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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 「서론: 리좀」 읽기

세창명저산책 98
조광제 지음
세창출판사

2024년 07월 15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04월 0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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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8895586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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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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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rhizome)은 ‘땅속줄기’를 뜻하는 말이다. 잔디의 뿌리를 보면 기다란 줄기에 여러 잔디가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다양태’, 곧 ‘고원(plateau)’이 연결되어 하나의 리좀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고원, 그 안의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 ‘나’는 어떤 회사의 직원일 수도 있고, 동호회의 리더일 수도 있고, 어떤 나라의 국민일 수도 있고, 한 마리 동물일 수도 있다. 리좀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상하의 위계질서도, 우열도 없이 모든 고원이 한데 어우러져 연결접속을 반복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현대사회의 구조를 해체하는 동시에, 해체된 세상을 리좀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머리말

1장 책과 저자
1. 들뢰즈와 가타리
2. 「서론: 리좀(Introduction: Rhizome)」
3. 책쓰기 또는 글쓰기
4. 책과 저자
5. 책은 하나의 배치 장치다

2장 책, 다양태와 기관들 없는 몸
1. 복습, 하나의 배치 장치인 악보
2. 책은 다양태다
3. 책은 기관들 없는 몸이다

3장 다양태인 고원들로 된 리좀
1. 고원이란?
2. 고원과 리좀
3. 책 『천 개의 고원』을 이루는 고원들
4. 사이-존재론
1) 고원과 리좀, 중간의 현존
2) 사이-존재론·95

4장 존재 생성의 기반: 배치 선들, 바탕면, 기관들 없는 몸
1. 책은 존재의 모델
2. 책-우주와 그 복합 다양의 선들
3. 언표: 실천에 대한 명령
4. 대상의 배치 장치와 지평의 배치 장치
5. 추상적 개념(槪念)과 실질적 면(面)
6. 바탕면과 기관들 없는 몸들
7. 바탕면과 배치의 선들

5장 리좀의 원리들
1. 세 유형의 책
2. 리좀의 원리: 나무 - 뿌리 유형의 모방 - 복사에 따른 사유에 대한 비판
3. 리좀의 원리5, 뇌 신경의 리좀적 연결망과 지도 만들기의 원리
4. 리좀의 원리6, 서양란과 말벌의 전사(轉寫)의 원리
5. 원리5, 지도 만들기
6. 마지막, n-1의 지도 만들기

참고문헌
자료출처

p.23
책을 쓸 때 정말 결정적인 순간은 첫 문장, 첫대목을 어떻게 시작할까 하면서 텅 빈 허연 공간을 쳐다볼 때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아니 그래서일 거라 거의 확신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글의 첫대목에 다음의 ‘그림’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p.30
요지는 무엇인가요? 우선 그들이 쓴 『천 개의 고원』은 비록 그들 두 사람이 썼다는 것을 책 표지에 명기해 놓긴 했으나, 그들 자신이 썼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책이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일인칭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이 이 책을 써서 발간했으나 도무지 내가 썼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p.31
이들은 『천 개의 고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을 써서 세상에 퍼뜨려 놓고서는 그 책을 쓴 자가 “‘나’라고 말하건 하지 않건 더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고자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들이 ‘저자(著者, author)’를 문제 삼은 뒤 풀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흔히 저작권이니 지적 재산권이니 해서, 따지고 보면 인류 전체의 성과물일 수밖에 없는 것을 배타적인 자본으로 삼는 자본주의적인 제도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셈입니다.

p.58
책을 다양태로 결론짓더니 결국에는 ‘기관들 없는 몸’으로 귀착되었습니다. 다양태는 중심이 없이 이리저리 엮여 있는 그물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물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건 씨줄과 날줄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고, 그물을 형성하는 줄들이 아무 법칙도 방향도 없이 얼기설기 무작위로 연결된 것도 있습니다.

p.81
첫대목의 “하나의 고원은 항상 중간에 있지 시작이나 끝에 있지 않다. 하나의 리좀은 고원들로 되어 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원은 달랑 하나의 지대(地帶)로만 고립해 있지 않고 여러 다른 고원들과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무수히 많은 다른 고원들과 연결되어 있기에, 하나의 고원은 항상 중간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요.

p.110
우리가 이해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이건 추상적이건,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단순하건 복잡하건, 단일하건 복합적인건, 개별적이건 보편적이건 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는 대개 분절의 선들, 분할의 선들, 그리고 탈주의 선들이 있습니다. 특히 책이 그러합니다. 책 역시 존재하는 것 중 하나임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책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여느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내용이 무한하다고 할 정도로 워낙 풍부하고 복합적입니다.

p.139
연필과 연필을 조성하는 나무, 흑연이 따로 분리해서 현존하지 않습니다. 단지 서로 구분될 뿐입니다. 이를 중시하게 되면, 인식의 판면과 존재의 판면이 따로 분리해서 성립하지 않고 서로 구분될 뿐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바탕면을 통해서 배치 장치들이 구성된다고 말하거나, 배치 장치들을 통해서 바탕면이 구성된다고 말하거나 크게 차이가 없는 것이 됩니다.

p.157
요컨대, 리좀은 다양태를 바탕으로 하면서 다양태를 형성한다는 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이것들을 이렇게 네 대목으로 나누어 서술하지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각 대목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일부를 따내어 활용하고, 다시 다른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식으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덩달아 리좀이 작동하는 방식을 흉내 내는 식으로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p.185
이 모든 연결접속 관계를 한꺼번에 떠올리다 보면, 책이라는 언표적 영역과 실제의 다른 영역들 사이에 위계 관계를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원본과 복사본의 위계에 관해서도 말할 수 없고, 토대(근거)와 상부(실제)의 위계에 관해서도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항 논리적인 이분법적 사유의 논리와 그에 따른 지배-피지배의 정치적인 권력 관계를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철저히 해체된 현대사회의 위계질서,
부유하는 천 개의 고원을 리좀으로 연결하다!

“하나의 리좀은 수많은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 중 「서론: 리좀」 부분을 따로 추출하여 그들의 ‘리좀’ 개념을 심층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리좀(rhizome)은 ‘땅속줄기’를 뜻하는 말이다. 잔디의 뿌리를 보면 기다란 줄기에 여러 잔디가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다양태’, 곧 ‘고원(plateau)’이 연결되어 하나의 리좀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공고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던 근대사회와 달리, 현대사회는 모든 위계와 권위가 해체되어 파편화되었다. 이렇게 파편화된 고원은 상하좌우가 없이 상황과 목적에 따라 연결되기도, 분리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A와 B의 결합은 A+B가 되는 것도 아니고, AB라는 통일점을 향하는 것도 아니다. C라는 전혀 새로운 가능성으로 ‘접속’되는 것이다. 리좀은 잔디 뿌리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연결되어 유연하고 유동적인 형태로 우리 주변을 재구조화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의 원리를 6가지로 나누어 살핀다. ① 연결접속의 원리, ② 이질성의 원리, ③ 다양태의 원리, ④ 탈의미작용적인 단절의 원리, ⑤ 지도 만들기의 원리, ⑥ 전사(傳寫)의 원리, 이렇게 6가지가 그것이다. 그러나 리좀의 원리 6가지마저도 단계별로 이루어지거나 각 원리가 분절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저자 조광제 교수는 잔디 뿌리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리좀의 원리가 어떻게 서로 간섭하고, 서로의 다양태이자 바탕이 될 수 있는지 다양한 예시를 통해 친절하게 해설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펼치는
탈(脫)의 위상학

『천 개의 고원』의 첫대목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실바노 부소티의 악보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의 악보는 연주 가능한 악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난해하고 혼란스럽다. 어떤 곡은 연주를 위해 작곡을 했다기보다 그냥 악보 위에 그림을 하나 그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악보 전체를 가로지르는 무분별하고 거친 선을 두고 저자 조광제 교수는 이를 ‘탈주선’으로 명명한다. 이 선들은 정해진 오선지를 벗어나 옆으로, 아래위로 자유분방하게 그어져 있다. 그리하여 ‘탈지층화’가 일어난다. 여기에 어떤 특정한 악기가 주도하는 영토도 구별할 수 없으므로, ‘탈영토화’가 일어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여기서 ‘기관들 없는 신체’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이 말은 앙토냉 아르토라는 극작가가 사용한 말로서, 마치 유정란 속의 생명체처럼 신체 기관이 형성되지 않았지만, 신체로 인정받는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끊임없이 현재의 틀을 깨는 탈영토화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로 ‘기관들 없는 몸’을 언급한다.
유기체적 기관은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예를 들어 ‘손’은 청중 앞에서 ‘효과적인 제스처를 위한 손’이 되고, 옮겨야 하는 물건 앞에서 ‘일하기 위한 손’이 되고, 연인 앞에서 ‘손을 맞잡기 위한 손’이 되고, 언어 장애인 앞에서 ‘말하기 위한 손’이 된다. 곧 신체는 한 가지 기능에 연결되는 것을 벗어나, 때와 장소, 목적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유기체적 기관 개념을 거부하여 ‘기관들 없는 몸’을 주장한다. 이처럼 ‘탈주선’, ‘탈지층화’, ‘탈영토화’, ‘기관들 없는 몸’이라는 개념을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이 연결접속 되는 방식을 설명하는데, 모든 수직적이고 수형적인 관계를 평면화시켰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탈의 위상학’을 보여 준다 할 수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조광제

1955년에 마산에서 출생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전숙 교수님 지도로 「현상학적 신체론: E. 후설에서 M. 메를로-퐁티에로의 길」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3월 시민대안학교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위원,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 대표로 일하고 있다.
1987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대학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철학과 예술에 관련한 강의를 했다. 그리고 교도소, 도서관, 문화센터, 공무원 교육기관, 각종 시민교육 시설들을 오가며 특강을 했다. 그 와중에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장직과 한국철학회 부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23년 동안 〈철학아카데미〉에서 수없이 많이 강의하면서 매번 강의록을 제공했고, 이 강의록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영화에 관한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2002), 존재론 입문을 위한 『존재 이야기』(2004), 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을 강해한 『몸의 세계, 세계의 몸』(2004), 미술에 관한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2007), 후설의 현상학에 관한 『의식의 85가지 얼굴』(2008), 입문자를 위해 철학의 개념을 풀이한 『철학라이더를 위한 개념어 사전』(2012),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강해한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1, 2권』(2013),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을 강해한 『회화의 눈, 존재의 눈』,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을 개관한 『현대철학의 광장』(2017), 현상학적 사유를 나름으로 해석한 『불투명성의 현상학』(2023) 등이 그 책들이다. 여기 이 책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 「서론:리좀」 읽기』(2023)도 2022년 〈철학아카데미〉에서 한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외 여러 공저가 있고, 주요 역서로는 마빈 민스키의 The Society of Mind를 번역한 『마음의 사회』(2019)가 있다.
한때 ‘함수적 존재론’이라는 나름의 존재론을 모색했으나 중도에 그쳤다. 요즘에는 신경과학을 염두에 둔 몸과 의식의 문제를 탐색하는 가운데, 브뤼노 라투르의 신-실재론을 중심으로 한 신유물론의 문헌들을 살피면서 21세기를 염탐하는 존재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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