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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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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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 고고학자 강인욱 교수가 추천한
《신세계사》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출간!
제2권에 대한 안내
제17장 구대륙을 가로지른 문명의 사슬: 4대 제국과 실크로드
진(秦)과 대진(大秦) | 공화정의 짐을 짊어진 제정 | 한 나라에 체제와 주인이 각각 둘 | 진나라 군주제의 ‘혁명성’은 로마를 능가했을까? | 로마 제정 하에서의 시민권 확장 | 진나라의 중국 통일은 전제정치의 최고봉 | 진한 제국의 판도 | 최대치로 확장된 로마 제국 영토 | 중앙아시아의 헬레니즘 왕국 | 월지인과 스키타이인, 인도 파르티아인 | 서기 1~3세기의 쿠샨 제국 | 제2의 페르시아 제국: 파르티아 | 유라시아 대륙의 대동맥: 실크로드 | 실크로드가 만들어 낸 이름, China
제18장 미륵과 메시아: 세계적 구세주형 종교의 탄생
그리스 아시아 문명 | 헬레니즘의 통치자는 ‘구세주’ | 동방화인가? 그리스화인가? | 인도 그리스인의 조로아스터교화 및 불교화 | 인도 스키타이인의 종교 혼합 정책 | 쿠샨 왕조, 대승 불교학, 미륵교 | 미륵, 미트라(베다 시대), 미트라 | 그리스 로마 문명 | ‘메시아’를 향한 유대인의 열망 | 분노와 공의의 하나님이 인자의 하나님으로 | 기독교와 유대인의 이별 | 초대 기독교의 성경 제작 운동 | 그리스 로마 철학으로 도식화한 기독교 | ‘삼위일체설’의 지식 고고학 | 비의(秘儀) 형식을 차용한 기독교 | 로마 국교로 받아들여진 기독교 |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의 뿌리인 고대 유대 신앙
제19장 제국의 멸망: 흉노는 고대 세계의 장의사
내륙 아시아의 ‘흉노 시대’ | 중국의 ‘삼국시대’와 로마의 ‘삼국시대’ | 로마 제국의 중흥과 중화 제국의 성공 | 중화 제국보다 더욱 철저하게 흩어진 로마 제국 | 사산 제국과 굽타 제국의 근심거리 ‘흉노’ | 흉노는 고대 세계의 장의사였을까?
제20장 아프리카 고대사의 형태와 후기 고대사의 노선
가장 핵심적인 대륙이자 가장 오래된 인류 | 블랙 아프리카의 지리 형태와 역사 생태 | 종족과 어족 사이의 경쟁인가, 아니면 다원적 발전인가? | 나일강 중심의 ‘고대’ | 또 다른 나일강 고대 왕국 | 악숨 왕국 | 동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제21장 고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트족
‘476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 | 게르만족의 남쪽 이주설 | 로마의 고트 전선과 다뉴브 집단 | 적인가? 동지인가? 재앙의 씨앗인가? 나라의 기둥인가? | ‘로마적’ vs ‘고트적’ 개념의 구축 | 고트족에게 좋은 일만 하다 끝난 흉노 제국 | 동게르만족과 고대 로마가 함께 멸망하다 | 역사는 고트족에게 공정해야 한다
제22장 서로마의 유산은 누구에게로?
프랑크인의 등장 | 로마교황청으로 기운 프랑크족 | 로마교황청 대신 서북부를 수호한 아일랜드 성공회 | 유산된 원서지역 기독교 문명? | 지고지상 독보적 위치의 로마교황청 | ‘카롤링거와 교황청의 중심축’이 싹트다 | 샤를마뉴가 재건한 ‘서로마 제국’ | 소위 말하는 ‘카롤링거 문예 부흥’ | 서방 기독교 세계를 구축한 ‘라틴 공동체’ | 속도를 더해간 두 기독교 세계의 해산
제23장 끊임없이 변모했던 나라, 비잔틴
난공불락의 성, 콘스탄티노플 | 동쪽이 받쳐주니 서쪽이 무너지다 | 일신론 국교는 천하를 통일했나, 분열했나?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중흥 | 아바르인과 랑고바르드인의 침입 | 발칸의 슬라브화 | 헤라클리우스의 중흥 | 비잔틴의 ‘탈 로마화’의 향방 | 제국에서 일방으로 축소되어도 여전히 짊어졌던 ‘제국’ 방어 임무 | 비잔틴의 중고화(中古化)? | 신규 이주민, 불가리아 | 이사우리아 왕조의 ‘문화 대혁명’ | 지중해 북부를 잃고 발칸을 광복시킨 비잔틴 | 비잔틴의 포교 공세 | 새옹이 얻은 말이 화근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 최고조에 이른 ‘이이제이’ 정책 | 유라시아 최강국이 된 비잔틴 | 지는 해가 한없이 아름다울까?
제24장 아라비아인의 ‘다르 알 이슬람’
이슬람 굴기 이전의 아라비아인 | 아라비아반도의 바둑판 | 헤자즈 지구의 굴기 | 무함마드와 그의 포교 | 신흥종교에 남은 옛 종교의 흔적 | 이슬람의 지도권 다툼 | 최후의 계시 | 비잔틴 제국의 4분의 3을 집어삼킨 아라비아 | 아라비아인이 사산 제국을 전멸하다 | ‘정통 칼리프’ 시대의 폐막 | 제1차 이슬람 분쟁(the First Fitna) | 제2차 이슬람 분쟁(the Second Fitna) | 우마이야 대식 제국의 영토 확장 | 시아파의 계보와 갈래 | 우마이야 정권의 몰락 | 몇 가지 관점
제25장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
크게 변화한 이슬람 제국의 형태 | 제국 서부의 균열 | 아바스 칼리프조의 전성기 | 과학연구의 불꽃이 된 ‘지혜의 집’ | 종교학 체계가 완비된 시기 | 한쪽만 살아남아야 했던 양대 황금시대 | 바그다드 중앙 정권의 흔들림에서 항복까지 | 당나라와 꽤 비슷한 붕괴 | 정권-종족-문화의 대대적인 교체 전야 | 이슬람 문명의 중앙집권화 | 이란 문예 부흥 | ‘범 이란문화권’의 마지막 형태가 된 돌궐 페르시아 공생체
제26장 서유럽 열국의 탄생
샤를마뉴 제국의 붕괴 | 마자르의 근심과 ‘도이치’의 탄생 | 교황청이 외면한 ‘신성’ 로마제국 | 산산이 조각 난 밀레니엄의 꿈, 로마의 혼이 끊기다 | 바이킹의 시대 | 바이킹족의 엣 기독교 문명과 그 종식 | ‘프랑스’의 조산을 초래한 ‘북부 야만족’의 재앙 | 사방에서 재난이 들이닥친 영국제도 | 잉글랜드의 열국 시대를 끝낸 북부 야만족 | ‘노르만인 정복’으로 가는 길 | 이탈리아 남단: 또 다른 ‘노르만 정복’ | 이베리아: 기독교의 반격
제27장 슬라브 세계의 형성
슬라브인의 역사적 배경 | 슬라브인의 원류에 얽힌 불가사의 | 갑작스럽게 등장한 기이한 현상 | ‘슬라브인’ 좋을 일만 한 아바르인 | 아바르인의 퇴장과 슬라브인의 등장 | ‘슬라브’ 국가로 변모한 불가리아 | ‘대 모라비아’의 불가사의 | 게르만 집단에 편입된 보헤미아, 이를 피한 폴란드 | ‘슬라브인 자체의 건국 역량 유무’에 관한 논쟁 | 발칸이라는 만화경 | 북부 야만족과 ‘루스’의 건국 | 루스가 기독교 세계의 일원이 되다 | 슬라브 세계의 각 방면의 관찰
제28장 인도 역사에 내재된 발전 로직
인도사의 어느 단계가 ‘고전 시대’에 해당할까? | 고전 산스크리트어의 황금시대 | 신 브라만교의 안정기 | 힌두교의 바크티화와 샤크티화 | 카스트 네트워크의 정밀화 | 카스트 제도 내용의 궤변 | 카스트화의 통제 불능 | 경전의 미궁 | ‘부다페스트식’ 인지 유형 | 역대 인도 역사의 사이비적 이미지 바로잡기 | 북부 변방과 힌두교의 탄트라화
제29장 인도 역사의 ‘중고화’
카나우지 제왕의 위업 | 라지푸트족의 굴기 | 힌두교가 광복한 북부 영토와 서부 땅 | 서북부 모퉁이에서 침투한 이슬람의 삼중 공세 | 석양의 불교국: 벵골국 | ‘제3의 물결’ 불교가 벵골에서 티베트로 전파되다 | 힌두교가 대 벵골을 ‘광복’하다 | 상좌부의 중심축: 스리랑카와 버마 | 인도와 ‘대인도 문화권’
“서양 사관이 지배해온 문명사의 통념을 뒤흔든다!”
2020년 출간되어 역사 해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동양의 역사학자 쑨룽지의 『신세계사』 시리즈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제1권이 이제껏 우리가 배워왔던 서양 중심론과 민족주의에 기댄 세계 문명론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면, 제2권은 로마, 쿠샨, 파르티아, 진한 제국으로 대변되는 4대 제국에 영향을 끼친 헬레니즘 문화를 시작으로, 고대 세계의 종식을 불러온 흉노의 출현과 그들로 인해 어떻게 세계 민족 지도가 바뀌어 되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본다. 세계 역사에서 흉노의 행적이 묘연했던 건 지금껏 역사에서 4대 제국 문명 사슬의 중간지대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지만, 대초원을 지배했던 흉노는 훗날 돌궐로 넘어가기 전까지 굽타 제국을 위협했던 장의사 역할을 한 역사의 중추세력이었다. 또한 지금의 스웨덴 지역에서 살아가던 고트족이 로마를 붕괴시켜 중세 시대를 촉발했다는 기존 역사 담론을 해체하고, 비잔틴 제국, 카롤링거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현대 유럽의 지도가 형성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한다. 유럽이 1천 년에 걸쳐 변모하던 이 시기에 즈음하여, 이슬람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라 불리는 대식 제국이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문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후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등으로 분할되어 종말을 맞이했는지까지 상세히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불교의 변모 형태를 통해 인도의 역사를 조망한다. 힌두교와 불교와 자이나교의 갈등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인도 역사에 대한 해석을 뒤집으면서 『신세계사 2』는 최종장을 기약하며 막을 내린다.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고 대만과 미국에서 수학한 후, 스탠퍼드대학교 및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교에서 오래도록 강의해온 역사학자 쑨룽지는 동서양의 역사적 관점을 균형적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 쑨룽지는 이 책 『신세계사 2』에서 동양 혹은 서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료에 근거한 글로벌 사관을 바탕으로 전쟁과 교류를 통한 문화의 전파, 국가의 소멸과 탄생, 종교의 부흥에까지, 장대한 세계사를 흥미롭게 펼쳐낸다. 진화사, 정치사, 전쟁사에서 종교사, 사상사, 사회사, 문화사까지, 이 책 『신세계사 2』는 “통섭역사학”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쑨룽지는 책의 서문에서 “‘옛것’을 장악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한다. 역사는 지나간 것이지만 항상 신선하다. 시대마다 과거 역사에 대한 각각의 다른 인식과 해석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세계사가 특히 그러한데,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습관적으로 시간의 축에 따라 역사를 나열하고 서양 중심의 사고에 따라 내용을 배열한다. 현대의 많은 글로벌 역사학자들이 이를 반성하고 한층 더 넓은 시야로 관용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쑨룽지가 그들 중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이 책 『신세계사 2』는 신랄한 통찰의 자세로 기존 세계사의 서사 전통을 철저하게 뒤집는다. 치밀한 고증을 통한 세심한 분석과 대담한 가설, 도전적이고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견해,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수많은 사실들로 충만한 이 책은 참신하면서도 놀라움으로 넘쳐나 독자의 사유 영역을 한층 더 확장시킨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은 점점 ‘옛것’으로부터 멀어진다.
따라서 역사는 ‘새로움’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새로워질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계속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다.”
-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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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사 2』의 내용 소개
『신세계사』 시리즈(총 3권)의 두 번째 책인 『신세계사 2』는 1권에 이어 17장에서 29장까지, 총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7장 구대륙을 가로지른 문명 사슬: 4대 제국과 실크로드
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4대 제국, 진한제국, 쿠샨, 파르티아, 로마를 하나의 문명지대로 연결해 고대 세계의 최종적이면서도 최고의 골격으로 삼았다. 알렉산더가 개척한 헬레니즘이 이 문명에 끼친 상이한 영향과 그로 인해 달라진 정치체제를 비교해본다.
제18장 미륵과 메시아: 세계적 구세주형 종교의 탄생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은 헬레니즘을 중앙아시아까지 전파했다. 헬레니즘은 지중해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을 위한 길을 닦았고, 페르시아에서 내륙 아시아 및 인도 일대에서 현지의 요소와 융합해 ‘그리스 아시아 문명’을 만들어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구세주론이 성행했고,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헬라화 된 정권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을 융합해 원시불교를 미륵 숭배로 변모시켰다.
제19장 제국의 멸망: 흉노는 고대 세계의 장의사
4대 제국 문명지대의 해체와 고대 세계의 종식을 다루며 이 과정에서 흉노가 어떻게 장의사 역할을 했는지 논증한다. 4세기 말 흉노의 서부 이주가 유럽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한 나비효과의 시작점이 되었고, 훗날 또 다른 이주를 유발하게 되는 고트인 또한 조직을 갖춘 알프스산 북부 대제국을 이루었다. 세계 역사에서 흉노의 행적이 묘연해진 것은 지금껏 역사에서 4대 제국 문명 사슬의 중간 지대를 소홀히 다뤘기 때문이다.
제20장 아프리카 고대사의 형태와 후기 고대사의 노선
북아프리카는 지중해의 일부분이지만 고대 이집트 역사의 전반부는 서남아시아 역사에 편입되는 요소가 다소 많았고 그리스와 로마에 정복된 뒤로는 지중해 역사로 이전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줄곧 나일강 상류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흐름은 누비아의 역사로 확대 발전되었다. 누비아에서 사하라 남부에 연접한 주랑走廊을 가로지르면 서아프리카에 이른다. 서아프리카 문명의 발전은 어쩌면 현지의 요인으로 말미암은 결과일 수 있다. 선사 시대 블랙 아프리카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어 인류의 탄생지가 될 수 있었지만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왕성했던 생명력은 아프리카를 바이러스 자생의 온상이 되게 했다. 지리적 구조 또한 역사 시대의 인류의 생존에는 극단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되었다.
제21장 고대 세계에서 탈피하지 못한 고트족
이 장에서는 ‘게르만인이 로마를 멸망시킨 사건이 상고 시대에서 중고 시대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라는 잘못된 관점을 수정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로마와 운명을 함께한 것은 고트족이었다. 제국 말기 역사의 ‘흉노라는 삽입곡’은 로마 변방의 우환이었던 고트족을 통일하여 로마에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흉노제국이 붕괴하자 고트족 출신 집단이 서로마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최후의 로마인’ 역할을 감당했고 이로써 서로마의 멸망을 476년까지 미룰 수 있었다.
고트족이 미래 유럽의 문을 연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건 고대 말기의 신학 논쟁에 지나치게 깊이 발을 들여놨기 때문이다. 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하기도 한 아리우스파를 신봉했지만,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아리우스파에 찬동했던 로마 황제 발렌스를 죽였는데, 그 바람에 니케아 신조 복권을 도모했던 테오도시우스 1세가 등극하였고, 결국에는 그의 신앙이 국교로 확정되었다. 이는 훗날 고트족이 로마에 입성한 뒤로도 로마인과 ‘정체성 충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제22장 서로마의 유산은 누구에게로?
동게르만족(고트족)이 고대 로마와 함께 멸망한 이상 훗날 새로운 서유럽의 문을 여는 주인공은 서게르만족이 된다.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속속 라인강을 건너온 프랑크족은 신속하게 로마 교회로 개종한 뒤 기존 갈리아성의 로마 지주와 손잡고 날로 라틴화하였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뒤 남은 로마 국교(즉, 로마 교황청)는 ‘서로마 제국’을 부활시킬 필요가 생겼는데 그때 교황청의 눈에 들어온 것이 프랑크 왕국이었고 둘은 힘을 합쳐 새로운 중심축을 형성, 미래의 유럽을 탄생시킨 배아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제도의 ‘원서遠西 기독교’는 교황청 대신 편서 지역 변두리에서 가업인 기독교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황청과도 경쟁해야 하는 이중의 짐을 져야 했다.
제23장 끊임없이 변모했던 나라, 비잔틴
비잔틴은 오랜 기간 발칸과 소아시아라는 두 반도를 손에 넣기도 했지만, 중심지로부터 해안으로 밀려나고, 다시 중심지를 탈환하지만 이내 잃고 마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가서는 십자군과 오스만에 의해 분할되는 등 그 형태가 만화경처럼 끊임없이 변하였다. 이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방국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고대 로마 말기 기독교의 국교화는 사상 통일을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교회의 삼위일체론과 동방의 기독교 단성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동방을 이슬람의 손에 빼앗기고 만다. 신의 완전성은 훗날 중앙에서 성상 파괴 운동으로 변했다. 삼위일체론을 적극 지지했던 서방 라틴 교회는 끝내 사이가 틀어졌다. 9세기, 비잔틴은 슬라브에 동화한 그리스반도 중심부를 수복하였고 그 포교 공세는 대 모라비아를 향했다. 훗날 비록 라틴 교회에 패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슬라브 교리로 불가리아와 루스를 얻을 수 있었다.
제24장 아라비아인의 ‘다르 알 이슬람’
고대 로마의 ‘3세기 위기’ 때는 삼국이 대치하는 정세가 펼쳐지는데 그중 하나는 아라비아인에 의해 세워졌다. ‘고대’가 종식된 후 7세기에 이슬람이 권토중래하면서 아라비아인은 비잔틴의 4분의 3을 점령하고 전체 사산 제국을 병탄한 뒤 페르시아만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칼리프(선지자의 대리인) 정권을 세웠다. 초기에는 선지자의 후예들, 즉 지도자 계층에서 배제된 이들이 이맘 전승의 지하 정권인 시아파를 형성하여 수니파로 불리는 칼리프 정권과 대립하였다.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땅)’의 추가 확장은 비잔틴과 프랑크 왕국, 토번 제국, 하자르 칸국, 북인도의 라지푸트족에 의해 가로막혔다.
제25장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
아바스 정권 초기, 문화적 전성기로 접어든 대식 제국은 수도 바그다드에 과학연구 센터인 ‘지혜의 집’을 세워 중고시대 최고의 과학연구 혁명을 일으켰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헬레니즘의 과학 유산을 종합하고 인도의 수학과 중국의 제지술을 받아들였다. 해당 기간에는 또한 이슬람 성훈학과 성률파가 절정기를 맞이하였는데 종교와 과학이라는 이 두 개의 황금시대는 둘 중 하나만 살아남게 된다. 종교가 과학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당시 바그다드 중앙이 쇠퇴하면서 과학연구와 문예 창조의 중심이 코르도바로부터 카이로, 트랜스옥시아나 일대로 확대되었다. 후자는 특히 ‘이란 문예 부흥’의 장소가 되었고 이는 오랜 기간 아라비아 패권에 억눌렸던 이란 문화의 부활을 의미했다. 대식의 쇠락은 또 다른 의미에서 다르 알 이슬람이 대식 제국과 지리적 경계를 공유했던 데서 벗어나 밖으로는 유라시아 대초원과 남아시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까지 전파된 계기가 되었다.
제26장 서유럽 열국의 탄생
샤를마뉴 제국은 동과 서의 두 부분으로 분열되면서 각각 훗날의 독일과 프랑스의 배아가 된다. 제국의 쇠락기에 유럽은 삼면이 동방의 마자르와 북방의 바이킹, 남방의 무어인(무슬림)이라는 적에 둘러싸이지만, 샤를마뉴의 후예는 이들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유럽은 새로운 지도자를 기다렸고 시국은 새로운 유럽의 탄생을 부르짖었다.
10세기에는 동프랑크 영토의 오토 대제가 최종적으로 마자르라는 위협을 해결하고 새로운 신성로마 황제로 등극한다. 그러나 이미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린 로마 교황청으로부터는 새로운 보편 세계적 제국 중건에 필요한 협조를 얻어낼 수 없었다. 해당 대업은 물론 도이치의 탄생을 촉진하였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두 땅은 오랫동안 응집되지 못했다.
서프랑크의 땅에서는 바이킹의 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파리 백작의 무리가 별도로 프랑스 왕통을 세웠다. 바이킹의 위협으로 잉글랜드 7국은 하나의 나라로 합병되었지만 노르망디에 거주하던 바이킹이 훗날 해협을 건너와 이 나라를 수중에 넣는다. 이는 오늘날 영국의 시초가 되었지만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간 오랜 갈등이 잉태된 순간이었다.
또 다른 ‘노르만의 정복’은 이탈리아반도 남부에서 발생했다. 그들은 무어인을 쫓아내고 더 나아가 비잔틴을 공격했다. 비교적 효과가 있었던 건국 운동은 이베리아반도 기독교의 ‘광복 운동Reconquista’으로 남부 무슬림의 땅을 잠식하였으며 오늘날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나라를 구축하였다.
제27장 슬라브 세계의 형성
슬라브인은 6세기에 비잔틴의 시야에 등장하여 아바르인의 뒤를 이어 변방의 우환이 되었다. 아바르인과 슬라브인의 관계는 흡사 흉노와 고트족 사이의 관계와도 같아, 아바르인은 그들 아래에 있던 슬라브인을 위한 길을 닦는 역할만 하고는 정작 자기 자신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아바르인이라는 조류가 빠져나가자 동유럽 전체에는 슬라브라는 개펄이 맨몸을 드러내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경우였지만 그 근원은 명확하지 않다. 슬라브인의 초창기 역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대국인 ‘대모라비아’의 지리적 위치도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헝가리인들은 슬라브인을 서와 남의 두 지파로 나누었다. 서쪽 지파인 보헤미아는 신성로마제국(게르만계)으로 흘러 들어갔고 폴란드는 직접 로마 교황청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하여 게르만과 얽히는 것을 피했다. 남부 지파는 그리스반도로 들어가 비잔틴화하였다.
슬라브 역사는 그들이 나라를 건설하는 것에 소질이 없었는가 하는 문제, 즉 오늘날 러시아의 원류가 동슬라브인이 북유럽인(바이킹)을 초빙하여 그들을 위해 나라를 세우게 했는지에 관한 문제를 포함한다.
제28장 인도 역사에 내재된 발전 로직
4대 제국이 병립하는 시기에 이르면 쿠샨은 내륙 아시아와 북인도를 아우르는 비非 본토 왕조(비 전형적)가 되어 불교를 대승 불교의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 속에는 헬레니즘과 이란의 요소가 복잡다단하게 섞여 있다. 불교는 점차 탈인도화하여 실크로드의 종교가 되었다. 쿠샨 왕조가 불교를 숭상하기 전, 불교는 이미 마우리아 왕조의 국교가 되어 마가다 문화의 토양을 조성하였다. 그것의 쇠락 추세는 쿠샨의 뒤를 이어 굴기한 굽타 왕조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당시 범梵(브라만) 문화는 고대 베다 신앙과 함께 권토중래하여 힌두교의 ‘고전 시대’를 이루었지만 이는 오히려 양대 서사시와 『푸라나』로 재편된 신 브라만교(힌두교)였다. 그것은 이 전적들을 통해 새로운 구주救主를발전시켜 경건 운동의 숭배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로써 불교와 자이나교에 맞섰다. 신 브라만교는 또한 자이나교와 불교의 채식 신앙을 흡수하였지만, 채식은 오히려 카스트 계급의 높낮이를 정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힌두교는 남방에서 세력을 얻었고 비非 아리안 여신 숭배를 받아들여 육체 혐오를 극단화한 고대 인도 신앙을 샤크티 숭배로 전환시켜 결국 더러운 것을 숭배하는 밀교로 변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더러운 것에 대한 공포증을 기초로 일어난 기존의 브라만 신앙과 ‘힌두교’ 안에서 공존하였다.
제29장 인도 역사의 ‘중고화’
기존의 인도 역사에 대한 해석을 뒤집었다. 불교는 힌두교에 대한 혁명이 아니고 후발주자인 힌두교에 의해 국교의 지위가 빼앗긴 경우다. 지역적으로는 북인도 평원의 ‘중국’이 끝내 동방의 ‘대 마가다(불교의 탄생지)’를 압도한 셈이다. 이러한 추세는 후 굽타 시대의 카나우지 제업帝業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와 평행적으로 ‘중국’ 지역의 브라만 패권이 공고해지고 전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지역까지 처음으로 진군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고대 ‘크샤트리아’가 중고시대의 라지푸트족 신분에서 ‘재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지푸트의 굴기는 우선 ‘백흉노’의 침입과 관련되어 있다. ‘흉노 시대’가 문명지대에 남긴 흔적은 획일화한 잣대로 세계사의 구간을 나누게 했다. 그다음은 이슬람의 침입이다. 이슬람은 ‘세계 중고사’의 현상이므로 인도에서는 ‘중고 전기’를 대체한 라지푸트족의 굴기가 ‘중고 후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불교 밀승이 토번으로 유입되어 오늘날 티베트 문명의 바탕이 된 부분이다. 토번 제국의 굴기는 이슬람 제국과 마찬가지로 대략 세계사의 중고 시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로는 상좌부 불교가 스리랑카에서 인도차이나반도로 유입되어 버마를 중심으로 점차 해당 반도의 문화적 토양(베트남 제외)이 되었다는 점이다. 버마인이 인도차이나반도로 남하한 것은 서기 1000년 전후의 일이다. 그 밖에 세계사가 중고시대에 이르면 비로소 남양南洋의 ‘대인도 문화권’이 출현하게 된다.
작가정보
孙隆基
본적은 저장(浙江)으로, 1945년 충칭(重慶)에서 태어나홍콩에서 자랐다. 타이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러시아사로 석사학위를, 스탠퍼드대학에서 동아시아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중국문화의 심층 구조(中國文化的深層結構)』 『역사학자의 경선: 역사심리 문집(歷史學家的經線: 歷史心理文集)』 『아직 젖을 떼지 못한 민족(未斷奶的民族)』 『미국의 살모문화: 20세기 미국 대중심리사(美國的弑母文化: 20世紀美國大衆心態史)』 『중국의 국민성: 국민성에서 개체성으로(The Chinese National Character: from Nationhood to Individuality)』 등이 있다.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주)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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