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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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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4일 출간

국내도서 : 2015년 10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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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21.37MB)
ISBN 979114160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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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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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연대기』는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이라는 카다레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그의 대표작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다.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 그의 고향인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한 익명의 ‘돌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무력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삶의 의지를 지닌 개인들이 세계의 폭력에 맞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냈다.
돌의 연대기 007
옮긴이의 말 383
이스마일 카다레 연보 395

밤사이 변해버린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강이 다리를 미워하는 것처럼 도로는 강을 미워하고, 급류는 담벼락을 미워하며, 바람은 광기 어린 제 분노를 저지하는 산을 미워한다고.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이런 파괴적인 증오 한복판에 거만한 자태로 누워 있는 축축한 잿빛 도시를 미워한다고. 그래도 나만은 이 도시를 사랑했다. 이 전쟁의 와중에 도시는 그 모두에 홀로 맞서고 있었으니까. (18쪽)

나로 말하면 어떻게 사람은 눈으로만 보고 손가락이나 뺨이나 다른 신체 부위로는 볼 수 없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눈도 우리 몸의 일부에 지나지 않잖아. 그런데 어떻게 세상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걸까? 그토록 엄청난 빛과 공간과 색깔이 쉴새없이 우리 눈으로 밀려들어오는데 어떻게 우리 몸이 터져버리지 않을 수 있지? (27쪽)

집집마다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처음에는 동요와 혼란이 이는가 싶었다. 그러더니 이런 경우 흔히 그렇듯 애초의 불안이 가라앉자 사람들은 악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두고 ‘왕할머니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 무엇에도 놀라거나 겁을 먹지 않게 된, 나이가 아주 많은 노파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바깥출입을 않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세상만사가 지겹기만 했다. 모든 사건이, 전염병이나 홍수나 전쟁 같은 몹시 중대한 사건들조차 그들에게는 지루한 반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왕정 시대에도 그들은 할머니였고, 그보다 앞선 공화정 시대나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대, 심지어 금세기 초에도 그들은 이미 할머니였다. (54쪽)

우울한 하루가 밝았다. 아침 햇빛이 성벽의 좁다란 총안과 갈라진 틈새로 비실비실 새어들었다. 일곱시경이 되자 성채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방과 통로와 입구를 오갔다. 그들은 점점 많은 지인들과 마주쳤다. 도시 전체가 같은 지붕 밑에서 잠을 깬다는 사실에 모두가 당혹감을 느꼈다. 서로 다른 가족들이 지위나 신분을 불문하고 나란히 공존했다. 동네들이나 집들의 규모와 공간 배치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도저히 한데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지붕 아래 모이게 되었다. 카를라슈와 안고니,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수녀와 매춘부, 지체 높은 가문과 도로 청소부, 집시가 함께했다. (243쪽)

하루하루가 아무 사건 없이 일렬로 이어졌다. 한 사람이 일찍이 품에 안았던 다른 이의 몸을 찾고 있었다. 그 일은 땅속 깊은 곳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었다. 땅 위에서는 모든 게 예전 그대로였다. 갑갑하고 끈적끈적한 날들이었다. 그날이 그날이었다. 날들을 구분짓는 마지막 보루, 껍질처럼 날들을 감싼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이라는 이름마저 여차하면 제거될 판이었다. (259쪽)

우리는 무작정 걷는 꼴이 되었다. 걷기 위해 걷기, 어둠의 뱃속에서 방황하는 꼴이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담벼락 사이든 교차로든 방안이든, 어디서나 나는 생각하는 데 익숙했고, 그 낯익은 장소들이 내 생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 같았더랬다. 하지만 그것들을 떠나온 지금에 와서는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잔인하기까지 했다. 이제 산은 성 삼위일체 언덕으로 상반신을 잔뜩 기울여 그 목을 태연하게 물어뜯었다. 언덕이 숨을 거두고 있었다.
누군가 재채기를 했다. 그 소리가 구원처럼 와 닿았지만 아쉽게도 한순간이었다. (348쪽)

오래전부터 내비쳤던 몇 가지 기미가 이제 의심할 나위 없는 징조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와 제모 왕고모가 왕할머니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거였다. 터키인들의 대대적인 난입, 공화정과 왕정의 폐허에서 자행된 학살, 사십 년간 지속된 굶주림이 왕할머니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와 제모 왕고모에게는 독일인들의 침공이 결정적인 시련임이 틀림없었다. (350쪽)

“자, 이젠 지하실로 내려가자, 폭격이 시작될 시간이야.”

유럽 문학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 대표작
무구한 소년의 눈에 비친 광기와 환상의 연대기

카다레 스타일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먼저 『돌의 연대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_뉴욕타임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
카다레 문학의 정수

독특한 작품세계로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유럽 문학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그는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더 유명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럽은 물론 세계의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돌의 연대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 그의 고향인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한 익명의 ‘돌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무력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삶의 의지를 지닌 개인들이 세계의 폭력에 맞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냈다. 『돌의 연대기』는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이라는 카다레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그의 대표작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다.
문학동네는 『죽은 군대의 장군』 『광기의 풍토』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등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을 꾸준히 출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피라미드』를 비롯해 『잘못된 만찬』 『떠나지 못하는 여자』 등 그의 작품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전쟁의 광풍에 휩싸인 ‘돌의 도시’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돌의 연대기』는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알바니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직 본격적으로 현대에 접어들지 않은,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은 여전히 저주 걸린 ‘마법의 뭉치’를 두려워하고 닭뼈로 미래를 점치며, 도시 바깥의 세계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 도시 외곽에 있는 들판에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전복된다. 군대가 들어오고 돌로 된 집만 있던 도시에 ‘종이 집’이 세워지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용어도 낯선 ‘등화관제’라는 것이 시행되더니, 이윽고 영국군의 공습이 시작된다. 폭격은 그들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들은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실로 숨어들어 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폭탄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채 다시 그들만의 일상을 되찾아간다. 그들은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며 삶을 이어간다.

영국 비행기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우리를 방문했다. 그것들은 거의 정해진 시각에 나타났으므로 사람들은 일정표에 짜인 불쾌한 일과에 적응하듯 폭격에도 웬만큼 적응해갔다. 내일 폭격이 끝나고 카페에서 보자든지,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폭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집안 청소를 마칠 거라든지 하는 말들이 오갔다. 자, 이젠 지하실로 내려가자, 폭격이 시작될 시간이야, 라고도 했다. (232쪽)

무구한 소년의 눈에 비친 광기어린 전쟁
아이의 왜곡된 시선이 자아내는 유머러스한 비극

『돌의 연대기』의 화자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어린아이다. 그는 또래 친구 일리르와 저주에 걸린 물건들을 찾으러 다니고 지구가 공처럼 둥글게 생겼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하며, 내리는 비와 굽이치는 강물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상상력이 뛰어난데다 생애 처음 읽은 책인 『맥베스』를 읽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난 아이다. 이런 소년에게 이 도시에 닥친 사건들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소년의 시선으로 본 전쟁이라는 재앙은 아이의 눈을 통해 왜곡되어 때로는 유쾌하고 희극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낯선 관점으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전쟁의,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지? 한 조각 천에 열십자 모양으로 그어진 선 두 개가 어떻게 그런 근심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바람에 펄럭이는 천조각 하나가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비탄에 잠기게 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212쪽)

알바니아의 도시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탄생한 익명의 ‘돌의 도시’
신화적 환상과 역사의 비극적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1900년대지만 무대가 되는 ‘돌의 도시’는 중세시대를 연상시킨다. 오토만제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석재 건물들이 즐비하고 가톨릭교회와 이슬람의 모스크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도시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그리스군이 차례로 점령하며 더욱 혼돈으로 가득찬다. 마치 여러 세계가 충돌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공간에 아이의 상상력이 더해져 도시는 더욱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아이의 동화적 상상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끼어들며 도시는 신화 시대의 분위기를 띠게 되고, 덕분에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공간적 배경이 탄생한다.

이상한 도시였다. 무슨 선사시대의 존재처럼 겨울밤 불쑥 계곡에서 솟아나 힘겹게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듯한 도시. 도시의 모든 것이 돌이고 노후해 있었다. (…) 회색 돌기와로 덮인 지붕들은 거대한 비늘을 연상시켰다. 이처럼 굳고 단단한 외피 속에서 삶의 부드러운 과육이 생장하고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7쪽)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이라는 재앙을 마주하는 인간군상의 향연

소설에는 소년의 가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린 화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야심찬 젊은이 이사와 야베르, 폭격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지붕에 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왕할머니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혼식은 열린다며 빗발치는 폭탄을 뚫고 신부 화장을 하러 다니는 피노 어멈, 도시를 지배하는 국가가 바뀔 때마다 감옥에서 풀려났다 다시 갇히기를 반복하며 감옥의 규율이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어둠의 친구’ 루칸…… 이외에도 많은 개성 있는 인물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쟁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통합되어버린 세계 이전의 인물들로,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린 주인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다. 이렇듯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이 벌이는 예측불허의 행동들을 통해 전쟁이, 그리고 세계라는 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스미르나에서 한 이슬람 수도승이 내게 묻더군.” 전직 포수가 말했다. “내 가족과 알바니아, 둘 중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론 알바니아라고 나는 대답했지. 가족이야 눈 깜짝할 새 만들어지는 거니까. 어느 날 밤 카페에서 나오다가 길모퉁이에서 여자를 만나 호텔로 데려가면 당장 가족과 아이가 생기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알바니아는 그럴 수 없지. 한잔하고 나서 하룻밤새 만들 순 없는 거야. 없고말고. 알바니아는 하룻밤은커녕 천하룻밤이 걸려도 만들 수 없는 거지.”(143쪽)

낯선 듯 익숙한, 우리 역사와 닮은 알바니아의 비극

『돌의 연대기』는 한 도시가 겪는 수난사이다. 소설이 시작할 때부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돌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나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소년들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도시와 자유로운 도시의 차이를 모른다. 지식인 청년들인 이사와 야베르는 그런 소년들을 딱하게 여기며 자유로운 도시를 꿈꾸지만 정작 그들 자신도 자유로운 도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너희는 노예로 자라서 자유로운 도시가 뭔지 몰라.” 야베르가 말했다. “너한테 그걸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자유로운 도시가 되면 모든 게 너무 다르고 너무 근사해서 처음엔 머리가 어질어질할 거야.”
“먹을 것도 많을까?”
“그럼, 먹을 것도 있지. 물론이야. 그것 말고도 많아. 아! 너무 많아서 나도 뭐라 분명히 말할 수가 없어.” (41쪽)

도시는 연이은 침략을 받고, 도시의 주인은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계속해서 바뀌어나간다. 도시 사령관이 바뀐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다른 도시 사령관이 부임하고, 이탈리아의 리라가 새 화폐로 지정된 뒤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리스의 드라크마가 통용 화폐로 바뀌길 반복한다. ‘돌의 도시’에 새로 생긴 비행장에 주둔하며 적국에 공습을 퍼붓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곤 하던 이탈리아의 전투기들은 그리스가 도시를 지배하게 되자 ‘돌의 도시’로 돌아와 폭탄을 퍼붓는다.
독일군이 패하고 이 모든 혼란이 끝난 후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젊은이들이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유격대원(빨치산)을 조직해 같은 시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벌인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또 전쟁이라!” 피노 어멈이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나.” 할머니가 말했다. “세상은 그것 없이는 못 사는걸. 이 나이 먹도록 하루도 진정한 평화를 맛본 적이 없어.” (310쪽)

대규모 폭격이 예고된 밤, 마침내 그들은 도시를 떠난다. 소년의 가족을 비롯해 도시의 거의 모든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다른 마을로 피신해 처음으로 돌이 아닌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잠을 자며 한밤중 멀리서 불타오르는 돌의 도시를 바라본다. 모든 게 무너진 듯한 그 참혹한 풍경 속에서 시민들은 하나둘씩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진다.
몽환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장들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인 서사 구조

이스마일 카다레의 문장은 특별하다. 그의 문장은 무게감이 있지만 어둡지 않고, 치밀하지만 유연하다.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그의 문장들은 비극에 희극적인 요소를 담아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돌의 연대기』는 감수성 풍부한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워 그만의 환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소년이 풀어놓는 시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문장들은 광기와 환상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반복되는 왕할머니들의 “말세야.” 하는 추임새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연상시키며 유머러스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독특한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문장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인 구조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의 서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구체적 배경은 연대기의 형식으로 장 사이마다 삽입된다. 적절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우화와 증언, 연대기의 조각들은 소설 전체에 리듬감을 준다. 아름답고 위트 있는 문장은 물론, 서사 구조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대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정보

저자 이스마일 카다레 Isma?l Kadare는 1936년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났다. 티라나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모스크바의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카다레는 『꿈의 궁전』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알바니아에서 몇몇 작품은 출간 금지라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카다레는 전제주의와 독재 체제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고,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우스꽝스러운 비극, 기괴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카다레는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직전 프랑스로 망명해 지금까지 파리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2년 프랑스의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치노 델 두카 국제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1회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스페인의 권위 있는 아스투리아스 왕자상(문학부문)을 수상했다.

역자 이창실은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죽은 군대의 장군』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를 비롯하여, 『마그누스』 『세 여인』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누보 로망, 누보 시네마』 『키에르케고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빈센트 반 고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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