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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김종욱 지음
역락

2024년 02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12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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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7427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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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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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의 근대적 이행과정을 살펴보는 책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근대문학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과 함께 문화적으로도 일본에 대한 종속성을 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륙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작가들이 실존적 모험을 감행하던 일상적 생활세계였으며, 한국의 전통이 서구적 근대와 만나던 언어적 접경지대였고, 한국의 사상이 국민주권이라는 정치적 상상력을 얻게 된 역사적 원천이 바로 중국이었다. 그러니 한국 근대문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한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해방 이후 삼팔선과 휴전으로 가로막혀 갈라파고스화 된 지리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길이기도 하다.
머리말

제1부 신민(臣民)과 신민(新民) 사이의 신소설

캉유웨이의 맥락에서 「혈의 누」 읽기 / 이인직
1. 청일전쟁과 동아시아
2. 구원자로서의 캉유웨이와 ‘연방체제’의 의미
3. 이인직과 공자교회 활동
4. 신소설의 진보성과 퇴행성

「륜리학」 번역 과정에 담긴 량치차오의 흔적 / 이해조
1. 제국의 위기와 윤리학의 등장
2. 이해조는 어떤 책을 번역했을까?
3. 이해조는 왜 윤리서를 번역했을까?
4. 남는 문제들

중국 의화본 소설집 「금고기관」과 「월하가인」 / 이해조
1. 들어가는 말 63
2. ‘실지사적’의 허구적 재구성 66
3. 중국인에 대한 긍정적 묘사와 그 의미 74
4. 신소설의 서사적 원천 82
제2부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의 문학적 스펙트럼

정치적 망명과 시인의 선택 / 주요한
1. 문학, 그 낯선 이름
2. 문사의 길과 무사의 길: ≪독립신문≫ 시절
3. 문학으로의 외도: 호강대학 시절
4. 준비론, 혹은 다른 목소리

민족 연대의 상상과 내셔널리즘의 분기 / 주요섭
1. 같은 곳 다른 시선
2. 상해 5ㆍ30사건이라는 갈림길
3. 주요섭의 「첫사랑값」(1925~1927)에 담긴 흔적들
4. 내셔널리즘과 인터내셔널리즘의 동시적 출현

중국혁명을 바라보는 아나키스트의 시선 / 류기석
1. 길림, 1927년 1월 27일
2. “나는 무명소졸이다”: 소설 「원한의 바다」 읽기
3.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연대와 ‘동방혁명론’
4. 매개항으로서의 아나키즘

민족에 대한 전근대적 상상 / 이광수
1. 「단종애사」가 놓인 자리
2. 도덕주의적 시선과 근왕주의적 어조
3. 신민회의 문학적 계승과 단절
4. 근대주의자 이광수의 퇴행

제3부 만주를 향한 새로운 상상지리

남만주 반석(磐石)의 풍경 1910~1945 / 이상룡
1. ‘동북작가’의 등장과 영토에 대한 새로운 감각
2. 남만주에서의 조선인 자치운동
3. ‘북향의식’의 안과 밖
4. 점유와 전유: 충돌하는 서사들

「대지」의 번역이 미친 문학적 여파 / 이무영
1. ‘펄 벅’이라는 현상
2. 「대지」 한국어 번역의 세 가지 양상
3. 농본주의 혹은 위장된 식민주의

‘거간꾼’과 ‘통역사’로서의 만주 체험 / 김만선
1. 김만선 소설과 만주
2. ‘거간꾼’으로서의 삶: 오족협화 속 재만조선인
3. ‘통역사’로서의 삶: 만주국에서 조선어의 위상
4. 제국의 잡종성과 귀환서사의 의미

제4부 제국의 해체와 국민국가 체제로의 재편

저항과 협력의 변주곡 / 박영준
1. 1934년 전후의 박영준
2. 강서적화사건과 만주국 협화회
3.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 「탈출기」
4. 뒤늦은 귀환, 섣부른 해결: 「죽음의 장소」

언어의 제국으로부터의 귀환 / 염상섭
1. 만주국 시절의 염상섭
2. ‘작가의 삶’으로의 귀환
3. 언어의 제국, 제국의 언어
4. 가해의 망각과 피해의 기억
5. ‘대동아공영권’의 삶, 다시쓰기

국가의 탄생과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 김석범
1. 망각의 역사와 기억의 복원
2. 재일조선인의 귀환과 망명
3. 윤리적 주체의 죽음
4. 김석범 문학과 「화산도」



제5부 다시 쓰는 역사 새로 꿈꾸는 미래

식민지 청년의 운명과 선택 / 김광식
1. 학생, 병사가 되다
2. 죽음으로의 행진: 상비군 혹은 의용군
3. 비겁한 자들의 용기
4. 겁쟁이들의 꿈

전쟁 동원과 ‘숭고한 희생’이라는 억설 / 선우휘
1. 베트남전쟁과 선우휘
2. 1964년의 언론 필화 사건과 선우휘의 변모
3. 속죄의식과 희생의 숭고성
4. 사르트르와의 결별

무국적자, 국민, 세계시민 / 최인훈
1. 제2차세계대전 속의 한국인
2. 피식민자와 국민, 그리고 민족으로 되돌아가기: 선우휘의 「외면」
3. 피식민자와 무국적자, 그리고 세계시민으로 거듭나기: 최인훈의 「태풍」
4. 공모의 기억과 책임의 윤리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갖기 쉬운 착각 중의 하나는 현상과 현상을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정작 공부를 하면 할수록 원인과 결과 사이에 또다른 매개항이 무수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려는 의지를 품고 있고,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시력을 갖추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현상과 현상 사이를 연결시켜 필연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잠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른 매개항이 발견된다면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설명해야 하니까요.
구체성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현실 세계가 무한한 것처럼 텍스트의 세계 또한 무한한 듯합니다. 그러니 문학사를 일관된 관점에 따라 하나의 선으로 설명하는 것은 복잡성의 세계를 미분하여 가시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텍스트와 텍스트를 연결시킨 ‘하나의 선’은 실제로 수많은 점들의 집합입니다. 좀더 명민해서 몇 개의 선을 더 그린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일원론을 비판하면서 ‘제삼의 길’ 따위를 내세워 다원론을 주장한 이들에 매혹된 적도 있었지만, 끝내 그들에게 동의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역사를 ‘하나’의 선으로 만드는 일을 비판했을 뿐, 여러 개의 ‘선’으로 만드는 자신들을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든지 혹은 그렇지 못했든지 상관없이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회적 평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텍스트도 예술적 성취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텍스트란 언제나 사람과 동격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이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유일한 흔적이니, 소중하고 섬세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가 생성되는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그 자체로 개별성과 자립성과 완전성을 지니고 있는 텍스트는 비유컨대, 하나의 별입니다. 그 하나하나의 별을 선으로 이어 ‘성좌’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 연구였다면, 그것은 입체적인 공간을 평면적인 공간으로 환원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을 제 모습대로 보기 위해서는 별자리 만들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보는 대로 ‘성좌’를 그리거나 ‘성군’을 만들 것이 아니라, 별들이 만들어내는 ‘성단’을 상상해야 합니다. 바깥으로는 다른 성단과의 입체적 관계를 살펴야 하고, 안으로는 그 성단의 가장 반짝이는 별빛을 돋보이게 만드는 어둠까지 함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문학사를 염두에 두면서도 하나의 방법론을 구상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너무 길었습니다. 하지만 임화의 신문학사를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이 방법론이라는 이름의 잣대를 먼저 제시하는 임화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여전히 수긍하지 못합니다. 대신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은 ‘점으로서의 문학사’였습니다. 각각의 점들을 동일한 좌표 위에 놓고 하나의 점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다른 점과는 얼마만큼의 거리를 지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에서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좌표는 시간과 공간과 이념이었습니다.
타자에 대한 의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근대라고 할 때, 먼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신민’과 ‘국민’, 그리고 ‘세계시민’ 사이의 길항이었습니다. 지금에야 누구도 ‘신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겠지만, 대한제국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일제강점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민’이 되고자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해방 이후 ‘국민’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국가에 개인의 삶을 의탁하거나 혹은 국가를 위해 동원되는 한, ‘신민’과 ‘국민’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풍문이나 가상 속에서 가까스로 존재하는 ‘자기통치’와 ‘세계시민’의 형상을 붙잡으려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건설된 국민국가에서 네이션/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스테이트/스테이티즘에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 소설의 근대적 이행과정을 살피면서 눈여겨 보았던 것이 더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로 확장되는 동심원적 공간이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근대문학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과 함께 문화적으로도 일본에 대한 종속성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대륙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의 작가들이 실존적 모험을 감행하던 일상적 생활세계였으며, 한국의 전통이 서구적 근대와 만나던 언어적 접경지대였고, 한국의 사상이 국민주권이라는 정치적 상상력을 얻게 된 역사적 원천이 바로 중국이었습니다. 그러니 한국 근대문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한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해방 이후 삼팔선과 휴전으로 가로막혀 갈라파고스화 된 지리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요즘 들어 문학을,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되묻게 됩니다. 말을 공부하는 것이 문학 공부라면, 말 너머에 존재하는 삶을 배우는 것이 인문학일 것입니다. 말을 모른 채 삶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삶이 말 너머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야 그 간극이 그리 멀지 않다고 믿었는데,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고 사람에 대한 믿음도 희미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 왔듯이 별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다 보면 언젠가 별무리를 그려 보고, 아름다운 미리내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종욱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 「한국소설의 시간과 공간」, 「한국 현대소설의 서사형식과 미학」, 「한국 현대문학과 경계의 상상력」, 평론집 「소설 그 기억의 풍경」, 「텍스트의 매혹」, 편저 「한국신소설선집」, 「심훈전집」 등이 있다. 대한제국기 신소설과 염상섭, 이기영 등 한국 리얼리즘 작가들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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