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진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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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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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가 남긴 방대한 「인간극」 시리즈 가운데 대표적인 풍속 소설이자 세태 소설로 손꼽히는 『골동품 진열실』이 을유세계문학전집 133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롤랑 바르트가 “인간의 모습을 한 소설, 다시 말해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한 바 있는 대문호 발자크의 문학 세계를 오롯이 보여 주는 걸작이다. 오래전에 국내에 출간된 바 있으나 현재 절판된 작품을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추밀고문관이며, 『오토만 제국의 역사』 저자이신 드 함머 푸르그스탈 남작님께
골동품 진열실
주
해설: 귀족계급 몰락의 비애
판본 소개
오노레 드 발자크 연보
똑같은 시각에 변함없이 식탁에 자리 잡고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을 그들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확신은 결정적으로 내 눈에 그들이 무언가 극적이고, 화려하고, 초현실적인 모습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나중에 파리, 런던, 빈, 뮌헨의 유명한 왕실 가구 박물관에 들어가서 늙은 관리인들에게 지난 시대의 화려한 물품들을 안내받을 때마다 나는 골동품 진열실의 얼굴들로 그곳을 채워 보지 않고서는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 37쪽
“아! 법원장, 늙다리 위선자 같으니. 너는 우리와 간계를 다투렷다, 두고두고 기억하게 해 주마! 너는 네 솜씨 한 접시를 우리에게 내놓겠다 이거지. 그러면 너는 너의 식모 세실-아멜리 티리옹의 손으로 요리한 두 접시를 받게 될 거다.” - 본문 212~213쪽
시내를 한 바퀴 돌다가,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숭고해 보이는 아르망드 양과 마주쳤습니다. 나는 카르타고의 폐허 위에 앉은 마리우스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종교, 자신의 무너진 신념을 딛고 살아남은 것이 아닌가? 그녀는 이제 하느님밖에는 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늘 슬프고 말이 없는 그녀는 자신의 옛 아름다움에서 신비로운 광채로 빛나는 눈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서를 손에 들고 미사에 가는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하느님께 기원한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 본문 235쪽
가장 보수적이면서 가장 진보적인
발자크 리얼리즘의 정수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90여 편에 이르는 장편 소설로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구축했던 발자크는 다채로운 그의 작품만큼이나 입체적인 면모를 지닌 작가였다. 1842년 〈인간극〉의 서문에서 “종교와 군주제라는 영원한 두 진리의 빛으로 글을 쓴다.”라고 표방할 만큼 보수적인 색채를 보였던 발자크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는 가장 진보적인 작품을 집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빅토르 위고는 1850년 발자크가 서거했을 때, 추도사를 통해 “이 거대하고 기이한 작품의 저자는 혁명적 작가들의 강력한 혈족에 속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발자크 문학의 혁명적 성격을 부각했다. 엥겔스 역시 사실주의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바라본 바 있다. 이처럼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이라는 발자크의 평가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에밀 졸라가 말한, “그 재능이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며,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가장 혁명적인 작품을 써낸 작가가 절대 권력을 지지했다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은 없다.”라는 평가는 이러한 인식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골동품 진열실』은 이처럼 다채로운 대문호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몰락한 귀족의 살롱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프랑스의 사회 문화상을 박물지처럼 펼쳐 보이는 이 작품은 발자크가 남긴 여러 걸작 가운데 풍속 소설적인 면모가 강한 소설이다. ‘골동품 진열실’이라는 작품 제목부터 매우 시사적이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현 오른의 현청 소재지인 알랑송이란 도시의 귀족들은 낡은 사상과 관습을 고집하면서 노후작 카롤 데그리뇽의 살롱에 모여 배타적인 사교계를 형성하는데, 여기에 끼어들 수 없는 부르주아들이 빈정거리는 의미로 그 사교계에 ‘골동품 진열실’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이 살롱에 모이는 노귀족들은 개인적인 위엄과 미점을 보여 주는 면이 있긴 하지만 당시 사회의 제반 가치와 완전히 절연되어 이제는 골동품 같은 면모밖에는 보이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따라서 작품의 제목 자체가 살롱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동떨어진 노귀족들의 모습은 구세력의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신구 교체는 어느 시대에나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그만큼 이 작품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변치 않는 비애감을 선사한다. 『골동품 진열실』이 두 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풍속 소설
『골동품 진열실』에는 프랑스 혁명 이후 왕정복고라는 격변기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상징하는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전형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경우가 많다. 모든 사건의 핵심인 빅튀르니앵은 수려한 용모와 상당한 재능을 갖춘 젊은 귀족이지만 동시에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책임감이 전혀 없다. 고귀한 면과 저속한 부분을 모두 갖고 있는 빅튀르니앵은 사랑에 헌신하면서도 타인의 희생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이기주의적인 면모를 모두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성향이 극대화된다. 반면 그의 고모인 아르망드 양은 오직 가문과 조카를 위해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빅튀르니앵의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그녀도 빅튀르니앵의 연애사가 적힌 편지를 보고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 욕망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 이채롭다. 특히 아르망드 양은 『고리오 영감』의 보세앙 자작 부인, 『골짜기의 백합』의 모르소프 백작 부인과 더불어 발자크의 〈인간극〉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귀족 여인상을 대표한다.
소설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이자 숭고한 인물인 쉐넬은 보수적인 전통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동시에 사회 변화에 순응하며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존재로 발자크 자신이 이상적으로 보는 인물상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등장인물 가운데 신분상 가장 낮은, 가문의 옛 집사인 쉐넬이 여러 세속적인 인물들과는 결이 다른 탈속한 영웅처럼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처럼 발자크의 방대한 〈인간극〉 가운데 『골동품 진열실』은 제목과 달리 골동품이 아닌, 오늘날에도 만날 법한 입체적인 인물이 등장하여 시대를 초월해 가치가 충돌하고 주류와 비주류가 교체하는 세태를 생생히 묘사하는 소설로 그가 추구했던 〈인간극〉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작가정보
(Honoré de Balzac)
1799년 투르에서 자수성가한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어머니는 자식에게 무관심하여, 그는 가정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발자크는 어린 시절 과도한 독서로 인한 건강 악화로 집에서 1년간 요양한 후 중학교를 거쳐 소르본 법대에 입학했다. 이후 여러 변호사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뒷날 그의 소설에 활용되었다. 공증인이 되기를 희망하던 부모의 뜻과 달리 독립하여 파리의 한 다락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발자크는 1819년 집필한 희곡 「크롬웰」을 선보였으나 이를 읽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인 앙드리외로부터 작가의 꿈을 접으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10년 뒤인 1829년 발자크는 첫 작품인 『마지막 올빼미당원』을 출간했으며, 20여 년간 초인적인 집필 능력으로 방대한 전집 〈인간극(La Comédie Humaine)〉을 창조해 나갔다. 제목이 보여 주듯 단테의 『신곡』에 필적하면서 동시에 프랑스 호적부와 경쟁한다고 호언할 정도로 당대 사회를 총체적으로 보여 주려는 계획이었다. 1850년 발자크는 오랜 연인이었던 한스카 부인과 고대하던 결혼식을 올린 지 두 달 뒤 서거했다. 그의 죽음으로 애초에 의도한 130여 편이 아닌 90여 편의 장편소설로 마감된 〈인간극〉은 미완에 그쳤으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업적으로 남았다.
1839년에 발표한 『골동품 진열실』은 발자크가 남긴 수많은 걸작 가운데 시사성이 강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몰락한 귀족의 살롱을 중심으로 온갖 인간 군상이 이합집산하면서 펼치는 시대 풍경은 오늘날에도 신구 격변기의 세태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보수적이면서 가장 진보적인 작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으면서도 그러한 이율배반적인 관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문호 발자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몽펠리에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스탕달 소설 연구』, 『문학과 사회 묘사』, 『프루스트와 현대 프랑스 소설』, 『빛의 세기, 이성의 문학』 등이 있고 역서로 『고리오 영감』, 『적과 흑』, 『좁은 문·전원 교향곡』, 『여자의 일생』, 『어둠 속의 사건』, 『소설과 사회』, 『말도로르의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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