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호의 선원들
2024년 07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3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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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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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쾌락과 돌봄, 퀴어와 가족, 래디컬과 순응의 관계를 흩뜨리며 끊임없이 나와 우리를 다시 빚는 ‘되어 감’의 과정을 담고 있다. 문화적 이분법과 명명의 한계를 조심스럽게 피해 가며 파트너와 아이를 비롯한 타자들과의 마주침을, 그들이 가져다준 갖가지 쾌락을, 서로를 보듬는 보통의 헌신을 열렬하고도 진실하게 재현한다.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달리 삶의 내밀한 사건들을 (인용을 경유해) 이론적, 비평적 성찰과 긴밀하게 엮은 이 책은 출간 후 문화계 전반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작품과 삶, 공과 사의 구분을 무너뜨린 오랜 페미니즘 전통을 잇는 한편 ‘자기 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명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25쪽
스스로를 진짜 편에 세우고 다른 사람들은 근사치나 흉내에 불과한 놀이를 하고 있다고 암시하며 얻는 쾌감이야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만이 진짜라는 완고한 주장은, 특히나 이 주장이 하나의 정체성에 매여 있는 경우에는, 착란에도 한 발 담그고 있기 마련이다.
84쪽
사람들이 자기 젠더나 섹슈얼리티에 관해-실은 그 무엇에 관해서건-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그 말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것이지, 그들 본인이 밝힌 현실을 당신의 현실로 뒤덮어 버리는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126쪽
우리는 수시로 네 몸에 붙은 배액관을 종이컵에 비우고 가득 찬 혈액 등등을 호텔 변기에 부어 버려야 했다. 그때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너를 사랑했다. 인공 체리색 배액관과, 더 나은 삶을, 맨살로 바람을 쐴 수 있는 삶을 살고자 수술을 선택한 네 용기와, 호텔 베개를 쌓아서 만든 왕좌에 상체를 지탱하고-실밥이 터지지 않게-꾸벅꾸벅 잠이 드는 너를.
156쪽
사람을 녹초 만드는 자립성 대신 의존을 불쑥 시인하고 나면, 긴장이 누그러지며 몸이 풀린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속엣것은 잘 담아 두려 언제나 애쓰겠지만, 보다 가시적으로 풀어헤쳐지고 아파하는 사람보다 월등해 보이려고 내 이런저런 의존을 숨기는 데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171쪽
머무는 쾌락. 계속 요구하고 고집하는 쾌락. 의무의 쾌락, 의존의 쾌락. 보통의 헌신의 쾌락. 이미 깨달은 것을 새삼스레 다시 깨닫고 이미 적은 메모를 새삼스레 다시 여백에 기입하고 작업하면서 같은 주제로 다시 또 돌아가고, 같은 정서적 진실을 다시 또 배우고, 같은 책을 여러 번 다시 써야 할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쾌락.
217쪽
그런데 정말 없음이, 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우리가, 얼마 동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의 돌봄, 그 진행 중인 노래로 여기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쾌락과 돌봄, 퀴어와 가족,
래디컬과 순응의 관계를 흩뜨리며
나와 우리를 다시 또 빚는 무한한 되어 감의 노래
사랑, 트랜지션, 파트너십과 재생산을 주제로
생의 한 시기와 관계들, 문화적 전제들에 질문을 던지는 자기 이론적 탐구
말이 제약이자 가능성임을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나아가며
갖가지 쾌락을, 보통의 헌신을, 평범한 행복을 언어화하려는 시도
♠ 2015년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 수상작 ♠
『아르고호의 선원들』 초반부에 매기 넬슨은 자기 집 머그잔에 인쇄된 사진 일화를 전해 준다. 사진에는 연말연시를 맞아 말쑥하게 차려입은 넬슨의 식구가 찍혀 있다. 넬슨의 파트너인 해리 도지, 도지와 전 파트너 사이에서 난 넬슨의 의붓아들, 얼마 뒤 이기(Iggy)가 될 태아를 품은 넬슨 자신이 사진 속 등장 인물이다. 인터넷 주문을 통해 머그잔에 사진을 새긴 사람은 넬슨의 어머니다. 넬슨은 사진 묘사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린 행복해 보인다”(23).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머그잔을 보고는 말한다. “와. 내 평생 이렇게 이성애 규범적인 건 처음 봐.” 이 말에 넬슨의 머릿속에는 일련의 질문이 연잇는다. 이 사진이 우리의 관계에 관한 진실을 말해 주는가? 가족처럼 보이는 관계를 꾸리면 어김없이 가족이라는 범주에 포획될 수밖에 없을까? 파트너인 해리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면(“호르몬 맞는 부치로 정체화하는 데 만족하는 해리”) 같은 사진도 다른 의미를 띠게 될까? 한 사람을 근본적으로 탈바꿈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이 어째서 곧장 순응과 연결되는 걸까? 어떤 기준으로 정상성과 전복, 순응과 급진을 나눌 수 있으며 누가 나누는가?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시, 회고록, 비평을 넘나들며 장르를 구부러뜨려 온 매기 넬슨의 대표작이다. 이 책에서 그는 파트너 해리 도지와 사랑에 빠진 시점부터 해리 어머니의 사망과 넬슨 자신의 출산에 이르는 몇 년간을 소재로 삼아 퀴어함, 사랑, 모성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글쓰기로 재생한다. 그러면서 파트너십과 트랜지션, 돌봄을 주제로 끊임없는 되어 감(becoming)의 고통과 쾌락을 기록하고 언어가 갖는 한계뿐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려 시도한다.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달리 삶의 내밀한 사건들을 (인용을 경유해) 이론적, 비평적 성찰과 긴밀하게 엮은 이 책은 작품과 삶, 공과 사의 구분을 무너뜨린 오랜 페미니즘 전통을 잇는 한편 이 양식을 새로이 일컫는 ‘자기 이론’(autotheory) 개념이 생명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출간 직후 이 책은 “오늘날 미국에서 활동하는 가장 짜릿한 작가이자 동 세대의 가장 예리하고도 유연한 사상가”(올리비아 랭),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고 나는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졌다”(율라 비스), “독창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며 마음으로 가득한 눈부신 책”(킴 고든)이라는 평가를 비롯해 문화계 전반으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넬슨을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2015년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안겨 주었다. 번역가 이예원이 독보적인 언어 활용으로 조탁한 한국어판은 우리 삶을 어떻게 보듬고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줄 것이며, 언어가 불완전하면서도 그만하면 충분할 수 있음을 감각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드러내 줄 것이다.
이분법과 규범을 사양하고 구체적으로 삶에 다가가며
‘진짜라는 느낌’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재정의하기
해리에게 사랑을 고백한 직후 넬슨은 그에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호 원정대’를 두고 롤랑 바르트가 쓴 구절을 보낸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선박의 이름은 그대로임에도 바다를 항해하며 배를 점차 새로이 만들어 가는 아르고호의 선원’과도 같다고 바르트가 설명한 대목이었다.” 넬슨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체의 각 부위가 교체되고 그러므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선박이 아님에도 변함없이 아르고호라는 이름으로 부르듯이, 연인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이 문장에 담긴 의미는 그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매번 갱신되어야 한다”(11).
이 해석은 ‘사랑해’라는 단언뿐 아니라 언어 자체에도 적용되며 삶과 정체성,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와 나, 우리는 언제나 똑같이 불리겠지만 그 내면은, 어쩌면 외형도 끊임없이 무언가가 되어 가는 중이다. 특히 해리와 넬슨은 얼마 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깊은 변동을 경험한다. 해리가 트랜지션을 위한 테스토스테론 투여와 수술을 결심하고 넬슨은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이 이들과 둘의 관계를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기록하지만 단순한 회고와는 거리가 멀다. 이 사건들에 결부된 사회적 정의와 문화적 상상이 얼마나 협소하고 경직돼 있는지를 의심하고 한층 포괄적인 정의에 도달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표다.
넬슨은 퀴어와 래디컬이라는 말을 재고의 대상으로 삼는다. 퀴어와 래디컬을 한쪽에 두고 혼인과 임신을 다른 쪽에 두는 문화적 이분법과 동성혼에 대한 찬반론에 개입하며 그는 자신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을 따라 퀴어의 정의를 “각양각색의 저항과 균열과 불일치를 모두 아우르는 말”로 확장하려 한다(이 단어의 의미가 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과 근본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아르고호처럼 주격으로 작용하는 단어, 탈피(脫皮)한 혹은 교체되는 선체 부위와 부품을 지명하려는 의사를 지니는 단어, 언명하는 한편 포착을 피하는 수단이 되는 단어이길”(47).
이 책은 묻는다. 서로 대립하는 듯 보이는 단어들 자체에 고착되어 개개 사례의 다양함과 다채로움을 놓치는 빈약한 사회적, 문화적 상상이 문제의 한 축은 아닐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정한 삶의 형태만이 퀴어하거나 래디컬하다는 것도 일종의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중반부에 그는 모성과 예술, 돌봄과 성애의 구분을 무화하는 A. L. 스타이너의 전시 〈강아지와 아기〉를 비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몸의 경험이 종류 불문하고 새롭고 낯설게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이 인생에서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뚜껑 덮어 은폐할 필요가 없으며 그 어떤 일련의 관행도 관계도 이른바 래디컬과 이른바 규범성을 독차지하지는 않음을 상기시킨다”(114).
이 책에서 주된 영감의 원천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정신 분석가 D. W. 위니콧이다. 넬슨은 그의 ‘진짜라는 느낌’(feeling real)이라는 개념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우리는 진짜와 가짜를 나누고 나만이 진짜 편에 서 있다는 유혹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위니콧은 “누구나 자신이 진짜라는 느낌을 갖고자 바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진짜라고 느끼도록 도울 수 있으며, 스스로 진짜라고 느낄 수도 있다”고 보았다(25). 각자가 저만의 방식으로 진짜일 수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면 어떤 급진적인 말도 “규범/위반이라는 이분법과 누구에게나 하나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강요”(117)에 미끄러질 위험이 생긴다. 반대로 넬슨은 세지윅의 지침을 받아들여 “사람들은 각기 다르다”(115)는 사실을 유념하고 무엇에 관해서든 “복수화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하려 한다(98).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얼핏 규범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삶의 세부들이 깊게 들어가 보면 독특하게 진짜라는 느낌을 추구하는 과정일 수 있음을 자신의 사랑과 출산, 나이 듦을 사례로 예증하는 책이다.
우리의 근원적인 의존과 취약성을 인정하는 순간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보듬음과 보듬어짐의 쾌락
그렇지만 끊임없이 진짜라는 느낌을 확보하는 과정은 나 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타자들과의 마주침 속에서 나를 내주는 위태로운 결심이야말로 되어 감의 동력이다. 해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넬슨은 “속을 까발리고 당황한”(11) 기분을 느낀다. 또 이기를 배고 낳기 위해선 “끝없이 추락하며 산산이 조각날”(166)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 두 존재와의 마주침을 통해 그가 상기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근원적인 취약성(vulnerability)이다. 그렇지만 취약성은 단순히 내 약함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나를 지키면서도 뭐든 다 줄”(12) 가능성을 발견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중반부에 넬슨은 해리가 탑 수술을 받고 자신은 임신 4개월차가 된 2011년 여름(“너와 나의 몸이 변해 가던 여름”)을 떠올린다. “표면상 네 몸은 점차 더 ‘남성’에 가까워지고 내 몸은 점차 더 ‘여성’에 가까워지는 듯이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면의 느낌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이 되어 가고 있었을까?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나이 들고 있었다”(129). 이때 ‘나이 들어 감’은 자신들이 특정한 정체성에 한정되지 않음을, 또 쾌락과 기쁨이 특정한 형태에 고착되지 않음을 강조하려는 표현이다.
넬슨은 해리와의 성적인 관계가 깊은 쾌락을 안겨 주었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내 도착과 속궁합이 잘 맞는 걸 넘어 완벽히 들어맞는 도착을 가진 사람을 찾기까지 왜 이리도 오래 걸렸을까?”(109) 하지만 이기를 낳은 이후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성벽에의 권리와 더불어 피로에의 권리 또한 있다”(168)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쾌락(pleasure)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쾌락이 있으며 의존과 돌봄도 쾌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다. 넬슨은 임신한 몸을 이끌고 해리의 탑 수술 여행에 동행한다. 수술이 끝나고 호텔 방에서 회복을 도우며 넬슨은 감동적으로 말한다. “우리는 수시로 네 몸에 붙은 배액관을 종이컵에 비우고 가득 찬 혈액 등등을 호텔 변기에 부어 버려야 했다. 그때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너를 사랑했다. 인공 체리색 배액관과, 더 나은 삶을, 맨살로 바람을 쐴 수 있는 삶을 살고자 수술을 선택한 네 용기와, 호텔 베개를 쌓아서 만든 왕좌에 상체를 지탱하고-실밥이 터지지 않게-꾸벅꾸벅 잠이 드는 너를”(126).
과거 넬슨은 유능한 여성이길 원했고, 의존을 경멸하고 고도의 능력 발휘에서 자존감을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해리, 임신과 출산을 비롯한 많은 마주침이 그를 바꿔 놓았다. “사람을 녹초 만드는 자립성 대신 의존을 불쑥 시인하고 나면, 긴장이 누그러지며 몸이 풀린다”(156~157). 그에게는 바로 이것이 수행성(performativity)의 의미다. 그는 수행성이 전략이나 속임수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를 위해 혹은 다른 이 덕에 존재하는 여러 방식을, 그것도 일회성으로나 특정한 경우에 한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리고 노상 그리하는 방식을”(95) 뜻하는 개념이라고 믿는다.
내 취약성과 의존에 열려 있다면, 아기를 비롯한 타자들을 내가 보듬을 때조차 나 역시 그들에게 보듬어진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기존의 나(라고 생각했던 것)에게서 돌아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쾌락과 기쁨은 다른 이를 충족시키고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것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하나의 윤리라고 부를 테다”(148~149).
말의 한계와 가능성을 거듭 시험하며
언어가 불완전하더라도 그만하면 충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회고록의 수행에 관한 책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느슨하게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해리와 만나 사랑에 빠진 넬슨은 해리와 해리 아들과 함께 살게 된다. 중반부에 해리는 호르몬 투여와 수술을, 넬슨은 임신을 결심하며, 말미에 이르면 해리 어머니의 사망과 넬슨의 출산이 병치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달리 ‘기억’에 큰 무게가 실리지는 않는다. 하나의 일화에서 다음 일화로, 하나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간중간에 질문, 비평, 성찰이 자유롭고도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가령 그는 임신 기간에 자신이 모유를 만들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일화를 전한다. 하지만 이 일화를 길게 이야기하는 대신 그는 곧바로 어머니와 모유의 유한함이 아이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카자 실버먼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이어 모성을 다른 방식으로 재현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실버먼에 응수하며 글쓰기와 재현이라는 영역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고는 모유가 독성분을 함유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급한 다음 담배 연기 때문에 유독했던 바에서 일하며 그곳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자존감의 재료로 삼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이런 성향을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경유해 타인에 대한 멸시가 얼마나 소모적인지를 깨달은 현재로 다시 돌아온다.
넬슨은 “난 내 경험을 펼쳐 보이고 나라는 사람이 생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수행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150)라고 말한다. 출간 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는 “제게 기억은 그다지 흥미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저는 수행적 글쓰기에 흥미가 있어요. 열기를 가진 것을, 혹은 무언가와 함께 움직이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 바 있으며, 다른 인터뷰에서는 “저는 ‘나 자신’에 대한 글쓰기와 ‘더 포괄적인 쟁점들’에 대한 글쓰기를 크게 구분하지 않아요(그런 면에서는 에머슨주의자일 수도 있겠네요. 그냥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르고요)”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변화의 와중에 넬슨의 머릿속에 질문들이 떠오르고 그가 답하고자 한 과정을 재생한 책이다.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형식 실험에 몰두한 결과물보다는 차라리 형식에 무관심한 책에 가깝다. 자신이 “생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수행”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덜어 내고 더하며 다듬어 나간 과정의 산물.
넬슨은 언어의 문제에 섬세하게 접근하는 작가다. 언어는 포착하지만 그러자마자 물화한다. 오랫동안 “사적인 걸 공공에 드러내는 데”(95) 관심을 보인 그로서는 언어의 위험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의 해결책은 언어를 기피하는 대신 “수많은 가능한 용례와 맥락, 낱낱의 단어가 날아오르게 만들 날개들”(16)을 언어에 매달아 주는 것이다. 그는 어머니들이 행하는 ‘보통의 헌신’이 ‘그만하면 충분하다’(good enough)고 주장한 위니콧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언어도 그만하면 충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글쓰기의 결과는 일차적으로 비범한 형식이지만, 파괴하기보다는 연결하고 논쟁적이기보다는 시적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감격과 희열로 가득 차 있으며, 그가 들려주는 끊임없는 되어 감의 노래는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든다”(26).
작가정보
(Maggie Nelson)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1990년 웨슬리언 대학교 영문학부에 입학해 애니 딜러드의 가르침을 받았고, 1998년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에 들어간 뒤 아일린 마일스, 웨인 쾨스텐바움,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 등에게서 수학했다. 2001년 첫 시집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성폭행 살해 피해자인 이모 제인에 관한 책인 『제인: 어느 살인 사건』(2005)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뉴욕 학파 시인과 예술가 몇몇을 중심으로 추상 표현주의와 젠더를 고찰한 『여성들, 뉴욕 학파, 여타 진정한 추상들』(2007), 『제인』의 후속작인 『빨간 부분: 어느 재판의 자서전』(2007), 블루라는 색상을 매개로 고통, 쾌락, 상실 등을 개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시각으로 성찰한 『블루엣』(2009), 예술 안팎의 잔인함과 폭력을 다룬 비평서 『잔인함의 예술』(2011) 등을 출간했다. 2015년에는 사랑, 트랜지션, 파트너십과 재생산을 주제로 끊임없는 되어 감의 쾌락과 고통을 논하고 단언과 명명의 한계 및 가능성을 살핀 자전적 에세이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발표해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최근작으로는 예술, 섹스, 약물, 기후를 중심으로 자유와 한계, 돌봄을 탐구한 『자유에 관하여: 돌봄과 제약으로 엮인 네 가지 노래』(2021), 지난 20년간 쓴 에세이와 비평, 대담 등을 묶은 『사랑처럼』(2024)이 있다. 2005년부터 캘리포니아 예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21년부터는 남캘리포니아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구겐하임 펠로십 논픽션 부문(2010), 크리에이티브 캐피털 문학 부문(2012), 맥아더 펠로십(2016) 등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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