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단식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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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이 상품이 속한 분야
화부 27
변신 69
단식 광대 145
최초의 고뇌 147
작은 여자 152
단식 광대 163
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 종족 178
해설 | 죽음에 이르는 글쓰기, 카프카의 길 205
프란츠 카프카 연보 275
이렇게 햇살 가득한 오전 시간인데도 아버지의 방이 어찌나 어두운지 게오르크는 깜짝 놀랐다. 좁은 안마당 건너편에 우뚝 솟은 높은 담벼락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여러 물건으로 꾸며진 한구석의 창가에 앉아 약한 시력을 보완하려고 신문을 눈앞에서 약간 옆으로 비켜 든 채 보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아침식사를 하고 남은 음식이 놓여 있었는데 별로 먹은 것 같지 않았다. _「선고」 중 (14~15쪽)
그는 아버지를 안아서 침대로 데려갔다. 그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아버지가 자신의 가슴께에 늘어진 시곗줄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치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시곗줄을 어찌나 꽉 붙잡던지 아버지를 곧바로 침대에 눕힐 수 없을 정도였다. _「선고」 중 (19쪽)
‘아버지는 속옷에도 주머니가 있구나!’ 게오르크는 속으로 말하며 이 말로 아버지를 온 세상에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도 한순간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꾸만 잊어버렸다. _「선고」 중 (23쪽)
“그러니까 이제는 너 말고도 무엇이 있었는지 알겠지! 지금까지는 너 자신밖에 몰랐었지만! 너는 본래 순진무구한 아이였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악마 같은 인간이었어! -그러니 들어라, 이제 나는 너에게 익사형을 선고하노라!” _「선고」 중 (24쪽)
이미 속력을 늦춘 배가 뉴욕항에 들어서자, 열여섯 살의 카를 로스만은 진작부터 지켜보던 자유의 여신상이 갑자기 더 강렬해진 햇빛을 받은 듯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 임신을 시킨 일로 그의 가난한 부모가 그를 미국으로 보낸 길이었다. 칼을 든 여신의 팔은 마치 새로 돋아난 것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여신의 형상 주위로는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_「화부」 중 (29쪽)
“그건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카를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자신이 미지의 대륙 연안에 정박한 어느 배의 꺼림칙한 밑바닥에 있다는 느낌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만큼 여기 화부의 침대 속은 고향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_「화부」 중 (15쪽)
“스스로를 지켜야 해요.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말해야 하고요. 안 그러면 사람들이 진실을 전혀 알 수 없어요. 내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해야 돼요.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더이상 당신을 전혀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그렇게 말하더니 카를은 눈물을 흘리며 화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갈라 터지고 시들시들한 그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갖다대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포기해야 하는 어떤 보물을 대하는 듯했다. _「화부」 중 (45쪽)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었더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휜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 있었다.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는 이불이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져내릴 듯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_「변신」 중 (71쪽)
여동생이 연주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제 위치에서 딸의 손놀림을 주의깊게 지켜보았다. 그레고르는 바이올린 소리에 마음이 끌려서 겁도 없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어느새 머리를 거실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_「변신」 중 (129~130쪽)
“죽었다고요?” 잠자 부인은 의심스러운 듯 할멈 쪽을 쳐다보았다. 물론 그녀가 직접 확인해볼 수도 있었고, 또 굳이 그러지 않아도 척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제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요.” 할멈은 그렇게 말하며 빗자루로 그레고르의 사체를 옆으로 한참 쭉 밀어 보였다. 잠자 부인은 빗자루를 제지하려는 듯한 동작을 취했지만 실제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자아”, 잠자 씨가 말했다. “이제 하느님께 감사드려야겠다.” 그가 성호를 긋자 세 여자도 따라 했다. 사체에서 눈을 떼지 않던 그레테가 입을 열었다. “다들 좀 보세요. 어쩜 저렇게 말랐을까요. 하긴 그토록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으니. 음식은 들여다놓은 그대로 다시 나오곤 했지요.” 사실 그레고르의 몸은 완전히 납작한 모양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_「변신」 중 (139쪽)
공중그네 곡예사는-잘 알려진 대로 거대한 버라이어티쇼 무대의 둥근 천장 아래 높은 곳에서 행해지는 이 곡예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다-처음에는 단지 기예를 완벽하게 다듬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중에는 폭군처럼 되어버린 습관의 힘까지 더해져서, 같은 공연단에서 일하는 동안은 밤이고 낮이고 공중그네를 떠나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갔다. _「최초의 고뇌」 중 (147쪽)
이 작은 여자는 나를 몹시 못마땅해한다. 늘 내게서 트집거리를 찾아내는데, 그녀의 일이 잘못되는 것은 늘 나 때문이고, 그녀를 번번이 화나게 하는 것도 나다... 내 모든 게 그녀의 미적 감각, 정의감, 습관, 관습, 희망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그처럼 서로 맞지 않는 기질이 있는 법이지만, 어째서 그녀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괴로워할까? _「작은 여자」 중 (153쪽)
“나는 줄곧 당신들이 나의 단식에 경탄하기를 바랐소.” 단식 광대가 말했다. “물론 경탄하고 있지.” 감독관은 호의적으로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경탄하지 않는 게 좋겠소.” 단식 광대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경탄하지 않겠네.” 감독관이 말했다. “그런데 왜 경탄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왜냐하면 단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오, 달리 어쩔 수가 없소.” 단식 광대가 말했다. “허, 이것 좀 보게.” 감독관이 말했다. “왜 달리 어쩔 수가 없다는 거요?” “왜냐하면”, 단식 광대는 입을 열었고, 그 조그만 머리를 약간 쳐들어 한마디도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키스할 때처럼 뾰족하게 내민 입술을 감독관의 귀에 바싹 갖다대고 말했다. “내 입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오. 만일 그런 음식을 찾아냈다면, 내 말 믿으시오, 괜히 떠들썩한 일을 벌이지 않았을 테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처럼 배불리 먹었을 것이오.” _「단식 광대」 중 (175~176쪽)
우리 가수의 이름은 요제피네다.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자는 그 노래의 힘을 모른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이는 우리 종種이 전체적으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기에 더욱더 높이 평가될 만한 일이다. 조용한 평화야말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다. 우리 삶은 고달프다. _「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 종족」 중 (178쪽)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기념한 대표 중단편선: 카프카 문학의 생장점과 마지막 결실
2024년 6월 3일은 카프카 타계 100주기다. 이를 기념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펴내는 이번 중단편선 『변신ㆍ단식 광대』는 카프카가 직접 그린 그림을 표지에 넣고, 그간 카프카 주요작 대부분을 소개해온 이재황 교수의 꼼꼼하고 정확한 번역에, 역사적 시대적 관점을 아우른 작가와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두 가지 기획 관점에서 새롭게 카프카를 재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작품활동을 시작하던 1910~1920년대 표현주의의 영향하에서 카프카가 어떻게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기를 느끼고 사르트르, 카뮈 등 실존주의 작가들의 조명을 받고 쿤데라, 마르케스, 나보코프, 카네티, 아도르노, 들뢰즈, 바르트, 블랑쇼 등 여러 작가와 철학자의 호명을 거쳐 오늘날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섰는지, 카프카 문학의 생장점과 삶의 막바지 투쟁에서 비로소 부각된 그의 문학관의 본질을 이 중단편선을 통해 개괄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두 가지 관점 중 첫째로, 카프카에게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준 대표 중단편 세 편을 뽑았다. 생전에 ‘아들들’이라는 제목하에 한 권으로 펴내고 싶어한 작가 초기의 뜻을 살려 「선고」 「화부」 「변신」을 그 선두에 실었다. 1912년 가을에 집필된 이 세 작품은 이전 초기작들과 달리 카프카에게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인식과 성공의 경험을 안겼다. 둘째로, 폐결핵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1924년 프라하를 떠나 빈 근교 키얼링 요양소에서 죽기 직전까지 심혈을 기울여 교정작업을 했던 마지막 중단편집 『단식 광대: 네 편의 이야기』다. 여기에는 「최초의 고뇌」 「작은 여자」 「단식 광대」 「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 종족」이 실려 있으며, 1922년 봄과 1924년 봄에 걸쳐 집필되어 그가 사망한 직후 베를린 디 슈미데 출판에서 발간되었다. 카프카 문학의 핵심 주제가 이 두 기획 구성을 통해 드러나는데, 하나는 카프카가 평생 천착했던 ‘아버지’ 세력과의 갈등이라는 문학의 주제를 세 편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아들의 모습을 통해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말기에 집필한 네 편의 중단편에서 예술가와 공동체, 문학과 사회에 대한 작가-창작자로서의 태도를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카프카 문학의 투쟁 1_‘아버지’ 세력과의 갈등
: ‘아들’ 삼부작 「선고」 「화부」 「변신」
「선고」는 러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리려던 게오르크가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익사형을 선고받아 강에 몸을 던진다는 내용이다. 카프카는 이 글을 1912년 9월 22~23일 하룻밤을 꼬박 새워 여덟 시간 만에 썼다. 십 년간 편편이 글을 써오긴 했으나(대개 이 연도를 기준으로 카프카 문학의 초중기를 분류하는데 초기작 대부분은 소실되고 「어느 투쟁의 기록」 「시골에서의 혼례 준비」, 그리고 스무 편가량의 산문 소품만 남았다), 그에게는 이날이 처음으로 완성도 높은 단편 하나를 써낸 날이었다. 그의 글쓰기 여정에서 돌파구가 된 작품으로, 출판인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카프카 스스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으로 꼽았다. 이 작품을 번역하고 해설을 쓴 이재황 교수는 “무엇보다 카프카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아들과 아버지의 대결, 부자간의 갈등 구조를 선명하게 형상화하고 있어, 이후 소설들의 선구적이고 원형적인 모델이 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화부」는 열여섯의 청년 카를이 고향에서 하녀를 임신시킨 문제로 부모로부터 쫓겨나 미국 뉴욕행 배에 올랐다가 선실에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화부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다. 카를은 그를 도우려다 곤란한 상황에 휩쓸리나 엄청난 권력을 지닌 삼촌의 우연찮은 개입으로 아메리카 세계로의 참담한 진입을 노정하며 끝난다. 1912년 10월에 써서 1913년 단행본으로 발표해 신인 작가에 수여되는 폰타네상을 받았으며, 작가 사후 원고를 정리한 브로트에 의해 1927년 첫 장편 『아메리카』(카프카의 일기에 따라 추후 『실종자』로 제목이 정정됨)의 1장으로 출간되었다. 한 편의 완결된 단편으로 읽든 첫 장편의 1장으로 읽든 카프카가 바라본 부조리한 사회구조 내에서의 무력한 개인, 관계로부터의 소외와 고독, 부권으로 상징화된 권력의 불합리한 폭력 구조는 여기서도 부각되는 주제다.
「변신」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일벌레’처럼 성실히 살던 영업사원 그레고르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 가족들의 격리 속에서 ‘밥벌레’처럼 갇혀 살다 결국 죽음을 맞는 이야기다. 출근을 종용하는 상사의 방문, 여동생과 어머니의 방안 가구 이동 작업,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이끌려 나갔다 하숙인들에게 발각되는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와 주변 세력에 의해 거듭 자신의 방안에 유폐되다 메말라 죽는다. 아버지가 사장에게 진 빚을 갚고자 회사에 몸 바쳐 일해온 그가 벌레가 되어 쓸모없는 끔찍한 존재로 전락하자, 힘없던 아버지는 제복을 입은 은행안내원이 되고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는 일꾼이 되고 여동생은 가게 점원이 되어 그의 실존은 현실에서 가차없이 소외된다. 가장 유명한 이 작품은 카프카 문학 특유의 패러독스와 악몽과도 같은 부조리한 현실의 무자비한 폭력성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이 세 편에서 아들들은 각기 아버지의 권력하에서 죽음을 선고받거나 국외로 추방되거나 죽도록 방치된다. 아버지 권력과 갈등을 벌이는 아들의 스토리는 바로 카프카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카프카 문학의 핵심 주제다. 그는 평생 낮에는 일하고 밤늦게까지 글쓰며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현실적 삶과 작가로서의 이상적인 삶 사이에서 고투했다. 그가 상대한 비인간적 현실의 벗어날 수 없는 억압 속에서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의 그로테스크한 분출이자 현실과의 사투 끝에 얻어낸 꿈이 곧 그에게는 글이었다.
카프카 문학의 투쟁 2_마지막 단편집에 담긴 예술가-작가 소설
: 「최초의 고뇌」 「작은 여자」 「단식 광대」 「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 종족」
마지막 중단편집 『단식 광대: 네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기 공중그네 곡예사, 작은 여자, 단식 광대, 쥐 종족의 여가수다. 죽기 2년 전부터 쓴 작품들로, 대략 밝혀진 집필 시점에 따라 나열하자면 「최초의 고뇌」(1922년 3월 초), 「단식 광대」(1922년 5월), 「작은 여자」(1923년 12월), 「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 종족」(1924년 3월)이다. 이 후기작들에는 생의 막바지에 이른 작가로서의 예감과 결기가 강렬하게 어려 있다.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한 예술가-작가 소설이라는 주제적 범주하에 읽어나가다보면 카프카가 견지한 창작자와 글쓰기 태도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최초의 고뇌」는 완벽한 기예를 갈고 닦기 위해 대형 버라이어티쇼 무대의 천장에 매달린 공중그네에서 땅으로 내려오기를 거부하는 공중그네 곡예사의 이야기다. 심지어 단장에게 그네 하나를 더 만들어달라며 울먹이고, 단장은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딱한 제안에 그의 이마에 잡힌 첫 주름살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작은 여자」는 아무 사이도 아닌 한 여자가 ‘나’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화가 나 있어 괴로워하며 요리조리 생각을 곱씹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다. 이 단편집의 세 편과 달리 전면적으로 예술가-작가가 주인공은 아니나, 점점 ‘나’의 신경을 긁고 나 때문에 모종의 이유로 고통받는 ‘작은 여자’의 사이는 문학의 요구와 작가 사이에 대한 기막힌 알레고리로 화한다. 「단식 광대」는 오랜 기간 단식 기예를 선보여 활약하던 광대가 세가 꺾여 구석에 방치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자기는 이 세상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며 단식을 계속해나가다 죽고 그 대신 어린 표범 한 마리로 우리가 대체되면서 끝나는 얘기다. 「변신」의 그레고르도, 병상에서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죽어간 카프카도 이 단편의 단식 광대와 겹쳐지며 어느 경지를 향한 예술과 예술가, 이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작가의 투쟁을 대비해보게 된다. 「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 종족」은 생존 투쟁의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비음악적인 쥐 종족에게 꿈의 시간을 선물하는 국민 디바 요제피네가 자신의 노래를 인정해주고 노동에서 제외시켜달라고 했다가 무리로부터 거절당하자 결국 종적을 감춰버린다. 주인공 ‘나’의 시각을 통해 예술가와 공동체, 예술과 권력, 예술과 노동, 예술의 기능과 개념 등에 대한 첨예한 사유를 촉발시키는 작품으로, 카프카가 죽기 두 달여 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었다.
카프카 문학이 가닿는 섬뜩한 현실과 불안한 꿈의 동요 속에서, 그는 “영원한 유혹이 되어”(사르트르) 여전히 현대문학의 지평을 드넓히고 있으며, “하나의 미적 혁명 자체, 예술적 기적 그 자체”(쿤데라)로서 오늘도 끊임없이 그 가치는 갱신되고 있다.
작가정보
Franz Kafka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프라하의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문학과 철학 공부에 뜻을 두었으나, 독일계 카를페르디난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22년 은퇴할 때까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14년간 일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쓰는 생활을 계속했고,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에도 줄곧 글을 썼으나 결국 1924년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는 죽기 전 오랜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책이 더이상 세상에 나오지 않길 바라며 유고를 불태워달라고 유언했으나, 브로트는 그의 원고를 정리하고 편집해 책들을 발간했고, 이로써 카프카의 문학세계가 소상히 세상에 알려졌다.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소외와 좌절을 그린 카프카는 지금까지도 다각도에서 활발히 연구되는 20세기 최고의 문제적 작가 중 하나다. 일명 ‘고독’ 삼부작으로 불리는 미완의 장편소설 『실종자』 『소송』 『성』을 비롯해,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 의사」 「단식 광대」 같은 빛나는 중단편들을 썼다. 평생 카프카의 삶에 영향을 미친 아버지와 연인 등에게 보낸 편지, 집필 일기 등도 출판되어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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