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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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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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나 곧바로 응답하지 않기
하미나와 독자들 당신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김진영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소영광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
연어×채효정 농사짓기에서는 뭐가 일이고 뭐가 쉼일까?
이정화×정기현 책 만드는 사람들이 도시 농부가 된 이유
한편의 설문조사
지난 호 목록
사람들에게 어떤 삶이 더 좋은 삶인가를 가르칠 자격도 그런 소양도 없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이는 일상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만 알 수 있다.
─ 하미나 「곧바로 응답하지 않기」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고 대학원을 가고 뭐를 하는데 나는 그냥 오로지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도 될까 하고요.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모르겠고 이게 좋아’ 하는 거죠.” “방금 ‘몰라. 근데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하셨잖아요. 굉장히 흔한 말 같지만 그 자세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하미나와 독자들 「당신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살면서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과의 매일 같은 라이브 면접에 나는 어느새 ‘쉼’이 아니라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 김진영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안식이란 타자가 존립하기 위한 빈터를 마련하는 창조의 기쁨입니다. 이는 곧 자기를 비운다는 점에서 자기 바깥으로 벗어나는 무아적인 기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소영광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
“제가 하는 활동 중에서 일이라고 느끼는 걸 떠올려 보면 책임감을 느끼는 것들이에요. 이때는 꼭 씨앗을 심어야 하고, 시간에 맞춰서 수업에 가야 하고요. 쉬는 건 회복하고 충전하는 거예요.”
“농사를 짓다 보면 자연과 상호 조응하는 리듬이 생기는 듯해요. 싹이 나고 풀이 자라면 밭이 자연스럽게 일을 시켜 주더라고요. 또 비가 오면 일 안 하잖아요. 아프면 쉬고요.”
─ 연어×채효정 「농사짓기에서는 뭐가 일이고 뭐가 쉼일까?」
“동기는 무목적적인데, 그걸 다른 사람들하고 나누고 교류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어. 그건 성취를 원한다거나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이 아니고, 외롭지 않게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같아.”
“텃밭도 양봉도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데, 목적이 먼저 있으면 하지 않았을 것 같아. 이걸로 뭘 하고 싶어라기보다 같이 할 수 있는 걸 계속 찾아보는 거지.”
─ 이정화×정기현 「책 만드는 사람들이 도시 농부가 된 이유」
쉼은 일의 나머지 시간이 아니다
‘비우기’ ‘떠나기’ ‘기르기’로 접근하는 쉼
끝없는 노동과 답 없는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은 막연히 쉬기를 원한다. 이처럼 일은 휴식을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짝패다. 2023년 OECD 통계를 보면 2022년 한 해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근로 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149시간 길다. 여느 나라 사람보다 매달 열두 시간 이상 더 일하는 것이다. 여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사람들은 짜투리 시간을 자기 계발에 투자하거나 ‘홧김 비용’을 쓰며 파괴적으로 쉬는 쪽을 택한다.
그런데 일의 나머지가 아닌 쉼 자체를 보면 어떨까? 방안에서 철저히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 자연으로 떠나 복잡한 일상을 비우고 싶은 사람 등 각자에게 맞는 휴식의 양태는 모두 다르다. ‘쉬어가는 특별호’인 이번《한편》은 이러한 쉼의 방식을 ‘비우기’, ‘떠나기’, ‘기르기’로 분류하고 대담, 인터뷰, 글방 채록 등 다양한 형식으로 주제에 접근했다. ‘요즘 잘 쉬고 있나요?’ ‘쉬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나요?’ ‘쉬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요?’ 등 《한편》이 진행한 설문조사에는 2000여 명의 독자가 참여해 쉼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누어 줬다.
실패하고, 쉬고
다시 일어난 사람들이 응시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의미
《한편》이 만난 사람들은 각자 방식대로 쉬고, 쉬는 데 실패하면서, 더 나은 쉼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작가 하미나의 「곧바로 응답하지 않기」는 투두 리스트에 쫓겨 숨 가쁘게 살던 나날을 지나 제법 조용해진 현재를 다룬다. 멈추기로 결정한 후 갑자기 몰려오는 텅 빈 시간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부단한 훈련을 거쳐 얻은 쉼은 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다. 이어지는 「당신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모임 이끔이 하미나와, 쉼에 관해 글을 쓴 여섯 명의 독자 김동현·김혜진·박혜연·손은숙·윤현정·최서연이 진행한 온라인 글방이다. 이들은 글을 공유하며 우리가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지 않은 때에도 몸 안팎으로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현대인이 느끼는 묘한 압박감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전환하려 한 소중한 기록이다.
다큐멘터리스트 김진영은 극심한 번아웃 끝에 떠나는 용기를 실천한 경험을 전한다.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에서 그는 친구 가족의 다정한 돌봄, 좋은 식재료, 규칙적인 일과라는 원초적인 것에서 기쁨을 찾는다. 나에게 필요한 쉼을 발굴하자 나에게 맞는 삶의 형태를 찾을 과제가 비로소 되찾아온다. 한편 신학 연구자 소영광은 무신론자 편집자에게 ‘안식’의 의미를 설교하는 편지를 주고받았다. 창조와 안식을 한 쌍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이 아닌 우리도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기성의 삶에 코를 박은 일차원적인 진지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쉼이 지닌 환기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조각난 워라밸, 망가진 삶을
되살리고 이어 붙일 쉼을 찾아서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고된 노동을 하지만 정작 우리가 생산한 것을 직접 쓰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은 회사의 매출로 수치화되고, 필요한 것은 소비로 해소한다. 계속하여 생산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것은 만들 틈이 없는 가운데 기르기는 주체성과 충만함을 알려 준다. 3년 차, 9년 차 농부 연어와 채효정은 「농사짓기에서는 뭐가 일이고 뭐가 쉼일까?」에서 생산과 재생산이 분리된 삶을 다시 통합한 여정을 찬찬히 나눈다. 내게 필요한 만큼 기르고 먹는다면 흙은 그 이상의 것을 베푼다는 오래된 미래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한 생명이 키울 환경을 만드는 일은 고되다. 편집자이자 작가인 이정화, 정기현은 「책 만드는 사람들이 도시 농부가 된 이유」에서 도시 생활자로서 텃밭 가꾸기와 양봉을 휴식으로 채택한 연유를 전한다. 이들의 수다에는 잠깐의 틈 만들기에서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지속할 뜻밖의 힘을 얻은 빛나는 순간이 있다. “할 수 있다. 그런 생각만으로 좀 괜찮은 게 있어.” 비우기, 떠나기, 기르기 중 당신이 원하는 쉼이 있는가? 무엇보다 충분히 푹 쉬고 난 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자신을 위한 텅 빈 시간 속에서 나를 다시 살게 하는 무언가를 발견할지 모른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14호 ‘쉼’은 처음으로 일러스트 표지를 사용했다. 손민희 작가의 「무감의 축복」 속 인물은 무감각의 기술을 발휘해 몸과 장기를 태우는 불꽃의 고통을 견딘다. 침묵과 분노, 해탈을 거치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옮겨 놓은 듯하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 ‘외모’, ‘대학’, ‘플랫폼’, ‘우정’, ‘집’, ‘쉼’에 이어 2024년 9월 ‘독립’을 주제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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