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달빛 소녀
2024년 06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23년 12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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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신라인 신녀
우륵의 가얏고 소리
풀 수 없는 실타래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
임금님 가시는 그곳
길고도 모진 밤
스스로를 구할 방법
실낱같은 희망의 끈
달빛 능선으로 가는 길
장례식 전날 밤의 장례식
대가야의 달빛 소녀
[머리말]
이 책은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은 순장에 관한 것이에요. 대가야가 있었던 고령의 지산동 능선에서 둥글고 큰 흙무덤들이 발견되었어요. 그런데 가장 큰 무덤에 무려 30~4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묻혀 있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지산리 제44호 고분에는 8세 정도로 추정되는 소녀들도 있어요. 이 책에 등장하는 달이와 소야처럼요. 유골 뒷머리가 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묻히기 전에 죽임을 당한 듯하다고 해요.
이 책의 주인공 달이는 왕의 장례식 전날 밤, 달빛 능선에서 이렇게 외쳐요.
“제 목숨은, 죽은 임금님의 것이 아니에요. 온전히 제 것입니다.”
44호 고분의 소녀들도 경상남도 창녕에서 발견된 소녀도 어쩌면 달이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대가야의 도읍지에서 나고 자란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꼭 써보고 싶었어요.
[책 속으로]
“이 옷은 대가야국으로 올 때, 달이 외할머니께서 만들어 준 옷이란다.”
달이도 그 옷을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아마도 왕비를 위한 기도를 할 때만 꺼내 입는 듯했다.
“왕비에게 신라의 정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란다. 자리를 보존하고 계신 왕비의 쾌차를 빌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구나.”
모단은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신라의 풍속을 따르는 자는 국법으로 처형하라는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신라에서 온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p. 14~15, ‘토령, 흙으로 빚은 방울’ 중에서
“달아, 세상에 허투루 피는 꽃은 없단다. 어미는 세상에 태어나 네 아버지를 만나 좋았고 너를 수태하고 낳아 기르는 동안 행복했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렇지만 정견모주님께서 우리 달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데는 분명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디 제 몫을 다하며 살아다오.”
모단은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달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죄인은 순순히 따르라!”
쇠로 만든 칼과 도끼를 찬 병사들이 모단을 거칠게 포승줄로 묶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이 어머니를 데리고 가려고 해요. 아버지가 좀 막아주세요!”
다급한 달이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연조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곧 병사의 칼날이 그의 목을 겨누었다.
“여보! 안 돼요. 달아, 아버지에게서 떨어지지 말고 그냥 있어! 어미를 따라오면 절대 안 돼!”
끌려가면서도 모단은 남편과 딸을 걱정했다. 연조는 달이가 본 얼굴 중 가장 슬픈 얼굴로, 쓰러지듯 딸을 끌어안았다. 연조의 눈물이 달이의 통통한 한쪽 볼을 적셨다.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연조는 달이를 안고 놓지 않았다.
-p. 21~22, ‘신라인 신녀’ 중에서
손에 든 방울을 내려다보았다. 따스한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모단이 죽고 석 달이나 지난 후에야 연조는 그것들을 가마에 넣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 잘 구워진 토령과 토우들을 아내의 체취가 남아 있는 신당에 가져다 두었다. 달이는 토령을 만지지 않았다. 아물고 있던 마음의 상처가 덧나는 게 두려웠다.
마치 처음 본 물건이라도 되는 듯 토령을 감싸쥐었다. 그 순간 뭔가 번쩍하고 불빛이 일었다. 그렇지만 푸른 불빛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달이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p. 35~36, ‘풀 수 없는 실타래’ 중에서
“아저씨, 지난밤에 임금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연조와 달이는 놀라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결국 그리되었구나. 큰일이다. 나라에 큰 슬픔이 닥쳤어.”
연조는 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두 번 했다. 돌아가신 임금에게 바치는 인사였다.
“시종장께서 장례 준비를 맡으셨어요. 장례식은 구일장으로 모실 것입니다. 장례식에 쓸 그릇을 준비하라는 명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야겠어요.”
반야는 커다란 그릇과 제사용 그릇들을 주문했다. 큰 그릇에는 임금이 다른 세상에 가져갈 쌀을 담을 것이라고 했다.
-p. 54~55, ‘임금님 가시는 그곳’ 중에서
그때였다. 횃불을 든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연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토기장이의 딸, 달이는 명을 받들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려운 마음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 달이라고요? 제가 아니고요? 안 됩니다. 달이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연조가 넋이 나간 얼굴로 애원했다. 달이는 제사장이 전하는 명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토기장이의 딸을 선택하였노라. 선왕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쁘게 따르라. 명을 받들지 않거나 도망을 치는 불상사가 생기면 남아 있는 아비의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p. 64, ‘길고도 모진 밤’ 중에서
“우리나라는 순장을 하고 있지요. 왕실로 보아서는 강력한 왕권을 세우는 데 훌륭한 수단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폐지된 풍습입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목숨을 죽여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몹시 잔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태자는 반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신라국에서는 토, 토우라는 것을 무덤에 넣는다고 해, 했어요.”
반야의 말에 용기를 얻은 달이가 주저하며 말했다.
“토우?”
“사람의 모습이나 동물, 집 등을 흙으로 빚어서 구운 것입니다.”
달이를 대신해서 반야가 대답했다.
“듣고 보니 어머님도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불교에서는 자비심을 가르친다지?”
-p. 64, ‘길고도 모진 밤’ 중에서
“썩은 가지는 쳐내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 왕실을 지키고 대가야의 영광을 이어나갈 수가 있어요!”
대비는 위엄을 지키려는 듯 턱을 치켜들고 매섭게 주변을 살폈다.
“그래서 순장을 반대했던 저 대신, 반야를 죽이려는 겁니까?”
태자는 복잡한 표정으로 사람들 속에 있는 반야를 가리켰다.
“그건 저자가 청한 일입니다. 불순한 생각을 한 태자를 지키려는 충정을 내가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무엇들 하느냐? 처단하지 않고!”
-p. 100, ‘장례식 전날 밤의 장례식’ 중에서
‘정견모주님, 정말 저세상이 있나요? 그곳에 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나요? 어머니는 제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동안 저는 무슨 일을 했을까요?’
달이는 눈을 감고 토령을 손에 꼭 쥐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방울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어머니의 손을 잡은 것만 같았다. 정견모주의 따사로운 눈빛을 받은 듯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것처럼 벅차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기운에 몸이 통통 튀어 올랐다.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능선 위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능선을 내려가려던 대비와 태자 앞에 가서 섰다.
“이, 이런 무엄한 것을 보았나? 예가 어디라고?”
대비가 서슬 퍼렇게 고함을 쳤다.
“언젠가 제 어머니가 말했죠. 세상에 허투루 피는 꽃은 없다고요. 그러니 저도,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분명 하나쯤은 있을 거예요. 그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요? 죽음을 기다리는 저 불쌍한 사람들이 하지 못한 말이요. 저는 그 말을 하고 싶어요.살고 싶어요! 돌아가신 임금님의 새 나라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또박또박 말을 하는 순간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듯 한없이 마음이 가벼웠다.
“뭐, 뭐라는 것이냐? 이, 이 어린것이 감히!”
대비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듯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였다. 태자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p. 106~107, ‘대가야의 달빛 소녀’ 중에서
“제 목숨은,
죽은 임금님의 것이 아니에요
온전히 제 것입니다”
12살 소녀 달이는 대가야의 토기장이 연조와 신라인 신녀 모단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가야국은 팽창하는 백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는다. 모단은 왕비를 따라 대가야로 온 신라인 시녀였으나 이후 신열을 앓고 대가야국을 세운 여신, 정견모주를 모시는 신녀가 되었다.
신라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금곡 대비는 노골적으로 신라의 풍속을 금지하고 어긴 자는 가혹하게 처벌했다. 모단은 자리를 보전하고 누운 왕비의 건강과 두 나라의 화합을 기원하며 신라 옷을 입고 춤을 춘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죽음을 맞는다.
결국 두 나라 사이의 동맹이 깨어지고, 신라는 왕비에게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명한다. 우륵이 서글프게 가야금을 뜯는 가운데 월광 태자는 어머니와 눈물로 이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뇌왕이 운명하고 달이는 순장 대상자가 된다.
죽음이 순간이 다가왔다. 달빛 능선의 어두운 먹구름 아래, 깊게 판 흙구덩이 앞에 선 달이는 모단이 만든 토령을 손에 꼭 쥐고 정견모주께 살려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이상하게도 방울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달이는 금곡 대비와 월광 태자 앞으로 달려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지 못한 말을 쏟아낸다.
“살고 싶어요! 돌아가신 임금님의 새 나라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회천 강가와 주산을 마음껏 뛰고 싶어요. 모든 대가야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요. 대비님, 저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이에요. 아직 죽기에는 일러요.”
『삼국사기』 지리지 편에 따르면 경북 고령 지역 대가야국은 16대 520년간 존속했다고 한다. 6세기 중엽, 백제의 성장으로 위기감을 느낀 대가야의 이뇌왕은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는다. 신라는 이찬 비조부의 누이를 100여 명의 시종과 함께 시집보냈으나 왕비를 보필하는 시종들이 신라의 옷을 입은 일로 문제가 생긴다. 신라군은 파혼의 보복으로 몇몇 지역을 정벌하고 돌아간다.
『대가야의 달빛 소녀』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대가야의 도읍지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순장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고령의 지산동 능선에서 발견된 둥글고 큰 흙무덤, 그중 가장 큰 무덤에 무려 30~4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묻혀 있었다. 대가야읍에 있는 순장 박물관에는 12살 정도 되는 소녀들이 매장된 무덤을 발견한 기록이 있으며 지산리 제44호 고분에는 8세로 추정되는 소녀들도 나왔다.
유골 뒷머리가 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순장자들은 묻히기 전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지배층은 저세상에서도 부와 명예를 누리고자 죽여서라도 자신을 보필해 줄 백성을 데려갔다. 동화는 순장 위기에 처한 12살 소녀 달이를 통해 대가야국의 역사와 당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입장에 몰입해 어린이들이 비인간적인 장례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역사의식을 성립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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