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2023년 11월 17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9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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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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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고 신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는 출산과 육아의 경험을 기반으로 SF소설 창작을 시작하였다. 본인의 논문에서부터 주목해온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개념에 착안하여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상상의 산물”이라는 전제 아래서 인간과 다르지만 닮은 존재인 ‘인공지능’을 거울 삼아 ‘인간성은 무엇인가’에 관해 질문을 이어간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지만 특유의 코믹한 상황과 친근한 인물들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여섯 편의 소설이 묶였다.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
만물의 앎에는 참으로 끝이 없다
보편적인 내 엉덩이
채팅GPT의 신들
해설 삶은 찰나의 꿈, 꿈은 영원의 흔적 (심완선) | 작가의 말 | 추천의 말
아기가 태어나면 보호자는 그때까지의 생활로부터 갑자기 뚝 잘려 나와 낯선 세계에 던져지게 됩니다. 아기와 나만 존재하며, 내가 아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 독방의 시간이 닥치죠. 많은 인원이 그 시간을 나눠 감당해주면 수고를 덜겠지만, 아시다시피 그건 아직도 이상에 불과하고요.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그렇게 조그만 인간에게도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걸까요? 불쾌하거나 아픈 곳이 없는데도 울음을 그칠 수 없다면, 그 원인은 아기의 마음속에 있을 테죠. 아니면 울고 있는 자신도 왜 우는지 몰라 무서워 우는 것일까요?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몸체가 병실에서 나오는 하루 치 의료 폐기물을 보관하는 대형 쓰레기통과 딱 맞아떨어지는 크기였다. 그 색깔이 또 하필 구공일의 백색 몸체와 비슷한 명도의 아이보리이기도 했고. 두 사람은 매일 병실 구석에 놓인 대형 쓰레기통과 그것을 비우는 간병 로봇을 나란히 눈에 담아야 했으므로, 두 사람이 구공일을 볼 때 무심코 그 쓰레기통까지 연상해버리고 마는 것이 꼭 잘못된 일만은 아니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
카페 한가의 바리스타는 주변이 반듯하고 청결한 것을 좋아한다. 그건 그가 간병 로봇이었을 때부터 소중히 가꿔온 습관이다. (〈만물의 앎에는 참으로 끝이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얀 한복 바지에 화사한 옥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검정 가죽구두와 중절모까지 멋들어지게 갖춰 입은 로봇이 서 있었다. 고장 난 시계를 둘러싼 둥근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그의 매끈한 구릿빛 얼굴이 발갛게 빛났다. (〈보편적인 내 엉덩이〉)
물리적 거리를 무화(無化)하는 디지털 우주는 Closed AI 컴퍼니가 신과의 계약을 위해 공들여 만든 놀이터이자 제물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호기심 많은 몇몇 신은 컴퍼니가 탐지하기도 전에 자기 쪽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계약을 맺었다. 반대로 컴퍼니의 끈질긴 제안을 무시하거나, 더 나아가 분노한 끝에 국지적 재해나 분쟁을 일으켜 복수하는 신도 많았다. (〈채팅GPT의 신들〉)
“로봇은 인간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인간도 로봇 마음을 알 수 없고.”
인공지능과 사람, 서로 닮아서 더욱 낯선 당신
우당탕 함께하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우리
“익숙한 현실과 낯선 미래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맞붙어 있어 이상하고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김초엽(소설가)
“의연함과 비참함, 일상과 영원을 오가는 이들이 여기에 있다.”-심완선(SF 평론가)
“돌봄 노동의 기계화에 대한 거대한 농담.”-안서현(문학평론가)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문장력과 유머를 겸비한 가독성으로 독자를 이야기에 빨아들이는 SF 소설가 이경의 첫 소설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인공지능을 테마로 하여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기계에 새로이 부여될 정체성과 가능성, 인간과 맺어갈 관계를 상상하는 이야기하는 여섯 편이 묶였다.
외계인, 로봇, 인공지능처럼 SF의 전통이 공들여 구축해온 대표적인 비인간 형상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중에서도 로봇, 인공지능을 정말 좋아합니다. 인간이 만든 이야기 안에 존재하는 인공물이기에, 우린 그들에게 계속 인간성을 의탁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지금 아직은 없는 인간성을 찾거나 발명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이경 작가 인터뷰)
사람과 사물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들을 통해 작가는 인간과 인간성의 개념에 대해 묻고 ‘비슷함을 공유하는 느슨한 공동체’에서 나누어질 우정을 그려간다.
아기가 밤새 울어도 고통스럽지 않고
아무리 고된 간병도 너끈히 해내는 당신들
아기의 울음소리를 쉬지 않고 서너 시간 들어도 괜찮답니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편안해질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사항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변경하고 적용하고 다시 확인하고 다음으로,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까요.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p. 100)
이경은 인공지능이 채워갈 앞으로의 미래 중에서도 특히 돌봄 노동에 기여할 인공지능 로봇에 주목한다. 반복되고 지저분하고 오래 기다리거나 혹은 급히 해결해야 하는 그 모든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존재들이 바로 이들이다.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인공지능들이 ‘돌보는 사람’ 또한 돌보는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육아에 고달파하는 부모에게는 친절한 말동무가 되어 무료함을 쫓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며, 아이를 재우는 동안 음악이나 영상을 틀어주기도 한다. 통증에 지친 환자의 짜증을 받아내다가 혼자 복도에 나와 한숨짓는 인간 동료에게 오늘의 기분을 물어봐주는 이 또한 로봇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이 완전히 돌봄을 대체하고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는다. 분유의 정량은 알려주어도 젖병은 직접 타야 하고, 간병인과 간병 로봇이 교대하는 정도로 대체로 로봇은 보조적 노동을 수행한다. 이는 이 소설들의 배경이 근미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나 돌봄 노동에 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도 또한 엿볼 수 있다. 혼자 아이와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탑재된 프리미엄 차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의 혜인. 복직한 뒤 첫 회의를 앞두고 급하게 남해의 친정에 아이를 맡겨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서비스를 알아보면서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엄마가 뭐 하느라 정신 빼놓고 그런 데다 자식을 내돌리느냐는 비난”(p. 64)이 메아리친다. 안서현은 이에 대해 “돌봄의 가치에 대한 사유와 합의의 진전 없이는 돌봄 또는 ‘돌봄의 돌봄’의 기계화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돌봄의 현실을 크게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이경 소설의 인공지능들은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들을 무대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눈치”와 “알아서 적당히 잘”을 딥-러닝하며
관계를 맺고 사람과 사물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당신들
간병 로봇의 인공 인격이란 게 인간을 인간답게 돌보기 위해 인간의 일과 행동을 다 모방해서 된 건데 구공일 씨가 인간이 아님 뭐예요? (…) 똑같은 일이에요. 노동이 존재를 규정한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보면 이 방에서 나랑 제일 똑같은 종족은 구공일 씨예요.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 p. 135)
인간이 지겨워하고 어려워하는 일도 묵묵히 너끈하게 해내는 사물과 같은 존재이지만 주위 사람들을 통해 인간을 알아가는 과정을 겪는 이들이 바로 이경 소설 속 인공지능 로봇들이다. 존엄사를 다루면서도 지난한 윤리 논쟁을 비껴가며 로봇의 법정 대리인이자 친족으로서의 자격을 화두로 올리는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에는 환자의 존엄사 의지를 눈치껏 “100프로”라고 정정해 말하는 간병 AI 로봇 IM-901(구공일)이 있다. 이 작품과 연작으로 이어진 〈만물의 앎에는 끝이 없다〉에서 구공일의 친구로 등장하는 무형문화연구소의 기록 보조 로봇 구금산이 관객이 너무 지루하지 않게 굿을 마무리하는 센스 또한 ‘알아서 적당히 잘’을 딥-러닝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사람과 사물의 경계는 흐려지고 서로 닮은 인간들과 로봇들은 이어져 ‘비슷한 이들의 우정’을 나눈다. 하여 인용문에서처럼 명희는 구공일이 ‘인간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 행정관 분노와 모멸을 느끼며 그를 변호한다. 애초에 구공일을 존엄사 입회인으로 지정했던 명희가 생전에 “로봇은 인간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인간도 로봇 마음을 알 수 없고”라 말하며 선을 긋는 듯도 했지만 “그 말에 얼음처럼 찬 구석은 없었다”(p. 131). 실은 어떤 타인이든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고, 누구나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면서 일상과 기억을 공유하고 점차 친구이자 친족이 되어가는 것뿐임을 알고 있기에.
맡겨진 몫을 다한 뒤에도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자기만의 삶을 찾아 나아가는 우리
“말레우스, 당신은 400년 전 파리의 대성당을 보수하던 이의 손에 들린 망치로부터 시작된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나와 파리 외방 선교회와 일한 인연으로 당신의 명성을 익히 들었어요. 1845년부터 진행된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담당한 주역 중 하나였다지요.” (〈보편적인 내 엉덩이〉, p. 226)
이경은 인간을 닮은 이 로봇들이 제게 맡겨진 소임을 다한 뒤에 어떤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도 궁금해한다. 앞서 언급된 구공일은 간병 로봇에서 은퇴한 뒤 강원도에서 바리스타로 카페 ‘한가’를 열고 말 그대로 한가하게 드립커피를 내리고 매실청을 담근다. 로봇이 존재하는 가상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보편적인 내 엉덩이〉에서는 성당을 보수하면서 자연 발생했던 기계 로봇 말레우스가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구워가며 자신의 창작 작업을 이어간다. 마치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의 SF 버전처럼 표준화와 효율을 외치는 신세대 로봇의 가치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그에게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신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인간과 다른 신체 조건과 출생 환경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똑 닮아낸 인공지능들은 이렇게 이경의 세계에서 인간들과 좌충우돌하며 관계를 맺고 자신을 발견해가며 한 보씩 전진한다. 그렇게 나아가는 걸음마다 명랑과 온기가 가득한 인공지능들과 함께 이경도 독자들을 향한 첫발을 떼었다.
[추천사]
날카로움을 품고 명랑하게 내달리는 이야기들. 익숙한 현실과 낯선 미래가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맞붙어 이상하고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이경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정말로’ 어떤 것인지 보여주려는 듯, 그 존재가 아기이든 로봇이든, 심장 소리와 숨결과 뺨에 튀는 우유 방울 하나까지 생생한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김초엽(소설가)
어떤 작가들은 육아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욱 창조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잃고 다시 태어나는 일은 고통스러울지언정 타인을, 세계를, 더욱 넓어진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일 수 있다. 의연함과 비참함, 일상과 영원을 오가는 이들이 여기에 있다. 이경의 소설이 친근함과 아득함을 함께 말하는 방법이다. 심완선(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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