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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 이현옥

이현옥 지음
천년의상상

2024년 06월 10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1월 1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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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상품 정보
파일 정보 ePUB (9.92MB)
ISBN 9791190413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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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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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실한 문제를 붙들고
그날 배운 것을 적었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을 적었고,
새로 생겨난 물음들을 적었다.
추천의 글 - 하나 5
지은이의 말 10

1. 내 몸도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왜 이 모양인가 19
‘좋은 삶’이란 어떤 모양? 24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어 품은 질문들 28
어떤 게 진짜 내 마음일까 34
가까스로 밥을 할 수 있게 되었군요 40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진짜 가능해? 45
돈, 그것이 문제로다 54
내 몸이고 내 마음인데 왜 내 뜻대로 안 될까 61

2. 공부 말고는 방법이 없군요

‘혼자 읽는 책’이 부딪힌 한계 71
쉰 살, 진짜 공부를 시작하다 77
공부의 첫사랑, 스피노자와 『에티카』 86
스피노자가 운명과 대면한 방식 92
공부에 대한 욕심과 환상 102


‘열심히’의 다른 사용법 107
공부의 어려움, 하지만 공부의 그 기쁨 114
‘글쓰기’는 가장 좋은 공부 120

3. 공부에도 자립이 필요하다

나의 언어를 찾을 수 있을까 129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내가 선택하기 138
내 신체를 변화시키는 ‘재미난 실험’ 145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하며 결과를 향유하는 인간으로 살기 151
내가 ‘차이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157
‘나’ 이전에 ‘차이’가 먼저 있었다 166
운명과 재수를 넘어설 유일한 방법, 능동적 기쁨 176
나의 노동은 어째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을까 186

추천의 글 - 둘 196

그 와중에 나는 두 번의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았다. 그간 내 대신 아이들을 키워주고 살림도 해주던 부모님은 내가 막내를 낳고 전업주부로 들어앉자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그리하여 밥도 살림도 할 줄 모르던 나는 갑자기 네 아이의 구체적인 엄마가 되어, 지지고 볶는 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생각해보면, 직장을 완전히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온전한 가정주부가 되었던 시간, 그러니까 네 아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로서 맡은 역할이 내 정체성의 전부였던 30대 중반부터 40대까지의 그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버라이어티’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아이들은 쑥쑥 자랐으며, 그 틈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던 한 여자가 있었다. - 본문 29쪽

어째서 밥하고 살림하는 일이 이렇게 두렵고 힘들고 지겨운 걸까? ‘즐겁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좀 덜 지겹고 덜 힘들게 할 방법은 정말로 없을까? 진짜 죽도록 힘이 들었기 때문에 꽤 끙끙대며 생각해봤는데, 밥하는 일이 그렇게나 부담스러운 것은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능숙하게 척척 잘할 수 있는 일은 절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하고 났을 때 뿌듯함을 주지 않던가! 반대로 서툰 일을 억지로 할 때는, 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어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의욕도 활기도 없는 데다 이미 찌그러진 몸으로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으니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이치였다. - 본문 42쪽

지금도 여전히 세상 어디서나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이 다른데 생각이 다른 것도 당연하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저런 얘기가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내 마음이 내 맘대로 된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마음을 먹어봐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인정이 안 되는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어떻게 해야 마음이 싹 바뀌는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소상히 얘기해보시오!”, 요렇게 되돌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 본문 46쪽

이래저래 나에게 돈은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점점 더 깊은 물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물귀신 같은 것이었다. 이래서야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돈을 벌지 않고는 자유로워질 방법이 정녕 없는 것일까, 꼭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어떻게 벌 수 있을까, 막상 돈을 벌게 된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돈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도 경험상 잘 알고 있는데 그때는 또 어떻게 그 너머를 볼 수 있을까. 이 역시 내가 공부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 본문 60쪽

목욕하고, 산책하고, 친구 만나 수다를 떠는 등 소소한 방법을 활용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런 식의 기분전환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근본적 해결 방식이 꼭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면 세상에는 내가 살고 싶은 그런 모습으로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으니까. 아직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희미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자기 안에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어려운 문제들을 풀거나 치워버려 마음이 가벼운 사람. 그리고 꽤 무거운 짐도 넉넉히 감당할 만큼 힘이 센 사람! 이미 그렇게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살 방법 또한 분명 있다는 뜻 아닌가. - 본문 67~68쪽

처음 공부하러 갔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 같은 것이 나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학원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자녀와의 대화법’을 배울 때조차 기초반과 심화반이 따로 있었는데, 이곳에는 그런 경계가 없었다. 그냥 선생님들 각자의 관심과 공부 목표에 따라 기획한 강의가 공지되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등록을 하고, 그들이 모여 몇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함께 공부하는 과정이 주1회 정도 진행되는 식이었다. 모여드는 사람들도 천차만별이어서 똑같이 루쉰을 공부하겠다고 왔어도, 나처럼 공부가 뭔지 감도 못 잡는 생초보부터 이미 10년 이상 공부하고 있는 선배들까지, 그러니까 초등학교 1학년과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한데 섞어놓고 공부가 진행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이도 20대부터 50대까지. 이래서 어떻게 공부가 되겠나 싶었다. 초보자라고 누가 더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이로 나누고, 성별로 나누고. 성적으로 나누고, 경력으로 나누고… 이런 식의 위계에 따라 결정된 구역 안에서 50년을 살아온 내게는 엄청 신기한 경험이었다. - 본문 78~79쪽

아주 가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이상하게도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래 동양철학, 불교, 문학 등 여러 분야를 기웃거리고 나서 결국 철학, 더 정확히는 윤리학에 집중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인 듯하다. 예전에는 철학이 삶과 동떨어진 추상적이고 복잡한 학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철학이야말로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공부였다. 범박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철학이란 각각의 철학자가 개념을 도구 삼아 그린 삶의 지도 같은 게 아닐까? 철학자들은 자기가 발명한 개념으로 일상에서 드러나는 삶의 현상을 설명하고, 자신의 개념이 삶을 이해하고 삶의 방식(윤리)을 새로 발명하는 데에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 본문 87~88쪽

학교 밖 공부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나 혼자였다면 절대 고를 수 없었고 접할 수도 없었을 엄청난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삼사십 대에는 아직 살아갈 날이 무척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유명 희곡들이나 푸슈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고골, 안톤 체호프 같은 러시아의 대단하다는 작가들의 작품, 말로만 듣던 나쓰메 소세키의 글, 또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있을 게 분명해 보이는 붓다의 가르침도 사는 동안 언젠가는 읽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다. 마치 ‘언젠가는 내 인생에도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처럼. - 본문 114쪽

유일한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렇게 만난 텍스트들이 내 수준에 비해 너무나 높았다는 것, 즉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마치 외국어로 된 책을 해석하는 것처럼, 전체 맥락을 잘 이해하기는커녕 한 줄 한 줄이 낯설고 그 한 문장을 다음 문장과 연결시키는 일이 무척이나, 아니 지독하게 힘에 부쳤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졌지만 지금도 새로운 텍스트를 처음 만날 때면 여전히 그런 어려움을 겪는다. 공부 초기에는 이런 어려움이 낯설었고 나로서는 납득이 되질 않았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찍이 한글을 깨친 이래로 책을 읽는다고 읽었고 대학물도 먹었는데 한글로 된 책이 독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솔직히 조금은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 본문 117쪽

사실 공부와 관련해서는 여러 복잡한 마음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누군가가 “뭘 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선뜻 얘기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내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공부를 하지 못해 그런가 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보다는, 칠팔 년을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무슨 자격증이 하나 생긴 것도 아니고 살림이 편 것도 아니니, 내가 공부를 한다고 얘기하면 ‘팔자 좋은 아줌마가 고급스러운 취미 생활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것 같아 그게 싫어서 내 마음이 방어를 하는 거였다. - 본문 129쪽

뭐랄까, 그래도 그동안 내가 해온 공부가 이런 큰일 앞에서 대처할 힘을 주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어떤 게 진짜 내 마음인지 모르겠다며 징징댔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고 있는 게 무언지 직시할 수 있었고, 그 두려움이 어디서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알 수 있었으며, 두려움에 그냥 먹혀서 그 두려움이 나 대신 결정하도록 방치하지 않고 정신 줄을 붙들고 생각과 판단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고, 마침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만약 항암을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같았을지 몰라도 나에겐 결과에 이르는 이 과정이 중요했다. - 본문 144쪽

평범한 사람 ‘이현옥’,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이 되기로 결심하다
- ‘나는 왜 이 모양인가?’에서 시작된 ‘학교 밖’ 공부의 길

여기 이름 석 자가 있다. ‘이현옥.’ 당신은 그를 아는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는 이른바 ‘셀럽’이 아니며, 그렇다고 ‘재야의 고수’라든지, 또는 숨어 있던 연구자나 학자도 아니다. 그럼 그는 누구인가? 평범한 한 사람이다. 조금 더 범위를 좁혀서 말하자면, 주부(였)다. 그런 그가 육십여 년을 살다가 갑자기 자기 이름을 내걸고 책을 썼다. 왜일까? 평범한 한 사람이, 자기 이름 석 자 앞에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어쩌면 거창하고 어쩌면 과감해 보이는 수식어를 붙이면서까지 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이 책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을 쓴 이현옥은 1960년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맏이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이후 두 번의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아온 60대 여성이다. 대한민국의 보통 시민의 삶을 살며 20대, 30대, 40대를 보냈다고 말해도 되겠다. 그런 그가 나이 50이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그 길이 바로 ‘공부’였다. 하지만 그가 나이 쉰에 갑자기,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서 공부길에 나섰다고는 할 수 없다. 비록 나이 50이 되어서야 발을 내디뎠으나 그 발을 내딛기까지 수많은 질문이 ‘이현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 안에서 생을 더해갈수록 켜켜이 쌓이며 확대되고 증폭되어왔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용량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그것을 터뜨려 해답을 찾겠다고 나섰을 뿐이다. 그렇게 이현옥, 그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나이 오십에.

그럼, 그리 오랜 세월 반복되고 고농도로 응축되었던 그의 질문이란 어떤 것일까? 진리는 무엇인가?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주의 신비는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다들 의지만 강하면 못할 게 없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그놈의 ‘의지’를 도무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없으니 이 신체는 나에게 붙어 있기는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대체 어떤 이유로 내 의지가 경우에 따라 다르게 관철되는지, 어떤 이유에서 현재 나는 이 모습이 되었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나도 이 의지박약의 상태를 벗고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가전제품 사용법을 잘 숙지하고 나면 그 제품을 100퍼센트로 활용할 수 있듯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이치에 의해 이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결정되는지, 그런 것들이 내 ‘의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했어야만 했는데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며 스스로를 낙인찍는 못난이 말고 나 자신을 굳세게 신뢰하는 사람으로 당당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20대, 30대, 40대를 거치는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맴돌던 질문, 하지만 해결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던 이 질문은, 50대에 공부를 시작하고 스피노자를 만나면서 비로소 길을 찾았다.”
- 본문 20~22쪽,「나는 왜 이 모양인가」

20대 이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현옥의 마음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해, 주위의 마땅찮은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부글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 들끓는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르니 자신의 주장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똑바로 들이대지도 못했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불만이 ‘비판’과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고, 그 불편한 감정이 무슨 연유로 생겨났는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무엇보다도, 바로 그것이 알고 싶었다.
“철학자는 박식한 사람이 아니라 앎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은 결국 ‘철학하는 사람’

이 책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의 지은이 이현옥은 말한다. 마음의 갈림길도 그렇고, 인생의 갈림길도 그렇고, 갈림길은 끝이 없었다고. 하나의 사안을 앞에 두고도 마음은 너무나 자주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중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마음인지, 어떤 길로 가야 잘 가는 건지 알 수 없어 매번 혼란스러웠다. 매 순간 헷갈리는 ‘선택과 결정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또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밥하고 살림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고통으로 느끼지 않고 할 수 있는가. 내 마음 같지 않아 싫고 밉고 힘든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감당하면 좋은가. 늘 모자라 안타깝지만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순 없는 ‘돈 문제’는 또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여전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몸’, 즉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더 잘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현옥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여러 갈래의 마음들이 어디서 생겨나 어떻게 변화해가는 건지 알고 싶었다. 진짜 죽도록 힘이 들었기 때문에 꽤 끙끙대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책도 많이 읽었다. 좋은 삶이란 어떤 모양인지, 그런 삶을 살아보려면 뭘 어찌해야 하는지. 네 아이를 낳아 그들이 성인이 되는 긴 시간 동안 바로 그 문제들과 씨름했고, 결국 찾아낸 방법이 공부다. 쉰 살이 되던 해, 그는 마침내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줄 진짜 공부에 대한 동경이 늘 있었고, 혼자 읽는 책은 한계가 있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았으나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므로 공부의 길이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학교 밖 연구자들이 만든 ‘공부 공동체’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는 그만 “심장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라고 이현옥은 고백한다.

철학자 고병권은 이 책에 실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묻고 싶다. 철학자란 무엇인가. 철학자란 애초에 박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철학자란 그리스어로 ‘앎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진리에 이른 사람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를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 지식이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진리와의 연애가 끝나버린 사람이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했던 일은 진리에 대한, 사람들의 잠들어 있는 연애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공부에 대한 열의, 배움에 대한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것 말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 그것은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고병권은 이 책의 지은이 이현옥을 ‘철학자’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가 보기에, 이현옥은 서재에서 책에 파묻혀 지낼 수 있었던 처지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서재의 철학자 칸트가 집구석에 난 불이나 끄라고 다소 비하적으로 칭했던 사람, 곧 주부다. 실제로 이현옥은 서재에 파묻혀 있던 철학자처럼 박식하지 않고 철학 자격증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은 그들 철학자 못지않게, 아니 그들보다 훨씬 절실했다. “그러므로 이현옥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이 책에서 본 것은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 철학자 이현옥이었다.”


앎이 볕처럼 스며들던 시간에 관한 기록
- 어렵고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는 그 ‘공부’에 관하여

이 책은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이 걸어온 공부의 기록이다. 그는 수십 년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내면의 공부를 시작했고, 질문의 끝에서 만난 공부 공동체에서 13년간 몸으로 그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는 멈추지 않고 공부의 길을 걷는다.

지은이 이현옥은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 길은 분명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또한 재미있는 길이었다고 말할 뿐이다. 어렵고 힘든 것과 재미있는 것이 결코 상반된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며 도리어 기꺼워한다. 물론 그 어렵고 힘들지만 재미있는 공부의 길에는 스피노자와 니체, 푸코와 들뢰즈, 루쉰이나 마르크스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현옥의 공부의 길은 그런 이름들로만 설명될 수 없는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때로 이현옥은 오래 묵은 질문의 답을 찾고, 때로는 여전히 숙제로만 남는 질문과 마주한다. 즉 그가 품었던 수많은 문제가 책의 끝에 이르러 모두 해결책을 찾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가 자기 마음과 몸의 진짜 주인이 되는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공감”을 넘어 “나를 포함한 세상에 대한 인식”을 열망하게 되는 모습까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갑자기 들이닥친 ‘암’이라는 무섭고 치명적인 질병 앞에서 꿋꿋이 삶을 꾸려가는 모습도 보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공부를 다른 이들, 특히 이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부인당해온 다른 이들과 엮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대학 때의 세미나가 주로 세상 전체의 얼개와 관련되어 있었다면, 나이 오십에 시작한 이 새로운 배움은 그 세상이 다시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공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지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탐정소설이라도 읽는 것처럼 얽혀 있던 고리들이 하나둘 풀리는 강렬하고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 배우는 것마다 모두 그간 내가 품어온 생각을 두드려 깼고, 깨지면서 신나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 본문 82쪽, 「쉰 살 진짜 공부를 시작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열심히’는 나에게 필요한 ‘열심히’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와 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어떤 자격을 얻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성과를 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내 목표는 오로지 ‘좋은 삶’을 향해 ‘변해가는 것’이었고, 이즈음에는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함으로써 다른 힘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권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좋은 삶’이라는 것도. - 본문 110쪽, 「‘열심히’의 다른 사용법」

그래서? 자격증도 돈도 안 생기는 공부를 해보니 뭐가 그리 좋더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공부하는 사람, 이현옥’은 뭐라고 대답할까? 그는 이제 이렇게 답한다. “저는 스스로 강해졌고 가벼워졌으며 명랑해졌다는 걸 알고 느낍니다.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돈에 대한 결핍감도 거의 사라졌고요. 컵이 와장창 깨져서 사방으로 유리조각이 튀었을 때 혹은 말끔히 청소한 집 안이 어질러졌을 때도 예전처럼 짜증이 나지 않고, 무엇보다 한숨을 쉬면서 ‘지겹다’라고 중얼거리는 버릇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게 되었고, 억지로 하는 일도 없어졌으며, 귀찮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늙긴 했어도 몸은 예전보다 건강해졌고요, 마음에도 근육이 붙어 살림하고 공부하는 일도 점점 더 잘해내고 있답니다!”(「지은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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