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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디지몬

아무튼 시리즈 67
천선란 지음
위고

2024년 05월 31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6월 1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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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0.86MB)
ISBN 979116089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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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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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비밀의 열쇠, 미로같이 얽힌 모험들!” 세기말의 혼란이 막 잠잠해지려던 2000년, 신나는 가사의 오프닝 송과 함께 〈디지몬 어드벤처〉가 한국에 처음 방영되었다. 일곱 명의 평범한 초등학생들이 ‘선택받은 아이들’이 되어 디지털 세상에서 펼치는 모험 이야기에 당시의 어린이들은 열광했다. 열한 살의 천선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니터에 말을 걸며, 내 디지몬이 컴퓨터 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언젠가 디지털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그에게 〈디지몬 어드벤처〉는 인생 최초의 SF이자, 그를 창작의 세계로 이끈 첫 작품이었다.
『아무튼, 디지몬』은 악에 맞서 싸우는 아이들의 모험에 설레고, “상처받고 외롭고 두렵지만, 용기와 위로 한마디로 언제든 다시 진화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던 유년 시절의 두근거림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런 슬픔을 통해 글쓰기로 나아가는, 지금의 천선란 세계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을이 가득 들어찬 집, 현관 앞 TV에 바싹 붙어 앉아, 이제 막 〈디지몬 어드벤처〉 첫 화를 본 열한 살의 나는 리키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내게도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녕, 디지몬
찾아라 비밀의 열쇠
선택받지 못한 아이
괜찮아, 다시 진화하면 돼
세계가 너무 작지 않던?
내 문장은 빛나지 않을 거야
세계라는 도피처
나의 나이 많고 어린 디지몬
악당의 심장에는 검은 톱니바퀴가 있다
내일은 어떻게 할 거야?

노을이 가득 들어찬 집, 현관 앞 TV에 바싹 붙어 앉아, 이제 막 〈디지몬 어드벤처〉 첫 화를 본 열한 살의 나는 리키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내게도 길고도 매우 짧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선택받은 아이가 됐다. (p.23)

내가 디지털 세계에 가기 위해 이런 짓까지 했다는 걸 가족들은 모른다.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 이 책을 읽는다면, 그제야 내가 이 정도로 디지털 세계를 열망했다는 것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넘기 위해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시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혼자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주 훌쩍, 창호지에 구멍을 뚫듯 폭, 세상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흔적도 없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외로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p.25)

내가 기억하는 내 유년의 모습이란 이런 장면들이다. 올챙이 가득한 저수지를 뚫어져라 보던 것. 나를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벽돌 사이로 풀이 무성하던 어린이 안전교육용 가짜 도로에 서서 켜지지 않는 신호등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것. 경기가 없는 텅 빈 실내 배드민턴장 관객석에 앉아 있던 것. 실내체육관 외벽에 설치된 암벽 등반장에서 겨우 돌 하나 밟고 올라가 버티던 것. 사시사철 추운 집 계단 앞에 앉아 있던 것. 거실 끄트머리에 놓인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먹던 것. 그리고 붉은 거실에서 TV를 보던 것. 그렇게 줄곧 혼자였던 것. (p.30)

아구몬과 함께여도 재미있겠고, 파닥몬도 정말 귀엽고, 피요몬도 멋있지만 그래도 나는 외로운 매튜 곁에 있어주는, 다그치지 않고 그 외로움에 함께 파묻혀주는 파피몬이 좋았다. 내게도 파피몬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순간마다 파피몬이, 혹은 내 디지몬이 옆에 있다고 상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순수한 상상과 정신병적 망상의 경계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래도 디지털 세계는, 이 세계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는 외로운 나에게 큰 위로였다. (p.34)

나는 디지몬의 진화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그 진화가 완전한 성장이 아니라는 점도 좋다. 디지몬은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진화할 수 있고 다시 돌아온다. 잘못 진화하면 다시 진화하면 된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무언가 그릇된 것처럼 느껴지면 나는 이 문장을 자주 상기한다. ‘괜찮아, 다시 진화하면 돼.’ (p.46)

그날 밤 잊고 있던 〈디지몬 어드벤처〉를 1화부터 다시 보았다. 그 세계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에, 모니터 너머에 나처럼 답답해하는 고래가 갇혀 있음에 어떤 위로를 느꼈다. 그럼, 조금만 더 믿어볼까. 나도 아직 디지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내게도 선택받을 기회가 남아 있다고. 내게 주어진 문장이 아직 뭔지 모르니까, 살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십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한번 디지털 세계를 꿈꿨다. (pp.53-54)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은 여태껏 내가 뼈에 새기고 있는 삶의 이정표 중 하나다. 모두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준비 없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어쩌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규칙도 모른 채 축구공을 찬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전부 알고 하지 않는다. 희끄무레한 빛, 크기를 알 수 없는 그림자, 그런 것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공부는 더 자세히 알기 위한 후속 단계이지, 출발점에서부터 이고 가야 할 건 아니란 말이다. 친구의 말처럼 나는 상상을 하고, 글쓰기의 도구인 글자를 알고 있다. 그럼 쓰면 된다. (p.65)

어디 가지 않을 거라는 말 대신 나도 엄마를 단단히 끌어안는다. 미안했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p.100)

_낯선 세계에서 어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짝꿍처럼 지내던 아버지의 해외 출장과 갑작스러운 이사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열한 살. “내가 슬픈 건지 세상이 슬픈 건지 모르고 그저 온통 슬프기만” 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올챙이가 드글드글해 까맣게 변한 저수지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던 시절에 〈디지몬 어드벤처〉는 천선란에게 도피처였다. 그는 〈디지몬 어드벤처〉를 처음 본 순간, 모험을 시작하는 설렘이나 새로운 만화영화의 등장이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후련함을 느꼈다고 한다. “역시 다른 세계가 있구나!”
〈디지몬 어드벤처〉를 알게 되면서 작가는 디지털 세계로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혼자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주 훌쩍, 창호지에 구멍을 뚫듯 폭, 세상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흔적도 없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외로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디지몬』은 유년의 답답함과 쓸쓸함을 헤쳐가는 힘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에게 그 힘은 다름 아닌 다른 세계를,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계속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해냈다. 그 재능은 때로 작가를 현실 세계로부터 멀어지게 했지만, 그 덕에 마주친 아름다운 세계는 지금의 천선란 세계를 만든 이야기의 불씨가 되었다.

“내가 내 재능을 처음 느낀 건 열두 살 때이다.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는 재능이란 단어를 덜 비범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에서는 재능에 천재성을 부여하지만 화려한 껍질을 벗긴 재능이란 어느 날 갑자기,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현듯 그것을 ‘계속하게 되는 힘’에 다름 아니다. 시킨 이가 없는데 내가 그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에 재능이 있다고 봐도 좋다. 내게 그것은 이야기였다. 망상이라 해도 좋을 법한, 글쓰기로 정형화되기 이전의 더 날것의 이야기.”

_“여기 엄마가 있다. 엄마는 꼭 신인류 같고, 외계인 같고, 처음 만난 디지몬 같다.”
스물한 살, 엄마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 큰 수술을 받아 중환자실에 머물던 엄마를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작가는 엄마가 “낯선 행성에 떨어진 디지몬” 같은 얼굴로 자신을 봤다고 기억한다. “세상과 홀로 싸우다 모든 데이터를 소진해 유아기로 돌아간, 나의 나이 많고 어린 디지몬.” 십대 후반까지 디지몬이 나타나기를 바랐던 그에게 지키고 돌보고 함께 성장해야 할 디지몬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돌봄의 현실은 무섭다. “그렇게 스물한 살에서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내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빛날 문장이 없었다. 세계는 평면적이고 무채색이었다.” 자신 안의 모든 이야기가 다 사라졌고, 다른 차원으로 넘나들 수 있었던 문이 모조리 닫혔던 시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시절. 하지만 문은 다른 곳에서 열린다. 『아무튼, 디지몬』은 (사라진) 엄마와 함께 (다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원인 불명의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마주하면서 또 다른 삶의 이유를, “이상하리만치 존재 이유를 절실하게 찾던 소녀가 드디어 이유를 찾”는다.

“여기 엄마가 있다. 언제나 늘 조금만 더 살아보자고 말하던, 딸이 힘들어 보이면 새벽에도 차에 태워 바다를 보러 가던 엄마가 여기에 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엄마를 본다. 엄마는 꼭 신인류 같고, 외계인 같고, 처음 만난 디지몬 같다.”

_“유년과는 작별 인사 없이 헤어지잖아, 떠나간 줄도 모르게”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의 마지막 장면은 ‘디지몬 세대’에 두고두고 회자된다. 어른이 되어버린 선택받은 아이들과 디지몬들이, 마지막으로 힘을 합쳐 악을 물리친 후 끝내 이별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디지털 세계에서의 영원한 추방, 즉 디지몬 친구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찾아온다. 이 이별은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작별 인사도 없이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순간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온 때를 어른이 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 것처럼.
『아무튼, 디지몬』은 그런 이별에 관한 글이다. 현실 세계의 디지몬, 즉 힘을 모두 소진해 유아기로 되돌아간 디지몬처럼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엄마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첫 번째 도피처이자 “나를 살게 했던 디지털 세계”와 이별하는 이야기이자, ‘디지몬 세대’가 어린 시절에 건네는 작별 인사가 되어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지만 내가 두고 온 세계가 있다는 생각, 더는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하염없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내 마음의 음각은 반대쪽에서 볼 때 양각일 것이고 나는 그 활자를 목판 삼아 글을 쓴다. 내가 꿈꾸며 자라왔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소설로 쓴다.”

작가정보

저자(글) 천선란

작가. SF를 가장 사랑하여 대체로 SF를 쓴다. 지구를 여행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며, 여행기를 잘 모아 외계인에게 지구를 소개하고 싶어 한다. 『무너진 다리』로 데뷔했고, 『천 개의 파랑』으로 많은 독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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