로 돌리는 역사가를 경계해야 한다. 일종의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것인데, “송나라 때 간신 한탁주는 명장이자 충신 악비를 무함할 때, ‘막수유(莫須有)’의 논리를 내세웠다. ‘드러난 것은 없지만 틀림없다’는 말이다.” 과거 군사정권 등에서 추정과 가정에 의해 ‘적’을 만든 사례와 비슷하다. 필자는 ‘실학’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실(實)과 허(虛)를 대립시킴으로써 성리학을 ‘허학(虛學)’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허수아비 오류의 실례라고 덧붙인다.

◾ 시대착오의 오류
역사가가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트랙터를 사용하는 현재 농촌의 관점에서 호미와 쟁기를 사용하던 고려, 조선의 농업을 해석하는 것이다. 한편 시간 단위가 다른 문명을 한쪽 기준으로 해석하는 사례도 있다. 그레고리우스력이라고 부르는 서력(西曆) 기원은 조선의 경우 갑오경장 이후에 사용된 역법이다. 그전에는 아예 이런 연도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고, 갑자(60년)나 왕의 재위 연대가 기준이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율곡 이이나 다산 정약용 등 조선시대 인물의 탄생을 백 년 단위, 오십 년 단위로 끊어서 기념하곤 하는데, 현재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3갑자, 4갑자가 더 기억할 만한 시간 단위였을 것이다.

◾ ‘다 알다시피’의 오류
다수의 의견을 끌어와서 근거로 삼는 오류로, 연구자의 지적 게으름이 동반되어 있다. 필자에 따르면 “한때 조선시대 논문에서는, 서론에 ‘조선 후기에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신분제가 동요하면서…’라고 시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조선 후기만 해도 300년인데, 그 300년이란 시간을 ‘다 안다고 치고’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것이다. 필자에 따르면, 실제 조선 사회가 ‘상품화폐경제’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신분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것을 두고 ‘300년의 동요’라고 말할 만한 증거는 빈곤했다. 이런 오류를 피하려면 기존 연구자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자신의 공부를 바탕으로 그들의 주장을 재검토할 수 있는 성실함과 용기를 길러야 한다.

◾ 책임과 원인을 혼동하는 오류
윤리적인 책임의 문제를 수행자의 문제와 혼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나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위정자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경우, 당시 위정자였던 인조는 전쟁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 그렇다고 왕이나 왕의 정책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주요 원인은 왜군과 후금(청)의 침략이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라는 질문과, “누가 비판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이다. 둘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우리에게 익숙한 오류인데, 역사학자들이 독자들을 기죽게 하고 자신의 빈약한 주장을 감추기 위해 곧잘 쓰는 방법이다. ‘무슨무슨 상을 탄 과학자가 말하기를’, ‘공자님(부처님,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등으로 시작하는 논법이 여기에 속한다. 변종으로는 이런 것들도 있다. 과도한 참고문헌 나열, 수많은 인용문 위주의 서술, 기가 질릴 만큼의 엄청난 분량(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국내에서 1974년에 14권으로 출간되었는데, 많은 독자들이 기념비적인 저술의 분량 때문에 설득되지 않았을까?), 수학 공식을 남발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아예 막아버리기.

풍요롭고 건강한 역사공부를 위하여

역사탐구가 어려운 것은 시대와 상황을 온전히 담아내는 기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기록의 주체 역시 불완전한 기억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역사의 빈틈과 오류의 한계를 거꾸로 우리 역사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눈을 키움으로써, 역사학을 둘러싼 막연한 불신과 냉소를 물리치자는 것. 그렇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라면, ‘역사의 오류’를 찾는 데서 시작한 우리의 여정이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분투했던 앞선 역사가들의 ‘숭고한 영정’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역사학의 진정한 힘은 자기 교정 능력에서 나온다. 오류마저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역사학이고, 역사학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속였으면 속였다고 적고, 속인 듯하면 속인 듯하다고 적고, 그런 정황이 없으면 오류만 밝히면 그뿐이다.” 그렇다고 오류에 대한 지나친 강박 때문에 역사가의 창조적 사유가 위축되어서는 곤란하다. 오류를 줄이는 것이 역사학의 목표는 아니며, 풍요롭고 건강한 역사학을 위한 방편일 따름이다. “오류가 없는 사유만 건강한 사유는 아니다. 명제만 있는 사유는 골동품이다. 질문하는 사유, 의심하는 사유, 창조하는 사유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오류를 피하려고 풍요로움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저자의 이런 당부,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도 공부하는 사람도 숙고해볼 만하다.

작가정보

저자(글) 오항녕

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교수. 한국고전번역원, 인권평화연구원 이사로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한국사상사연구소 연구원,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전문위원, 연변대학교 및 튀빙겐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 ≪사실을 만난 기억: 조선시대 기축옥사의 이해≫ ≪역사학 1교시, 사실과 해석≫ ≪실록이란 무엇인가≫ ≪호모 히스토리쿠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밀양 인디언≫ ≪조선의 힘≫ ≪기록한다는 것≫ ≪한국사관제도성립사≫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사통(史通)≫ ≪율곡의 경연일기≫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존재집≫ ≪문곡집≫ ≪노봉집≫ ≪병산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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