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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날

플뢰르 이애기 지음 | 김은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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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6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6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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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8.34MB)
ISBN 9788937456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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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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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플뢰르 이애기의 대표작 『아름다운 나날』이 단행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애기는 매 작품마다 지극히 세밀하고 건조한 문체로 삶과 죽음, 욕망과 상실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이탈리아 문학을 세계에 알린 독보적인 여성 작가라고 평가받는다. 수록작 「아름다운 나날」과 「프롤레테르카호」는 한없이 순수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녀 시절의 절망과 상실을 그린 작품들이다. 어려서 가족의 죽음이나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했던 주인공들은 부당하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안고 자란다. 두 작품은 불완전한 세상과 거짓말 같은 인생에 휘청거리는, 소녀들만의 예민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들 속에서 그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절망을 응시함으로써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볼 줄 아는 존재로 살아 숨 쉰다.“이 책을 읽는 시간은 대략 네 시간이지만, 작가와 함께했던 기억은 평생토록 갈 것이다.”(조지프 브로드스키)라고 평가받기도 한 『아름다운 나날』은 좌절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열망을 담아 전 세계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아름다운 나날
프롤레테르카호

옮긴이의 날

『아름다운 나날』

*
수도원의 삶에서 우리 모두는, 조금이라도 허영심이 있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상상, 그러니까 이중생활과도 같은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말하거나 걷거나 바라보는 법을 따로 만들어 냈다. (11쪽)

*
그녀한테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었고, 나는 그녀의 재능이 죽은 자들이 준 선물이라고 애써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수업 중에 프랑스 시를 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이 그녀에게 내려오고, 그녀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2쪽)

*
어쩌면 우리는 여자에 관한 한 전문가일 것이다. 수도원에서 청춘의 봄날을 보내는 우리들은.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이곳을 나가면, 세상은 둘로 나뉠 것이다. 남성과 여성으로 말이다. 그럼 우리는 남성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리라. 남성의 세계도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20쪽)

*
프레데리크가 절대 거울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무와 산, 침묵과 문학에 감동을 받았다. 내게 있어 삶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난 이미 수도원에서 7년을 보냈고, 수도원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나 수도원 안에 있으면 세상의 거대한 것들을 상상하고, 수도원 밖으로 나가면 문득 이곳의 종소리를 다시금 듣고 싶어 한다. (20쪽)

*
나나 프레데리크처럼 수도원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언젠가 한 번쯤은 되돌아보겠지만, 늙고 절망에 빠지더라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오래전부터 나는 믿어 왔다. 종이 울리면 우리는 일어난다. 다시 종이 울리면 잠든다. 항상 우리들 방으로 돌아오고, 우리네 인생이 창문과 책들, 산책로 사이로 흘러가고, 계절이 오가는 것을 지켜본다. (21쪽)

*
나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22쪽)

*
그녀는 짧고 부스스한 회색 머리에, 손을 사제처럼 모아 쥐곤 했다. 그녀의 엄격한 시선에는 구걸하는 애절함이, 결코 허락받은 적 없는 것에 대한 갈구가,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결백함, 패자의 결백함이 서려 있었다. 그 결백함이란 일시적인 절망과 고집이 뒤엉킨 산물이었다. (23쪽)

*
처음 보던 날부터 나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그녀와 공범이 되고, 세상 모든 것을 경멸한다는 의미였다. (25쪽)

*
그녀는 무(無)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녀의 말은 허공을 떠다녔다. 그녀의 말 뒤에 남은 것에는 날개가 없었다. 그녀는 ‘신’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발설한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신이라는 단어에 둘러친 침묵 때문에 지금까지도 나는 그 말을 쓰는 것이 힘들다. 그 단어는 내가 여덟 살 때부터 전전한 모든 수도원에서 매일같이 듣던 말이었다. 어쩌면 단지 단어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47쪽)

*
그렇다면 그다음 문제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프레데리크를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문제. 누구도 사랑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았다. 세상 밖에서는 습관처럼 사용하는 그 말을.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정해진 확실성만을 따랐다. 개인적인 일, 각자의 가정, 돈, 혹은 꿈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50쪽)

*
어쨌든 나는 수도원 마크를 새긴 베레모를 쓰고 세상 반대편에서 와서, 철저한 계획 아래 감시당하는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고통을 느끼는 한편으로, 날카로운 기쁨을 맛보며 그 고통을 방치하기도 했다. 나는 칸칸이 나뉘고 반질반질하게 닦인 벨벳 좌석이 있는 기차간들, 비루한 승객들, 낯선 자들, 어두운 형제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고통의 쾌감은 사악하며 독을 지녔다. 그것은 하나의 복수다. 고통만큼 천사 같은 것은 없다. 나는 황량한 역의 차양 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람은 비련의 호수를 일렁이게 하며 구름을 쓸어 갔고, 생각은 도끼질로 구름들을 흩어 놓았다. 저 멀리 “최후의 심판자”가 불현듯 나타나, 우리 중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81쪽)

*
수도원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지극히 상투적인 친절 이면에, 누가 따돌림당할 것인지가 암묵적으로 처음부터 정해지게 마련이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부추기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집단적인 충동이다. 사악한 눈들은 마치 광맥을 캐내는 듯한 노련한 시선으로 희생양 한 마리를 택한다. 사악한 운명처럼, 결정적인 이유도 없이, 그렇게 정해지는 것이다. 당사자는 그 속에서 가만히, 하늘에서 내린 명령인 듯, 애써 진심 어린 분위기를 띠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86쪽)

*
적어도 한 기숙 학교에서 한창때의 몇 해를 보냈던 우리는 이상한 가족애로 묶여 있었는데, 그것은 죽은 자들에 대한 신앙이다. 우리가 알았던 그 시절 여학생들은 모두 우리들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렇게 하나의 무리를 이루고는 사후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녀들은 우리 머릿속 높은 기둥 위에서 수행하는 고행자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거나 늘어선 침대들 속에 잠들어 있다. 나는 여덟 살 때 만났던 동급생들을 다시 본다. 새하얀 침대 덮개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눈을 내리깐 그들. 나의 시선이 허공을 헤맨다. 우리는 그들과 침대를 같이 썼다. 감옥에서 함께 지낸 동기라도 절대 잊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의 뇌와 눈을 잠식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모습이다. 그 시절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래된 것은 그저 모두 유년기다. (89쪽)



『프롤레테르카호』

*
그녀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밤의 날짐승처럼, 귀청을 찢을 듯 날카롭게. 그러니까 프레데리크는 죽은 자들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방에 들어갔던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01쪽)

*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슬픔을 숨겨야 한다는 강박증. 그에게 이번 여행은 중요하다.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목적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리스 여행은 내가 받을 교육 중 일부였다. 우리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이다. 요하네스는 내게 당찮게도 전혀 낯선 사람이다. 나의 아버지. 일말의 친근함도 없다. 우리는 원래 선천적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총체적인 낯섦에 대한 각인. (124쪽)

*
나는 그녀가 서먹했고, 그녀는 내가 서먹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한 결합이었다. 창고에는 그녀의 공구들과 나의 공구들이 나란히 놓였다. 정원용 공구. 현재. 매일 꽃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탑에는 과거가 흐른다. 옷장과 다락방들에는 맹꽁이자물쇠를 채웠다. 그곳은 죽은 자들이 자신의 물건을 놓아두는 곳이다. (136쪽)

*
요하네스가 나를 살인자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을 오르솔라는 못마땅해했다. 나는 정말 흥미로운 만남이었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녀는 말했다. 그가 그렇게 빨리 감옥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네 아버지 덕분이니까 그에게 감사해야지. 요하네스는 살인자를 호의적으로 대했다. 그는 가슴 깊이 그렇게 여기는 듯했다. 그렇게 믿었다. 나는 요하네스에게 말한다. “있잖아, 그 아저씨는 도망치고 싶어 해. 자유가 무서워서 도망치려는 거야.” 요하네스는 웃는다. 슬프다. 오르솔라는 요하네스가 나를 찾아오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서 나는 요하네스에게 묻는다. 일곱 살인 내가 오르솔라를 죽이면 어떻게 될까 하고. 아무 일도. 내가 감옥에 갈까요? 아니. (141쪽)

*
그 방은 곰팡이가 핀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백 년도 넘었다. 그곳은 죽지 못해 지쳐 버렸다. 격리에 지쳐 버렸다. 사람들은 그 안에다 딸들을 집어넣고, 끝없이 기다리는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끝은 언제나 더디기만 했다. 이제 요하네스의 딸이 침대 곁에 앉아 있다. 한 여인, 요하네스의 딸이 사랑했던 여인의 손이 덮개 위에서 움직인다. 그녀는 매듭을 짓고 싶어 한다. 홀연히 사라지기 위해서. 또 그녀의 정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영원히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155쪽)

*
그녀는 극한의 싸움으로 지쳤지만 여전히 초조하고 고달픈 몸짓으로 버둥거렸다. 그녀 특유의 자색 눈동자가 간절히 꿈꾸고 즐기고 싶어 하는 최상의 무언가가 바로 죽음인 듯했다. 내가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색 눈동자가 그렇게 말했다. 결국 그녀는 그 두 눈을 감기를 원했다. (158쪽)

*
노을이 지는 시간이다. 니콜라스가 보초를 설 차례다. 요하네스는 선실에 있다. 그는 점점 더 창백해진다.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의 목숨을 거둘 수도 있다. 혹은 나의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우리 집안은 자살하는 집안이다. 자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집안. 더러 아주 짧게라도, 친족들 간에 어떤 주제를 논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는데, 우리들 각자가 일말의 관심이라도 보이는 주제는 자살뿐이었다. 혹은 성공하지 못한 자살 미수. 거기에 철저하게 교육받은 무관심이 보태졌다. (169쪽)

*
그녀는 그 어떤 것을 무릅쓰고서라도 육체적 쾌락을 느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다른 것은 없다. 우리들 세상에 다른 것은 없어.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교육을 유해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래도록 잠자는 것처럼 하루 종일 교육받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제바스티안이 우리를 봤어야만 했다. 나는 마치 그녀가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가 본다면 내 행동에 토를 달겠지. 이제 그녀는 선실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녀의 눈에 살짝 웃음기가 돈다. “드디어 너도.” 그녀는 말하리라. 그래, 드디어 나도. (182쪽)

■ “나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플뢰르 이애기는 천부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녀의 글은 우리의 심장을 어루만지듯 감정의 파장을 크게 일으킨다. 깊은 한이 담긴 고통과 슬픔을, 무심해 보일 정도로 평온하고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 투명하리만큼 담백한 묘사 속에는 사물과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다. 인생의 평지풍파를 겪은, 연륜이 쌓인 노인이 사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듯이, 삶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담은 그녀의 시선에 우리는 위로받는다.” _옮긴이의 말에서

『아름다운 나날』에 실린 두 작품 「아름다운 나날」(1989)과 「프롤레테르카호」(2001)는 10여 년의 시간 차를 두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마치 연속적인 한 작품을 보는 듯한 일관된 정서를 유지한다. 각 작품의 주인공 ‘나’들은 부모와 정서적인 유대를 나누지 못한 채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자란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세상에 속하지 못할까 봐,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까 봐, 미련을 품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한다.


고통의 쾌감은 사악하며 독을 지녔다.
그것은 하나의 복수다.
고통만큼 천사 같은 것은 없다.


「아름다운 나날」의 주인공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살아온 기숙학교가 너무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학교에 한 여학생이 전학 오면서 온몸의 신경이 그녀를 향해 집중하는 것을 느낀다. 아름답고 어른스러우며 어딘지 세상을 초탈한 것 같은 그녀.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빠져든다.

처음 보던 날부터 나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사실 내가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그녀와 공범이 되고, 세상 모든 것을 경멸한다는 의미였다.

새벽의 산책길, 친구와 주고받는 쪽지, 단짝친구, 반항심, 비밀 일기장 등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름다운 나날”. 그녀와 닮고 싶은 마음,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그녀와 함께하며,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그녀와 공범이 되어 세상 모든 것을 경멸하고 싶다. 절대적인 그 끌림은 기쁨이기보다는 고통이다. 야릇한 쾌감이 따르는 고통이다. 그것은 또한 ‘나’를 향한 복수이지만, 그 고통만큼 천사 같은 것은 없다.

「프롤레테르카호」의 주인공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아버지 요하네스는, ‘나’에게 방학 때만 만날 수 있는 낯선 타인이다. 부녀가 함께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자살과 파산, 이혼 등 어둠으로 점철된 가족사의 무게는 “유령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딸은 절대 균형을 잃지 않았다. 균형을 잃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그들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도록 1밀리미터 오차까지 감지할 줄 알았다.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와 ‘나’는 그 여행 내내 서로를 거북해한다. “모든 시간이 죽어 있”고, “정체되어 있”는 여행, 육지에 내리기 전까지 “지극히 단순하고도 끔찍한 무력감”을 벗어날 수 없는 여행. 이 여행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다만 느낄 수 있는 세계”를 예리하게 조각하는 작가 플뢰르 이애기

플뢰르 이애기는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스위스 작가다. 스위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녀의 작품마다 진하게 배어 나오는데, 「아름다운 나날」에서도 작가는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다. 하지만 이애기의 작품에 유년 시절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스위스 산골 마을을 전전하며 자라는 동안, 그녀 역시 한없는 고독감, 절대적이고 영원한 관계에 대한 집착, 순수함에 대한 갈증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들이 그녀에겐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인생의 숙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대화와 교감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경계 너머의 세계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상의 “어떤 형태로도 구체화할 수 없는 것들”에 몰두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들, 다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문학으로 재현한다. 그 미묘한 존재들, 감정들을 “숨겨지고 가려진 그대로” 묘사한다.

내 아버지라고 말하는 남자가 정말 아버지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앞으로 달려나가던 그 어린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큰 애정을 품었는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환영에게 품은 사랑. 그러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빛이 나는 것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렬하게 죽음을 소망했던 한 어린아이에 대한 사랑.

그렇기 때문에 이애기의 작품에서는 흥미진진한 전개나 개성 넘치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폐적 성향의 한 소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자신의 비밀 일기장에 거침없이 풀어내는 고백에 가깝다.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무덤덤한 독백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터질 듯한 불안감에 우리는 남의 비밀을 훔쳐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 고백적 글쓰기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 주는 이애기는, 사후에야 작가로서 평가를 내리는 이탈리아 문단의 보수적인 풍토에서도, 스위스 태생의 해외파 작가로서 이탈리아의 굵직한 문학상들을 고루 받으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 푸른 잉크로 써 내려간, 소녀들의 『데미안』

『아름다운 나날』은 성장 소설 형식을 취하지만, 그곳엔 말랑말랑하고 분홍빛인, 바라만 봐도 눈부신 성장 스토리는 없다. 오히려 불완전한 세상의 속성을 너무 빨리 파악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꽁꽁 숨어 버린, 빛나는 미래를 꿈꿔 보기도 전에 이미 지쳐 버린 소녀들이 이애기 작품의 주인공들이다.세상과 자아에 대해서 끊임없이 더듬어 가는 『아름다운 나날』은 소녀들이 주인공인 『데미안』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세상을 향해 직선적으로 달려가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는 소녀들의 직관에 주목한다.삶의 모든 자극을 온몸으로 느끼던 시기, 그래서 열병을 앓듯 신음하며 하루하루 살아 내야 하는 바로 그 사춘기. 우리는 모두 그 시기를 통과해 왔거나, 지금 이 순간 그 시기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애기의 작품들 속에서 ‘잊히지 않는 한 문장’을 발견할 것이다. 작가의 경험과 천부적인 재능, 섬세한 감수성이 어우러져 완성된 『아름다운 나날』은 소녀 시절의 절망과 고독을 아름답게 그려 낸, 놓쳐서는 안 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작가정보

1940년 7월 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스위스의 외딴 산골지방을 전전하며 자라야 했던 유년기의 기억은 훗날 그녀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로마에 정착한 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 당대 주요 작가들과 어울렸다. 1968년 이애기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로베르토 칼라소와 결혼했고, 밀라노로 이주해 데뷔작 『손가락을 입에 물고』를 발표했다. 그 후 『수호천사』, 『물의 형상』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해 오다가 1989년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로운 10대 소녀의 감성을 그린 『아름다운 나날』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문학상인 바구타 상과 유럽 보카치오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또한 『하늘의 두려움』으로 모라비아 상을 『프롤레테르카호』로 바일라테 알데리고 살라 상, 비아레조 상 등을 수상했으며, 특히 이 작품은 수전 손택이 심사하고 ≪타임≫이 뽑은 2003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천부적인 글쓰기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지독한 고독감을 역설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이애기는, 마르셀 슈보브, 토머스 드퀸시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로베르트 발저에 대한 평론을 쓰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희곡 작가나 작사가로 활약했다. 작가이자 평론가, 번역자 등 문단의 다양한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이탈리아어 문학에 기여해 온 플뢰르 이애기는 이 시대에 꼭 기억할 만한 여성 작가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10여 년간 강의를 했고 번역 문학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 근교에서 살고 있으며 여전히 좋은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름다운 나날》,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눈 오는 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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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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