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대중 혐오, 법치
2024년 04월 05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2월 29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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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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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를 푸코의 통치성 관점에서 분석하여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바라본 저자들은, 이 폭력적인 체제의 특성을 ‘내전’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한다. 신자유주의는 그 출발부터 ‘자유’의 이름으로 ‘평등’에 맞서는 내전을 전략으로 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배 세력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그들은 시장 질서와 경쟁에 반대하는 모든 ‘적’을 분쇄하기 위하여 법을 이용한 지배, 즉 법치를 내세우며, 경찰과 군대를 동원한 직접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대중 혐오, 즉 반민주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하이에크와 대처에서부터 집권 좌파의 몰락, 신보수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까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따라 그것의 지배 전략을 파헤친다. 지난 80여 년 동안 보수는 물론 진보 세력까지 이 체제의 교리를 충실히 따랐다. 신자유주의의 작동 방식을 낱낱이 드러낸 이 책은 낡은 것을 떠나보내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 진정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서론 신자유주의 내전의 전략들 ◦ 9
1장 칠레, 최초의 신자유주의 반혁명 ◦ 29
2장 신자유주의의 대중 혐오 ◦ 57
3장 강한 국가 예찬 ◦ 77
4장 정치 헌법과 시장의 입헌주의 ◦ 103
5장 신자유주의와 그 적들 ◦ 125
6장 사회 진화의 신자유주의적 전략 ◦ 151
7장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의 가짜 대안 ◦ 181
8장 가치 전쟁과 ‘인민’의 분열 ◦ 203
9장 노동 일선에서 ◦ 225
10장 반민중적 통치 ◦ 243
11장 신자유주의 전쟁 기계로서의 법 ◦ 263
12장 신자유주의와 권위주의 ◦ 283
결론 내전에서 혁명으로 ◦ 313
해제 낡은 것은 갔는데,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 336
미주 ◦ 352
찾아보기 ◦ 390
신자유주의 내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 전쟁은 과두 정치 세력이 앞장서 벌이는 ‘총력전’이다. 이 전쟁은 사회적 권리 축소를 노린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외국인에게서 모든
종류의 시민권을 박탈하고자 하고 망명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족적이며, 모든 저항과 비판을 억압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법적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법적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강성 보수주의가 도덕 질서 수호를 내세우며 개인의 권리를 공격할 때, 이 전쟁은 문화적이고 도덕적이다. 둘째, 이 전쟁에서 각각의 전략은 서로를 지지하고 상호 영감을 주기도 하지
만, 각 국가나 지역의 특수한 전략들이 범세계적인 단일 전략으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셋째, 이 전쟁은 패권주의 강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글로벌 질서’와 블록화한 국가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립이 아니다. 두 정치체제 간, 두 경제 시스템 간의 대립도 아니다. 이 전쟁은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는 미리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분열, 그중에서도 가장 해묵은 분열을 수단으로 삼아 매번 획득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종류의 이원론적 도식은 힘을 잃는다.
_본문 17~18쪽 「서론 신자유주의 내전의 전략들」 중
신자유주의가 가하는 폭력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사회에 대항해 시장 질서를 보호하는 폭력의 성격을 띤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시장 질서는 경제정책을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시민-소비자 개인의 책임과 자유에 기초한 문명 전체가 달린 문제다. ‘자유 사회’는 이런 기초 위에 구축되었기 때문에 국가는 모든 특권을 가지고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서는 가장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된다.
_본문 23쪽 「서론 신자유주의 내전의 전략들」 중
신자유주의의 모든 조류는 ‘인민주권의 신화’ 위에 수립된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자유주의의 정치적 기초를 세운 선구자들(루이 루지에, 월터 리프먼,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빌헬름 뢰프케)은 ‘민주주의에 대한 광신’, 즉 여론의 지배 혹은 대중의 어리석음이야말로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진정한 위험이며, 인민주권 도그마의 유해한 효과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엘리트주의적이고, 개인의 선택과 사적 소유라는 최상위 원칙을 존중하는 제한된 형태의 민주주의만을 인정한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다. (...)
인민, 보통선거, 다수결 원칙, 정치적 다원주의, 분배 정의, 공공 교육, 빈곤층을 싸잡아서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거부하기도 힘들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결코 민주주의를 온전히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근본적으로 대중을 혐오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무제한적’ 혹은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를 구별하며, 전자를 수단으로 후자를 무력화하는 이론적 작업을 수행한다.
_본문 61~63쪽 「2장 신자유주의의 대중 혐오」 중
권위주의의 형태 혹은 동원되는 폭력의 강도 등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자들 사이에 근본적인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강한 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견해 차이는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 카를 슈미트의 표현에 따르면 ‘강도’의 차이다. 강한 국가의 한계는 인위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에 대한 적의 위협에 따라 비례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특정한 신자유주의만을 가리켜 ‘권위주의적 자유주의’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치 않다. 시장경제를 규제하기 위한 모든 민주주의적 의지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이미 내재적으로 권위주의적이다. 국가의 힘을 사용하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반복해서 말했다. 독재와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단지 자유경제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강한 국가는 파시스트 국가와 구별된다. 반대자들에 가해지는 노골적인 폭력은 그 자체로 근본적인 원칙이 아니라 맥락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미제스가 설명하듯이 상황에 따라 신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의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파시스트 폭력에 의존하는 것도 가능하다.
_본문 79~80쪽 「3장 강한 국가 예찬」 중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분파는 자유경제에 대한 위협에 맞서 싸우기 위해 정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단순히 자신의 앙숙인 사회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분파들은 이데올로기와 문화 영역에서 사회주의와 맞서 싸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법과 조치, 제도의 확립을 통해 향후 어떤 사회주의적 정책들도 도입할 수 없게끔 방벽을 세우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중심 목표는 처음부터 사회주의를 패퇴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노동조합을 약화하고, 국가의 사회복지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_본문 127쪽 「5장 신자유주의와 그 적들」 중
진보주의적 신좌파가 인민계급을 저버리고, 우파가 인민계급의 가치(노동, 능력, 가족, 권위)를 회수함으로써 각 사회 계급이 정당들과 맺는 관계가 재정의되었다. 우리는 앞에서 신자유주의의 가장 반동적인 버전이 현재까지 인민계급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를 물었다. 이 성공은 신자유주의가 독(유대 관계 해체, 사회적 불평등, 경제적 불안정)과 해독제를 동시에 만들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파가 제시하는 해독제는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 조용하고 성실한 이웃, 규범을 준수하고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는 착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우리’라는 주문을 다시 외게 한다. 모든 계급, 특히 인민계급을 단일한 국가에 통합하는 이 통일 서사는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즉, 사회를 다시금 상상의 공동체로 만들고, 주권 국가를 다시 이상화하며, 개인적 자유를 급진적으로 추구한다.
이 전략을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지칭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이 표현은 그 스타일과 레토릭을 강조해서 보여주지만, 우파 전략의 복잡한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들의 전략은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대로 ‘하나의 인민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들을 분할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인민계급 일부가 노동자 운동의 모든 성과와 복지국가, 노동법, 노동조합에 등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우파는 전략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의 충동을 자극함으로써 인민계급이 지배계급에 저항하기 위해 단결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일부 인구 집단이 자신들의 상황이나 기대 이익을 위협한다고 믿는 다른 인구 집단에 대해 지니는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이 전략은 ‘인민’을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분할하고, 화해 불가능한 정체성을 지니는 공동체들로 분해해버린다.
_본문 222쪽 「8장 가치 전쟁과 ‘인민’의 분열」 중
이 전쟁은 단순히 경제적 지구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유연화와 불안정화에 따른 담론과 실천, 주체화의 형식 차원까지 아우른다. 바로 이 차원이 경제적, 정치적인 만큼이나 정신적이고 내밀하기도 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겨냥하는 지점이자 전선이다. 이러한 공격은 일반적으로 단지 법과 노동을 재조직해 새로운 노동 규범을 강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방 혹은 자기실현이라는 매력적인 말로 포장하여 수용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간다. 또한 ‘계급의식’이 출현할 만한 조건들을 파괴함으로써 현재의 투쟁들을 개인적 투쟁으로 축소해버린다. 이제 개인은 타인을 잠재적인 적으로 여기며 두려워할 뿐 아니라, 극단적으로는 대다수가 패자가 되는 게임의 규칙을 따르기 위해 자기 자신의 적이 된다.
_본문 228쪽 「9장 노동 일선에서」 중
이 책 전체에 걸쳐 언급되는 ‘내전’은 과장된 수사가 아닌 현실이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권력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해지는 경찰력과 사법 당국의 탄압은 이 전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여기서 국가 폭력의 대상은 단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 질서의 근본법을 위협하는 모든 사람이 ‘무정부주의자’ 혹은 ‘테러리스트’로 규정되며, 적으로 간주되어 국가 폭력의 대상이 된다. (...) 사회적 타협의 종말, 협상의 길의 점진적 소멸, 사회적으로 완전히 퇴보적인 법률의 ‘토의 없는’ 강요 등이 새로운 정치적 지형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행해지는 반대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억압적 행위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 극에 달했던 19세기로 퇴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신자유주의 전쟁은 시장 질서와 그 질서를 보호하는 국가의 반대자들을 자극하며, 갈수록 신자유주의 국가가 그 질서에 잠재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벌이는 투쟁이 되어간다. 종국에 이 전쟁은 국가가 그 구성원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쟁이 되어버린다.
_본문 244~245쪽 「10장 반민중적 통치」 중
신자유주의는 법을 경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신자유주의 주류는 그 출발부터 시장경제의 적절한 작동을 위한 법적 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방임적 자연주의와 선을 그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은 개인의 행동은 헌법화된 근본 원칙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 간 상호 관계와 법적 결정에 따라 발전하는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전쟁은 반드시 군사적인 것만은 아니며, 오직 군사적인 것도 아니다. 이 전쟁은 모든 영역, 모든 제도, 모든 담론을 가로지른다. 이 전쟁은 권력관계를 구성하며, 피지배자의 저항과 반란의 형태뿐 아니라 지배자의 탄압 형태에도 관계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다. 따라서 법은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이자 전쟁의 수단이다.
_본문 264~265쪽 「11장 신자유주의 전쟁 기계로서의 법」 중
신자유주의를 그 기원에서부터 특징짓는 것은 몇몇 근본 특성들의 놀랍도록 지속적인 결합이다. 재분배를 위한 사회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 반민주주의, 강한 국가 추구, ‘자유의 적’에 대한 폭력, 시장 입헌주의, 경쟁 예찬 등이 그 특성의 예다. 이 특성들은 계속해서 상호 결합하며, 여기에 (항상은 아니고) 자주 가족, 종교, 도덕 질서 같은 보수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지가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하듯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실재하는 신자유주의’, ‘변종 신자유주의’ 등으로 신자유주의를 범주화하는 게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대립의 경계를 이동시켜 인구의 일부가 권위주의를 지지하게 만드는지, 혹은 역으로 어떻게 ‘진보주의자’의 열망을 전유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적 연대, 평등을 후퇴하게 만드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의 전략적 차원에 주목하여, 신자유주의 권력이 내전의 정치를 통해 기능하는 다양한 방식을 파악하고자 했다.
_본문 314~315쪽 「결론 내전에서 혁명으로」 중
신자유주의 전략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국가 폭력의 사용, 권위주의, 과격성 등을 현재의 신자유주의만의 새로운 특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변화를 권위주의적 일탈로 해석할 경우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전략적 특성을 놓칠 수 있다. 이 새로운 전략은 이미 앞에서 살펴봤듯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가지 현상에 의존한다. 첫째, 현대 신자유주의는 두 분파로 양분된다. 차이를 존중하고 자아실현을 약속하는 다소 진보적인 ‘글로벌리즘 신자유주의’와, ‘국민 정체성’과 혼동되는 자유를 내세우며 소수자들의 요구 및 법적 성취를 억압하는 반동적인 ‘내셔널리즘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둘째, 이러한 두 신자유주의 분파의 가치 전쟁 속에서 인민은 자기 자신에 대항하게 된다. 이 전쟁 속에서 매우 다른 두 개념의 자유가 마치 무한한 거울 반사처럼 서로에게 시대적 악의 책임을 돌린다. 현대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공론장 전체를 포화 상태로 만듦으로써 모든 진정한 인민적 대안을 막는다.
_본문 319쪽 「결론 내전에서 혁명으로」 중
낡은 것은 갔는데,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질문이 틀렸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대,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구를 빌려 현대를 진단한 이 명제는 많은 지식인의 공감을 샀다. 주지하다시피 ‘낡은 것’은 신자유주의로, 1970년대부터 전 세계를 지배해 온 이 체제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 여러 식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기실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라는 말은 ‘신자유주의’라는 말만큼이나 상투적인 것이 되었다. 2008년 9월 19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한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전례 없는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한다. 무한 공적자금 투입, 전방위 시장 개입을 통해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처를 두고 수많은 지식인은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 할 법한 미국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포기했다며 신자유주의에 종언을 고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신자유주의는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맞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글로벌 경제에 제동을 건 것이다. 셧다운과 국경 폐쇄가 이루어졌고,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가 위기를 모면하고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또다시 신자유주의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고, 너도나도 ‘포스트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그렇다면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새것이 오지 않는 이유가 낡은 것이 아직 저물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내전, 대중 혐오, 법치』는 파리 낭테르대학에 거점을 둔 네 명의 석학이 함께 쓴 책으로, 저자들은 여전히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지배 아래 있다고 주장하며 그 지배 방식에 주목한다. 푸코의 통치성 관점에서 이 체제가 취하는 전략적 특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는 저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경제·정치 사상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바라본다. 이 명제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세 키워드로 꿰뚫는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진화
저자 가운데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은 『새로운 세계합리성』(오르트망 옮김, 그린비)에서 신자유주의가 걸어온 궤적과 그 주창자들의 이론을 분석한 바 있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에서도 다른 두 명의 저자들과 함께 이 방법론을 채택해 신자유주의가 태동한 1938년 월터 리프먼 학술대회부터 오늘날까지, 사상사적 계보를 따라 이 체제에 내재한 특성을 밝혀낸다.
저자들이 제기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이자 특성은 ‘내전’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군사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벌이는 내전을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고 정의한 저자들은 칠레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부터 시작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수였던 대처와 레이건 집권기(다시 말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한 사회민주주의 좌파가 실각하고 패퇴한 시기)를 거쳐 세계 곳곳에서 극우 세력이 부상한 지금 이 순간까지, 역사적 사건들을 면밀히 살피며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내전’을 분석해 나간다. 내전에는 필연적으로 ‘내부의 적’이 상정되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혹은 ‘집산주의’가 적으로 지목되었고, 오늘날에는 인종주의 또는 보수주의와 결합해 새로운 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복지 정책, 노동조합 등 ‘평등’을 추구하는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적으로 상정되었으며 오직 시장 질서와 경쟁만이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고유한 주요 속성 하나가 드러난다. 내부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법을 이용한 지배’, 즉 법치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의 법에 대한 선호는 반대파를 향한 폭력으로도 드러난다. 오늘날 지배 세력은-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반대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력과 사법 당국을 이용한다. 2018년 프랑스 정부의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탄압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 국가는 ‘안전’을 이유로 반대 세력을 억압할 법을 제정하고, 집행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대중 혐오, 즉 반민주주의적 면모에 주목한다. 미제스는 “대중은 사유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인류를 지도하는 일은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라고 이야기했고, 하이에크는 민주주의를 ‘사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간주했다. 이들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정도나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인민주권’을 부정하며 인민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인민(대중)은 만족을 얻을수록 평등의 이름으로 더 많은 요구를 내세우기 때문에,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때로는 독재를 이용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게 신자유주의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결국,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내전은 ‘자유’를 앞세워 모든 ‘평등’ 요구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시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톺는 것에 관하여
어느 세력이든 자기편만 극단적으로 챙기는 모습, 반대 세력에 대한 철저한 무시 혹은 탄압,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미끄러져 버린 법치주의, 갈라치기, 갈등, 분열, 혐오…. 눈 밝은 독자라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자, 저자들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세 키워드가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묘하게 포개어지는 지점을 포착해냈을 것이다.
다만 『내전, 대중 혐오, 법치』로 표면적인 정치 상황을 읽어내는 데 그친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계보와 역사적 사건을 샅샅이 분석하여 이 사상이 경제·정치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문화에까지 걸친 전 지구적 질서가 된 과정을 추적한다.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법과 노동을 재조직해 새로운 노동 규범을 강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방 혹은 자기실현이라는 매력적인 말로 포장하여 수용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는지, “여성의 권리를 문제 삼고, 동성 결혼을 반대하도록 대중을 선동”하는 ‘도덕적 십자군’의 형태를 취하는지, 어떻게 사람들로 하여금 기업가 정신 즉 ‘자기 경영자’ 모델을 내면화하도록 하는지, “어떻게 대립의 경계를 이동시켜 인구의 일부가 권위주의를 지지하게 만드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이 분석을 따른다면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경향이나 소수자를 향한 소위 ‘역차별’ 논란, 약자 혐오, ‘갓생’으로 표상되는 과도한 자기계발 담론, 극명하게 양분되는 정치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의 변형 혹은 발현이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전면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사건은 IMF 외환위기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그 계보를 근본에서부터 통찰한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체현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귀중한 렌즈가 될 수 있다.
모든 대안을 봉쇄한 것으로 보이는 이 폭력적인 체제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전 지구적 질서가 될 수 있었을까? 우파는 물론 좌파 역시 신자유주의 통치 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좌파 버전으로 선택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문화적, 도덕적 대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사회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역사적 투쟁을 외면해왔”으며, “신자유주의가 집권하고, 사회를 변형시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은 우파의 반동적 버전과 좌파의 현대주의적 버전으로 이중화된 덕분에 가능했다”라는 저자들의 지적은 뼈아프다. 이러한 두 분파의 가치 전쟁 속에서 대중은 분열하고, 모든 대안은 가로막힌다. 신자유주의의 내전 전략은 ‘분할하여 통치하라(Divide and Rule)’라는 격언을 충실히 수행하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이항 대립에 단호히 저항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의 내전 전략을 분쇄해야 한다. 저자들은 “오직 인민의 혁명만이, 시민들에 의해 전개되고 통제되는 혁명만이 신자유주의적 내전 전략에 대항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며 신자유주의가 짓밟고자 하는 것, 즉 평등과 민주주의만이 그 지배에서 벗어날 해법임을 분명히 제시한다.
사회학자 장석준은 해제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는 결코 저절로 저물지 않는다”라며, “그에 필적할 또 다른 문명적 기획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장기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논설한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적인 통치성을 기원에서부터 꿰뚫는 이 책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끝장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작가정보
피에르 다르도(Pierre Dardot)
파리 낭테르대학(제10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헤겔과 마르크스를 전공했다. 같은 대학 소피아폴Sophiapol 연구소에 소속되어 마르크스와 커먼즈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2004년에 크리스티앙 라발과 ‘퀘스천 마르크스Question Marx’를 설립하였고, 이후 그와 함께 『새로운 세계합리성』(국내 출간), 『끝나지 않는 악몽Cecauchemar qui n’en finit pas』 등 신자유주의를 분석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18년 가을, 동료 석학들과 ‘신자유주의와 대안 연구그룹GENA’을 결성해 연구에 힘쓰고 있다.
피에르 소베트르(Pierre Sauvêre)
파리 정치대학교(IEP)에서 정치학, 사회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셸 푸코로부터 영감을 받아 20~21세기 통치성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파리 낭테르대학 소피아폴 연구소 일원이자 ‘신자유주의와 대안 연구그룹’ 설립 멤버로, 커먼즈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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