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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이도훈 지음
이야기장수

2024년 07월 1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6월 2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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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1.68MB)
ISBN 979119418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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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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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지망생들이 평론가와 권위 있는 매체의 ‘간택’을 기다리는 시대는 갔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신인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카카오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에서 올해 현직 지하철 기관사의 에세이가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무려 8800여 편의 응모작이 몰려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2024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당당히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주인공은 현재 부산지하철 2호선의 기관사로 일하고 있는 이도훈 작가이다. 이도훈 기관사는 자신이 일하는 ‘지하세계’에서 발견한 ‘빛’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지하철을 이용하는 평범한 소시민들과 비슷비슷한 에세이들에 지친 독자들에게 당당히 ‘지하세계로의 초대장’을 건넨다.
지금까지 개성 넘치는 에세이들을 출간해온 이야기장수 출판사의 대표 이연실 편집자는 올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심사를 맡고 눈에서 핏줄이 터질 때까지 8800여 편의 응모작 전편을 직접 읽은 끝에, 이도훈 기관사의 지하철 에세이를 대상작으로 선정, 출간했다. “지하철을 롤러코스터로 변신시키는 압도적인 생활에세이”에 이도훈 기관사의 글을 발견하자마자 대환호했다고. 오랜 시간 묵묵히 자기 직업과 생활을 영위해오던 보통 사람이 펜을 쥐고 글쟁이가 되었을 때, 얼마나 생생하고 맛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지 이 에세이가 입증한다고 자신한다.
여기저기서 놀라운 지하철 빌런들이 출몰하는 가운데, 지하철역에 정차하는 동안 토사물을 빠르게 처리하고 라벤더향만을 남기고 떠나는 청소 여사님들부터 각종 민원을 위해 출동하는 역무원과 공익요원, 관제사, 구내식당 영양사 등 ‘지하철 어벤저스’들이 여정에 함께한다. 라이베리아 공화국 출신 닌자가 선로 위를 걷고, 지하철 의자칸 아래서 숙면하던 흡혈귀가 등장하며, 미아 찾기를 위해 모든 지하철 어벤저스들이 총결집하는 요절복통의 에피소드들 속에서, 이도훈 기관사는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 히어로물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의 폭주기관차에 독자를 탑승시킨다.
평범한 지하철을 롤러코스터로 변신시키는 끝내주는 입담과 말맛의 에세이스트의 탄생!
지하철 기관사들은 운전실에서 돌연 ‘급똥’의 순간을 맞이하고, 쏟아지는 냉난방 민원과 닫혀가는 지하철 문을 어떻게든 다시 열려는 승객들과 사투를 벌이지만, 지하철은 멈추지 않고 다음 역을 향해 질주한다. 손잡이 꽉 잡으시라.
지금,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평범하고도 위대한 생활인들의 블록버스터가 시작된다.
작가의 말_ 지하세계로의 초대장 04

1부 이 열차엔 빌런과 히어로가 타고 있습니다
: 지하세계 별별 사건 기록부

기관사의 중요 업무 역량, ‘대장 관리능력’ 12
비 오는 날의 지하철과 ‘쟈철에페’ 21
반딧불이 지하철 29
서면역 유실물센터 33
자살에 대한 기관사의 고찰 40
승객과의 조우, 나의 가장 특별했던 손님 50
개미굴과 지하철의 유사성 54
역사가 이들을 기억하리라, 지하철 승객 백서 60
수요 없는 공급, 차 놓치는 꿈 76
지하철 믹스커피의 맛을 아십니까, 자판기위원회의 뜨거운 역사 82
아주 특별한 교행 89
반대편 열차의 윙크 93
기관사들이 종착역에 진입할 때 기립하는 이유 96

2부 가장 초라한 형태의 힘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킨다
: 지하철 어벤저스 열전

배트맨과 고담시티의 비밀 102
지하철이라는 공간의 주인공 107
기관사들을 살찌웠던 영양사 K 116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를 찾아라 123
핵융합보다 제어하기 어려운 냉난방 조절 131
기관사를 위한 명절특선 분식집 137
15번의 시험, 그렇게 기관사 141
분노의 화신과 13 기관사, 그리고 최후의 티타임 152
거울 앞의 기관사, 거울에 비친 기관사 162
열차 운전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167
살아남은 기관사 177
기관사 기량경진대회와 후라이드 치킨 183
완벽주의자 기관사들의 루틴 190

3부 안내 말씀 드립니다 모두 손잡이 꽉 잡으세요
: 냉정과 감전 사이, 부산 롤러코스터 2호선

얼간이 기관사 그리고 낭만주의자 198
철도 역사상 가장 억세게 운좋았던 행운의 기관사 이야기 203
지하철 첫차의 사명 210
광안행 막차의 선택 218
마리오네트 지하철 222
상대적 미세먼지 청정구역 225
알람1, 알람2, 알람3, 알람4, 알람강박증 on 230
세상에 모든 기관사가 사라질지라도 234
늙은 열차의 시간 240
출입문 업계의 양대 산맥, 도어맨과 기관사 244
기관사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250

1부 ‘이 열차엔 빌런과 히어로가 타고 있어요: 지하세계 별별 사건 기록부’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지하철 기관사들의 애환과 감동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한 번 탑승하면 두 시간 반가량을 내처 달려야 하는 열차 운전실, 기관사들은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고 밥시간까지 철저히 계산해가며 ‘대장관리’에 여념이 없지만 돌연 ‘급똥’이 찾아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거대한 고통을 겪으며 바라보는 앞풍경에는 끊임없는 어두운 철길과 터널이 펼쳐진다. 이 지옥이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고, 내 삶에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된다. 급똥과의 사투를 벌인 기관사에게는 이러한 이유로 분명 어떠한 내적 성숙이 일어난다.
(13쪽, 「기관사의 중요 업무역량, ‘대장관리 능력’」)

용하다는 지사제를 상비하고 기관사들끼리 일명 ‘똥대기’라 부르는 대기 기관사를 두기도 하지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은 끝내 찾아온다. ‘급똥’을 맞은 기관사들은 과연 고독한 운전실에서 어떤 결단을 내릴까?

한편, 기관사들은 비 오는 날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비에 젖은 철바퀴가 미끄러져 정위치에 정차하는 일이 극한의 난이도로 기관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 오는 날이면 승강장에 ‘펜싱선수’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이도훈 기관사가 일명 ‘쟈철에페’라 이름 붙인 지하철 펜싱 선수들이 닫혀가는 출입문에 우산을 꽂아넣기 시작하고, 기관사들은 펜싱 선수를 방어하고 정시 운행을 사수하기 위해 분투한다.

매일 약 3744번 지하철 출입문을 여닫으며 부산시를 7년간 횡단한 그는 “처음에는 내가 우연히 그날만 독특한 승객들을 만난 것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세상에는 내가 생각지 못한 독특한 승객들만이 존재한다”라는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이도훈 기관사는 ‘지하철 승객 백서’를 집필하며 ‘숙박형’ ‘철덕형’ ‘파스 중독자형’ 등 지하철 이용자들의 천태만상을 유머와 위트를 섞어 아카이빙하고, 가장 보통의 서민들이 지하철에서 위기를 맞은 타인을 돕고 지켜주는 감동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2부 ‘가장 초라한 형태의 힘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킨다: 지하철 어벤저스 열전’에서는 한 대의 열차가 굴러가기까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이들의 피땀 어린 일상과 노동의 현장을 기록한다. 요절복통 지하세계의 주인공은 승객만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기관사를 포함해 역무원, 청소 여사님, 구내식당 영양사 등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이 바로 또다른 주인공이다.
승객들의 입장에서 지하철 기관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역에 도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크고 칙칙한 쇳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 쇳덩어리를 ‘사람’들이 굴려가고 있다. 이도훈 기관사는 총 열다섯 번에 달하는 시험을 치르고 기관사가 되었다. 기관사 면허를 따기 위한 교육을 받는 데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며, 힘겹게 면허를 딴 뒤에도 모두가 기관사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 숱한 난관을 뚫고도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렇게 힘겹게 기관사가 되었건만 오래된 열차를 몰다보면, 온갖 고장과 비상상황들이 기관사들을 압박하고, 그들은 어떻게든 ‘비상운전’으로 ‘고물 지하철’을 끌고 가곤 한다. ‘비상’상황을 승객들에게 결코 들키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기관사와 관제사들의 사투는 눈물겹다.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승객들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똘똘 뭉쳐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나간다. 두 대의 열차가 서로를 지나쳐가는 교행이 이뤄질 때 거수경례로 반가움이나 안전운행에 대한 기원을 전한다거나, 명절에는 쉬는 구내식당 대신 명절특선 분식집을 연다거나, 기관사들끼리 자판기위원회를 만들어 지하철 내에 커피 자판기를 관리하는 식이다. 그들만의 룰은 하나둘씩 쌓여서 유구한 역사가 되었고, 지금의 지하세계를 유지하는 든든한 초석이 되었다.

‘불금’ ‘불토’에는 지하철에서 ‘불꽃같이 구토’하는 취객들의 역습이 시작된다. 구토 민원이 들어오면 지하철 청소 여사님들은 열차가 역에 정차하는 그 찰나의 순간, 거의 기적과도 같은 속도로 토사물을 치운다. 이렇듯 지하철 역사에는 어떻게든 지하철의 정시성과 공공성을 사수하려는 일상의 히어로들이 매일 긴밀하게 작전을 세우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배트맨은 어둠 속에서 활동하며 고담시티의 빛을 지켜낸다. 마찬가지로 기관사인 나 역시 어둠 속을 달리며 승객들에게 빛으로 표상되는 밝고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배트맨은 고담시티로부터 치안 아웃소싱을, 나는 부산시로부터 지하철교통 아웃소싱을 각각 위탁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배트맨과 나 사이에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도시의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배트맨은 조커로 대변되는 악당들을 물리치고, 나는 승객으로 가장한 악당들(잡상인, 불신지옥을 외치는
종교인, 구걸인, 취객, 고성방가 난동자, 성범죄자 등)을 물리쳐야 한다. 작은 차이점이라면, 배트맨은 최첨단 장비와 천문학적인 재산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힘들을 사용하지만, 나는 작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먹게 하는 고물 똥통 무전기와 냄새나는 마이크 등 가장 초라한 형태의 힘들로 그들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상당히 열악하지만 모름지기 영웅에게 그 정도 고난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103~105쪽, 「배트맨과 고담시티의 비밀」)

3부 ‘안내 말씀 드립니다 모두 손잡이 꽉 잡으세요: 냉정과 감전 사이, 부산 롤러코스터 2호선’은 지하철 승객들에게 몰래 일러두고 싶은 이도훈 기관사만의 번외 안내방송이라 할 수 있다. 왜 열차마다 종착역이 일괄 같지 않고 중간까지만 가는 열차가 있는지, 그리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음주 측정을 ‘당하는’ 직업군일 기관사들이 ‘음주 측정’에 이어 첫차를 몰 때 따르는 출근 루틴도 소개한다. 한편 지하철 기관사들도 막차를 몰고 나면 집에 갈 교통편이 묘연하기에, 하루의 막차와 다음날의 첫차를 같은 기관사가 몰고 매번 역을 옮겨다니며 숙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승객들은 몰랐던 비밀이다. 이때 기관사가 늦잠을 자서 지각하면 하루의 첫차가 늦어지는 도시의 대재난이 터지기에 기관사들마다 수십 개의 알람을 맞춰놓는 ‘알람강박증’에 시달린다며, 기관사들이 믿고 쓰는 ‘알람’의 끝판왕에 대해서도 추천한다.

이도훈 작가는 시종일관 특유의 입담으로 지하철에 얽힌 사람과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그러나 이 책에는 문득 웃음을 거두고 지하세계의 어둠을 응시할 수밖에 없는 대목들도 있다. 특히 기관사들에게는 삶의 의지를 위협하는 지하철 사상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든다.
때로 기관사들은 그저 열심히 일하다가 사람을 죽이게 된다. 사상사고가 터졌을 때 동료 기관사들은 사람을 친 기관사의 손을 소주로 씻어주고, 사발에다 술을 가득 채워 사람을 아주 보내버린다. 고통과 죄책감 속에 잠 못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관사의 트라우마는 그날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내 열차로 인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받다가, 다시 지하철에 뛰어드는 기관사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또 죽어간다.

어떤 기관사는 사상사고를 겪은 후 힘들어하다, 9년 후 동료가 운전하는 열차에 투신해 삶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사상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의 자살 소식은 그리 드문 얘기가 아니다.
비상제동 시 일반열차의 제동거리는 100미터를 훌쩍 넘고, KTX 열차의 제동거리는 약 3.3킬로미터이며 멈추는 데 약 일 분 사십 초가 소요된다. 그 말은, 기관사는 사람이 앞에 있다는 걸 인지한 후 비상제동을 걸고 간절하게 기적을 울리면서도,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치고도 몇십 미터부터 몇 킬로미터까지, 몇 초에서 몇십 초 혹은 일 분 이상까지 끌고 가야 한다.

그들은 꼭 눈을 마주친다고 한다. 선배 기관사들이 말하길 열차에 뛰어드는 그들의 눈을 보면 꼭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원망이 아닌 후회가 느껴진다고. 그래서 트라우마가 심하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기관사를 향한 그 눈빛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 눈길을 마주한 기관사의 삶은 그날부터 바뀐다. 그날부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 눈길을 본 이후의삶, 자살한 사람의 죽음에 마치 본인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 혹은 본인이 죽였다고 느껴지는 삶. 결코 그렇지 않음에도. (47~48쪽, 「자살에 대한 기관사의 고찰」)

“이 열차엔 빌런과 히어로가 타고 있습니다”
한바탕 승객이 모두 내린 뒤에만 비로소 나타나는 ‘반딧불이 지하철’,
한 지하철 기관사가 발견한 지하세계의 빛에 대하여


이도훈 기관사는 종착역에서 늘 승객들에게 이렇게 안내방송을 한다.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양산역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시고, 안 좋은 일 슬픈 일들은 열차에 두고 내리시면 저희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부산도시철도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 이도훈 기관사는 승객들이 모두 내린 객실을 돌아보다 지하철 여기저기 붙어 있는 야광물질들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다. 열차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찬란한 빛을 뿜는 ‘거대한 반딧불이’로 변신해 있었다.

이 책은 한 청년이 천신만고 끝에 기관사가 되어 진입한 지하세계에서 발견한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지하철 미세먼지로 인해 천식을 얻고, 때론 온갖 사건사고들 속에서 식은땀을 흘렸으나, 끝내 그곳에서 만난 것은 ‘빛’과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고백한다. 오늘도 그렇게 사람을 싣고 사람이 모는 ‘반딧불이 지하철’이 달려간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세상 모든 보통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하여.

지하철에서는 승객인 당신 몰래 별일이 다 벌어지고, 열차 운전실에 홀로 앉은 기관사인 나는 종종 자아와 인간다움을 상실하는 경험을 한다. 내가 기관사로서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지하철에서 오만 가지 사건사고가 고요히 터지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지하철 빌런들이 수없이 타고 내리더라도, 기관사인 나는 내 승객들에게 그 혼돈을 결코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승객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인생에서 기다리는 대부분의 것들이 더디 오거나 결국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지하철은 매일 정확히 와서 내가 가야 할 곳으로 나를 늦지 않게 데려다줄 것이라고. 세상이 나를 내팽개쳐버린 것 같은 날, 거리에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날에도 지하철만은 나를 집 근처 역까지 어김없이 데려다줄 것이라고.
그런 승객들의 믿음을 기관사 된 도리로 어찌 모른 척하겠는가. 그래서 지하철과 나는 달린다. 배가 아프고 급똥 지옥이 펼쳐져도 기관사들은 어김없이 지하철 맨 앞칸을 꿋꿋이 지킨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당신을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라고.
(19~20쪽, 「기관사의 중요 업무 역량, ‘대장 관리능력’」)

“ 가장 초라한 형태의 힘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킨다.”
비켜라 악당들아, 내 승객은 내가 지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두 번 다신 피로하고 무료한 ‘지하철 승객4’의 역할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도훈 기관사는 출퇴근길 지옥철의 팍팍함과 첫차와 막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고단함을 넘어 생활인들의 희로애락이 넘실대는 처음 만나는 지하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도훈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
코레일에서 기차면허 교육을 받고 부산지하철의 기관사가 되었다.
코레일 교육생 대표로 표창을 받았고, 부산지하철 신입사원 교육에서도 수백 명의 신입사원을 대표해 상장을 받고 앞에 나서 강연하는 등 열정적인 기관사 행세를 하고 있으나, 지금도 열차를 놓칠까봐 수십 개의 알람을 맞춰놓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하철 빌런들에 긴장하면서 매일 약 3744개의 지하철 출입문을 여닫으며 부산시를 횡단한다.

그러나 모름지기 히어로는 어둠 속에 존재하는 법.
역무원과 공익요원, 청소 여사님, 관제사 등 어벤저스 저리 가라 할 살벌한 팀원들과 함께 이마에 작은 등을 켠 채 오늘도 나의 지하철은 달린다.
인스타그램 @_lighter.lee

작가의 말

7년을 달려온 내 지하세계의 끝에는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관사인 나는 관제사의 지휘 아래 지하철을 몰고, 검수 직원은 지하철을 수리하고, 청소 여사님은 지하철을 청소하며, 역무원은 지하철이 정차하는 역을 지키고, 영양사님과 식당 이모님은 그 모든 지하철 사람들에게 밥을 먹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하세계의 존재 이유가 되어주며 잿빛 지하철에 색을 불어넣어주는 신기하리만치 다양한 승객들.

그들은 어둠이라는 뒷배를 등에 업은 빛과 같아서, 지하공간에서 본래보다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하세계의 초대를 받아들인 당신의 일상은 이제까지와는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결코 전처럼 건조하게 지하철을 이동수단으로서만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당신의 눈앞에 단소를 든 단소 살인마라거나, 닌자나 흡혈귀 같은 명품 지하철 빌런들이 등장할 수도 있지만, 고난은 알아서 잘 헤쳐나가기 바란다.
그건 당신의 이야기이니까.

모쪼록 어둠 속의 빛과 같이 멋진 이야기가 내 지하철을 탄 당신에게 펼쳐지길 바라본다.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초대를 받아들이실 승객께서는 책장을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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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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