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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

허사이트 시선 총서 3
윤단우 지음
허사이트

2024년 07월 10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1월 31일 출간

(개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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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34.32MB)
ISBN 978899709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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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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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총서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아내는 허사이트의 여성주의 기획이다. 그 세 번째 기획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는 공연 현장에서 취재와 비평을 병행해온 저자가 주로 공연 무대에서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고전 작품들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다시 읽은 책이다.

여성은 사랑을 불멸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존재인가?
사랑은 여성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 영원성과 절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결국 이 책에서 내가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질문과 이어지는데, “여성은 사랑을 불멸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존재인가?”와 “여성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 영원성과 절대성을 획득할 수 있다면 사랑이 그토록 칭송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중략)
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어보았다. 고전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앞서도 언급한 책 《여성, 신체, 공간, 폭력》에서 영화 〈별들의 고향〉을 ‘(대중문화에서) 죽는 여자의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 된 작품이라고 쓰며 생략한 질문인 “‘죽은 여자의 시대’는 어디서 기원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한편 이 고전 속 죽음들은 영화와 연극, 오페라와 발레 등으로 현대의 창작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작되며 재현되는 ‘죽음의 무한순환’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추천의 글 | 예술 안과 밖의 여자들
프롤로그 |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었다

Part 1 |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들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끝은 _ 오필리어
셰익스피어 〈햄릿〉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해요 _ 지젤
고티에 〈지젤〉
아름다움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다 _ 마농
프레보 《마농 레스코》
죽은 연인이 예술에서 되살아날 때 _ 마르그리트
뒤마 피스 《춘희》
인형이 되기를 거부해 유령이 된 여자 _ 버사 혹은 앙투아네트
브론테 《제인 에어》, 리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Part 2 | 여자에게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_ 안나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연애,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이상향 _ 엠마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홀로 남겨지느니 함께 죽으리라 _ 줄리엣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Part 3 | 남자에겐 죽일 권리가 있다
죄가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죄일 뿐 _ 데스데모나
셰익스피어 〈오셀로〉
당신을 다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해 _ 카르멘
메리메 《카르멘》
목적을 달성했군요, 저를 죽였으니 _ 아내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나의 가장 큰 죄는 여성이라는 것 _ 마타하리
코엘료 《스파이》

Part 4 |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
금기를 깨트린 벌은 죽음뿐 _ 운디네
푸케 《물의 요정 운디네》
당신은 나를 보려 하지 않았어 _ 살로메
와일드 《살로메》
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얻은 것 _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볼프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

에필로그 | 모든 것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다

참고자료
본문에 인용된 도서 목록
본문에 삽입된 그림 목록

p.21
지금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사랑을 위해 당신을 바치진 말라고 말하고 싶다. 쉬쉬하며 아무도 말하지 않는 사랑의 비밀을 지금부터 말해주겠다. 사랑은 원래부터 위대하거나 절대적이거나 불멸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헌신한 당신들 덕분에 그렇게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당신은, 사랑보다 귀한 존재다.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 프롤로그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 죽었다’ 중에서

pp.38~39
이야기의 전개에서 햄릿이 미친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미쳤다고 믿게 하기 위해선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데, 그 명분으로 선택된 것이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이다. 폴로니우스가 앞서 딸에게 단단히 일러놓은 것을 망각한 사람처럼 햄릿의 사랑을 순순히 납득하는 것은 그가 미쳤다는 것을 믿기 위함이다. 폴로니우스가 햄릿의 연기를 믿어야만 극의 긴장감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랑은 미친 햄릿의 알리바이로서의 사랑이며, 오필리어는 화병에 장식된 꽃처럼 사랑을 받기 위해 존재한다.
- Part 1.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들 ‘보답받지 못한 사랑의 끝은 _ 오필리어’ (셰익스피어 〈햄릿〉) 중에서

p.97
소설과 달리 실제 연인은 자신과 헤어진 후에도 부유한 귀족의 구애와 함께 코르티잔으로서는 드물게 정식 결혼을 하고 조의를 표하는 사교계 명사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소설에서라도 부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 같은 소설을 쓴 마음 한편에 열등감이나 복수심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만약 마리 뒤플레시가 펜을 들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썼다면 오늘날 우리가 책으로 읽거나 무대에서 보는 이야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만났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자전적 이야기’의 또 다른 당사자이기도 한 뒤플레시가 이 소설을 읽었다면 ‘자전적 이야기’라는 데 고개를 끄덕였을까. 현대에서 《춘희》를 다시 만나는 우리가 듣는 것이 마리 뒤플레시의 목소리도,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목소리도 아니라는 데 이 ‘자전적 이야기’의 함정이 있다.
- Part 1.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들 ‘죽은 연인이 예술에서 되살아날 때 _ 마르그리트’ (뒤마 피스 《춘희》) 중에서

pp.112~113
로체스터는 미친 여자와 살아야 하는 스스로를 연민하면서도 그 미친 여자를 놓아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자메이카를 떠나 영국으로 향한다. 크리스토핀의 충고와 달리 앙투아네트를 데리고서다. 그는 손필드 저택의 다락방에 앙투아네트를 가둔다.
앙투아네트는 아내로도, 어머니로도 자격이 없는 여자지만 로체스터는 그를 버리지 않고 거두었다. 그리고 앙투아네트(버사)가 가진 이 모든 흠결은 로체스터가 제인이라는 가난하고 양친을 일찍 여의었지만 영국 숙녀임에 틀림없는 젊은 여성을 새 아내로 맞아들 수 있는 명분이 된다. 혹시 앙투아네트(버사)는 로체스터에게서 버림받아야 했기 때문에 부정한 여자, 미친 여자가 된 것은 아닐까.
- Part 1.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들 ‘인형이 되기를 거부해 유령이 된 여자 _ 버사 혹은 앙투아네트’ (브론테 《제인 에어》, 리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중에서

p.156
루앙에서 호텔을 빌려 만나야 하는 레옹과의 연애에 드는 비용은 점점 엠마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게다가 “루앙에 갈 때는 파란 칠을 한 이륜마차에 영국 말을 달고 승마 구두를 신은 마부에게 고삐를 쥐게 하는” 소망을 가진 엠마에게 연애가 돈을 먹는 하마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앞서 《마농 레스코》의 데 그리외처럼, 엠마와 레옹의 연애에서도 엠마가 연애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동안 레옹이 무얼 했는지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간통에도 결혼생활의 그것과 동일한 권태가 스며들 무렵 엠마를 덮친 것은 정부의 변심이 아니라 압류장이다. 엠마가 남편 모르게 전당포 주인 뤼르에게서 융통해다 쓴 돈은 자그마치 8천 프랑이나 되었다. 엠마가 지속적으로 꿈꾸었던 ‘여기가 아닌 곳의 삶’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분에 넘치는 씀씀이로 인한 파산이었다.
- Part 2. 여자에게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 ‘연애,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이상향 _ 엠마’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중에서

p.194
이아고의 목적은 오셀로를 파멸시키는 것이지만 그가 타깃으로 삼은 인물은 오셀로가 아니라 데스데모나다. 데스데모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그 음모 안에서 데스데모나 자신은 철저히 소외되고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비극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거니와 아무것도 모르는 무구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는 농간에 걸려 죽음을 맞는 비련의 주인공임에도 이 비극은 데스데모나가 아니라 완벽하게 오셀로의 것이다.
오셀로에게 손찌검을 당하고도, 사랑하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차마 입에 담기도 참혹한 ‘창녀’라는 말을 듣고도 데스데모나는 반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해. 참으로 당연해.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 왔기에, 그분이 나의 작은 실수에 대해서조차 꼬치꼬치 의심을 하시는 걸까?”라며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데스데모나의 태도는 답답할 정도로 순응적이다.
- Part 3. 남자에겐 죽일 권리가 있다 ‘죄가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죄일 뿐 _ 데스데모나’ (셰익스피어 〈오셀로〉) 중에서

pp.207~208
《카르멘》은 자신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으로 유혹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를 뒤집어 순정을 다 바쳤지만 배신당하고 살인자로 전락하는 한 순진한 남자의 이야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어느 쪽 렌즈로 작품을 들여다보건 간에 ‘나쁜 여성의 유혹에 넘어간 죄 없는 청년이 살인자가 되어 인생을 망치는 이야기’로 수렴되기는 마찬가지이고, 이때 망쳐진 인생의 주어는 살해당하는 카르멘이 아니라 살해하는 호세이다.
- Part 3. 남자에겐 죽일 권리가 있다 ‘당신을 다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해 _ 카르멘’ (메리메 《카르멘》) 중에서

p.297
살로메는 자신의 키스를 거부하고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았던 그에게 원망을 쏟아내며 마침내 그의 머리를 들어올려 키스한다. 죽여서라도 그를 갖고 싶었던 소녀의 마음은 순수하기에 더욱 잔혹하다.
이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헤로데는 살로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에 키스하는 순간은 헤로데에게는 자신의 시선이 박탈당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라보스가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것과는 달리 헤로데는 살로메를 죽여 이 끔찍한 사랑을 끝내고자 했다. 그러나 살로메가 헤로데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은 요한이 살로메의 요구로 참수형에 처해진 것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무대 위에서 쉬지 않고 되살아나는 살로메는 팜므 파탈의 모습으로만 재현된다.
- Part 4.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 ‘당신은 나를 보려 하지 않았어 _ 살로메’ (와일드 《살로메》) 중에서

pp.313~314
이아손이 선심 쓰듯 하는 말에 메데이아는 지독한 모멸감을 느낀다. 분노에 찬 메데이아는 자신을 밀어내고 이아손의 아내 자리를 차지할 글라우케는 물론 두 아들까지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아손을 죽이는 것보다, 그가 자식을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는 결혼을 훼방 놓고 아들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남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자신이 낳은 자식을 제 손으로 죽여버릴 정도로 메데이아의 원한은 깊고도 뜨겁다. 그 원한이 가 닿은 범위는 자신이 낳은 아들들과 미래에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 여성, 글라우케에게까지다. 메데이아의 뜨거운 원한은 이아손에게는 닿지 않는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이 아들들의 죽음에 괴로워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죽은 두 아들을 양팔로 끌어안은 채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 Part 4.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 ‘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얻은 것 _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볼프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 중에서

pp.327~328
죽은 여자는 어찌 이리 아련하게 아름다우며, 살아남은 여자는 또 이토록 생생하게 그악스러운가. 이 의문을 두고 어떤 작품의 단면을 의도적으로 잘라낸 편파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 본문에서 다룬 고전 작품들은 물론 함께 언급한 현대의 두 작품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작품에서 이야기의 완결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마침표인 여성들의 죽음을 따로 빼내어 삶과 비교할 때, 유독 여성들의 죽음에만 미학적인 포커스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것이 혹시 창작의 전형적인 태도는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창작물에서 여성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거나 살아남은 그 여성이 꼭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이 책에서 다룬 것처럼 사랑과 죽음과 여성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가 하나로 결합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 때, 그 세계의 모습은 왜 창작자들의 약속된 코드처럼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가. 이 방향을 추동해가는 것은 누구인가.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죽은 여자들을 만나온 우리에게는 이제 살아남은 여자들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 에필로그. ‘모든 것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다’ 중에서

현대사회의 새로운 종교가 된 사랑
감정의 불평등은 사랑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저서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시되는 현대의 사랑에 있어서도 여성과 남성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현대 문화에서 남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심리적 자율성이나 경제적 성공과 같은 지위 혹은 위치와 관련이 있다면 여성에게는 남성과 달리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업이 가임기의 시한이라는 제한된 신체성과 결부되어 시간적 압박으로 가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다른 형태로 가해지는 문화적 압박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고 간주되는 애정 관계에 있어서도 기회의 불균등을 낳는다. 나이가 제약으로 작동하지 않는 남성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큰 차이 없이 유지되거나 혹은 나이가 들수록 기회가 많아지는 반면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기회가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렇듯 시간에 쫓기는 여성의 감정 세계는 남성의 감정 세계에 지배당하게 된다. 이 같은 감정의 불평등은 사랑을 불평등한 것으로 만든다.
이 같은 에바 일루즈의 분석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사랑이 발명되고 나서 가족제도 속 개인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낭만적 사랑은 신화화되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개인의 성장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사랑은 개인의 선택 가운데 최상위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부부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은 공저 《사랑은 지독한 혼란》에서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 수백 년 동안 신에 대해 얘기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현대사회에서 사랑이 신흥종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달라진 것은 종교의 반열에 오른 사랑의 지위이지 사랑 안에서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아니다. 사랑 안에서도 여성은 가부장제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불평등한 지위에 있다. 사랑 역시 가부장제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고전 속 사랑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별 위화감 없이 폭 넓은 공감을 얻는 것은 자유와 평등이 보편적 가치가 된 현대사회에서도 사랑의 당사자들인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여전히 불평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성의 죽음으로 사랑을 다시 읽는다

햄릿, 오셀로, 지젤, 카르멘, 춘희, 안나 카레니나, 보바리 부인, 살로메, 메데이아……. 시대도 나라도 작가도 모두 다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사랑을 다룬 고전이라는 점이다. 이들 고전은 세계 문학사에서 정전(正傳)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물론 사랑이 종교가 된 시대에 사랑을 다룬 바이블로서도 새로운 권위를 가지며 오늘날까지 충성심 높은 독자들의 애정 속에 계속해서 다시 읽히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후대의 창작자들에 의해 영화와 공연 등으로도 재창작되며 끊임없이 새 생명을 얻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은 여성이 사랑의 희생자로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열다섯 편을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어낸다.
이들 작품 속 여성들의 죽음은 매우 다양하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사랑에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카르멘처럼 사랑하는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경우도, 마르그리트 고티에처럼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고 병들어 쓸쓸하게 죽는 경우도 있다. 책에서는 이 죽음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1부에서는 〈햄릿〉의 오필리어, 〈지젤〉의 주인공 지젤, 《마농 레스코》의 마농, 《춘희》의 마르그리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작품의 동일 인물인 《제인 에어》의 버사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앙투아네트를 ‘미치거나 병들어 죽는 여자들’이라는 주제를 부여해 함께 다루었다.
2부에서는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보바리 부인》의 엠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을 스스로를 살해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한데 모으고, 3부에서는 그 반대로 남자의 손에 살해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카르멘》의 카르멘,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아내를 다루었다. 3부 마지막 장에서 다뤄진 마타하리는 실존 인물이지만 그의 생애가 예술 작품으로 활발하게 재창작되고 있는 데다, 남성 집단에 의한 여성 개인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고자 작품 속 인물들과 나란히 놓았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남자를 죽이는 여자들’로 《물의 요정 운디네》의 운디네, 《살로메》의 살로메, 역시 다른 작품의 동일 인물인 《메데이아》와 《메데이아, 악녀를 위한 변명》 속 메데이아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4부의 이 ‘죽이는’ 여자들은 ‘죽임을 당하는’ 여자들에 비해 관심도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이 서로 다른 방향의 죽음들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적잖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에게 사랑의 파국은 서로 다른 형태로 도달한다.
사랑이 파국에 이르렀을 때 왜 여성은 그 자신을 죽이고 남성은 여성을 죽이는가.

저자는 전작 《여성, 신체, 공간, 폭력》에서 무용 작품과 대중문화 속에서 특정 전형을 만들어낸 ‘죽는 여자’의 상을 현실 속 여자들의 죽음과 연결 지으며 죽음이 하나의 문화가 된 사회상을 파헤친 바 있다. 후속작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죽은 여자다》에서는 고전 작품 속에서 이 죽음들의 원형을 찾는다. 저자는 이들 고전을 다시 읽기 위해 ‘여성’, ‘죽음’, ‘사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여성의 죽음으로 완결성을 갖는 이 이야기들에서 사랑의 다른 한 축인 남성의 부재를 묻는다.
저자는 《카르멘》, 《춘희》, 《마농 레스코》 등이 여성이 죽은 뒤 살아남은 남성의 목소리로 전해지고 있음에 주목하는데, 작가 뒤마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춘희》에서 작중 모델이 된 실제 인물 마리 뒤플레시의 생애가 왜곡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제인 에어》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와 겹쳐 읽으며 작중 버사 메이슨의 목소리가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따라간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여태까지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음을, 이 이야기들이 남성에 의해 교묘히 편집된 이야기였음을 밝혀낸다.
여성들이 사랑이 파국에 이르러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는 것과 달리 편집된 이야기에서 남성의 역할은 빠져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던 《마농 레스코》의 데 그리외가 둘에게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마농이 코르티잔이 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고, 《카르멘》의 호세가 자신이 아니라 카르멘의 목숨을 취한다. 《보바리 부인》에서도 불륜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다 파산에 이른 엠마는 죽음을 선택하지만 불륜 상대인 레옹에게는 그 피해가 닿지 않는다. 미치거나 병든 여자들인 오필리어나 지젤, 마르그리트, 버사 등은 남성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 ‘무해한’ 죽음을 맞이한다. 여자들의 죽음이 매우 생생한 반면 그 죽음 이후 남자들의 삶은 더없이 흐릿하다.
한편 저자는 이별살인 가해자임에도 ‘나쁜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 창창한 미래를 잃은 청년’으로 프레이밍되는 호세나 아내를 살해하고도 질투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로 자신의 비극을 완성한 오셀로에게 더 감정이입하는 독해를 지적한다. 이는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여성혐오적 행위를 했을 때 오히려 여성 피해자보다 공감과 연민을 받는 힘패시(himpathy) 현상과도 연결된다. 저자는 또한 에필로그에서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성의 아름다운 죽음과 그악스러운 삶을 대비시키며 유독 여성들의 죽음에만 미학적인 포커스를 두고 있는 창작의 태도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사랑은 왜 여성의 죽음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결국 이 질문을 통해 묻고자 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형태로 도달하는 파국을 언제까지 사랑의 속성이나 본질이라 기만하며 외면할 것인지다. 혹시 남성의 존재를 가부장제의 주인이자 이성애 연애의 중심축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받아들이는 시각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여성이라는 렌즈로 고전을 다시 들여다본 이 책을 통해 원작이 말해주지 않는 ‘다른 면’을 발견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히 죽은 여자들을 만나온 우리에게는 이제 살아남은 여자들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작가정보

저자(글) 윤단우

작가. 칼럼니스트. 인터뷰어. 주로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여자들을 만난다. 개인을 길러내는 사회의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개인을 움직이는 마음의 물길은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관심이 있으며, 여자가 인간으로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기울어진 무대 위 여성들》, 《여성, 신체, 공간, 폭력》,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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