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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

문학동네시인선 212
오병량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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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9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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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34.55MB)
ISBN 97911416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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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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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누군가 떠나고 남겨진 빈자리의 주변을 맴도는 마음,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지려는 마음으로
힘겹게 앓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시집
시인의 말

1부 다만, 다만의 말로 쓴
봄눈/ 꿈의 독서/ 묻다/ 나들목/ 유독/ 다만, 다만의 말로 쓴/ 딸기와 고슴도치/ 입술은 어떻게 갈라졌고 왜 뼈처럼 부러지지 않는가/ 국수의 맛/ 말하는 법이 없었다/ E=mc²/ 편지의 공원

2부 대단한 그루터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대공황/ 꿈꾸는 도살장/ 모조/ 녘/ 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아령/ 무른 피/ 개척교회/ 레닌그라드의 집배원/ 그 가을 어떤 사진의 비탄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 일별/ 하루는 긴 이름/ 아니라면 안일한/ 목도리 사용법

3부 인간의 힘으로
자매결연/ 어쩌다 사슴/ 모조로 피는 장미/ 미란/ 대홍수/ 나는 최근에 운 적이 있다/ 새들이 노는 아지트/ 원두를 보는 아침/ 결벽/ 수리중/ 어린이날/ 진오기/ 첩의 딸/ 호랑이꽃

해설 | 상실 이후
고봉준(문학평론가)

철새들이 우거졌던 도래지에 앉아 초행길을 읊조리고
갈대밭으로 들어간 연인이 내게 묻던 시내의 방향과 갈대가 눕는 그곳
죽은 새를 밟은 초행길의 신발을 털며 물컹한 몸과 물의 심장을,
차가운 면에 입김을 불어넣는 너의 얼굴을 생각했다
이것은 다만, 생각의 얼굴들
다만, 얼굴에 묻은 입술들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 저기 갈대들이 멈춘 곳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앉는 죽은 새들의 도래지였다
종일 울던 산비둘기와 까치, 굴뚝새가 없는 아침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그리운 짓으로 물이 끓는다
보이지 않는 물소리로 빨려들어가는 새들의 무리와
솟아오르는 물의 돌멩이들 얼굴과 얼굴이 부딪고 깨지는 몸의 헤엄은
꿈처럼 불길해서 불을 끈다 베개를 안고 울었지 뜨고 죽은 눈들
가서 달래줄 수 있을까?
그럴 수가 없어서 다시 불을 켠다
_「다만, 다만의 말로 쓴」 부분


오늘은 오지 않는다는 창밖의 새처럼
국수도 우리도 이제 말이 없다
비어진 장독 속으로 졸린 눈들이 쏟아지는 저녁이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몸이 버젓한 내게 기대면
고요다, 폭폭하다는 고향 말이 생각나서 장독에 쌓인
눈의 맛을 떠먹어보면 이제 엄마에게서 죽은 할머니는 무심한 맛인가,
그 폭폭한 마음을 받쳐 창밖만 볼밖에
오직, 아무런 할일이 없다
나는
하지만 녹는 맛, 이라는 어린 너의 말이 귓가에 자꾸 내린다
사라질까봐, 내가 적은 국수의 말은
건성의 맛
내가 뚝뚝 면발을 흘리면
주워먹는 맛
나는 자꾸 흘리면서 잠든
너의 이마를
닦고만 있다
_「국수의 맛」 부분


언젠가 나는 종으로 들어가 종의 내부를 들이받는 새를 보았다. 길 잃은 새였다. 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몸이 문을 찾던 새는 죽었다. 새를 줍고 올려다본 하늘의 주인은 종탑에 가려져 없고 죽은 몸에 실린 종소리만이 손에 들려 흔들리고 있었다. 죽은 것을 빌려 세계를 안심하는 나의 동정은 비겁한 것이나 따뜻하고 작은 신음에도 흔들리지 않기로 한다.
_「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부분


철아, 이 나이가 무언지는 몰라도
어른이 되면 안다는 말
믿어도 될까?
도무지 자신이 없어서
바닥에 누워 꿈을 늘어놓으면
저멀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석양
나쁜 피가



흐르고 있었다
_「무른 피」 부분


있어요, 그러겠다고 말해줘요,
어젯밤 내가 한 말을 잊어요
아프라고 한 말 맞아요 하지만,
좋은 밤은 오지 못한다

내가 나의 인간을 사랑하지 못한 이유로
용서받을 때까지
살겠다, 다짐한다면
무명의 무덤이 온통 당신이어서 나를
사주한 목숨들 내가
사주한 목숨들에게
참 많아야 했다
살아요
있어줘요
그래요, 당신
_「그 가을 어떤 사진의 비탄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 부분


기척이라곤 막막한 창을 때리는 계절뿐, 나밖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물 끓는 주전자를 보는 때
피어오르는 소리가 떠나겠다는 말처럼 들리면
헤어질 일이 없는데 만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는 최근에 운 적이 있다
_「나는 최근에 운 적이 있다」 부분


의자에 앉아 거실 중앙에 박힌 가족사진을 본다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의자를 아무리 빙빙 돌리어도
생각이 멈추는 자리에 그런 사진은 없다
너와 네 아빠가 나란히 웃고 있다
아까 우리가 무슨 얘기로 흥겨워했지?
아, 맞다 그런 적이 계속 없었다
우리는 웃고 있나?
아니라면 우리는
오래 없는 사람이 생각나니까
_「새들이 노는 아지트」 부분


침대를 바라보다
어쩌자고 옆에 없는 사람이
하필 죽은 것처럼 믿어져서 이불을 두드리던 날도 있다
죽고 싶다던 너는
어떤 희망을 사랑하기로 했던가
_「결벽」 부분

문학동네시인선 212번째 시집으로 오병량 시인의 첫 시집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를 펴낸다. 2013년 『문학사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오병량은 문학동네시인선 100번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의 제목이 된 시구가 담긴 「편지의 공원」을 쓴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가 발표하는 시들은 아직 시집으로 엮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 밝은 뭇 독자에게 회자되며 꾸준히 읽혀왔다.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는 그런 시인이 데뷔한 지 11년 만에 발표하는 첫 시집으로, 오래 연마한 문장으로 쉽게 읽히지만 그 여운은 깊다. “책상이 다 뜨거워지도록” “빈 종이만 쓰다듬는” 시 속 화자의 골똘한 목소리가 시집 전체에 오롯하게 넘실거린다. 주위 사람들의 “숱한 ‘죽음’의 시간을 통과하며” 삶을 “살아”(문학평론가 고봉준, 해설)낸 화자는 “며칠을 밤새 중얼거리다 울고 말았을” “밤중에 빗을 든 사람”(「봄눈」)들의 울음소리에 귀기울인다. 그런 화자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한 편의 긴 편지와도 같은 이번 시집은 오병량의 첫 시집을 기다려온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안부인사가 될 것이다.

종일 마른 비 내리는 소리가 전부인 바다였다
욕실에는 벌레가 누워 있고 그것은 죽은 물처럼 얌전한 얼굴,
구겨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면
혐오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

이 위태로움을 어찌 두고 갈 수 있을까? 그대여,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고 쓴 그대의 편지를
두어 번 더 기억하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슬픔에 비겁했다, 생각할수록 자꾸 여며지는 백사장
말하자면 그건 소용없는 커튼, 소용없는 커튼은
창밖을 곤히 지웠다 도무지 펄럭이지 않았다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였다
죽을힘을 다해
죽는 연습을 하는 최초의 생명 같았다
_「묻다」 부분

오병량 시에는 대체로 연인과의 작별 혹은 가족과 이웃들의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결핍과 상실의 정서가 배어 있다. 1부 ‘다만, 다만의 말로 쓴’은 “말없이 울고 빗물에 젖은 새처럼 흐느끼”는 “너”(「꿈의 독서」)라는 시적 대상을 그리워하며 “틈틈이 편지를”(「편지의 공원」) 쓰는 화자 ‘나’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너’라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득하고 따스한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꿈의 독서」)라고 생각하며, “다시 사람을 사랑하려는” “병증”(「입술은 어떻게 갈라졌고 왜 뼈처럼 부러지지 않는가」)에 시달리는 ‘나’의 내면이다. 오병량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편지의 공원」을 읽어보자.

6월, 공원에 누워 공원을 바라본다
방안에 누워 방안을 바라보면서
안녕, 네 눈에 내가 보이길 바라지만
건조대 마른 옷가지에선 네 살냄새만 난다
어제 입은 셔츠에 비누를 바른다
힘주어 잡으면 튀어오른다 부드러움은 죄다
그렇다

(…)

비가 왔다 낮잠을 자고 꿈에서 누군가와 싸웠다
짐승의 털이라도 가진다면 웅덩이에 몸이라도 던지겠지만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당신이 기타와 피아노를 친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뻤어요
다친 사람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치료하는 일이 꿈이라고 했지요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엄마의 기타는 목이 휘었다고
하지만 기타는 계속 배울 거라고 마치 그 꿈을 살아본 사람처럼
차분했어요 그 고요한 수면 위에 몸 내릴 수 있는 새가 있을까?
나의 초라한 발견이 평범한 사람을 울리기 쉬운 새벽이면
틈틈이 편지를 썼어요
_「편지의 공원」 부분

“네 눈에 내가 보이길” 바라는 마음, “건조대 마른 옷가지”에서 맡는 ‘너’의 “살냄새”,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고 고백하는 ‘나’의 간절한 그리움은 읽는 이의 시각과 후각, 촉각을 뒤흔들어놓으면서 그 절절한 감정에 절로 스며들게 한다. “빙빙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개에게”조차 묻게 되는,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라는 ‘나’의 질문은 “다시 태어나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발신음의 다른 표현처럼 읽힌다.
한편, 2부 ‘대단한 그루터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은 시적 화자의 내면에 주로 초점을 맞춘 1부와 달리 일터나 공원, 교회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한 편의 풍경화와도 같은 이 시들은 특유의 비애감으로 묘한 여운을 남기며 고즈넉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외출에서 돌아온 앞집 부부”(「대공황」), “소시지를 만드는 기술자”와 “그의 조수”인 “나”(「꿈꾸는 도살장」), 부활절에 공원에서 계란을 먹으며 “죽음”이란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우리”(「모조」), “이른 저녁이면 종탑에 올라”가는 “맹인 사제”(「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 “대교”의 “남단”에서 “뒹군” “친구”(「무른 피」), “오래전 커다란 배를 탔”지만 어느새 “평범한 노인”이 된 “아버지”(「일별」) 등이 시의 주인공이다. 이들의 삶에는 대체로 “먹먹함”과 “기구한 울음”(「벽 하나의, 벽 하나의 종소리처럼」)이 차올라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들에게서는 “끝내 사라지고 말 것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 또한 엿보인다. “너는 잘할 거니까, 아직 희망이 있어”라고 말하는 “아버지”(「일별」)처럼.
시인은 삶이라는 ‘그루터기’에 옹기종기 붙어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연민을 보내는 2부에서 한 걸음 나아가, 3부 ‘인간의 힘으로’에서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생래 속에서 스러져간 가족, 이웃 등의 사연을 쓸쓸한 삽화(揷話)처럼 펼쳐내면서 종내 ‘시’란 죽음을 기리는 예술일 수 있음을 사유하게 하는 듯하다. 어릴 적에 “슈퍼 집 아들”이 놀다가 빠져 죽은 개천에 방문하게 된 화자 ‘나’의 목소리가 담긴 「대홍수」를 읽어보자.

가끔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사이렌이 멈추고 차가운 비가 하나둘 떨어지는 개천을 따라 걸으며 진짜 견디는 것을 영영 말하지는 않을 것 같아 다만, 살아 있다는 게 놀라운 것처럼 그날의 구청 공무원들처럼 그 죽음은 당신들 몫이라며 안도하고 싶다고, 줄곧 우리는 살아내야 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크고 긴 빗줄기가 내릴 때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면 내 가련한 육신 아래 세상 가장 가벼운 스티로폼 하나 뜨고 내 손마디에 뼈 없는 수수깡 하나 들려 있는 듯한데, 무덤 속의 병정처럼 나는 지킬 것이 있는 것도 같고 무엇일까? 살인자의 심정으로 개천을 걸으며 산 사람, 산 사람을 두려워하며 너의 병든 하늘색 운동복을 빨랫줄에 널던 큰누나는 목을 걸었지. 그 여자가 너의 누나. 철 계단을 오르며 교복 치마를 자꾸 내렸는데, 너 모르지? 내가 사랑하면 죽는 거, 이루지 못하면 내가 죽이는 거, 나는 피식 웃고 죽은 이름을 세어보았다. _「대홍수」 부분

화자는 “살아내야” 하는 시간 동안 “무덤 속의 병정처럼” “지킬 것”이 있으며 그것은 “죽은 이름을 세어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진술은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호랑이꽃」에서도 인상적으로 변주된다.

할머니가 죽고 보름이 채 되지 않아
할아버지도 죽었다
둘은 납골당에 갇혀 영원히 죽어진 채로 있다
엄마, 미안합니다
허리 병이 든 아버지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하는 말
나는 짐짓 모른 체 술을 따르고 첨잔을 하고
납골당 주위에 술을 부으며
고귀순 할머니가 고귀순이라고 적던 한글 공책을 생각한다
아버지와 형, 어머니 이름 하나씩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주위에 구름을 두르면
꽃이라도 될는지,
내 희디흰 이름에 폭폭 눈이라도 왔으면 했다
매번 져주던 사람의 이름이 지독히 기억나지 않던 밤
그렇게 살지 말라는 전화와
어떻게 지내냐는 문자를 받았다

매번 지려고 하는 짓
그 몸짓의 애쓰는 마음이
꽃의 말이라 한다
_「호랑이꽃」 부분

「호랑이꽃」은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할머니”가 죽고 나서 “보름이 채 되지 않아” “할아버지”까지 죽게 된 가족사를 그린 시이다. “아버지와 형, 어머니”는 남겨진 존재들로, 화자는 이들의 이름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쳐본다. 이들은 화자에게 매번 져주는 사람들, 그러므로 화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해설을 쓴 고봉준은 “매번 지려고 하는 짓/ 그 몸짓의 애쓰는 마음”이 ‘호랑이꽃’의 꽃말이라고 언급하는 이 시의 말미와 호랑이꽃의 본래 꽃말이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점을 연결 짓는다. 그러니까 오병량에게 ‘사랑’이란 “늘 상대에게 지려고 하는 마음”이며, “누군가 떠나고 남겨진 빈자리의 주변을 맴도는” 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지려는 마음으로 살아서 그들의 부재를 이토록 힘겹게 앓으면서 살고 있”(해설)는 “안간힘”(「결벽」)인 것이다. 오병량 시만의 윤리, 아름다움은 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삶은 “살아질 것 같지 않”(「원두를 보는 아침」)은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시간, “살아지지 않는 시간”(「나는 최근에 운 적이 있다」)을 견디는 일, 그리하여 숱한 ‘죽음’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살아내는 것이다. 한계를 넘어 ‘살아내는 것’과, 그럼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시간 사이에서 오병량의 시는 시작된다. _고봉준, 해설에서


■ 오병량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Q1. 2013년에 데뷔하신 이후 드디어 첫 시집을 펴내게 되셨습니다. 독자님들께 드리는 인사와 함께 소회를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병량입니다. 그간 빚진 마음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고 마저 다 하지 못했던 안부를 전합니다. 저는 잘 있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평안하세요. 고맙습니다.

Q2.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는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미를 오롯하게 드러냅니다. 문학동네시인선 100번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의 표제가 된 문장이 담겨 있기도 한 「편지의 공원」 속 대목이에요. 이 문장들은 어떻게 쓰게 되셨는지, 또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씁니다. 쓰는 것은 쉽고 동시에 고되며 끝끝내 헛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그와 같아서 우리는 일기에 가끔 거짓을 적고서 진실로 여기다 그것이 쓰여진지도 모른 채 잘도 살아갑니다. 옮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는 때가 있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Q3. 이번 시집에서 특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와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꿈의 독서」는 나의 선생께 배운 것을 대략 오 년 동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끝끝내 미완성이라 자책하며 발표한 시입니다. 이 시를 생각하면 늘 정끝별 선생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Q4. 헤어진 연인, 가족, 친구, 이웃에 대한 시편들이 눈에 띄어요. 그만큼 시편들에 그리움과 상실의 정서가 넘실거리는데요. “내 희디흰 이름에 폭폭 눈이라도 왔으면 했다”(「호랑이꽃」)라는 대목을 읽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도 듭니다. 시인님에게 시를 쓰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저는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고백하기 위해 쓰고 주지하기 위해 읽고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자신을 보며 절망합니다. 때문에 나라는 큰 불편을 감수하고 곁을 준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도리라 생각하면 작고 사랑이라 생각하면 그들에게 죄스러울 뿐입니다.

Q5. ‘살아낸다’라는 말이 여러 시편에서 변주되어 등장합니다. 오늘도 ‘살아내고’ 있을 독자분들께 하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돌이켜보면 가위바위보만 해도 배 아프게 웃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쩜 이렇게도 사는 게 재미가 없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오병량

2013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작가의 말

봄 앞에 앉아,
나는 여태,
나의 주어가 못 되는 처지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립다,
죽겠습니다.

2024년 5월
오병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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