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란, 나폴리
2024년 07월 24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7월 0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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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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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작업 여행’ 시리즈는 낯선 곳에 선 작가의 외로움과 치열한 감각을 전한다. 작가의 여행은 걸음으로 생성되는 텍스트일 것이다. 그 걸음에 동행할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다들 부럽다고 하지만 11
Arrivi: 도착 17
정, 왜 나폴리에 왔나? 25
아임 낫 어 캡틴 가이 34
아이고, 맘마미아! 40
사랑한다, 노래한다, 먹는다 47
카페 소스페소 54
등가교환의 법칙 61
마른 멸치와 안초비 68
파랗게 물들다 74
외곬이라는 재능 82
이름을 안다는 것 91
2부 이 도시의 불빛들이 말해준 것
에르콜라노 -베수비오 화산에 슬픔을 묻고 101
프로치다 -우편배달부의 해변 109
베네치아 -물의 도시에 서린 죽음의 기운 116
피렌체 -지난 사랑을 되돌릴 수 있을까 125
발도르차 -진실의 풍경 132
로마 -불멸의 작품 앞에서 140
포지타노 -가보자, 포기하지 말고 148
이스키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155
폼페이 -최후의 순간에 할 수 있는 말 164
나폴리 -이 도시의 불빛들이 말해준 것 172
3부 파란, 그리움
에필로그 나만의 나폴리
나폴리에 대한 사랑을 키우며 ‘나폴리 4부작’으로 유명한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기 시작했다. 동시에 소설을 영상화한 드라마도 봤다. 1950년대의 나폴리가 배경이긴 하지만 시작부터 내내 왜 이렇게 잿빛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자주 나오는지……. 다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유명한 유럽 여행 카페에 들어가 ‘나폴리’를 검색해보니 조금 전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이 올라와 있었다. 여하튼 마침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전부 밤 11시에 도착하는 비행기들뿐이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나폴리에서의 90일을 기다렸다.
-16쪽
‘영화감독은 배의 선장이라는데, 나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이렇게 말했다. “무비 디렉터 이즈 캡틴, 벗 아임 낫 어 캡틴 가이.”
그렇게 이국의 언어로 소리 내어 말하고 나자 정말 뭔가가 명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전까지는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한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영화에 ‘실패’했다고도 말한 적이 없었다. 감독이 스스로의 작품을 실패작이라고 말하기에, 영화는 개인만의 작품이 아니다. 비바람과 먼지를 뒤집어써가며 고생한 스태프들과 평생 필름에 남은 출연 배우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어로는 이상하게도 그 단어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나자, 내 인생의 한 막이 깔끔하게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37~38쪽
어느 날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 5시에 일어난 나는 홀로 어두운 골목길을 올라 전망대로 향했다. 나폴리에서 생활한 지 두 달 가까이 된 시점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동틀 무렵 전망대에 도착해 잠들어 있던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제 나는 나폴리 구석구석의 지명들을 알고 있었고, 나폴리는 내게 더이상 두려운 미지의 도시가 아니었다.
-93쪽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나 엽서 같은 발도르차 평원은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풍경이었다. 동시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기 때문에 치명적이었다. 나는 이러한 압도적인 풍경을 ‘진실의 풍경’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다음과 같은 장면을 떠올려본다. 어느 커플이 보라카이의 바다에서 선셋 세일링을 하며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풍경을 맞이하는 순간. 혹은 일본의 깊은 산골 노천 온천에서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풍경을 맞이하는 순간. 보통은 “이런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보다니 우리는 결혼해서 평생 살 수밖에 없겠어”라고 할 만한 풍경이다. 그러나 함께 압도적인 풍경을 감상한 뒤에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게 되는 장면.
-137쪽
가보자, 포기하지 말고.
이 여정 끝에 보상이 있으리라는 낙관이 생겼다. 아니, 설령 날씨가 끝까지 좋지 않더라도 이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뭔가를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품은 낙관에 나도 놀랐다. 사람이 태도의 관성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최악의 하루가 예상치 못한 놀라운 행복으로 마무리되었던 어제의 경험으로 몸에 새겨진 좋은 감각 덕분이었다. 나는 앞도 보이지 않는 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53쪽
이 도시의 불빛들은 이제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었다. 저곳에는 내가 3개월간 머무른 안나의 비밀 정원이 있고, 저곳에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은 브라우도서관이 있고, 도시의 이곳저곳에는 내가 알게 된 나폴리오리엔탈대학교의 학생들이 살고 있고, 맛있는 식당들이 있었다. 벅차올랐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었다.
도시 곳곳에서는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33년 만인 나폴리 축구팀의 세 번째 우승을 기념하며 폭죽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174쪽
■ 꼭 필요했던 환대의 감각
카페 소스페소란 ‘맡겨둔 커피’라는 뜻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가난해서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행위다. -58~59쪽
작가라 하여 특별할 건 없을 것이다. 그들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지금 시기에 뒤떨어지지 않는 경력을 쌓고 있는지 불안해한다. 정대건 작가도 그러했다. 영화를 만들었고 다큐를 찍었으며 이제는 소설을 통해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무겁고 외롭기만 하다. 나폴리에서의 90일이 그의 불안과 허무를 달래줄 수 있을까? 《나의 파란, 나폴리》는 나폴리라는 도시에서 기분 좋은 파란을 겪은 작가의 여행이다. 불안과 허무는 나폴리의 태양과 바다, 커피와 피자, 심지어 매연과 소음 앞에서 무력했다. 나폴리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는 작가를 어쩌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는지도 모른다. 되도록 집에 있고 싶어 했고, 사람들과 함께여도 본인의 시간을 챙기고자 했던 한 사람은 이제 자신이 앉은 자리에 올 다음 차례의 가난한 이를 위한 에스프레소를 달아둔다. 더는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으며 비관보다는 낙관에 가까운 쪽으로 삶을 해석한다. 나폴리의 무엇이 작가의 삶을 바꾼 것일까? 《나의 파란, 나폴리》의 파란 페이지들에 그 상세한 해설이 있다.
■ 진실의 풍경 앞에서
눈앞에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고 위로는 하늘이 탁 트여 있고 등 뒤에는 뜨거운 온천수가 넘실대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돌체 파르 니엔테, 무척이나 달콤했다. -162~163쪽
1부 〈파랗게 물드는 용기〉가 나폴리에서의 체류기라면 2부 〈이 도시의 불빛들이 말해준 것〉은 이탈리아 곳곳을 찾아다닌 여행기다.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폼페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부터 프로치다, 발도르차, 포지타노, 이스키아에 이르기까지 마음먹고 떠나지 않으면 닿기 힘든 지역 명소에까지 정대건은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 영화와 소설을 떠올리며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최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변화를 여실히 느낀다. 완벽한 계획 이후에 움직이고는 했던 습성과 스스로를 운이 나쁜 존재라 여겼던 생각, 실패하기보다 차라리 포기하는 쪽을 택했던 사랑…… 모두가 그곳에서 달라졌다. 여행은 이렇듯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되었다. 3부 〈파란, 그리움〉은 작가가 직접 찍은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의 사진 열일곱 장이 실렸다. 책의 여러 부분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특유의 파란 색감을 띠는 사진은 《나의 파란, 나폴리》의 여운을 곡조가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가곡처럼 길게 이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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