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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 방미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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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6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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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7.43MB)
ISBN 9788937456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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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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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불멸」 「소설의 기술」로 등으로 유럽을 넘어 전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거장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 「무의미의 축제」가 한국어판 출간 1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후에 발표한 이 마지막 소설은 쿤데라 문학의 정점을 이룬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진행되는 이 소설은, 새로이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된 여자의 배꼽에서부터 배꼽에서 태어나지 않아 성(性)이 없는 천사, 가볍고 의미 없이 떠도는 그 천사의 깃털, 그리고 스탈린과 스탈린의 농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유를 이어 가며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1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7
2부 인형극 공연 27
3부 알랭과 샤를은 자주 어머니를 생각한다 47
4부 그들 모두가 좋은 기분을 찾아 나선다 67
5부 천장 아래 깃털 하나가 맴돈다 93
6부 천사들의 추락 111
7부 무의미의 축제 133

다르델로 역시 자기 자신에게 곧바로 이 질문을 던졌으나 답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을 했다고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의아했던 것은 그 거짓말을 왜 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거짓말을 한 다는 건 보통 누구를 속이거나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생기지도 않은 암을 꾸며 내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거짓말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웃음 역시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는 왜 웃었을까? 자기 행동이 우스웠던 것일까? 아니다. 유머 감각은 그의 강점이 아니었다. 그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의 암이 그를 즐겁게 했다. 그는 길을 가며 계속 웃었다. 그는 웃었고 좋은 기분을 만끽했다. (19쪽)

“그런데 그 흐루쇼프란 사람은 누군데?”
“스탈린이 죽고 몇 년 후에 소비에트 제국의 최고 우두머리가 됐지.”
칼리방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이 이야기에서 딱 하나 믿기지가 않는 건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
무도 몰랐다는 거야.”
“그렇지.” 샤를이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책을 내려놓았다.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
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31쪽)

천장 아래 살랑살랑 나부끼는 조그만 물체.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떠다니는 아주아주 작은 하얀색 깃털 하나. 샤를이 접시와 술병과 술잔으로 가득한 긴 탁자 앞에서 고개를 살짝 젖힌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자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그가 왜 그러고 있는지 이상하게 여기며 그가 쳐다보는 곳을 따라 보기 시작했다. (51쪽)

스탈린이 주먹을 내리친 소리가 그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울린다. 브레즈네프가 창문 쪽을 쳐다보고 어쩔 줄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천사가 날개를 펴고 지붕 위에 떠 있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천사가, 천사가!”
다른 사람들도 일어난다.
“천사? 안 보이는데!”
“아니, 보인다니까! 저 위에!”
“세상에, 또 하나 더! 또 떨어지는구나!” 베리야가 한숨짓는다.
“이 천치들아, 추락하는 천사들을 이제 더 많이 보게 될 거다.” 스탈린이 속삭인다.
“천사다, 이건 어떤 징조야!” 흐루쇼프가 부르짖는다.
“징조? 아니, 무슨 징조?” 완전히 겁에 질려 얼어붙은 브레즈네프가 탄식하며 내뱉는다 (124쪽)

■ 농담과 거짓말, 의미와 무의미,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거장의 시선

6월, 파리 거리를 거닐던 알랭은 배꼽티를 입은 여성들과 마주치고, 배꼽이야말로 이 시대,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허벅지, 엉덩이, 그리고 가슴. 지금까지 남성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 여성의 이 신체 부위들에는 제각기 ‘의미’가 있다. “에로스의 성취로 이어지는 매혹적인 긴 여정”인 허벅지, “난폭함, 쾌활함, 표적을 향한 최단거리의 길”인 엉덩이, 그리고 “여자의 신성화,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정녀 마리아, 여성의 고귀한 사명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가슴. 하지만 몸 한가운데 그저 둥그렇게 팬 의미 없는 구멍, 이 에로티시즘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허벅지, 가슴, 엉덩이는 여자들마다 다 형태가 달라. 그러니까 이 황금 지점 세 개는 단지 흥분만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고, 그와 동시에 한 여자의 개체성을 나타내 준다고. 배꼽을 가지고 이 여자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 배꼽은 다 똑같거든. 그러면 배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에로틱한 메시지는 뭘까?” -작품에서

한편 암에 걸리진 않았을까 걱정하던 다르델로는 의사를 만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안도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예전 직장 동료 라몽에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하고는 묘한 희열을 느낀다. 거짓말을 했다고 부끄럽지도 않았지만, 그 거짓말을 왜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암을 꾸며 내서 대체 무슨 이득을 본단 말인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에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다르델로는 왜 이다지도 기분이 좋은 것일까?


■ 의미와 무의미-탁월함과 보잘것없음, 그 특성에 대하여

다르델로는 화려한 언변으로 주위의 이목을 끄는 남자다. 한편 카클리크는 조용히 침묵할 뿐이다. 그런데 파티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성들은 다르델로가 아닌 카클리크를 선택한다. 탁월함은 주변을 부담스럽게 한다. 함께 탁월해야만 할 것 같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준다. 하지만 보잘것없다는 건, 주위를 편안하게 해 준다. 자기 자신으로 있게 해 주고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다는 거지, 그래, 알겠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작품에서

스탈린의 스물네 마리 자고새 이야기, “장난-후”의 시대에 대하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내맡겨진 인간, 그 존재의 가벼움에 천착하는 쿤데라는 이번 소설에서 스탈린과 칼리닌의 일화를 교묘히 엮어 낸다. 사냥을 간 스탈린이 자고새 스물네 마리를 발견하는데, 탄창이 열두 개밖에 없다. 열두 마리를 쏘아 죽인 다음 탄창을 가지러 13킬로미터를 왕복하는데, 돌아와 보니 남은 열두 마리가 그대로 있다. 이 경험을 스탈린이 자신의 동지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동지들 모두 웃지 않고 입을 꾹 다문다. 모두들 스탈린의 이야기가 ‘웃자고 한 농담’이 아니라 ‘역겨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스탈린의 농담은 “아무도 웃지 않는 장난”이 되어 버린다.

“농담은 위험한 게 됐지. 야, 너 잘 알고 있어야 돼! 스탈린이 자기 친구들에게 해 준 자고새 이야기를 기억해! 그리고 화장실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 흐루쇼프도! 위대한 진실의 영웅, 경멸의 말들을 토해 내던 그 사람 말이야. 그 장면은 예언적이었던 거야! 그 장면이야말로 정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 농담의 황혼! 장난-후의 시대!” -작품에서

그리고 이렇게 가면을 쓰고 서로를 마주하는 스탈린과 동지들, 그 사이에서 스탈린이 유일하게 정을 주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칼리닌이다. ‘칼리닌그라드’의 주인공인 바로 이 ‘칼리닌’은 전립샘 비대증 환자인데, 그래서 연설을 하는 중에도 오줌을 누기 위해 시시때때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스탈린이 이야기하고 있는 중간에는 자리를 뜰 수가 없어서 바지에 실례를 하고, 스탈린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 일부러 천천히 연설을 하며 그 상황을 즐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스탈린은 도시 이름에 예카테리나 대제도 아니요 푸시킨도 아니고 차이콥스키나 톨스토이도 아닌, “별 볼일 없는 인물”의 이름을 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너무도 진중한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칼리닌은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디”는, “생기고, 늘어나고, 밀고 나아가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변과 맞서 투쟁하”는 “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가 존재”할 수 없는, 즉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하여, 자기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필사적인 투쟁을 기념하여 오래 기억될 유일한” 사람인 것이다.


■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쿤데라의 첫 번째 소설 『농담』에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그의 마지막 소설 『무의미의 축제』에 등장하는 이 스탈린의 일화는 이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넘어서,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네 남자의 이야기 사이에서 어쩌면 기이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역사적 일화를 통해 쿤데라는 하나의 농담조차에도 진지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의 무거움, 그 비극성에 마주하는 태도로서 ‘무의미’를 이야기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에로티시즘의 시대를 여는 배꼽, 아무런 이유도 없고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는 거짓말에 기뻐지는 마음, 농담을 거짓말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오늘, 모두가 모인 파티에서 아무런 무게도 의미도 없이 천장을 떠도는 (배꼽 없는 천사의) 깃털, 순수하게 육체적, 인간적 고통만을 주는 칼리닌의 방광 등, 쿤데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결국 우리 인간 존재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음의, 보잘것없음의 축제일 뿐이며 이 ‘무의미의 축제’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시대라고.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작품에서

작가정보

Milan Kundera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고국 체코에서 발표한 작품은 『농담』과 『우스운 사랑』 두 권뿐이었다. 『농담』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성을 얻어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이후 역경을 겪고 1975년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이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생은 다른 곳에』, 『불멸』, 『이별』, 『느림』, 『정체성』, 『향수』 등의 작품을 썼으며,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스 소설상 등 전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2023년 7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프랑스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옮긴 책으로 『플로베르』(편역),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뤽 페리의 『미학적 인간』, 쿤데라의 『농담』, 『삶은 다른 곳에』, 『우스운 사랑들』,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 등이 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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