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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되는 임종

역락비평신서 31
허병식 지음
역락

2024년 02월 20일 출간

국내도서 : 2022년 11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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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7427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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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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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을 공부하고 문학비평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근대문학이라는 형식이 이미 몰락하는 양식이라는 점이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소문은 시대의 유행담론을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흐름에 대해서 나름의 답변을 마련하기 위해 몇 편의 글을 써 왔다. 이제 그 글들을 평론집에 묶으면서 다시 돌아보니, 시대가 변하고 양식들이 교체되는 이행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감각 그 자체가 나에게는 비평을 수행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던 듯하다. 그것은 이미 예고되었지만 그 집행이 지연되고 있는 어떤 몰락의 현장에 임하여, 그 사라짐을 지켜보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몰락의 운명을 스스로의 것으로 수락한 자들이 어떤 사유의 형식을 창안하여 상징적인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일은 쓸쓸하지만 의미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문자로 기록한 것들을 통해서 무엇을 수행해 왔는가를 기억하는 것이다.
제1부 지연되는 문학의 임종

장편소설에 대한 조선사람의 사상을
1. 노블의 노마드
2. 장편소설을 보호해야 한다
3. 근대의 축소, 기묘한 모순들
4. 천 개의 노블, 혹은 노블의 임종
5. 노블을 넘어서는 노블

문학의 공동체
1. 종언, 가능성의 중심
2. 감각적인 것의 지도
3. 글쓰기의 우울
4. 문학의 공동체

기원의 신화, 종언의 윤리학
1. 풍경의 발견, 근대문학의 사용법
2. 구성력에 대하여, 혹은 그것의 부재에 대하여
3. 내면의 발견, 다른 모더니티에 의한
4. 장르의 소멸, 또는 이동하는 양식
5. 텍스트의 미래로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근대문학의 종결(불)가능성
1. 소행溯行과 내성內省, 1990년대 한국문학 연구의 한 풍경
2. ‘종언’의 도착과 몰아론沒我論
3. 역사와 반복, 종언의 아이러니
4. 근대문학 이후의 문학에 대하여
5. 근대의 종결(불)가능성


민족문학의 추억
1. 민족문학은 되돌아온다
2. 민족문학의 갱신을 위하여
3.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둘러싸고
4. 창비의 ‘이벤트’와 리얼리즘의 증상들
5. 난민의 자리에서

민족문학의 유령극장-리얼리즘과 환상의 귀환
1. 진단, 혹은 강신술
2. 환상의 귀환
3. 축귀술과 기억술
4. 그리고 다른 리얼리즘의 비전
5. 로망 느와르를 위하여
6. 한국문학과 유령의 정치학

차이와 반복, 2000년대 한국문학장의 표절과 문학권력
1. 2015년 한국문학장의 풍경
2. 표절담론, 낭만주의 혹은 상호텍스트성을 넘어서
3. 문학권력 -반복과 차이로서의 비판
4. 사이버 스페이스와 문학이라는 기록시스템

비평의 진정성을 대면하며-황종연의 비평에 대한 짧은 생각
1. 어떤 안도에 대하여
2. 진정성의 탐색
3. 문학의 옹호
4. 안도의 정체

제2부 귀신들린 소설의 시간

역사의 심연, 문학의 윤리
1. 팩션이 어떻다구?
2. 탈근대적 기억술
3. 문학에 대한 역사의 해로움과 안타까움
4. 감성의 지도, 문학의 윤리

2000년대의 한국소설과 환상의 몫
1. 죽음의 소설들
2. 섬뜩함과 ‘적대’의 삶
3. 유령의 윤리학
4. 초자아의 응시
5. 환상의 몫

귀신 들린 소설의 시간
1. 귀신 들린 소설들
2.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3. 소멸하는 존재의 사랑법
4. 다시 돌아오는 존재들
5. 공포의 귀환

성장소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1. 성장소설 잔혹사
2. 교양의 과제, 모더니티와 대결하기
3. 판타스틱 청소년 백서
4. 성장소설의 종언
5. 청소년을 위한 문학은 없다
6. 죽은 시인의 사회
7. 이것은 성장소설이 아니다
8. 책읽기에 대한 경멸
9. ‘청소년을 위한 문학’의 종언

칙릿의 시대
1. 칙릿 등장
2. 칙릿과 더불어 성장을
3. 쇼핑하는 존재들
4. 불가능한 연애, 계산되는 결혼
5. 그게 세상의 이치야
6. 결백의 수사학, 칙릿의 시대

우리는 여전히 근대를 살아간다
1. 자연주의 2.0
2. 결정론
3. 사물들
4. 벌거벗은 얼굴들
5. 근대적 삶의 작가들

제3부 우리 시대 소설의 진정성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최윤론
1. 정체성의 경계들
2. 두 개의 산책, 글쓰기의 기원
3. 진정성의 서사학
4. 주체의 귀환

미니마 파밀리아━이혜경론
1. 가족의 기원
2. 동정의 사회학
3. 뿌리 깊은 나무들
4. 사이의 정치-미니마 파밀리아
5. 연민의 몫

메트로섹슈얼 농담의 기원━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
1. ‘식모들’의 수상한 기원
2. 아이러니스트의 윤리학
3. 메트로섹슈얼 보이와 변신 곰인형 프로젝트

이것이 인간인가━이문환의 『플라스틱 아일랜드』
1. 어쩌면 인간희극, 혹은 리얼리즘
2. 모든 신성한 것은 조롱받는다
3. 말하자면 흑마술, 또는 희망의 증거
4. 이것이 인간인가

삶은 오래 지속된다━허혜란의 『체로키 부족』
1. 기원의 장소, 또는 길떠남
2. 환대의 희망, 적대의 풍경
3. 잃어버린 얼굴, 봉인된 주체
4. 그리고 삶은 오래 지속된다

성스러운 저주━한동림의 『달꽃과 늑대』
1. 사람은 땅에서 자란다
2. 만인은 만인에 대해 늑대인 것이니
3. 규율이란 또한 야만의 다른 이름이니
4.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5. 하여 성스러운 저주는

[머리말 일부]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바둑의 고수였다. 아마 5단의 기력(棋力)이라는 아버지는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던 큰삼촌과 만나면 늘 바둑판 앞에 앉아서 말없이 바둑을 두었는데, 어린 나에게는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늘 경이롭게 여겨졌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바둑 입문서를 사주시면서 내게 바둑을 배울 것을 권유했다. 당신 또한 대학에 입학해서 바둑을 처음 접했고, 1년 만에 1급의 기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나 또한 쉽게 바둑에 빠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기대에 답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앉아서 빠져들 수 있는 다른 대상을 나는 이미 갖고 있었고, 거기에는 바둑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은퇴 후에 아버지는 낮에는 기원에 가고, 저녁에는 바둑 TV를 보거나 바둑책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암 선고를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실 때에도 아버지의 짐 속에는 바둑기보가 늘 포함되어 있었고,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기 직전에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한 권의 바둑책이었다.
바둑에 대해 알지 못하고, 한 번의 대국도 해본 적이 없지만, 단 한번 바둑 대국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던 경험이 있다. 혼인보 슈샤이 명인과 기타니 미노루 7단의 역사적인 대국이 그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불패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던 슈샤이 명인의 은퇴기에 참여하여 관전기를 쓰고 그것을 「명인」이라는 소설로 담아냈는데, 나는 이 책을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다. 소설 속에서 단 한 번의 대국은 6개월이나 이어지며 진행되는데, 내가 책을 다 읽은 시간도 그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야스나리는 명인의 목숨을 앗아간 그 마지막 대국을 지켜보며, 바둑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또한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쓴 「명인」이란 소설은 슈샤이 명인으로 대표되던 바둑의 한 역사가 끝나고, 기타니, 오청원 등의 젊은 기사들에 의해 새로운 바둑의 시대가 열린 이행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바둑의 세계보다 훨씬 의미 있는 어떤 가치가 문학의 세계에 있으리라는 믿음은 어쩌면 헛된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둑의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컴퓨터가 체스에서는 인간을 넘어섰지만, 바둑에서는 인간을 넘을 수 없다고 늘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알파고가 어떻게 인간을 쓰러트렸는지를 분명하게 목격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이미 바둑계에서 은퇴했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바둑판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바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둑의 미래 같은 것은 어떻게 되어도 좋을 것이다. 바둑이 그렇고, 문학 또한 그러할 것이다. 쓸모를 알 수 없는 어떤 세계 속에 빠져들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한 생애가 저물 것이다. 문학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고 한 권의 책을 새로이 손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허병식

부산에서 태어났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고, 동국대학교에서 한국 근대문학과 문화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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