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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세월 따라

전상렬 지음
문학세계사

2024년 06월 03일 출간

종이책 : 2023년 04월 0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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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2.86MB)
ISBN 979119300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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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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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 100주년을 맞은 전상렬(1923~2000) 시인의 시선집 『바람 따라 세월 따라』(문학세계사)가 그의 사후 23년 만에 출간됐다. 이 시선집에는 1950년 첫 시집 『피리 소리』를 내고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입선되면서 등단한 그가 남긴 13권의 시집에서 가려 뽑은 시 100편이 실려 있다. 그는 『피리 소리』를 비롯해 『백의제』, 『하오 한 시』, 『생성의 의미』, 『신록서정』, 『불로동』, 『낙동강』, 『생선가게』, 『수묵화 연습』, 『세월의 징검다리』, 『시절단장』, 『보이지 않는 힘』, 『아직도 나는』 등의 시집을 남겼다. 산문집 『시의 생명』, 『바람 부는 마을』, 『동해 엽신ㆍ기타』, 『전상렬 문학선집』, 『목인 전상렬 고희기념문집』, 편저 『시인의 고향』 등도 낸 그는 경북문화상(문학 부문)을 수상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대구직할시지부장 등을 지냈다.
Ⅰ 1950~1965
『피리 소리』│『백의제』│『하오 한 시』│『생성의 의미』

봄·여름·가을·겨울 10│봄빛 12│고향길 13│단장 14│우시장 16│맏아들 17│천륜 18│오월의 목장으로 20│자화상 23│백의제 24│백지 28│생일날 30│하오 한 시 32│하늘과 바람과 구름 34│수류촌 35│오월은 나에게 36│혜무 38│생성의 의미 40│고목과 강물 42│영의 선상에서 44│천고千古의 샘 46│봄·가족 48│아내 50│큰아이 생일날 52│윤회 속에서 54

Ⅱ 1968~1971
『신록서정』│『불로동』│『낙동강』

비문 56│봄은 바람을 타고 57│인연의 강 58│신록서정 60│가을에는 귀가 열린다 62│겨울과 나무들 64│귀뚜라미가 울고 66│꽃밭 67│해후 68│불로동 70│염불암 71│병후 72│종곡 73│이튿날 74│무애 75│연밥 따는 처녀 76│파군재 77│나으리 78│산천은 의구한데 80│무후 81│탈춤 82│귀머거리 바위 84

Ⅲ 1977~1986
『생선가게』│『수묵화 연습』│『세월의 징검다리』

바닷가 풍경 86│보리누름 87│채석장 88│생선가게 89│고향을 물으면 90│독거 91│귀로 92│증언자 94│관계의 의미 95│시인의 특권 96│건강 97│불계 98│수묵화 연습 100│동반자 102│산행 104│봄이 오는 길목 106│씨앗은 107│경칩 108│소만 109│긴긴 여름날 110│속인 111│한로 112│눈 내리는 밤 113│소한 114│종장 115│어느 해 어느 날 116│세월 118│고향 119

Ⅳ 1990~1999
『시절단장』│『보이지 않는 힘』│『아직도 나는』

소년 122│늘그막에 123│초당 124│저무는 풍경 126│시절단장 127│소망 128│생전에 129│신후지지 130│보이지 않는 힘 131│시력 132│행복론 133│자족 134│들국화 135│노안 136│세월이 지는 소리 137│미도 다향 138│사람이 그립다 140│아직도 나는 1 141│아직도 나는 5 142│꽃 이야기 143│기억의 등불을 밝히면 144│빛과 어둠 149│여일 150│추념사 1 151│추념사 7 152│추념사 15 153

│해설│이태수(시인)
자연 회귀와 달관의 여로 155

강 따라 물이 흐르고
물 따라 강이 흐른다
물 흐르듯 흐르는 세월 기슭에
저만치 고목古木이 서 있고
바람 따라 세월이 가고
세월 따라 바람이 흐른다
넘어 치는 강바람에
잎은 물나부리로 출렁거렸고
세월에 발돋움했지마는
애 말라 속이 썩은 둥치
원으로 겹겹 파문波汶져 가는 나이에
안으로 겹겹 인고忍苦가 그대로 긴 사연이고
하늘은 온갖 모양으로 바뀌어도
바다로 가는 마음 그대로 그것 아닌가
안개와 구름과 하늘빛 물색
강江물은 저렇게 흐르는 것이고
고목古木은 저만치 서서만 있고
바람 따라 세월이 가고
세월 따라 바람이 흐른다
-전상렬의 시 「고목과 강물」 전문

자연 회귀와 달관의 여로

올해로 탄신 100주년 맞은 전상렬(1923~2000) 시인은 평생 대구에서 활동하고, 대구 문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자연과의 친화나 회귀, 관조와 달관의 시선으로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서정시를 추구했던 그는 동양적인 정신의 깊이와 불교적 세계관을 포용하면서도 현학적이지 않았으며 겸허하고 진솔한 언어로 떠올려 보인 시인이다.
1950, 60년대의 시에는 압축과 절제, 이미지와 리듬이 중시되고, 자연에 투사한 내면세계를 떠올리는 관념적 존재 탐구에 무게가 실렸으며, 1970, 80년대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세월에 대한 통찰과 천착으로 관조와 명상, 역사의식이 관류하는 변모를 보였다.
진솔하고 담백한 언어로 원숙한 경지를 펼쳐 보인 1990년대에는 인생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연으로 회귀하는 정서가 두드러졌다. 이 시기에는 특히 노경의 적막하고 고독한 심경을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그려 보이면서도 유유자적하는 여유와 제행무상의 질서에 순응하는 달관의 경지를 펼쳐 보였다.
1950년대에 발간된 초기 시집 『피리 소리』, 『백의제』, 『하오 한 시』에는 자연과의 친화나 회귀, 자연에 빗대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길어 올리려는 존재 탐구에 무게가 실려 있다. 첫 시집 『피리 소리』에 실려 있는 「봄빛」은 그 명제가 시사하고 있듯이 생동하는 이미지들이 넘쳐난다. 단문과 간결한 문체, 동심과도 같은 맑고 깨끗한 언어들이 탄력을 빚는다.

눈을 부빈다
기지개를 켠다
하품을 한다
가물가물 움직인다
뾰족뾰족 돋는다
생긋 웃는다
활짝 핀다
아아, 봄
동경, 희망, 연애
아름다운 꿈을 싣고 오는 수줍고 순결한
처녀
굳세고 씩씩한
청년
-「봄빛」 전문

잠에서 막 깨어나 뾰족뾰족 돋고, 생긋 웃으며, 활짝 피어나는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이 시는 발랄하고 순수한 새 생명력에 대한 경이감의 아름다운 떠올림이며, 그 친화력 돋우기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집 『백의제』에 실린 작품들은 전통적인 정한의 정서를 동심에 투영시키는 맑고 투명한 언어들을 길어 올려 보이는 한편으로는 가정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작품 도처에 등장하며, 세 번째 시집 『하오 한 시』에 이르러서는 사물을 자아화하기보다 묘사에 기울면서 섬세한 감수성으로 자연의 이치나 섭리를 부각시키면서 존재 탐구로 나아갔다.
그 초기 시들은 이같이 자연과의 친화, 그 섭리와 질서의 관찰, 그 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외경심, 진실 추구 등에 주어져 있다. 하지만 그 바깥을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적인 언어로 감싸면서 압축과 절제의 미학, 이미지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언어의 음악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네 번째 시집 『생성의 의미』에서는 자신과 가장 가깝게 더불어 있는 아내, 가족 등에 대한 관심과 연민, 은은한 사랑을 그린 시편들이 적지 않다. 「봄·가족」은 봄을 맞으면서 화분 갈이를 하는 가족을 그린 시로 자연에서 터득하는 겸허함, 생명의 질서, 자연의 순리 등을 떠올린다. 현실의 비애를 “꽃나무를 가꿀 한 치의 땅이 없이”, “어디론가 훌쩍 가야 할 철새 살이”와 같은 자기성찰로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다섯 번째 시집 『신록서정』에 담겨 있는 작품들은 나은 세계에 대한 열망을 끌어안고 있으며, 생명력에 불을 지피거나 사랑이 충만한 세계에의 꿈을 지향한다.

겨우 내 방 안에 심어 둔
고목 분재를
양지에 날라다 놓으면
우리 집은 신록의 산장이다.
-「신록서정」 부분

이 시집에 드러나는 시인의 구도자적 지향은 그 이전의 시편들과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시 「봄·가족」에서의 ‘한없이 솟아나는 목숨의 비밀’과 연결돼 있고, 한참 뒤에는 잃어버렸지만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년 시절에의 향수로 번져가기도 한다. 다시 말해 그의 중기 작품들은 완만한 변화와 원숙성이 눈에 띄는 시적 성취에 닿고 있음에도 일관성이라는 덕목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성실한 발걸음에 대한 믿음까지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는 『불로동』, 『낙동강』, 『생선가게』 등의 시집을 통해 세월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천착, 그 흐름 위에 포개어 놓은 내면 의식, 삶을 관조하는 시선의 깊이와 불교적인 세계관, 이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달관과 명상, 역사에 대한 눈뜸과 그런 의식의 관류 등이 특징을 이룬다.

태양은 부지런히
창문을 여닫고
손주며느리가 아기를 낳고
은실 머리 고운 안방에는
꽃 시절 그때 그냥
불로동不老童이 살고
구름이 머물다 간
하늘 멀리 그 세월 밖에
내가 묻힐 때까지
-「불로동」 부분

염불암念佛岩 가는 길에
염불암念佛庵 들렀더니
석불石佛은 눈감고
석탑石塔도 잠들고
산은 낙목落木에 가려 안보이고
산에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염불암」 부분

이 두 작품에 나타나는 시간은 일상적 시간에 비추어 보면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불로동」의 화자는 ‘손주며느리’로 미루어 노인 같지만 ‘꽃 시절’의 ‘불로동’으로 그려져 있다. ‘석불石佛도 눈 감고/석탑도 잠든’ 불교적 시간에 비추어 보면 지난날이 ‘산에 와 있는 줄도 모르’는, 자각하지 못한 세속적 삶이다. 여기서의 시간은 현상적인 시간이라기보다 내면적이며 근원적(본래적)인 시간이다.
시집 『불로동』의 작품들은 이같이 세월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그럽고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는 관용의 빛깔을 띠고 있으며, 죽음까지도 순응하는 달관의 경지에 닿아 있다. 다.
일곱 번째 시집 『낙동강』에서는 빛깔이 다른 시편들을 통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준엄한 비판의 화살을 날리는 면모가 드러난다.

민주의 나라 서울에 도둑놈촌 나으리들
생각하는가? 목숨의 조건을.
-「나으리」 부분

시인은 이처럼 과격할 정도로 탐관오리들에게 준열한 비판과 비난을 쏟아붓고, 각성을 촉구한다. 피폐한 현실을 바라보면서는 절망에 빠지고, 그 전망 부재의 상황에서 기적을 바란다는 역설을 퍼붓기도 한다. 또한 역으로 낙동강이 품었던 역사적인 인물들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고 기리며 칭송하기도 한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人傑은 간 데 없고
산천은 의구한데 역사는 꿈이러니
두 임금 마다하고 벼슬을 버리고
두 마음 옳지 않다 채미정 숨더니
금까마귀 날개 치는 금오산金烏山 자락
낙동강 출렁대는 물결 기슭에
야은冶隱 선생 그 말씀 살아계시네
─「산천은 의구한데」 전문

야은 길재를 기리는 이 시를 비롯해 신숭겸 군을 우러르는 「파군재」, 절개를 지키다 구족까 멸절돼 후손조차 없는 단계의 기개를 노래한 「무후」, 귀양살이하다 고향에 돌아와 산과 강에 노닐며 ‘어부사漁父詞’ 남긴 농암을 기리는 「귀머거리바위」 등이 그 예다.
여덟 번째 시집 『생선가게』에는 세속에서도 맑고 아름다운 세계, 순결하고 따뜻하고 신비한 세계를 바라보고 지향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시인은 생선가게에서 “먼바다의 드높은 물결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바다를 유영하던 물고기의 “싱싱한 살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 생선들을 통해 먼 신의 나라의 새벽 종소리를 불러들이기까지 한다.

먼바다의 드높은 물결 소리
아직도 싱싱한 살냄새 풍기는
생선가게에서

〈중략〉

저쪽 어디메 신의 나라
비슷한 영혼을 물색하는
새벽 종소리
-「생선가게」 부분

1980년대에는 시집 『수묵화 연습』과 『세월의 징검다리』를 발간했다. 이 시집들은 다시 격앙된 목소리나 비판적인 시각에서 물러서는 대신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비움과 ‘말 없는 말’의 미덕과 관조적인 시선으로 원숙한 서정을 담담하게 길어 올렸다.
그 이전과 다르게 산문시를 보여 주기도 하는 아홉 번째 시집 『수묵화 연습』에는 그 명제가 이미 암시하고 있듯이, “인생의 여백에/시화로 가꾸”(「수묵화 연습」)는 모습을 드러내며, 자연과 사물을 너그럽게 바라보며 끌어안는 관조의 경지가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스며 있다.

산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를 그릴 때는
물줄기 소리도 들린다

〈중략〉

장강의 하류에는
노을 속에 물든 마을
인정도 그린다
-「수묵화 연습」 부분

한편 열 번째 시집 『세월의 징검다리』는 동양적 지혜의 산물인 절후 시편들을 집중적으로 담고 있어 독특한 정서를 떠올린다. ‘입춘’에서 ‘대한’까지의 절후를 빠뜨림 없이 망라해 그 느낌의 무늬들을 아로새긴 시편들은 그만의 특유의 공든 탑이며, 잔잔하고 은은한 정서적 울림들은 이 시인의 남다른 계절 감각을 맛보게도 한다.

바람은 소소리 바람
매화가 눈을 부비고
산수유가 기지개를 켠다

〈중략〉

가물거리는 몸짓이
새근거리는 숨결이

일제히 일어서는
얼굴, 이름들
초롱초롱 빛나는 목숨들이여
─「경칩」 부분

이 시집의 시는 경칩을 묘사하는 이 시와 같이 일상적인 사물과 사태들을 끌어들이면서 동심과도 같은 해맑은 정서를 길어 올린다.
전상렬은 만년에 이르도록 지칠 줄 모르는 시적 열정을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으로 감싸 안으며 그 성취를 열망하면서도 허명과는 담을 쌓기도 했다. 화려한 수사나 눈길을 끌기 위한 제스처를 보이는 경우도 없이 자신의 세계를 묵묵히 심화하고 확대하는 길을 걸었다.
노년의 심경을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그려 보인 열한 번째 시집 『시절단장』은 원숙한 시정신과 인생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달관의 경지를 격조 높게 떠올린다.

여기 송림리 앞산
동동남 양지바른 언덕에
내 신후身後의 땅 마련해 두고
영영 다시는 하산할 수 없는
어느 날의 나를 생각해 본다

발이 빠른 겨울 햇살은
들머리에 산그늘이 내려서고
돌아서는 마실 앞 거랑 둑 고목에
어디서 까치 한 마리 날아와
노를 젓는다
─「신후지지」 부분

사후에 돌아갈 땅을 마련하고 난 뒤 ‘어느 날’ 그곳에 묻힐 자신을 처연하게 떠올려보는 이 시에서처럼 이 시집에는 인생무상과 허무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리고, 자연의 질서(순리)와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관조의 세계가 번져 흐른다. 무위자연과 자연에의 회귀의식, 인생을 청빈하게 살아가는 현대판 선비의 면모와 넉넉한 여유가 주요 덕목들이 아닐 수 없다.
「늘그막에」라는 작품에서는 “일상의 밥상머리에 / 아직도 내 수저가 놓여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저무는 풍경」에서는 “어둠살이 끼듯 그렇게/한 시대의 노인도 가는 것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귀로」에서는 “서산머리 꽃구름도 사라지고/수묵 번지는 모롱이를 돌면서 아쉬운 손을 흔”드는가 하면, “아주 멀어져 버린 원경 속에 / 가면 다시 못 올 날을 생각해 본다”는 허무와도 만난다.

살아생전에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시 한 편 쓰고 싶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그런 최상의 것 말고라도
활자의 언어들이 가슴에 들끓는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다
그도 저도 아니면
여일餘日이여
차가운 돌 속에 피가 스며
먼 날의 목숨으로 살아남을
그런 시 한 편 쓰고 싶다
- 「생전에」 전문

이 작품이 잘 말해 주듯이, 그는 모든 미련을 다 떨구거나 뛰어넘지만, 시에 대해서만은 경우가 다르다. 점진법의 반대쪽으로 열망을 풀어 내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시 한 편 쓰고 싶다”는 열망을 부둥켜안았다. 그에게는 그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도, 세속적인 명리도 귀하지 않지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하는 시’는 지상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시세계는 이처럼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 날을 담담하게 관조하면서 자연과의 친화나 융화(일치)하려는 정서 공간들을 아름답게 떠올려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향수, 또는 귀소본능 쪽으로 열리면서 잃어버린 날들을 아름답게 되살려 놓는다. 토속적인 정서와 향토적인 시정이 두드러지는 그의 일련의 시들은 단순한 추억의 미학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는 인간의 본향을 제시한다.
그의 시는 수묵의 농담으로 감정의 움직임이나 느낌까지도 섬세하게 형상화하는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간헐적으로 끼어드는 담채는 고졸하고 단아한 분위기에 탄력을 부여한다. 쉽고 순탄한 구문 속에 자연과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관조의 눈’과 ‘너그러움’이 시 속에 흐르고 있다.
고희를 넘기고 냈던 열두 번째 시집 『보이지 않는 힘』은 그 이전까지 추구해 오던 세계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깨달음과 바라봄, 그 느낌의 오솔길들을 열어 보인다. ‘보이지 않는 힘’의 위대함을 집중적으로 노래하면서 ‘산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담담하고 서늘하게 반추하기도 한다.

햇살 가득한 뜰에
꽃을 가꾸던 손이
가지 끝에 남은 잎새를
하나둘 떨구고 있다
목숨으로 있게 하는 그
뒤에 숨은 힘이 있듯이
거두어 가는 손길 그
뒤에 돋게 하는 뜻이 있다
어린 눈으로 보면
허무하지만
새봄에 새 움 돋게 하는 건
거룩한 다스림 아닌가
-「보이지 않는 힘」 전문

시인은 눈에 가깝게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을 있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힘이 ‘자연’에 있고, 나아가 신의 의지 속에 계획되어 있다고 믿는다. ‘생성’과 ‘소멸’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에 꿰어 있다고 본다. 우주 질서나 자연의 순환 원리(또는 불교의 윤회)와 그 뜻을 ‘거룩한 다스림'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발간했던 열세 번째 시집 『아직도 나는』에는,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죽음과 관련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아직도 나는」 연작과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그린 「추념사」 연작이 그것이다.

날이 가고 달이 가더니
한 해가 저무네요
이제 당신 생각을 잊으렵니다

열반한 당신과
지옥에 갈지도 모르는 내가
다시 만날 수도 기약도 없고

생각인들 오래 머물겠습니까
마음인들 변하지 않겠습니까
달라지지 않는 게 있겠습니까

구태여 잊으려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절로 잊겠지요
이젠 마음 너그럽게 가지렵니다
-「추념사 15 ─제행무상」 전문

부인이 먼저 떠난 아픔을 처연하게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부제가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제행무상의 진리에 마음을 싣고 있다. 모든 건 끊임없이 바뀌므로, 그 진리에 따르면서 달관의 경지에 들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처연하지만 너그러운 마음에의 지향이 두드러지는 시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므로 “창가에 앉아/운잉의 꽃밭 생각”(「꽃 이야기」)하게 되기도 하지 않을까.

내 생일에서 이만큼 흘러온
세월의 강변에 흩어진 추억은
저녁노을에 곱게 물들고
여기가 어디쯤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지만
포구浦口에서 갈아탈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아직도 나는 그걸 모른다
-「아직도 나는1」 부분

전상렬은 시를 온몸으로 썼기 때문에 향토에 대한 애착, 성실한 삶의 자세, 생의 찬미를 흐트러짐 없이 일관성 있게 견지해 온 것 같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시를 빚고, 그 안에서 삶을 가꾸는 게 그의 문학적 생애였으며, 그런 생애가 바로 문학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시세계가 돋보인다.
그는 열세 권의 시집 외에도 산문집 『시의 생명』, 『바람 부는 마을』, 『동해엽신 기타』와 『전상렬 문학선집』, 『목인 전상렬 선생 고희기념문집』, 편저 『시인의 고향』 등을 냈으며, 한국문인협회 대구지회장, 경산문학회장, 대구노인문학회장 등을 지냈다, 1960년 경북문화상(대구시문화상 전신)등을 수상했으며, 그의 「고목과 강물」 시비는 대구 월광수변공원에, 「들국화」 시비는 대구 범어공원에 건립돼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전상렬

시인
1923년 대구 출생, 아호는 목인牧人이다. 1945년 불교전문강원 과정을 수료했고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오월의 목장으로」가 입선되어 등단했다. 1960년 경북문화상(문학 부문)을 수상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대구직할시지부장과 중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피리 소리』(1950), 『백의제白衣祭』(1956), 『하오 한 시』(1959), 『생성의 의미』(1965), 『신록서정新綠序情』(1969), 『불로동不老童』(1971), 『낙동강』(1971), 『생선가게』(1977), 『수묵화水墨畵 연습』(1982), 『세월의 징검다리』(1986), 『시절단장時節斷章』(1990), 『보이지 않는 힘』(1995), 『아직도 나는』(1999) 산문집 『시의 생명』(1960), 『바람 부는 마을』(1966), 『동해 엽신ㆍ기타』(1972), 『전상렬 문학선집』(1983), 『목인 전상렬 고희기념문집』(1992) 편저 『시인의 고향』(1990) 등을 냈다. 2000년 10월 21일 향년 78세로 영면(유택 경북 청도군 운문면 봉하리)했다. 대구 월광수변공원에 「고목과 강물」 시비, 대구 범어공원에 「들국화」 시비가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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