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구원
2024년 07월 23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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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8890128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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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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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 빅토리아 베넷(Victoria Bennet)의 아름다운 들풀 에세이 『들풀의 구원(All My Wild Mothers)』이 한국의 독자들을 찾아왔다. 야생 정원을 가꾸면서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상실과 고통을 자연의 생명력으로 바꿔나갔던 10년의 회고를 선연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저자는 언니의 죽음과 아들의 지병 등 자신이 지나온 삶의 조각들을 치유의 힘을 지닌 90개의 들풀과 연결 지으면서 한 권의 압화집처럼 펼쳐낸다. 회복력을 상징하는 데이지, 역경에 맞설 힘을 주는 서양민들레, 외로움을 물리치는 붉은장구채, 희망을 안겨주는 보리지… 아름다운 들풀로 무성한 야생 정원에 서서 시인은 말한다. “때로 우리는 부서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부서진 덕분에 살아갈 수도 있다”고.
옮긴이의 글 _무엇이 될지 모르는 씨앗이라도
씨앗 1 이것은 내가 꿈꾸던 정원이 아니다
다 태우고 남은 것 _분홍바늘꽃 | 꿈은 허상이 되어 _데이지 | 떠돌이 생활 _큰갈퀴덩굴 | 사랑받지 못한 풀들 _하우스릭 |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 _가시자두나무 | 기억의 상영관 _금사슬나무 | 붙들 것과 보내야 할 것 _봄맞이냉이 | 내 가족의 나무 _가시칠엽수 | 언니의 장례식 _로즈메리 | 그녀의 온실에서 배운 것 _디기탈리스 | 나는 깨어난다 _잔쑥 | 엘더나무의 수호신 _서양딱총나무
씨앗 2 애도와 모성, 그 가혹한 순환 속에서
변화는 이끼의 시간으로 온다 _실송라 | 작은 마을에서 산다는 것 _붉은장구채 | 태어나지 못한 아이 _돌소리쟁이 | 반복되는 꿈 _우단담배풀 | 모성과 애도 사이에서 _두메꿀풀 | 돌과 흙의 위로 _개양귀비 | 망가진 것도 아름답도록 _방가지똥 | 출산이라는 사건 _레이디스맨틀 | 물에 빠진 여자 _크리핑싱크포일 |상실의 실용적 측면 _녹양박하 | 생명을 불러오는 풀 _서양쐐기풀 | 들풀처럼 뿌리내리다 _불란서국화 | 어머니의 야생 정원 _서양백리향 | 거울에 비친 얼굴들 _둥근빗살괴불주머니 | 비온 뒤 알게 된 것 _느릅터리풀 | 핼러윈의 선물 _렁워트 | 고요히 월동하는 시간 _컴프리
씨앗 3 삶이 우리를 진흙탕으로 이끌 때
인생이라는 춤을 추는 법 _기는미나리아재비 | 살려야 한다 _피버퓨 |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병 _선갈퀴 | 인슐린과 튜브와 주삿바늘 _필드스카비오사 | 우리를 지켜주는 산울타리 _덩굴해란초 | 선택과 운명의 기로에서 _새매발톱꽃 | 다른 아이가 되어 돌아오다 _카밀레 | 망가지지 않았어 _보리지 | 멍으로 남은 기억 _말털이슬 | 단순한 생활 _알칸나 | 삶과 죽음 사이의 균형 _허브로버트 | 다시 쌓는 거야, 엄마 _헤지운드워트 | 실없이 즐거운 짓 _도그로즈 | 잔잔한 그래프 _폭스앤드컵스 | 머물겠다는 약속 _양벚나무 | 정원의 연금술사들 _마늘냉이
씨앗 4 생명은 내내 굳세게 들이닥친다
흙이 되어주리라 _레몬밤 | 슬픔은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 _짚신나물 | 내 몸에 귀 기울일 때 _쇠뜨기 | 게릴라 정원 _레서셀런다인 | 우리의 마법 정원 _전호 | 로살리타와 플로라앤 _흰명아주 | 내 사랑 야생의 여자들 _서양민들레 | 황무지의 지배자 _숲제라늄 | 빨간색 에나멜 스틸레토 _오레가노 | 가장 창의적인 정원 상 _더치인동 | 그 속에는 금이 있다 _유럽미역취 | 살짝 미쳐서 좋은 날 _왕질경이 | 음지의 기억 _빈카 | 마법의 콩 _사자귀익모초
씨앗 5 돌무지에서도 쉽게 자라나는 사랑
뿌리가 땅을 확신하듯 _펠리터리오브더월 | 추억을 빌려서라도 _우엉 | 또 한 바퀴의 순환 _당개나리 | 갈라진 틈에서 자라난 사랑 _블랙커런트 | 아이답게 구는 아이 _수도나르키수스수선화 | 압화집 속 어느 여름날 _삼색제비꽃 | 시트러스 숲의 연인 _한련 |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 _아주가 | 서리와 가시가 내게 준 것 _칼렌듈라 | 어머니의 크리스마스 의식 _블랙베리
씨앗 6 어머니 식물은 씨앗에 기억을 남긴다
우리의 마지막 해 _저맨더스피드웰 | 어둠 속에 쏟아지는 빛 _어네스티 | 그 모든 순간의 어머니 _블루벨 | 언니가 떠나고 7년 7개월 17일 _당아욱 | 최고의 요새를 짓다 _큰메꽃 | 돌봄의 책무 _우드랜드해바라기 | 황폐한 정원에서 울다 _서양톱풀 | 생일 축하해요, 엄마 _우드아벤스 | 2주, 어쩌면 6주 _호손 | 어머니의 이야기 조각 _파인애플위드 | 레모네이드 세레나데 _붉은토끼풀 | 라벤더 향기가 불러온 기억 _라벤더 | 두 사람의 산책 _카우슬립 | 안녕, 내 아름다운 엄마 _등갈퀴나물
씨앗 7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
모든 것을 삼키는 비 _서양고추나물 | 정원만은 살아남았다 _바이퍼스버글로스 | 어머니가 남겨둔 페이지 _무스카리 | 어두운 나날의 마법 _도그바이올렛 | 작은 숲의 약속 _쑥국화 |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_산수레국화
씨앗 8 들풀의 구원
우리가 심은 희망의 씨앗 _울렉스
추천사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상실과 실망이 내게 닥쳤을 때, 나도 저자처럼 한계와 불확실함 속에서도 무언가를 끈기 있게 길러내는 행위로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도 정원도 없지만, 그래도 나 또한 세상에 확실히 자라나는 무언가를 보탤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번역하는 책이 그런 것이 되어줄 수 있을까? 척박한 곳에서도 작은 열매를 맺는 무엇, 남몰래 씨앗을 날리는 무엇, 그리하여 또 다른 곳에서 뿌리내리는 무엇, 죽은 것 같다가도 땅이 녹으면 살아날 수 있는 무엇, 들풀일 뿐이지만 누구에게는 약초로 쓰일지도 모르는 무엇, 살아 있는 무엇, 그것을 길러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때 상실을 견디고 희망을 믿을 수 있는 무엇. 저자가 들풀에서 ‘그것’을 찾아냈듯이, 나도 독자 여러분도 각자의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상실로부터 건진 한 줌의 에너지마저도 끊임없는 빚의 압박에 소진된다. 세상은 우리에게 구제책으로 ‘긴축 생활을 하라’고 권하지만, 그것은 도움이 가장 절실한 사람에게서 안전망을 거둬버리는, 냉혹하고 잔인한 말이다. 정치인들이 국가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떠드는 동안 남편은 어떻게 해야 좋은 아버지가 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우리를 먹여 살리지 못할까 봐 겁낸다. ‘진짜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 예술가도 진짜 직업이라고, 우리가 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늘 그랬듯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우리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씨앗 1, 이것은 내가 꿈꾸던 정원이 아니다〉 중에서
나는 정원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정원사의 모습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제때에 심지 않고, 심어야 할 곳에 심지 않는다. 무엇을 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지 말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호기심과 우연에 이끌려서 되는 대로 가꿀 뿐이지만, 내게는 여기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씨앗 1, 이것은 내가 꿈꾸던 정원이 아니다〉 중에서
이 아기는 영원히 내 큰언니를 모를 것이다. 나를 도시로 데려가서 한밤중 달빛 아래에서 수영하게 해줬던 언니. 우리가 프랑스에서 노 저어 호수를 건널 때, 자신의 첫아기를 담요에 둘러 곁에 재워두고 〈리퍼블루스〉를 노래하던 언니. ‘못된 놈들 때문에 낙담하는 건 네 손해’라고 알려주고, 희망과 애정과 렌틸콩으로 여러 번 내 삶을 일으켜줬던 언니. 천장에 별을 그리고 현관에 야생화를 길렀던 언니. 부푼 내 배에 손바닥을 대고,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에게 조잘조잘 말 걸던 언니. 내가 사랑한 내 언니가 없어졌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영원히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씨앗 1, 이것은 내가 꿈꾸던 정원이 아니다〉 중에서
지금 내 아들의 창밖에도 나무가 자란다. 재생의 상징인 자작나무다. 아이도 나처럼 제 나무의 계절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볼 테고, 나무의 모든 변화를 제 기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나무는 아이의 삶 가운데 몇 해를 목격할까? 몇 번의 추위를 견딜까? 아이가 기상 변화를 아예 모르도록 계속 막아낼 방법은 없다. 하지만 나무처럼 모든 시간과 계절이 우리 삶에 나이테를 새긴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있다. 그 시간을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조금은 단단해질 필요가 있단다. 하지만 계속 지켜보렴. 그러면 봄이 늘 돌아온다는 사실도 알게 될 테니까.
-〈씨앗 1, 이것은 내가 꿈꾸던 정원이 아니다〉 중에서
어머니가 정원을 가꾸는 것은 조용한 반항의 행동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연을 길들이려고 애쓸 때, 어머니는 자연을 격려했다. 어머니는 가방에 작은 휴대용 칼을 갖고 다니다가 눈에 띄는 잡초가 있으면 파내어 와서 집 화단에 심었다. 아무 표시도 없는 봉투에 연중 야생화 씨앗을 모았다가, 가을에 게릴라처럼 그 내용물을 정원 가장자리에 뿌렸다. 어머니는 자라난 꽃을 보고 깜짝 놀라기를 바랐다. 어머니의 다른 모든 행동처럼 정원 가꾸기는 어머니가 별달리 애쓰지 않고도 해내는 일인 양 보였다. 내 세상을 뒤덮은 감각을 불러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씨앗 2, 애도와 모성, 그 가혹한 순환 속에서〉 중에서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여기서 나타날 뭔가의 가능성을 봐주는 사람도 있을 테다. 모든 것이 모여서 때를 기다리며 형태를 갖춰간다. 나의 나날은 다시 단순해진다. 나는 머물기에 더 나은 곳을 찾는 일을 그만둔다. 바탕에 깔린 애도의 소음 위로, 돌과 흙의 침묵이 나를 달랜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런 일과로 채워지고, 이 속에서 우리는 자란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손이 갈라져도 우리는 계속 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밤에 잠이 든다.
-〈씨앗 2, 애도와 모성, 그 가혹한 순환 속에서〉 중에서
“엄마는 나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해! 난 망가졌으니까. 그리고 망가진 건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니까.” 멍들고 바늘에 찔린 내 작은 소년, 이 아이에게 나는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두렵다. 망가진 존재라고 느끼는 기분을 나는 안다. 어느 아이도 그런 기분을 느껴서는 안 된다. 나는 진흙이 묻은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두 눈을 똑바로 본다.
“엄마 말 잘 들어. 넌 망가지지 않았어. 넌 아름답고 멋있어. 그리고 네가 내 아들이라서,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운 좋은 엄마야. 이걸 꼭 기억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말이고, 아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그리고 내게도 필요한 말이다.
-〈씨앗 3, 삶이 우리를 진흙탕으로 이끌 때〉 중에서
다시 정원을 본다. 정원은 내가 없었는데도, 또 홍수를 겪었는데도 살아남았다. 정원은 아직 남은 것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 헐벗은 당개나리 가지는 어떤가? 아니면 저기 습지 정원 가장자리에 용케 매달려 살아남은 노란 꽃창포 무리는? 한때 어머니의 정원에서 자랐던 이 식물들은 이제 이곳을 집으로 삼았다. 차가운 땅을 덮은 잎들은 우리가 심은 나무에서 왔다. 나를 따끔하게 쏘는 서양쐐기풀은 아들이 심은 것이다. 나는 통통한 분홍색 벌레를 쪼는 블랙버드를 본다. 모종삽에 들러붙는 흙조차도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 작은 초록 싹들이 땅을 뚫고 나온다. 첫 설강화가 이르게, 용감하게 솟아난다. 여기, 모든 생명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곳에도 꽃들이 있다.
- 〈씨앗 7,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 중에서
우리는 구근 하나마다 희망을 하나씩 심는다. 꽃을 피우는 구근이 하나 있다면 썩어버리는 구근도 하나 있다는 것, 싹을 틔우는 씨앗이 하나 있다면 엘더나무에서 기다리는 새들이 먹어버리는 씨앗도 하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다면 그냥 심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라리라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은 한 단위의 기쁨과 한 단위의 슬픔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행복의 봉우리란 없고, 성취해야 할 완벽한 삶도 없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지럽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삶뿐이며, 나는 이 삶에 감사한다.
- 〈씨앗 7,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 중에서
만약 어머니 식물에게 위협이 닥치면, 식물은 미래에 자식 식물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기억을 씨앗 속에 남겨둔다. 이제 자신의 삶으로 뻗어나가는 아들에게, 나는 아이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어둠에 지지 않고 희망을 지켜내는 씨앗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때 돌과 쓰레기와 모든 망가진 것으로부터 정원을 길러냈으며, 게다가 그 정원이 번성했다는 기억이다. 나는 기다리고 있는 흙 위에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정원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기억한다. 달리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때는 앞으로 자라날 작은 것들에게 돌아가라는 교훈이다.
- 〈씨앗 8, 들풀의 구원〉 중에서
▽ 식물학자 신혜우, 시인 김소연·박준 추천
▽ 2024 노틸러스 도서상 은상 수상
■ “망가진 이 삶에서도 무언가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기에”
상실과 가난으로 부서진 땅, 그곳을 들풀 정원으로 가꾼 시인의 10년
우리는 자기 삶이 언제까지고 찬란한 장미 정원으로 남길 바라지만, 그 누구의 정원도 질병과 가난, 이별과 죽음, 실패와 실망이라는 침입종을 피할 수는 없다. 울타리를 넘어 번지는 이 ‘잡초’들은 아무리 뽑아내도 사라지지 않고 수시로 우리를 주저앉힐 것이다. 중년을 앞둔 무명 시인 빅토리아 베넷(Victoria Bennet)의 삶 역시 깊은 슬픔과 가난에 침략당한 폐허다. 세상은 예술가를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늘 가난에 허덕이고, 몇 번의 유산 끝에 어렵사리 아이를 가졌으나 태어난 아이는 고작 세살에 제1형 당뇨를 진단받았다. 그리고 출산 두 달 전, 자신과 함께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던 사랑하는 큰언니는 강가에서 카누를 타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베넷은 이 가없는 상실감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잉글랜드 컴브리아주의 시골 마을에 지어진 공공 주택 단지로 이사하기로 결심한다. 그 단지는 과거 석공장 터에 지어져서 마당이 온통 돌무더기에, 땅속에는 철근과 석면으로 가득하지만 그녀는 아픈 아들과 함께 그곳을 정원으로 만들기로 한다. 그저 “이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무언가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베넷은 음식물찌꺼기로 퇴비를 만들고 지렁이의 힘을 빌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준비한다. 비싼 모종은 살 수 없으니 들과 내에 자라는 들풀의 씨앗을 모으고 뿌리째 조심스레 발굴하여 자신의 마당에 옮겨 심는다. 더 이상 슬픔이 자신의 정원을 차지해버리지 못하도록, 언젠가 이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자신과 가족을 치유하는 약이 되어줄 것이라는 한줄기 희망으로.
『들풀의 구원』은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은 뒤 아들과 함께 10여 년간 야생 정원을 일구며 진정한 애도와 희망을 얻은 한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유년의 상처와 가난과 상실로 스스로 망가진 땅이라 믿었던 저자는 들풀을 거두어 끈질기게 정원을 가꾸면서 야생으로부터 깊은 위안을 받는다.
■ “우리가 절망하고 슬퍼할 때에도, 야생 정원에서는 무엇이든 자라난다”
한여름의 짙푸른 잡초처럼 희망이 무성하게 자라는 어느 정원의 풍경
“가난의 풀, 우리 정원의 난민, 잡초는 도대체 어디서 태어나 여기까지 왔을까?” 사람이 원치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야생 식물을 일컫는 잡초는 인류 역사에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재배되고 내쫓기기를 반복했다. 저자의 삶은 도무지 길들여지지 않아 환영받지 못하는 이 교란지 식물들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죽은 언니를 향한 끝나지 않는 애도는 죽은 유령처럼 현재를 떠돌지만, 자신의 돌봄이 절실한 아들을 위해 매 순간 필사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열매를 맺고 언제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고, 얼어붙은 땅에서도 되살아나야 하는 잡초의 운명이다.
인생의 불확실함과 무력감에 맞닥뜨렸을 때 시인은 들풀 정원을 가꾸며 스스로를 구원했다. 얼어붙은 흙을 고르고 자생 가능한 토양으로 마당을 다지며 겨울을 보낸 그녀는 드디어 본다. 부서진 흙과 갈라진 바위틈에서 쐐기풀, 우단담배풀, 미역취, 수선화, 창질경이, 석잠풀 같은 것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그곳에 곤충과 새 등 새로운 생명이 날아드는 모습을. 그리고 콩과 호박과 로즈메리가 식탁을 향기롭고 풍성하게 채우고, 들풀의 꽃과 열매와 씨앗이 잼과 수프와 술과 차와 물약으로 돌아오는 현실을. 회색 돌뿐이던 그들의 정원이 재생과 희망의 약초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베넷은 이토록 경이로운 정원의 마법 속에서 천천히 자신을 치유하면서 큰언니를 온전히 애도하고 지금까지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지병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라나는 아들을 바라보며 확신한다. 결코 “우리는 망가지지 않았다”고. 그리고 “때로 우리 삶은 부서짐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덕분에 자라날 수도 있다”고.
■ “회복을 위한 데이지, 역경에 맞서는 서양민들레, 외로움에는 붉은장구채…”
당신 인생의 모든 계절에 건네는 90가지 들풀의 위로
“썩은 구근이 있다면 살아나는 구근이 있듯이” 한 생명이 가고 한 생명이 다가오는 자연의 섭리는 경이로운 동시에 가혹하다. 왜 삶은 사랑하는 존재를 주었다가 다시 앗아가는가. 가슴을 찢는 애도 속에서도 육아는 삶의 환희가 되고, 아이가 한 뼘 자라나면 부모와의 이별은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저자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애도와 모성을 야생의 순환에 비유하며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울부짖듯 노래한다. 삶의 무게를 이고 지며 살아온 한 인간의 길들여지지 않는 형형한 야생성 앞에서, 독자는 어느새 자기 삶의 볕과 그늘을 툭 하고 터놓게 된다. 야생의 에너지로 응축된 저자의 문장은 번역가 김명남의 유려한 번역으로 다시 태어나 깊은 울림을 전한다.
베넷은 이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뿌린 씨앗이 정원을 이룰지 알지 못했듯, 우리에게 손에 쥔 것이 고작 한 줌 잡초 씨앗일지라도 희망으로 자라날 무언가를 그저 “심어보라”고 권한다. 회복력을 상징하는 데이지, 역경에 맞서는 서양민들레, 외로움을 물리치는 붉은장구채… 저자는 90가지 들풀의 이름과 모습, 약초학에서의 쓰임과 주술적 의미를 자기 삶의 이야기와 연결 지음으로써 독특한 구성의 회고록을 완성시켰다. 우리 발밑에 있었으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존재들, 지나쳐온 소중한 삶의 가치들을 눈여겨보길 바라는 섬세한 의도에서다. 현재형으로 쓰인 90편의 짧은 글들은 들풀 고유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판화 그림과 어우러져 마치 한 권의 아름다운 압화집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한국어판에 특별 수록한 식물세밀화가 조아나 작가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들풀 정원을 거니는 듯한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
■ “무엇이 될지 모르는 씨앗일지라도, 희망을 심는 마음으로”
부서지지 않는 모성, 그리고 세상 모든 ‘야생의 여자들’에게 보내는 연대
저자는 정원을 가꾸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가난하고 부족한 어머니일지라도 아이게는 충분히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도록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었던 ‘야생의 여자들(Wild Womens)’을 떠올린다. 바로 “아무 표시도 없는 봉투에 야생화 씨앗을 모아 정원 가장자리에 뿌리는” 의외성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어머니, 아무리 힘든 경험도 이로운 것으로 바꿀 줄 알았던 큰언니와 힘들 때마다 투사처럼 달려와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언니들, 그리고 자신과 함께 목소리를 내어주는 친구들 말이다. 베넷은 어머니의 정원에 심겨 있던 당개나리 꽃가지를 꺾어 자신의 정원에 심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을에는 큰 홍수가 나서 정원은 다시 만신창이가 되지만, 당개나리는 죽지 않고 다음 계절에 꽃을 피울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생명이 가고 새로운 생명이 이어진다.
어머니 식물에게 위협이 닥치면, 식물은 미래에 자식 식물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기억을 씨앗 속에 남겨둔다고 했다. 저자는 어둠에 지지 않고 희망을 지켜냈다는 기억, 돌과 쓰레기와 모든 망가진 것으로부터 정원을 길러냈으며, 게다가 그 정원이 번성했다는 기억을 이 책에 씨앗처럼 남겼다. 그리하여 정원이 가르쳐준 인생의 진실을 우리에게 전한다. 달리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때에는 앞으로 자라날 희망을 심어보라는 바로 그 진실 말이다.
작가정보
Victoria Bennett
시인이자 정원사, 그리고 어머니.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문예창작학 석사를 취득했고 30여 년간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와일드 우먼스 프레스(Wild Womens Press)를 설립하여 20여 년간 시골 공동체 여성 작가들의 시집을 펴냈고, 2,000여 명의 회원을 둔 ‘야생의 여자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각종 워크숍과 행사를 개최해왔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오크니 제도로 뿌리를 옮겨간 지금도 여전히 시를 쓰고 야생 정원을 돌본다.
『들풀의 구원』은 베넷의 첫 책으로, 야생식물을 돌보며 씨앗과 열매를 얻고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며 치유받았던 10년의 시간을 압화집처럼 담아낸 회고록이다. 이 책으로 영국 예술위원회 산하 작가 지원 단체인 뉴라이팅노스에서 수여하는 노던데뷔상과 노던프로미스상 등을 수상했고, 2024년에는 노틸러스 도서상 회고록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2회 롯데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상 수상,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명랑한 은둔자』 『경험 수집가의 여행』 『비커밍』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면역에 관하여』 『틀리지 않는 법』 『행동』 『지상 최대의 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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