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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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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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 세월이 흐르고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바탕에는 청와대 안팎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남긴 다양한 기록이 있었다. 이 기록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노무현의 새로운 면모와 진정성을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다. 참여정부의 초대 정책실장, 대통령 정책특보 겸 정책기획위원장을 차례로 역임한 이정우 교수도 당시의 회고를 남길 책무를 느꼈다고 한다. 신간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은 이러한 사명의 결과물로, 경제·사회 정책의 최일선에서 약 1000일 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정우 교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심도 깊은 이야기가 담겼다.
이 책은 이정우 교수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기록한 10권의 일기와 각종 회의 때마다 꼼꼼히 적어 둔 메모가 바탕이 되었다. 여기에는 오직 국민과 국익, 약자와 정의를 위해 국정을 운영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 부동산 대란, 재벌개혁, 언론개혁, 균형 발전과 신행정수도, FTA 문제 등 당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주요 정책들의 막전막후와 청와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지만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002년 대선에 얽힌 비화와 2004년 총선 전후의 청와대 풍경 등 그동안 다른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뒷이야기도 담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청와대 참모들이 만들고 싶었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이어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395쪽) 이 책은 노무현 정신과 참여정부의 유산을 되새김으로써 혼돈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학자 군주 노무현, 이런 리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이정우 교수가 기억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 둘의 첫 만남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2002년 8월, 공약 점검회의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이정우 교수는 약간의 정책적 의견과 함께 “말을 줄이라”는 조언을 건넸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초면에 실례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노 후보가 기분이 상해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은, 자신을 지지한다는 이정우 교수의 80대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어쩐지 내가 대통령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21쪽) 그렇게 노무현과의 1000일이 시작되었다.
이정우 교수는 노무현에게 '학자 군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워낙 독서를 좋아해 학식이 높았고 여러 학자와 소통하는 일을 즐겼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정우 교수와도 청와대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는 중에 역사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때가 많았다. 한번은 경호실에서 암살 시도에 대한 방어 시범이 있었는데 행사가 끝난 뒤 진시황과 자객 형가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371쪽)
노무현은 독특하면서 독창적인 용인술 역량을 지녔으며 자기 참모들을 아끼고 존경할 줄 아는 리더였다. 노 대통령은 '머리'와 '발'이라는 개념으로 참모를 분류했는데 전문가의 지식이 필요한 일에는 '머리' 참모들과, 인사 문제처럼 코드가 중요한 일에는 '발' 참모들과 더 많이 소통했다. 참모의 성향에 따라 적재적소에 기용하고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 앞에서 참모들의 지식과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 탄복할 때가 많다고 털어놓자 옆에서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렇게 거들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가끔 참모들 자랑하며 진짜 놀랐다고 하세요.”(410쪽)
이정우 교수가 노 대통령에게 감탄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이정우 교수에 대해 악의적인 언론 기사가 나왔다. 그 기사를 본 노무현 대통령은 “이 실장, 하도 화가 나서 내가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가서 싸우세요. 이정우 죽이면 노무현 죽이는 거라고 얘기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정우 교수는 매우 놀랐다. 정작 자신은 잘 잤는데 대통령이 잠을 설쳤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180쪽)
무엇보다 이정우 교수가 지켜본 노무현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대통령이었다. 정책을 만들 때면 눈앞의 인기보다 논리적 타당성과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만을 따졌다. 2003년 3월, 정부 출범 후 열린 첫 연수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토로했다. “나의 일생은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앞으로 5년간 국민의 먹을거리를 어떻게 장만하나 하는 고민이 앞선다.” 참여정부 당시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불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반짝 경기를 호전시킬 응급 치료보다 근본적, 장기적 경제정책에 관심을 두었다. 어려운 서민 경제를 위한 대책을 세우되 나중에 부작용을 가져올 인위적 경기 부양은 지양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경기가 나쁘다고 내가 욕먹어도 좋습니다. 멀리 보고 원칙대로 갑시다.”(240쪽) 눈앞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한 소신은 이정우 교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솔직하고 소탈했던 사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할 줄 알았던 대통령, 늘 손해 보고 지는 길을 갔던 '바보 노무현'. “이런 정치인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이정우 교수는 의문과 기대가 섞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자신을 행운아라고 자축한다.
1장 참여정부의 탄생
1. 노무현과의 첫 만남
2. 노무현 당선은 민주 세력의 첫 승리
3. 지방 중시, 학자 중심의 인수위
4. '참여정부' 작명 전말
5. '정의가 패배하고…' 취임사 뒷이야기
6. 첫 정책실장은 누구인가?
7. 내각 구성과 첫 국무회의
8. 뜨거운 감자, 대북 송금 특검법
9. 아! 통한의 제주 4·3
10. 경제부총리의 '법인세 인하' 돌출 발언
11. 경제학자 스티글리츠
12. 첫 장관 연수회와 참여정부의 개혁 과제
13. 파격 또 파격
14. 국정과제위원회, 국정의 중심에 서다
15. 동북아위원장을 찾습니다
16. 토론식 업무보고
17. 형식적·상투적 업무보고를 질타하다
2장 천하대란의 시대
18. 핵폐기장과 양성자 가속기 연계안
19. 수도권 공장 증설과 균형발전
20. 카드 대란과 학자 출신의 활약
21. 화물연대 파업과 물류 대란
22. 방미·방일, 균형 외교에 힘쓰다
23. 철도 구조개혁, 드디어 완성
24. NEIS, 나이스냐 네이스냐?
25. 노동문제의 이모저모
26. 네덜란드 모델 소동
27. “이정우 죽이기는 노무현 죽이기”
28. 보수 언론의 행태
29. 언론과의 전쟁
30. 그 많던 가판은 어디로 갔을까?
31. 긁어 부스럼, 새만금 사업
32. 농림부 장관의 잠적과 심야 장관 면접
3장 개혁 또 개혁
33. 한국 영화 살리기와 스크린 쿼터
34. 영화계와의 갈등, 기적 같은 해피엔딩
35. 외환위기 극복의 부작용
36. 장기주의 대통령의 등장
37. 조흥은행 매각과 정책 관리의 중요성
38. 큰 아쉬움을 남긴 참여정부의 금융 문제들
39. 점진적이어서 저평가된 재벌개혁
40. 기형적 예산구조의 문제점
41. 경제 우선주의를 타파한 3대 예산개혁
42. 지역 균형발전과 공공기관 분산 배치
43. 반쪽짜리가 되어 버린 신행정수도
44. 획기적 교육개혁과 4경로 입시제도
45. 교사별 평가 대 교과별 평가
46. 무산된 교육혁신, 최악의 결과를 맞다
47. 국가를 개조할 것처럼 정부를 혁신하라
4장 참여정부의 공과
48. 끝없는 사회갈등
49. 미완의 노동개혁
50. 사회적 대타협 실패
51. 부동산 대란의 시대
52. 부동산 투기 괴물과 10·29 대책
53. 부동산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54. 부동산 대란을 잠재우고도 오해를 사다
55. 선성장 후분배, 낡은 철학을 깨다
56. 국회 풍경: '좌파 정부' 공격에 맞서다
57. '위징' 같은 바른말 참모가 너무 많아
58. 정책실장에서 정책기획위원장으로
59. 이정우가 그만둔다는데 땅을 사 놓을까?
60. 약자와 정의를 우선한 학자 군주
5장 못다 한 이야기들
61. 심야에 걸려 온 대통령의 전화
62. '머리와 발'로 구분한 노무현의 용인술
63. 그거 다 적어서 언제 써먹을 겁니까?
64. 2004년 총선 전후 청와대의 풍경
65. 잘 먹고 잘 자는(?) 탄핵의 나날
66. 노무현과 룰라 “대통령 못해 먹겠다”
67. 노무현 스타일 “여기 내 찍은 사람 없지요?”
68. 고건, 행정의 달인 유머의 달인
69. 박정희 이야기
70. 김대중 이야기
71. 김영삼 이야기
72. 기억에 남는 사람들
73. 내가 걸어온 길
대통령 정책실장은 원래 없던 직책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신설된 자리다. 그 뒤 정부가 여러 번 바뀌면서 이 자리는 유지되기도 하고(이명박, 문재인 정부) 없어지기도 했다(박근혜, 윤석열 정부).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정부 부처 중 외교, 국방, 통일을 제외한 모든 부처의 모든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일에다가 덧붙여 대통령 국정과제라고 하는 장기적 정책 과제의 추진을 담당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다. 나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너무 힘들어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육체적으로 철인(鐵人)을 요구하고, 정신적으로 만능, 무소부지의 철인(哲人)을 요구한다. 도저히 인간이 맡을 수 없는 자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_6쪽
12월 28일(토) 12시, 국회 귀빈 식당에서 인수위 상견례가 있었다. 위원장은 임채정 의원, 부위원장은 김진표 국무조정실장, 간사 6명(정무 김병준, 외교통일안보 윤영관, 경제1 이정우, 경제2 김대환, 사회문화여성 권기홍, 기획조정 이병완)과 이종오 국민참여본부장을 비롯해 총 25명으로 구성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했다. 경제1분과는 재경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 금융감독위, 국세청 등을 담당하며 위원은 나 이외에 허성관 교수(동아대학교), 이동걸 박사(금융연구원), 정태인 선생이었다.
이날 인수위원 25명의 휴대폰 번호가 적힌 비상 연락망을 한 장씩 나눠 주는데 내 이름만 공란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급히 휴대폰을 샀으니 번호를 좀 받아 적어 주세요” 하니 모두들 웃었다. 휴대폰 없이 시골 선비로서 유유자적하던 좋은 세상은 끝나 버렸다. 아, 지난날이여, 안녕. _29쪽
내가 이 문장을 그렇게 중시한 이유는 이렇다. 취임사 기초위에 참석하라는 말을 듣고 나는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어 보았다. 하나같이 화려하고 훌륭한 문장이었지만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즉 독립운동가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제대로 대접도 못 받은 채 3대가 망하고 친일파, 매국노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자손 대대로 떵떵거리고 잘사는 기막힌 모순을 언급한 취임사는 없었다. 아니, 이 뒤틀린 역사,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을 언급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만사를 제쳐 놓고 이 문제 하나만은 확실히 짚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해방 후 우리 정부가 들어선 지 어언 반세기가 흘렀건만 국내외에서 그토록 신산 고초를 겪었던 수많은 애국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 주는 말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무심하지 않은가. 그래서 경제 분야 서술을 마친 뒤 나는 '정의가 패배하고…'라는 문장을 반드시 넣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엎치락뒤치락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 문장이 최종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에 들어간 것은 정말 다행이었고, 이로써 큰 숙제를 하나 해낸 느낌이 들었다. _42쪽
그날 밤 9시 TV 뉴스에서 노 대통령이 제주도민 앞에 사과하는 장면을 보았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대통령이 갑자기 4·3 사건에 대해 과거 국가 권력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정하고 국가를 대표해 사과를 하자 전혀 예상 못 하고 있던 오찬장의 참석자들은 순간 술렁거리고 장내는 온통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뒤쪽에 서 있던 아주머니 한 명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갖다 대며 소감을 묻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생전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해 오며 대통령이 사과하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_67쪽
2003년 5월 11일(일) 노무현 대통령은 6박 7일 방미 길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기간 중 “반미면 어떠냐”고 호기로운 발언을 해서 보수 언론의 공격을 받았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첫 대통령이다. (중략)
2층 환송대에 장관들이 부부 동반으로 줄을 서는데 내 자리가 어딘지 몰라 우왕좌왕하니 노 대통령이 “짝이 바뀔 뻔했네요”라고 농담을 했다. 노 대통령은 평소 명랑하고 유머가 많았다.
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의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에서 묵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할머니가 노 대통령의 일정표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내가 여기서 평생 일했지만 이렇게 부지런한 국가 원수는 처음 본다”고 했다고 한다. 또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전화로 회담할 때 배석했던 외교부 고위 관료가 “노 대통령만큼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_146~148쪽
6월 1일(일) 정오, 노 대통령이 방미 외교를 수행했던 재계 대표 31명을 초청해 토속촌 식당에서 점심 대접을 했다.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들이 방바닥에 모여 앉아 삼계탕을 먹는 장면은 진풍경이었다. 재벌 총수 여러 명이 대통령에게 각종 건의를 했다.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이 노사정 대타협과 산별 교섭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놓자 노 대통령은 노사관계 개혁을 약속했다. 조석래 한미경제인회장(효성그룹 회장)이 스크린 쿼터 개선을 건의하자 노 대통령은 “정책실장이 이창동 장관과 의논해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_219쪽
5월 21일(금) 오전 11시, 인왕실에서 신행정수도위 위촉장 수여 및 다과회가 열렸다. 노 대통령이 소설가 이호철 위원에게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썼을 때는 만원 아니었어요. 틀렸어요”라고 농담을 했다. 이호철 작가가 “그때 1966년 서울 인구가 380만 명”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강용식 자문위원장은 “충청도에 살다 보니 신행정수도에 눈물겹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권용우 교수(서울시립대)는 “1978년 신행정수도 계획에 참가했는데 인구 분산은 못 하고 머리카락만 분산시켰다(탈모)”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신행정수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서울은 이대로 가면 관리 불능이 된다. 정책 결정자는 지방에 좀 살아 봐야 한다. 서울에 살면 분권적 시각을 갖기 어렵다.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 전국 불균형을 서로 조정해야 한다. 서울에도 신행정수도 지지자가 있다. 신행정수도를 동북아 새 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자”고 열변을 토했다. _284쪽
2004년 1월 17일(토) 오전 9시에서 11시 반, 집현실에서 참여정부 1년 평가 회의가 열렸다. 수석들이 각자 돌아가면서 1년 성과를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수석들보다 배석한 비서관들이 많이 발언하라고 격려했다. 평가라기보다 국정 홍보 카피를 찾는 회의였다. 11시가 넘어 나도 한마디 하려고 마이크를 켜니 노 대통령이 “이 위원장이 발언 신청하는 거 보니 회의가 끝날 때가 된 모양이죠”라고 했다. 내가 “10·29 대책이 성공해 가는 것 같으니 '강남 불패 아니고 투기 필패' 이런 카피는 어떻습니까?”라고 의견을 내니 노 대통령은 좋다고 했다. 김희상 국방보좌관이 여러 차례 발언을 하자 노 대통령이 “'대통령의 발언 제지에도 계속 발언하는 최초의 보좌관' 이런 카피 좋겠네요” 해서 일동 폭소가 터졌다. 권오규 수석이 다시 발언하려고 마이크를 켜니 노 대통령이 “아까 10분 이상 발언해 놓고 또 뭐 할라카노” 해서 또 폭소가 터졌다. 밖에 나오니 함박눈이 펑펑, 올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_355쪽
7월 20일(수) 아침부터 사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전화가 폭주했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이정우 위원장이 나가도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 정책특보는 계속한다”고 발표했다. 주가가 연일 상승하다가 이날만 하락했다. 이튿날 모든 신문이 이정우 사임을 보도했고 여야 4당이 각양각색의 논평을 냈다. 나의 사임에 대한 최고의 헌사는 살구색 신문 《문화일보》에서 나왔다. 《문화일보》는 어느 날은 나를 공격하는 기사를 1면부터 끝면까지 사설 포함 5개 면을 쓸 정도로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문화일보》의 엽색 연재소설 《강안 남자》는 당시 인기 절정이었다. 남성 직장인들이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며 《강안 남자》 읽는 재미로 직장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주인공 조철봉이 이렇게 중얼거리는 대목이 등장했다. “땅을 사 놓는 것이 나을까? 이정우가 그만두었다는데 이제 좀 풀릴까?” _391~392쪽
그 뒤 청와대와 왕래가 없다가 참여정부 막바지에 대통령, 내각, 수석들이 참석하는 참여정부 5년 평가 학술 행사(영빈관)에 가서 기조 발제를 했다. 또 그 무렵 나는 〈참여정부의 빛나는 노을〉이라는 글을 언론에 투고했다. 오래전 참여정부가 사방에서 뭇매를 맞을 때는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이어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거라는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적도 있다. 참여정부가 끝날 무렵 어느 날 연락을 받고 청와대 관저에 가서 노 대통령, 성경륭 정책실장과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했다.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오늘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요?” “그냥 고마워서 밥 한번 먹자고 한 겁니다. 요즘 밖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이 교수밖에 없어서….” 대통령이 외로워 보였다. _395쪽
노무현 시대의 징비록,
참여정부 주요 정책들의 막전막후를 그리다
노무현 후보와의 첫 만남 이후 이정우 교수는 경제1분과 간사로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리고 인수위가 끝나 가던 2003년 2월, 노무현 당선자는 불쑥 “정책실장을 맡아 주지 않겠습니까?”라고 제안한다. 정책실장은 새 정권의 방향타와 같은 상징성이 있는데 대선 기간 동안 딱 세 번 만난 사람에게 이런 중책을 맡긴 까닭은 무엇일까? 이정우 교수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내내 궁금했지만 대통령 본인에게 물어볼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이 궁금증은 영구 미제가 되고 말았다.(51쪽)
정책실장은 외교·국방·통일을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의 정책을 총괄·조정하고, 대통령 국정과제 추진을 담당하는 자리다. 그런 만큼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어떤 취지를 가지고 구상되었는지, 어떻게 입안·실행되고 그 성과와 의의는 무엇인지 이정우 교수는 누구보다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저자는 정책이라는 무대 안팎에서 어떤 인물과 설왕설래가 등장하고 퇴장했는지, 그 막전막후를 적나라하게 서술한다. 대표적인 일화로 신행정수도를 둘러싼 이슈를 살펴보자. 2024년 4월에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 세종시로의 국회 이전은 또 다시 주요 공약으로 등장했다. 왜 세종시는 행정부만 품은 반쪽짜리 행정수도가 되었을까?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 이전이라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았고 특유의 뚝심으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가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은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관습헌법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머리가 좋다(영리하다)는 민정수석의 대답에 “나도 처음 든 생각이 '머리가 참 좋구나'였어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정우 교수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헌재에 의한 쿠데타”라는 평가를 덧붙였다고 한다.(287쪽) 신행정수도라는 미완의 과제를 두고 대통령과 참모들이 얼마나 큰 아쉬움을 삼켰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언론의 횡포에 맞선 가판 신문 폐지, 교육 행정 전산 시스템인 나이스(NEIS) 도입, 철도 구조개혁, 양여금·특별교부세·특활비 등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정부 예산 축소 및 폐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분산 배치, 스크린 쿼터 문제 해결, 점진적 재벌개혁을 위한 '시장개혁 3개년 계획', 경로별 입시제도 도입 무산, 10·29 대책 이후 일관되지 못하고 흔들려 버린 부동산 정책 등 수많은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의 시그니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검사와의 대화'에 이어, 나이스 시스템 도입을 놓고 '교사와의 대화'가, 조흥은행 매각 문제를 두고 대통령 주재 관련 토론회가 열릴 뻔하기도 했다. 모두 청와대 참모들의 만류로 성사되지 않았지만, 문제 해결 방법으로 대화·소통·타협을 가장 우선했던 노무현 스타일이 돋보이는 일화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모든 비전과 결정에 확신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2003년 8월의 어느 일요일, 이정우 교수는 대통령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반년 동안 정책실장 업무를 해 보니 어떠냐는 대통령의 물음에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이대로 가면 괜찮겠고, 과거 여러 정부보다 잘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식사를 마친 후 노무현 대통령은 문밖까지 배웅해 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일요일에 쉬는데 나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정책 쪽은 꽉 장악해서 잘해 주십시오.” 이때 이정우 교수는 개혁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열망을 느낌과 동시에 처음 가는 길에 대한 일말의 불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418쪽)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가 사면초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힘겹게 싸웠다고 기술한다. '비전이 없다, 개혁 후퇴다,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왼쪽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 등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대통령 노무현과 청와대 참모들은 궁극적으로 개혁 정부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고투를 기록한 이정우 교수의 회고는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시대의 징비록'이라 할 만하다. 참여정부가 시도했던 정책들은 그것이 공이든 과든 오늘날 전방위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선사한다.
소박한 여유와 유머가 함께했던 청와대의 일상
노무현과 함께한 이정우 교수의 1000일이 진중하고 비장한 나날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소탈하고 유머와 장난기가 많았다. 이정우 교수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시골 할머니들의 그것처럼 꾸밈없는 화법을 좋아했고 주위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었으며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사람이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재치와 여유와 인간미가 넘치는 노무현 스타일은 그의 참모들 덕분에 더욱 빛을 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정우 교수는 독자들을 청와대의 소소한 일상 속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들 사이에 있었던 유쾌한 티키타카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2003년 9월 4일, 노 대통령의 눈에 다래끼가 났다. 그는 수석회의에서 “세종대왕은 눈병이 자주 났다는데 나도 세종대왕처럼 되려는가 봐요”라며 농담을 했다. 나종일 안보실장이 다래끼에는 눈썹을 두세 개 뽑고 데운 수건으로 찜질하는 게 특효라 일러 주었더니 실제로 노 대통령이 눈썹을 뽑았다고 한다.(323쪽) 또 한 번은 청와대 비서실 업무 연계 회의 자리에서 조윤제 보좌관이 “제 임무가 무엇인지 대통령이 좀 말씀해 주세요”라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다른 이라면 1년 이상 일하고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참모에게 화를 낼 텐데 노 대통령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좋은 문제 제기”라며 설명을 이어 갔다. 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방의 이견도 귀담아듣는 태도를 항상 견지했다고 한다.(421쪽)
2004년 11월, 남미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곳에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룰라 대통령에 대해 칭찬 일색이었고 비교 대상이었던 노 대통령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런데 룰라 대통령을 직접 만난 후 그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룰라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싶어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병준 정책실장이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는 그런 대통령을 꼭 한 명씩 넣어야겠다”며 장단을 맞추었다.(454쪽) 하지만 이후에도 이정우 교수와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직을 그만두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폭탄 발언을 종종 들어야 했고, 대통령을 하기 싫어하던 룰라는 2006년과 2022년 대선에 도전해 브라질 최초 3선 대통령이 되었다.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 보좌관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정찬용 보좌관에게 총선 출마를 권했다. 이미 여러 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마를 권한 모양이었다. 정 보좌관이 참다못해 노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왜 저기 있는 이정우, 문재인한테는 한 번도 출마하라는 소리를 안 하고 저한테만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노 대통령이 씩 웃으며 답했다. “저 사람들은 정치할 사람이 못 돼.” 참석자들이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413쪽)
책임감과 사명감, 부담과 긴장을 안고 지내는 청와대 생활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들은 소박한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대통령의 품격은 이처럼 힘과 권위가 아닌,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다. 오늘날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절절히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정보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2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3년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경북대학교에서 38년간 불평등의 경제학, 비교경제론, 경제민주주의 등을 강의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 정책실장,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역임하면서 참여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의 기초를 놓았다. 그 뒤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지금은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대표 저서로 《불평등의 경제학》 《약자를 위한 경제학》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가 있으며, 공저로는 《노무현이 꿈꾼 나라》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 《어떤 복지국가인가?》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비정상 경제회담》 《경국제민의 길》 등 5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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