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의 고전강의 : 일연 [삼국유사]
2024년 06월 2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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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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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신화에서 선덕여왕 설화까지!
한국의 신화를 담은 고전이라고 하면 누구나 일연의 《삼국유사》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그런데 정작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의무감에 가까운 심정으로 구했다가도 벽돌 두께에 기가 죽는다. 인내심을 갖고 다가서려 해도 내용이 친절하지 않아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멀다. 단군 신화를 비롯해 몇 가지는 비교적 친숙하지만 낯선 이야기가 훨씬 많다. 게다가 서로 다른 시대와 국가의 짧은 신화가 단절된 느낌으로 이어진다. 결국 앞부분의 몇 가지만 읽다가 포기하고 책장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고전’의 뜻이 ‘언젠가 반드시 읽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결국은 못 읽는 책’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에 멈추지 않고, 오히려 가장 실감 나는 경우다. 하지만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신화가 필수이듯이,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와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대신 신화는 이야기로만 접근하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고, 배울 것도 별로 없다. 신화는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이해해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비유와 함축적인 상징을 통해 드러나기에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꼼꼼하고 친절한 강독의 방식으로 이 책을 만나고 내용을 소화해야 하는 이유다. 모든 내용을 다룰 생각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일연이 승려이다 보니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불교와 연관된 설화가 지나치게 많은 편이다. 고대 역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거나,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짙은 영향을 준 신화·설화 중심으로 추려서 풀었다. 대신 각 이야기에 연관된 여러 사료와 정보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방식으로 편견과 왜곡을 줄이고 균형을 잡는 방식으로 다가선다.
강독1 : 단군은 어떤 역사를 담았는가?
누구나 아는 단군왕검 신화?
곰·호랑이 신화가 의미하는 것
역사로서의 조선에 대한 편견
강독2 : 주몽 상징이 왜 알과 활인가?
주몽은 부여와 어떤 관계인가?
주몽은 왜 알에서 태어났는가?
활을 들고 고구려를 세우다
강독3 : 온조‧혁거세 설화 비밀을 찾다
주몽의 지배력 강화와 백제 건국
알에서 나온 혁거세와 신라 건국
난생설화 이후 웅녀는 사라졌는가?
강독4 : 연오랑‧세오녀와 고대 한일관계
일본으로 건너가는 독특한 신화
일본의 연오랑·세오녀 신화?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
강독5 : 처용은 왜 춤을 추었을까?
처용을 역병의 퇴치로 배우다
처용은 성 풍속의 반영이 아닐까?
고대 동아시아의 성 관념을 만나다
강독6 : 가야는 변방에 불과했는가?
구지가와 황금알에서 생긴 가야
석탈해와 수로왕의 술법 대결
가야가 우리 고대사에서 갖는 의미
강독7 : 이차돈은 왜 순교했는가?
자발적 순교로 신라에 충격을 주다
불교 공인과 김유신·천관녀 설화
불교가 중앙집권 통치이념이 되다
강독8 : 왜 선덕여왕을 선택했는가?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 선덕
여왕 등극을 둘러싼 내외의 요인
비담의 난과 신라의 운명
[강독1] 환웅이 “인간 세상을 탐내어”라는 내용과 다음 문장의 “인간을 널리 이롭게”라는 내용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전자의 ‘인간’은 한문 원문에 ‘人’이고, 후자의 ‘인간’은 ‘人間’으로 구별하고 있으니 말이다. 후자의 ‘인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홍익인간(弘益人間)’에서의 ‘人間’을 그대로 옮긴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번역의 편의로 인해 생겨난 차이에 불과하고, 둘 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단어로서의 ‘인간(人間)’은 사실 근대 이후 사용된 용어다. - 본문 중에서
[강독3] 비류가 죽는 이유나 과정도 참으로 이상하다. 설화는 비류가 미추홀이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임을 알게 된 후에 “위례성으로 돌아와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이 편안한 것을 보고는 부끄러워 후회하다가 죽었다.”라고 한다. 졸본에서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머니와 동생을 설득하고 무리를 생소한 땅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바닷가를 고집한 선택도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의 실패에 좌절하여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고난을 헤쳐나가던 그의 특성과 참으로 맞지 않는다. 맥락으로 볼 때 거의 유일하게 합리적 설명이 가능한 방법이 비류와 온조 사이의 갈등이다. - 본문 중에서
[강독4] 아달라 직전인 일성 이사금은 “민간에서 금·은·구슬·옥의 사용을 금했다.”라고 하니, 병합된 각 지역에 대한 통제가 세밀하게 조여오던 시기였다. 연오랑이 살던 근오기 지역도 같은 처지에 있었을 것이다. 반발하는 소국들도 있었으나 강화된 신라의 군사력에 응징을 당할 뿐이었다. 기존의 주변 소국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본래 누리던 권한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는 길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길이다. 대부분 현실적인 사정으로 전자를 선택했다. 동해를 접해 일본과 가장 가까이 있는 근오기의 연오랑 세력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고 바다를 건너간 일이 설화로 남았다고 해석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 - 본문 중에서
[강독5] 처용이 “밤새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두 사람이 자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달 밝은 밤이었다고 해도, 밤에 가로등도 없고 불 켜진 집도 없었을 고대사회라면 칠흑같이 어두웠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나 사물의 어렴풋한 윤곽만 겨우 보이는 조건이다. 그런데 밤새도록 놀며 돌아다녔다는 언급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둠 속에서 서로의 행위나 표정을 보지 않으면서도 밤을 새울 정도로 빠져서 즐기는 행위라면, 온몸의 감각에 자신을 맡기면 되는 사랑 행위가 바로 떠오른다. 처용 자신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떤 여인과 야릇한 시간을 보내다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게 과연 과도하기만 할까? - 본문 중에서
[강독7] 신하들이 왕의 불교 정책 반대한 이유가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만을 지키려” 하는 것인데, 이차돈이 왕을 지지하는 이유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에 있으니 도대체 무슨 차이인가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합리적인 해석이 성립하려면 양쪽에서 말하는 ‘나라’의 의미가 매우 달라야 한다. 이차돈과 왕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나라’는 바로 이어지는 “임금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중앙집권적인 권력 체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나라를 지향한다. 그러면 이에 반대하여 신하들이 강조하는, 대의를 충실히 지키는 ‘나라’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왕이 결정권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각 지역의 귀족들과 합의하여 운영하는 나라다. - 본문 중에서
역사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신화와 사실이 자주 섞이기 마련이다. 일연이 승려이다 보니 전승돼 오던 설화를 많이 접했고, 또 그 역사적 의미를 깊이 느끼고 있었기에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에 접근할 마음을 가졌으리라. 《삼국유사》는 비슷한 시대를 다루면서도 신화적·설화적 기사가 더 풍부하게 담겨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정사와 신화를 함께 비교하며 해석하는 독서다.
고대사는 짧게는 천 년, 길게는 수천 년 이상의 과거를 다루기에 글로 된 사료는 물론이고 유물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료나 유물과 달리 구전으로 전해지던 신화는 더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래전의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생긴 사료의 빈 곳을 의외로 더 풍부하게 채울 기회를 제공한다. 신화를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적인 배경과 연결해 면밀한 해석의 과정을 거친다면 말이다. 《삼국유사》에 주목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한국인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건너뛰고 지적인 여행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퀴 중 하나에 바람이 빠진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려는 시도처럼 무모하다. 한국인의 고전 공부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한다. 그런데 고전 독서의 입구를 막 지난 사람이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신화에 담긴 의미를 풀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고, 배경을 이루는 역사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사료를 각각 찾아 모두 연결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이 책은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우리 고대 신화와 역사에 제대로 다가설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홍순
뒤돌아볼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성찰 기회를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허약한 인문학적 토양에 깊은 갈증을 느꼈다. 인문학적인 르네상스 없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일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향한 관심과 탐구에 기여하고픈 마음에서 글을 써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기에 동서양 고전을 친근한 벗으로 만드는 일, 고전의 정수를 가까이하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 인문학이 생생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화석으로 굳어진다는 문제의식으로 철학적 사유가 ‘지금, 여기’, 즉 오늘 나와 우리의 문제로 끌어안으며 일상의 삶에 밀착하는 방향으로 글을 써왔다. 엄밀한 독서와 치열한 토론만이 고전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믿음의 결과물로서 다수의 저서를 내놓았다. 동서양 미술작품을 매개로 철학과 사회로 인식 지평을 확장한 《미술관 옆 인문학》, 우리 헌법을 인문학을 통해 해석한 《헌법의 발견》을 비롯하여 철학·심리·사회·경제·역사·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수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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