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사회학
2024년 07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27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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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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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사회학의 집대성
“역시 우에노 지즈코다. 대단하다.”(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공동대표)
“우리 앞으로 다가올 돌봄의 문제를 일찌감치 감지한 학자가 먼저 고민하고 실천한 방대하고 빼어난 기록. 《돌봄의 사회학》은 노인 천만 시대를 맞이한 우리 사회에서 고령자 돌봄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도와준다.”(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고령자 인구비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사회)에 돌입했다. 빠르든 늦든 누구나 나이가 들고, 이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 즉 언젠가는 모두가 사회적 약자가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가? 이 때문에 1994년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지즈코의 주저 《돌봄의 사회학》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도 소개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독신의 오후》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일찍부터 ‘돌봄’ 문제, 즉 ‘돌봄의 사회학’을 고민해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령자 돌봄’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이 책의 시작은 2000년 4월 일본에서 시행된 개호보험제도이다. 개호보험은 일본의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저자는 이를 ‘가족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제도가 고령자 복지를 “온정주의에서 계약으로”, 또 “시혜에서 권리”로 극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령자를 돌볼 책임을 가족의 책임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전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개호보험이 도입된 이후 10여 년 동안 일본 사회에 일어난 변화를 추적한다.
책은 크게 세 가지 질문을 다룬다. 1) 돌봄이란 무엇인가? 2) 좋은 고령자 돌봄이란 무엇인가? 3) 어떻게 좋은 고령자 돌봄을 실현할 것인가?
일러두기 및 용어 설명
서문_ 돌봄, 공조의 사상과 실천
대지진이 지나고 | 돌봄을 주제로 삼다(1부) |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2부) | 협 부문의 역할(3부) | 돌봄의 미래(4부) | 마치며: 희망은 있다
1부 | 돌봄을 주제로 삼다
1장. 돌봄이란 무엇인가
왜 돌봄을 논하는가 | 돌봄이란 무엇인가 | 돌봄의 정의 | 돌봄노동이란 무엇인가 | 돌봄의 개념화
2장. 돌봄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돌봄에 관한 규범 이론
돌봄에 대한 규범적 접근 | 돌봄에 대한 규범과학 | 돌봄의 본질 | 길리건의 ‘돌봄의 윤리’ | 길리건 이후, ‘돌봄의 윤리’ 논쟁 | 임상철학의 돌봄론 | ‘케어링’을 살피다 | 돌봄의 맥락을 살피다 | 돌봄에 대한 인권적 접근
3장. 당사자란 누구인가: 니즈와 당사자 주권
당사자란 누구인가 | 니즈를 귀속시키는 주체 | 당사자 개념의 난립 | 역량 접근법 | 1차적 니즈와 파생적 니즈 | 당사자인 것과 당사자가 되는 것 | 마치며: 당사자의 니즈가 중요
2부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
4장 돌봄에 근거는 있는가
왜 고령자를 돌보는가 | 돌봄은 재생산노동인가 | 계층 문제로 본 고령자 돌봄 | 가족 돌봄이란 무엇인가: 재생산 비용의 분배를 다시 논하며 | 사회적 부양은 정당화할 수 있는가 | 가족에게 고령자 돌봄의 책임이 있는가 | 가족 돌봄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5장 가족 돌봄은 당연한 것인가
가족 돌봄은 자연스러운가 | 가족 돌봄이란 무엇인가 | 가족 돌봄은 언제부터 문제가 됐나 | 가족 돌봄자는 누구인가 | 가족 돌봄은 사회복지의 자산인가 | 가족 돌봄자의 스트레스 연구 | 가족 돌봄과 젠더 | 가족 돌봄은 정말 좋은가 | 가족 돌봄은 바람직한가
6장 돌봄이란 어떤 노동인가
니즈와 서비스의 교환 | 돌봄노동을 개념화하기 | 돌봄은 노동인가 | 돌봄노동과 가사노동 비교 | 서비스 상품과 노동력 상품 | 돌봄의 가격 | 돌봄이란 어떤 상품인가 | 돌봄노동과 감정노동 | 돌봄노동은 왜 싼가
7장 돌봄을 받는 것은 어떤 경험인가
돌봄을 받는 것 | 돌봄받는 경험 | 요개호자의 탄생 | ‘문제(문제화)’도 ‘니즈’도 장애인운동에서 배우자 | 고령자운동은 있는가 | 장애인운동의 역사 | 이용자 만족이란 무엇인가 | 고령자와 장애인 비교 | 당사자와 가족 비교 | 이용자에 의한 서비스 평가 | 인지증 고령자의 경험 | 장애인의 경험을 배우기 | 돌봄을 잘 받는 방법
8장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 집단 돌봄에서 개별 돌봄으로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 | 유니트 케어 | 호텔 코스트 | 유니트 케어의 기원 | 개인실이 기본인 유니트 케어 | 유니트 케어와 노동 강화 | 데이터로 살핀 유니트 케어의 현실 | 유니트 케어와 감정노동 | 유니트 케어는 ‘가족처럼’ 돌보는가 | 시설에서 주택으로: 시설의 주택화 | 새로운 동향 | 좋은 돌봄이란 개별 돌봄이다
3부 시민사회의 역할
9장 누가 돌봄을 담당하는가: 최적의 비용 부담을 위해
가족이 아니라면 누가 돌보는가 | 관·민·협·사, 복지다원사회 | 이원 모델의 한계 | 복지혼합론의 비판적 검토 | 비교복지체제론 비판적 검토 | 돌봄의 탈가족화와 탈상품화 | 관·민·협·사, 사원 모델 | 돌봄의 사회화와 협 부문의 역할
제10장 시민사업체와 참여형 복지
돌봄의 실천 현장 연구 | 참여형 복지 | 시민인가, 주민인가 | 지역이란 무엇인가 | 이상한 유상 자원봉사 | 개호보험과 NPO | NPO의 우위성 | NPO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당사자 니즈에서 본 복지경영 | 왜 복지경영 연구는 없는가
11장 생협 복지
생협 복지와 워커즈콜렉티브 | 개호보험과 생협의 복지사업 | 생협 복지에 대한 기대와 긍지 | 워커즈콜렉티브는 어떻게 생겨났나 | 생협 복지의 세 가지 유형 | 워커즈콜렉티브 이전의 역사 | 워커즈콜렉티브의 성장 | 개호보험 시행 직전의 워커즈콜렉티브
12장 그린코프의 복지 워커즈콜렉티브
들어가며: 생협 복지 연구 계기 | 활동 주체가 연구에 참여 | 워커즈콜렉티브 네 가지 종류의 활동 주체 | 참여 동기 | 워커즈콜렉티브의 노동과 보수 | 워커즈콜렉티브의 이용자, 이용요금 | 워커즈콜렉티브의 경영비용 | 경영비용과 시간비용 | 경영비용 비교 | 워커즈콜렉티브의 돌봄서비스 질 | 워커즈콜렉티브의 창업 지원 시스템 | 개호보험 시행 후, 생협의 복지사업 전개 | 자긍심에 부여된 값
13장 생협의 젠더 편성
생협과 페미니즘 | 생협의 젠더의식 | 생협의 성평등 | 활동과 노동의 이중구조 | 생협 조직의 역사: 이중구조에서 삼중구조로 | 배송은 ‘남자가 하는 일’ | 파트타임 노동을 도입한 생협 | 생협판 노동의 유연화 | 워커즈콜렉티브의 성립 | 노동의 유연화와 조직 재편 | 다시 생협과 페미니즘에 관해
14장 협 부문의 선진적인 돌봄 실천: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사례
NPO가 운영하는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 개호보험 개정과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사업 | 협 부문에서 사회복지법인의 자리매김 | 도야마형, 새로운 형태의 개호서비스 | 고노유비도마레의 개요와 역사 | 창업자금 | 소규모 다기능 공생 돌봄 실천 | 공생 모델의 효과 | 이용자와 가족 | 워커와 자원봉사자 | ‘가족적 돌봄’이란 무엇인가 | 복지경영 관점에서 본 ‘도야마형’
15장 관 부문의 성공과 좌절: ‘케어타운 다카노스’ 사례
관 부문과 협 부문의 경계 | 일본에서 제일가는 복지를 목표로 삼은 마을 | 케어타운 다카노스의 설립 배경과 역사 | 케어타운 다카노스의 돌봄 실천: 하드 면 | 케어타운 다카노스의 돌봄 실천: 소프트 면 | 케어타운 다카노스의 이용자들 | 케어타운 다카노스의 직원 | 돌봄의 질을 높인 조건 | ‘업무개선위원회’ 보고 | 마을 복지가 좌절된 경위 검증 | 신자유주의 개혁에 놀아난 마을 복지 | 다카노스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까
16장 협 부문의 우위
협 부문의 경쟁 우위 | 노동조건과 인력 배치 | 생협다운 복지란? | 생협다움과 워커즈콜렉티브 | 노동의 자기결정에 따른 역설 | 지역 특성 | 마치며: 협 부문에 기대하는 이유
4부 돌봄의 미래
17장 다시 돌봄노동에 대해: 세계화와 돌봄
돌봄 인력이 무너지다 | 왜 돌봄노동자의 임금은 싼가 | 노동과 서비스의 상품화, 비상품화 | 노동과 노동력 | 불완전하게 상품화된 노동력 | 세계화와 돌봄노동 | 세계화의 영향 | 재생산 영역의 세계화와 돌봄노동의 국제 이전 | 돌봄의 값을 다시 논의한다
18장 차세대 복지사회 구상
시장의 실패, 가족의 실패, 국가의 실패 | 복지다원사회의 책임과 부담 나누기 | 연대와 재분배 | 니즈 중심의 복지사회로: 사회서비스법을 구상하다 | 고령자, 장애인, 유아 돌봄 통합으로 |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 당사자운동을 향하여
맺음말_ 감사 인사를 대신하며
옮긴이의 말_ 더 좋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
해제_ 돌봄 사회로 가는 길(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돌봄 관련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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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을 받는 이와 제공하는 이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상호행위로서 돌봄을 살피면, 돌봄을 주는 쪽은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받는 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비대칭적 관계는 권력관계로 쉽게 바뀔 수 있다. -25쪽
왜냐하면 돌봄노동의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또 가격을 올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돌봄노동의 가격은 싼가? 왜 돌봄노동의 가격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가? -43쪽
과거에는 육아나 고령자 돌봄을 사적 영역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젠더 연구에서는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보이지 않게 됐을 뿐이라는 점, 나아가 사적 영역은 공적으로 만들어진 영역이란 점을 밝혔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페미니즘에서 출발한 젠더 연구는 사적 영역을 정치화했다. 그 뒤 사적인 행위로 여겨졌던 돌봄은 눈에 보이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50쪽
가족 돌봄은 대부분 강제노동forced labor이다. 예컨대 며느리가 고령자를 돌보는 것을 보면 돌봄은 현실에서 종종 강제노동임을 실감할 수 있다. 강제노동은 수용소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에게 가족은 또 다른 강제수용소가 될 수 있다. 강제수용소와 마찬가지로, 가족 안에도 학대가 있고 강제노동이 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96쪽
나는 이 아이디어를 셰인 페란에게서 얻었다. 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던 푸코가 “열심히 게이가 된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페란은 게이/레즈비언인 것의 ‘커밍아웃coming out’은 번번이 ‘비커밍아웃becoming out’이라고 했다. ‘게이/레즈비언임’은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게이/레즈비언임’을 받아들인 주체의 전략이자 성적 주체화 과정이라는 뜻이다.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주체는 게이/레즈비언이 되는 것이라는 성적 주체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130쪽
왜 고령자를 돌보는가? 이는 실로 두려운 질문이다. 고령자 돌봄을 정당화할 근거가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를 돌보지 않아온 현실이 있다.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고령자 돌봄은 새롭게 등장한 수요이므로, 당연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141쪽
여기서 다시금 가사노동 문제가 무엇이었나를 돌아보자. 가사노동에서 문제는 ①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 불가결한 노동인 재생산 비용을 시장의 외부, 즉 가족에게 ② 부당하게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가격을 인정하지 않는) 노동으로, ③ 성별 분리하에 오직 여성에게만 배당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문제 설정을 통해 비로소 “왜 여자만 가사를 하는지”에 대해 “부당하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시장은 외부에 몰래 재생산 비용을 의존해왔으며, 이에 따라 ‘시장의 자기완결성’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58~159쪽
그런데도 가족 돌봄은 언제부터 어떻게 당연하게 여겨졌을까? 또 가족 돌봄은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가족의 외부에 있는, ‘돌봄의 사회화’에 따른 여러 선택지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가족 돌봄을 보완할 대안이 되지 않는가? 불충분한 이류 대안에 불과한가? 이런 질문을 하다보면 우리는 더 핵심적인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족 돌봄이 제일 좋은 것인가? -170쪽
성별화된 노동에는 노동력의 비정규화가 수반된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로 여기는 돌봄노동은 주변화되고, 이 때문에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존재한다. -252쪽
실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단하다. 노동조건을 향상하고 임금수준을 높이기만 하면, 노동력 이동이 일어난다. 의사의 노동조건이 아무리 가혹해도 진입자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의사의 사회적 지위와 보수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253쪽
돌봄의 가격은 왜 싼가? 이것을 젠더로 설명하면 답은 명쾌하다. 왜? 여자가 하는 일로 여겼기 때문에.
영국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베로니카 비치는 주변화된 파트타임 노동이 “저임금노동이라 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하는 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임금이라고 갈파했다. -269쪽
실제로 많은 고령자가 마지막까지 집에서 지내길 희망하지만, 가족은 될 수 있으면 집에서 고령자가 떠나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294쪽
그런데 일단 병이나 장애, 노화 등을 경험하면 이 근원적 물음이 바로 되살아난다. 노화란 어제 할 수 있던 것을 오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오늘 할 수 있는 것은 내일 하지 못하게 되는 경험으로, 후천적 장애와 비슷하다.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된 고령자는 ‘자신의 몸이 남이 되는’ 신체 감각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315쪽
고령화는 누구나 후천적 장애인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이 들거나 뇌혈관 문제로 사지의 마비나 언어장애가 남으면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후천적 장애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비나 장애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며, 돌봄을 어떻게 받을지 모색해야 하는 아마추어 상태이다. -317쪽
가족에게는 돌봄을 피하는 것, 즉 시설에서 집으로 고령자를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최대 서비스일 수도 있다. 사업자는 고령자 이용자보다는 그 가족의 눈치를 살피므로 자칫 돌봄서비스는 의사를 결정하는 고령자의 가족을 위한 서비스가 되기 쉽다. -415쪽
여자가 [파트타임 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여자가 하는 일’로 [파트타임 노동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비치의 말을 이렇게 바꿔보자(Beechey 1987). “NPO라서 싼 요금을 내는 게 아니다. 싼 요금만 설정해놓으니 NPO만 참여하는 것이다.” 이게 현실에 들어맞는 말이다. 또 여기에 변수로 젠더를 넣어보자. 만약 개호계 NPO에서 일하는 이들이 남성이었다면, 위와 같은 주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451쪽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돌봄’에 대한 이론과 실천 면에서 모두 탁월하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우에노 지즈코 사회학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그간 이뤄진 ‘돌봄 이론’에서는 ‘젠더 편향’이 반복돼왔다고 비판하면서, 인권과 페미니즘이 가미된 정교한 이론적 전개를 펼친다. 즉 돌봄은 주로 여성이 해야 하는 노동으로 파악하는 논의가 주로 있어왔고, 여기에서 ‘여성의 관점’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페미니즘 관점을 중심에 두고 이 이론적 논의들을 비판하면서 ‘돌봄이란 무엇인가’ ‘돌봄노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살핀다. “원래 부불노동 이론은 여성이 가정에서 행하는 가사, 육아, 고령자 돌봄 등의 노동에 대해 기존 경제학이 ‘젠더 몰이해’(젠더를 인식하지 않는 것) 관점인 것에서 시작됐다. 돌봄은 주로 여성이 행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인데, 돌봄을 주제로 한 논의에서 젠더를 빼는 것, 마치 돌봄에 여성의 관여가 없는 듯 여기는 것 또한 젠더 몰이해 입장으로 비판받아야 한다.”(24쪽)
10년 동안 행해진 돌봄 현장 연구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다양한 현장 시설을 둘러보며 많은 관계자를 만났고, 이를 통해 ‘좋은 고령자 돌봄이란 무엇인가’ ‘고령자 돌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탐구한다. 모두가 개인실에서 생활할 수 있는 ‘유니트 케어’ 시설, 장애인ㆍ유아ㆍ고령자가 함께 거주하는 ‘공생 돌봄’ 시설 등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노인요양시설은 4인실이 기준이며, 주로 ‘집단 돌봄’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이 시설들은 이용자 중심이며 ‘개별 돌봄’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좋은 돌봄’의 기준이란 다음과 같다. 집단 돌봄이 아닌 개별 돌봄, 시설 돌봄이 아닌 재택 돌봄, 시설 내 다인실 돌봄이 아닌 개인실 돌봄이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사자의 개별성에 대응하는 돌봄, 니즈가 있는 당사자를 중시하는 돌봄이 좋은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30쪽)
왜 돌봄노동의 가격은 싼가?
하지만 일본의 혁신적인 시설들에도 단점은 있다. 이 시설들이 돌봄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으로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돌봄노동의 가격은 싼가? 왜 돌봄노동의 가격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가?” 저자는 반복해서 이 질문을 던지며, 결국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돌봄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답하기도 한다. “이것을 젠더로 설명하면 답은 명쾌하다. 왜? 여자가 하는 일로 여겼기 때문에. 영국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베로니카 비치는 주변화된 파트타임 노동이 ‘저임금노동이라 여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하는 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임금이라고 갈파했다.”(269쪽) 이 질문은 한국에도 적용된다. 요양보호사의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는 계속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누가 돌봄을 실천할 것인가? 저자는 가족(‘가족의 실패’), 국가나 지자체(‘국가의 실패’), 시장(‘시장의 실패’) 모두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시민사회가 포함되어 있는 협(協) 부문에 힘을 실어준다. 실제로 일본의 ‘좋은 돌봄’은 주로 모두가 경영자이자 노동자인 워커즈콜렉티브와 생협 등 새로운 공공성(common)을 갖춘 비영리단체나 시민사업체에서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 부문에도 한계는 있다. 결국 좋은 돌봄은 국가(官), 시장(民), 시민사회(協), 가족(私) 부문 모두 한계가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복지다원사회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즉 저자가 기반을 둔 이론은 기존의 복지국가론을 대체하는 복지다원사회론이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당사자 주권과 인권적 접근
그렇다면 우에노 지즈코가 말하는 돌봄이란 무엇인가? 돌봄이란 1)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상호행위이자 상호관계이며, 2) 돌봄을 받는 당사자의 니즈가 가장 중요하고, 3) 제3자인 타인에게 이전 가능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돌봄을 받는 이와 제공하는 이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다. 상호행위로서 돌봄을 살피면, 돌봄을 주는 쪽은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받는 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비대칭적 관계는 권력관계로 쉽게 변질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돌봄의 윤리’로 상징되는 돌봄에 관한 규범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입장을 제시한다. 첫째, 돌봄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고, ‘피하고 싶은 부담, 무거운 짐, 성가신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둘째,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권리를 통해 인권적으로 접근할 것. 네 가지 권리란 다음과 같다. 1) 돌봄을 할 권리. 2) 돌봄을 받을 권리. 3) 돌봄을 하라고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4) (부적절한) 돌봄을 받으라고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이 책에서 핵심적이면서도 일종의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입장은 ‘당사자 주권’이다. 저자가 말하는 당사자는 단순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주체화된 사회적 약자이다. 즉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권리를 주장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다. “돌봄을 받을 필요가 있는 ‘요개호자(要介護者)’인 것과 ‘요개호자’의 정체성을 갖고 당사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요개호자 당사자가 되려면 니즈를 드러내고 정체화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130쪽) 즉 전문가나 제3자가 판정하는 온정주의에 기대지 않고 돌봄을 받는 당사자들이 니즈와 권리를 주장하는 게 당사자 주권이다. 이 점에서 일본의 요개호 고령자들은 아직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니즈와 권리를 주장하는 당사자운동을 통해 고령자 복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족 돌봄은 당연한가?
누가 돌봐야 하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다. 그것도 대부분 집안의 여성(아내, 며느리, 딸)을 떠올린다. 국가도 사회도 가족 돌봄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가족 돌봄’을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가족 돌봄’은 일종의 ‘신화’이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좋았는데’ ‘옛날에는 가족이 서로 잘 돌봤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 아닌 향수에 불과하다고 언급한다.
저자의 결론은 단호하다. 가족 돌봄은 당연하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으며, 동시에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 때로는 가족 돌봄이 강제노동이 될 수도 있다고도 언급한다. “예컨대 며느리가 고령자를 돌보는 것을 보면 돌봄은 현실에서 종종 강제노동임을 실감할 수 있다. 강제노동은 수용소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에게 가족은 또 다른 강제수용소가 될 수 있다.”(96쪽)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복지다원사회
저자는 가족 돌봄의 모순에 대해 길게 설명한 뒤, ‘그럼 누가 돌봄을 실천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저자의 이론적 기반은 복지다원사회론이다. 복지다원사회론은 관(官, 국가ㆍ지자체), 민(民, 시장), 협(協, 시민사회), 사(私, 가족) 부문 모두 한계가 있기에 서로서로 보완한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저자는 만능으로 기능하리라 믿었던 근대의 가족·시장·국가의 3종 세트가 한계를 드러낸 시점에서 새로운 공동성(common)의 틀인 협 부문에 기대하고 있다.
복지는 ‘보완주의 원리’로 성립하고 작동해왔는데, 이는 ‘시장의 실패’는 국가가 보완하고 ‘국가의 실패’는 시민사회가 보완해왔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보완주의 원리는 ‘가족의 실패’를 전제로 삼는다. 여기서 ‘가족의 실패’란 실패한 가족, 즉 사별이나 별거, 이혼 등으로 흩어진 가족 구성원을 일컬었다. 그래서 복지 대상이 혼자 사는 노인, 한부모 여성 등에 한정되어왔다. 반대로 말하자면, 가족 구성원이 다 모여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여겨져온 것이다. 이는 가족에 의존하는 보수주의적 복지체제다. 가족은 훨씬 이전부터 그 기능을 상실하여 유명무실해졌다. 또 근대가족에 대한 그간의 선행연구에서는 겉으로는 제대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도 내부에 돌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점, 전부터 사실상 ‘너무 많은 짐을 실은 방주’란 점을 밝힌 바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가족의 실패’는 이미 예상된 일인데 단지 국가나 연구자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가족의 실패’, ‘시장의 실패’, ‘국가의 실패’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부문도 복지의 공급에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NPO(비영리단체) 등 협 부문(시민사회)에도 한계는 있다. NPO만으로 가족의 실패, 시장의 실패, 국가의 실패 전부를 보완하기에는 무리이다. 어떤 부문에도 한계가 있고, 그러므로 각 부문이 서로를 보완해 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이론이 바로 기존의 복지국가론을 대체하는 ‘복지다원사회론’이다.
유니트 케어와 공생 돌봄, 일본의 선진 사례
일본의 생협과 지방정부에서 더 나은 고령자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 수행한 다양한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1인실 기준의 유니트 케어가 케어타운 다카노스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선도적으로 시행되고 차후 후생노동성에 의해 제도적으로 수용된 것은 흥미롭다. 특정 유형의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유형의 서비스를 한 기관에서 제공하는 ‘소규모 다기능 거택보호’라든지 아동, 고령자, 장애인이 함께 데이서비스를 이용하는 ‘공생 모델’은 일본 개호보험 도입 이전에 생협 등 시민사업체에 의해 창출된 돌봄 모델이고 후생노동성이 차후에 이 모델을 제도에 수용했다. 저자는 시민사업체에서 발견한 선진적 돌봄의 조건을 “① 높은 이상과 리더십이 있는 경영자가 ② 높은 도덕심과 능력을 갖춘 돌봄노동자를 ③ 낮은 노동조건으로 고용할 때”라고 제시한다. 시민사회의 자발성이 토대가 되는 셈인데 특히 고학력 전업주부의 생협 활동 참여가 중요한 자원이다. 저자는 일본의 ‘전업주부 우대 정책’이 여성을 고령사회 돌봄 역량으로 가정에 묶어두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성차별 구조를 유지하는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전업주부의 저임금노동 때문에 생협의 선진적 돌봄 실천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작가정보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 1948년 도야마현에서 태어났다. 교토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도쿄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일본 내 여성단체의 협업을 위해 NPO법인 WAN(Women’s Action Network)을 설립, 이사장직을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4년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으로 산토리학예상을, 2011년 《돌봄의 사회학》으로 아사히상을 수상했다. 사회학을 비롯해 문학·정치·경제·예술 등 폭넓은 분야의 저서를 발표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 《여자들의 사상》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불혹의 페미니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 등 여러 책이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발표 ‘202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으며, 현재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사회정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객원연구원(2019). 옮긴 책으로 《생명의 여자들에게》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 《여자들의 사상》 《증오하는 입》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등이 있으며, 공동연구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국가인권위원회,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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