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
2024년 07월 12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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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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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에세이 여름의 오리들아 하천의 오리들아 13
7월 2일 에세이 반바지는 언제부터 여름은 그때부터 21
7월 3일 시 여름의 빛 27
7월 4일 에세이 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31
7월 5일 시 고백 이야기 41
7월 6일 에세이 어떤 검시관 45
7월 7일 시 이름 이야기 57
7월 8일 에세이 골목에는 개가 서 있고 61
7월 9일 에세이 이수명 시인께 67
7월 10일 시 부푸는 빵들처럼 77
7월 11일 에세이 나의 모범은 나의 미워하는 것, 나의 취미는 나의 부끄러운 것 81
7월 12일 시 생각 멈추기 99
7월 13일 에세이 공작 바라보기 103
7월 14일 에세이 언제나 시에는 현관이 있고 107
7월 15일 시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의 머리를 밀어내지 못함 113
7월 16일 시 비밀은 없다 117
7월 17일 에세이 법 앞에서 121
7월 18일 시 인생 사진 127
7월 19일 에세이 문학 공동체의 선 131
7월 20일 시 괴물 이야기 147
7월 21일 에세이 다시 태어난다 말할까 151
7월 22일 시 애프터 레코드 159
7월 23일 에세이 보라매공원 163
7월 24일 에세이 산악회의 눈부신 주말처럼 명징하고, 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처럼 하염없는 171
7월 25일 에세이 #not_only_you_and_me 175
7월 26일 시 귀거래사 189
7월 27일 에세이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도 않지만 193
7월 28일 에세이 시간을 달리지는 못하겠지만 205
7월 29일 에세이 거칠고 사악한 노인은 될 수 없지만 213
7월 30일 시 미래의 책 231
7월 31일 에세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237
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감각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공동체가 시의 세계에는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전까지 그것이 굉장히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일방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육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저의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순간의 시는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 내어 읽고 그것을 듣는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꼭 낭독회에서만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이에게 시를 읽어주거나 그것을 듣는 일도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꼭 행이나 연을 맞춰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자신의 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야말로 그 시를 제일 잘 읽는 법일 테니까요.
앞으로도 때로 사람들은 제게 시를 어떻게 읽느냐 묻겠지요. 그러면 저는 마찬가지로 눈으로 읽는 것이라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말을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소리를 내면서요.
_7월 4일 「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39~40쪽
그 이야기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엔들리스 에이트’다. 이름 그대로 끝나지 않는 팔월에 대한 이야기로, 여름방학이 끝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하루히가 무의식중에 여름을 무한히 반복시켜버리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하루히가 느낀 아쉬움이란 아직 한 번도 친구들과 함께 방학 숙제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결국 일만오천 번을 넘는 반복 끝에 세계의 이상을 알아차린 ‘쿈’이 모두와 함께 방학 숙제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전형적인 ‘루프물’(서브컬처에서 주로 나타나는 서사 유형으로, 어떤 이유로 일정한 기간을 반복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그 반복을 통해 목표를 이루거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가는, ‘게임 오버’와 ‘재도전’이 설정된 게임 감각의 이야기)이지만, 작은 추억을 위해 세계를 멈춰버리는 이 이야기의 과격함을 나는 좋아했다. 여기에는 일상을 거부하고 성장을 지연시키며 차라리 세계를 중단(파괴)해버린다는 급격한 낙차에서 오는 뒤틀린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있다. 혹은 자기 파괴의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파괴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기일 뿐이니까. 신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다는 이야기 아닌가.
_7월 11일 「나의 모범은 나의 미워하는 것, 나의 취미는 나의 부끄러운 것」, 86~87쪽
증명사진을 제출하셔야 한다고 해서 사진관에 갔네 옛날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거기 영혼이 담긴다고 믿었으나 찍힌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그런데도 플래시가 자꾸 터지고 너무 눈이 부셔서 눈물이 자꾸 흘렀네
나무에 앉은 새들은 조용히 잠들어 있네 아무리 다가가도 깨지를 않았네 죽은 것처럼 너무 좋아서 깨기 싫은 꿈을 꾸는 것처럼 텅 빈 스튜디오가 찍힌 사진 하나를 손에 쥐고 걸었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인생이라고 불렀네
_7월 18일 「인생 사진」, 128~129쪽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다. 그러나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한다. 그것이 요새 나의 삶과 시쓰기의 태도다. 김종삼과 같이 숭고하고 고결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테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할뿐더러, 조금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말하고자 한다. 숭고하지도 않고, 고결하지도 않게. 무엇인가를 은폐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인. 창백하고 간결한 언어가 아니라, 다소 엉망진창이어도, 조금은 슬퍼지더라도 기어코 말해버리는 것. 나를 말로 뒤덮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로 말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가능할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렇게 말해버렸기에, 그게 사실이 되리라 믿어볼 따름이다.
_7월 27일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도 않지만」, 203쪽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다 일어날 거고
그 책의 가장 첫 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건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_7월 30일 「미래의 책」, 235쪽
여름의 냄새, 코끝으로 먼저 닿는 여름이란 무엇일까요.
그 질문 앞에서 학교 운동장을 가르는 축구공의 흙 냄새, 이마에 맺힌 땀방울 씻어내는 수돗가에서 물 번지는 냄새를 겹쳐보게 된다면 그 환함과 푸름이 꼭 청춘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려나요. 때로는 그런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더러는 지난여름의 눅눅한 흔적 곁에서, 가끔은 먼 여름의 소식 앞에서 시를 생각하는 시인의 일상들이 담겼습니다.
그리하여 더없이 시의적절한 7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보라색 꽃이 달리면 비비추
흰 꽃이 달리면 옥잠화
그건 여름날의 풍경이네
아주 차가운 맥주
지금이 이번 여름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믿는 사람의 얼굴
그 사람도 아마 무슨 생각이 있었겠지요
돌아오지 않는 여름날을 떠올리며 말하는 사람
─본문 중에서
때로는 이렇게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소리를 내면서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는 시로 하루는 에세이로 매일매일을 채워나갑니다. 헌데 읽어나갈수록 이 책에 가득한 것은 여름의 무성함을 닮은 ‘시’ 그 자체로구나 알게도 됩니다. 시를 쓰는 날이 있고 시를 생각하는 날이 있고, 시의 자취를 좇아보는가 하면 시의 앞날을 고민하곤 합니다. “평소에는 내 시를 전혀 떠올리지 않”는다 말하지만, 빈 골목을 걷다보면 이승훈 시인의 시를, 또 ‘선생’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맙니다. 다시 태어나도 시인을 할 것이냐 물으면 아뇨, 대답하지만 실은 “기꺼이, 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쩔 수 없고 피할 도리가 없어서” 시를 쓰고 있을 다음 생의 나를 떠올리고요. 황인숙 시인이 그의 시를 두고 “시들이 전부 미쳤구나 싶게 근사하다” 말한 바 있으니, 이 ‘미친듯이’ 아름다운 시들의 뿌리에 ‘시에 미친 시인’ 황인찬의 일상이 있었겠구나 짐작도 됩니다. 시의적절 안에는 때(時)와 시(詩)가 함께 있건대, 7월은 그야말로 ‘시’로 풍성하다 자부해봅니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소회대로, 이 책에는 꼭 시의 적절함만 있지는 않습니다. 시인의 일상이란 ‘시의부적절’한 일들로 가득하지요. 그러나 다시 시인이 고백한대로, 그런 어긋남에서, 그런 틈과 금과 사이에서 시가 탄생합니다. 이 책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을 두고 창밖의 여름에 어울리는 책이라 말해도 좋을 테지만, 손안에서 여름을 시작하는 책이라 불러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름을 생각하는 일이 꼭 여름 가운데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을 테지요. 여름의 바깥에서, 오히려 멀찍이서, 여름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진짜 ‘여름’을 시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생각하는 일이 꼭 그러하듯이요.
때로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다시 태어나도 시인을 하실 건가요? 그러면 언제나 농담을 섞어 이런 대답을 한다. 아뇨, 한번 해봤으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아마 시를 쓰겠지. 시쓰기에 매번 절망하고 실망하면서도,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또 쓰고야 말겠지. 기꺼이, 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쩔 수 없고 피할 도리가 없어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그것은 참 끔찍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 될 것이다. 이 말에도 약간의 농담이 섞여 있음. ─본문 중에서
나의 장래 희망은 계속 사랑하기,
그리하여 계속 써나가기
언제나 시를 생각하지만 시가 무엇인지 답하기 직전에 멈추는 사람. 자주 지나간 실패를 뒤적이고 미리 다가올 낙담을 쥐어두는 사람. 시인 스스로는 이를 두고 ‘어중간’과 ‘어정쩡’이라 말하지만요, 중간이란 언제나 길 위에 있음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 해의 복판, 한창 자라나고 번져가는 계절, 여름이 바로 그러할 테고요. 언제나 길 위에 있는 시, 언제나 시라는 여정 중에 있는 시인.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까 문득 멈춰설 때 ‘잠시’라 하겠지요. 그때 혼잣말처럼, 혼잣말이라야 가능할 진심처럼, 조그맣게 하는 말 두고 ‘고백’이라 하겠지요.
이 책에는 시절의 어긋남에 대한 이야기와 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란히 묶여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시의부적절’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 바로 시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믿음에 기인합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시를 통해 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시를 통해 저를 벗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시를 이해하는 만큼 삶의 부정합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시를 사랑하는 만큼 저 자신을 미워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또한 그러하시리라 믿습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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