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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한 우리

매기 도허티 지음 | 이주혜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4년 05월 17일 출간

종이책 : 2024년 05월 1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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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정보 ePUB (19.14MB)
ISBN 979117171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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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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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자료를 서사에 녹여낸” “한 편의 소설” 같은 논픽션.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2021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른 『동등한 우리』(원제: The Equivalents)가 출간됐다. 1960년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시작된 혁명적인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작가’로 도약한 여자들의 우정과 야망, 예술과 사회참여, 사랑과 상심의 서사를 엮은 논픽션이다. 문학가이자 역사학자인 지은이가 여러 해에 걸쳐 발굴하고 추린 오래된 문서와 카세트테이프 녹음본, 작가들의 노트, 편지, 일기, 작품, 기사에 가족 인터뷰를 보태 집필했다. 발굴하고 재해석한 역사를 극적 장면으로 서사화하는 저자의 재능이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주혜의 문학성을 만나 빛을 발한다. 서사 중간중간 인용된 작품과 작품 묘사, 저자의 비평이 작가가 연 낭독회나 세미나의 청중이 된 듯한 현장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들어가며

1부 1957~1961
1장. 작고 하얀 나무 울타리
2장. 누가 내 경쟁자인가?
3장. 작가-인간-여성
4장. 어수선한 실험
5장. 나 됐어요!

2부 1961~1963
6장. 프레미에 크뤼
7장. 우리 수다만 떨지 말고
8장. 합격 축하해요
9장. 동등한 우리
10장. 나, 나도 역시
11장. 메시지에 열광하다
12장. 천재 엇비슷한

3부 1964~1974
13장. 죽기 살기로 쓸 거야
14장. 우린 이겨낼 거야
15장. 상처받고 열받고 당황하고 화가 날지
16장. 누구나 그 특권을 가지지 않은 게 잘못일 뿐
17장. 창조성의 샘
18장. 새로운 외래종
19장.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죠?

나가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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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가을, 명망 높은 여자 대학이자 하버드의 자매학교인 래드클리프대학이 미국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한 계층, 즉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전례 없는 장학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 장학 프로그램의 설립자인 래드클리프 총장이자 미생물학자 메리 잉그레이엄 번팅의 말을 빌리자면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는 20세기 중반 미국 여성들에게 닥친 “기대받지 않는 풍조”에 맞서기 위해 계획되었다. 번팅이 보기에 너무도 많은 뛰어난 여성 학부생들이 가족과 집안일을 보살피면서 연구하고 집필할 방도를 찾지 못해 학자나 예술가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프로그램은 이렇게 ‘지적으로 추방당한 여성들’을 제 궤도로 돌려놓자고 제안했다. (11~12쪽)

섹스턴과 쿠민은 서로를 유심히 살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둘 다 마르고 검은 머리에 매력적이었다. (…) 쿠민은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반발심이 느껴지는 이 긴장한, 매력 넘치는 이방인을 즉시 경계했다. 두 사람 모두 불확실하고 심지어 온당하지 않게 느껴지는 일을 하려고 여기 왔다. 다시 말해 시인이 되려고 왔다. 그러려면 둘 다 용기를 그러모아야 했고 명백히 고독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두렵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28~29쪽)

주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동안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집에서 글을 쓰는 쿠민은 “허리케인의 눈” 속에서 일하는 느낌이었다. 섹스턴 역시 비슷한 태풍 속에 있었다. 아이들이 몸 위로 기어오르면 조용히 시켜야 했다. “쉿! 시를 듣고 있잖아! 맥신이랑 통화 중이야!” 섹스턴은 한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고 시 전체를 파악하려 귀를 기울였고, 여기 단어를 바꾸고 저기 행갈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나중에 서로의 시가 종이 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놀라곤 했다. 두 시인은 각자의 집, 각자의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서로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몇 시간이나 통화하는 날도 있었다. (43쪽)

이런 차이점에도 올슨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이 시인과 자신의 공통점을 알아보았다. 올슨은 답장에서 섹스턴을 “친애하는 나의 동족”이라고 불렀고,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고 했다. 또 섹스턴의 시집 『정신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서 작가 사진을 잘라내, 정신없는 자신의 책상 위 레오 톨스토이, 토머스 하디, 월트 휘트먼처럼 올슨이 “도움 주는 작가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초상화 곁에 걸어두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어느 편지에서 올슨은 섹스턴이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이라고 나무랐다. “그게 당신의 첫 책이라는 게 놀랍잖아요. 그러니 가혹하게 굴지 말고 자부심을 가져요.” (…) 올슨은 언제든 또 편지하라고 섹스턴에게 말했다. 섹스턴은 거의 즉시 답장했고 이후 활기찬 서신 교환이 이루어졌다. (85쪽)

섹스턴은 후손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동시대 독자의 덧없는 인정이나 판매량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도 했다. 단순한 숙녀 시인을 넘어서길 열망했고, “여성적 역할”을 초월하고 싶었다. (더불어 여성의 경력을 지원하는 연구소를 조심스럽게 칭찬했다.) 너무 큰 소리로 웃고 작품에 관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문단 파티에 처음 온 어색한 손님처럼 섹스턴은 국가의 위대한 문인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을 강조했다. “저는 이미 자격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요청하는 것은 영원한 시인이 될 기회입니다.” 여기 단연 특별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여성이 있었다. (109쪽)

스완은 쿠민과 섹스턴이라는 두 시인을 그릴 때 특별한 기쁨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 매력적인 검은 머리 여성들이 무척 비슷해 보여서 두 사람을 구별하는 데 기민한 눈이 필요했다. 스완은 잘 손질한 머리와 깃 있는 드레스 너머로 두 사람의 기질을 탐색했다. 쿠민이 정적이라면 섹스턴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섹스턴에게는 불안한 분위기가 있었고 어떤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완은 날카로운 연필 선을 사용해 섹스턴을 그렸다. 연필을 단단히 내리눌러 드레스의 주름을 두드러지게 했다. (…) 어쩌면 스완은 쿠민의 자제력을 몰라보고 시인의 차분함이 의도적인 성취가 아니라 타고난 성정인 것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완은 두 시인이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을 알아보았다. (140~142쪽)

1961년 여름 내내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신문과 잡지는 연구소와 그 설립자에 대하여, 기적 같은 기회를 거머쥔 여성들에 대하여 앞다퉈 보도했다. 전국 잡지들은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를 여성 교육의 새로운 경향에 관한 사례연구로 보았다. 지역신문은 사진이 잘 받는 장학생들을 부각하면서 행복한 가정 풍경을 재현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사진을 보면 섹스턴이 소매 없는 상의와 줄무늬 치마를 입고 딸 조이, 린다와 함께 있다. 또 어느 사진에서는 쿠민이 막내 대니얼을 한쪽 팔로 감싼 채 무릎에 책을 펴놓고 앉아있는데, 카메라 셔터 소리에 약간 놀란 것 같은 모습이다. (스완은 더 나중에 지역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1963년 어느 신문을 보면 스완의 프로필 사진 위에 “설거지를 하라고요? 아니, 그림을 그릴래요”라는 헤드라인이 붙어있다.) “우리는 개척자인 동시에 실험용 쥐였다.” 쿠민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서식지에서 하도 질문을 많이 받고 사진도 많이 찍혀서 우리 아이들은 누가 흘낏 쳐다보기만 해도 ‘치즈!’라고 할 정도였다.” (143쪽)

섹스턴은 여성의 글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더욱 면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웰의 세미나 시절에는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에 조바심쳤고, 진지한 남성 시인들에게 자신이 항상 열등하게 보일 거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래드클리프에서 여성과 예술에 관한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연구소의 명백히 정치적인 책무, 즉 홍보 책자와 언론 보도에서 되풀이해 강조되었던 그 임무 때문일 수도 있다. 떠들썩했던 언론, 기사에 보도된 프로필들, 미국 대중이 보여준 인정의 태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섹스턴은 주로 집에서 일했고 케임브리지로 차를 몰고 나오면 전원 여성으로 이루어진 동료 장학생들 속으로 들어갔다. 마운트 오번 스트리트 78번지에는 잘난 척하는 존 홈스도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로버트 로웰도 없었다. 오직 자신과 같은 여자들뿐이었다. 섹스턴은 성적 긴장감이 넘치던 워크숍 공간 대신 서로를 지지해 주는 여성 공동체를 선택했다. (150쪽)

그러나 마크라키스는 그 평범한 저녁 시간 동안 그들이 뭔가를 알아채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이 특별한 여성 집단에게 아직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음, 그것은 뭐랄까, 언어가 없는 페미니즘이었어요.” 그는 말했다. 언어는 나중에, 마크라키스가 연구소를 떠나 대학 강단으로 나가고, 새로운 준장학생 집단이 그 노란색 집을 차지한 후에 왔다. 그사이 연구소 여성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고, 쿠민의 말을 빌리자면 서로에게 “기꺼이 들어주고, 주고, 듣고, 받을 마음”을 선물했다. (161~162쪽)

그 1년을 보내며 다섯 명의 여성은 다 함께 친구가 되었고 일종의 ‘연구소 속 연구소’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작품에 협력하고, 논쟁하고, 축하했다. 무엇보다 서로를 예술가로 보았는데, 이 점이 학문을 좋아하는 학자 장학생들과 다른 점이었다. 이들에겐 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지원서의 요구대로 예술 분야에서 이와 ‘동등한’ 훈련을 받았다. 연구소가 예술가들을 학자들과 비교하는 방식을 농담 삼아 이들은 자신을 ‘동등한 우리’라고 불렀다. 이는 느슨한 연합이었다. 정기적인 모임도 클럽하우스의 규칙도 없었다. 다섯 명의 여성과 그 가족은 주말이면 가끔 모여 어울렸고, 다섯 명은 마운트 오번 스트리트의 노란색 집에서 규칙적으로 만났다. ‘동등한 우리’는 이 긴밀한 다섯 명 집단에 붙인 공식적인 이름이라기보다는 서로의 비슷한 정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205쪽)

어느 날 섹스턴은 뉴턴 공공도서관에서 울프의 책 한 권을 우연히 발견했다. 1929년에 도서관에 기증된 책이었다. 섹스턴은 그 책을 이동식 책상으로 가져갔고 그동안 이 책이 한 번도 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은 30년 넘게 책장에 꽂혀있었고, 그사이 뉴턴 여성들은 대학에 가고, 직장을 그만두고, 전쟁 산업에 동원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화가 치밀었다.” 섹스턴은 훗날 말했다. “도서관에 여성들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그 책이 거기 있는지도 몰랐다. (…) 동네에 문제가 있었든지 혹은 학교의 제도나 기타 등등에 문제가 있었든지 아무튼 그 책은 도서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책이 아닌가! 그게 전부인 책이다!” (209~210쪽)

낭독을 마친 섹스턴은 앞줄에서 듣고 있던 스완에게 말했다. “어때, 바버라? 우리 영원히 함께 갈 수 있을까?” 섹스턴의 질문이 이 특정 시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협업 관계를 뜻하는 거라고 이해한 스완은 대답으로 그동안 전화로 들었던 섹스턴의 시 파편들을 바탕으로 작업했던 자신의 그림과 드로잉을 공개했다. 그중 하나가 〈마법사들〉이었는데, 「음악가들」의 인물들이 섹스턴의 피리 소리에 반응해 모습을 바꾼 것처럼 보였다. “내 그림과 드로잉은 일종의 연장선이야. 내가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한 이미지들이 당신 시에 있더라.” 스완은 스스로 마법사처럼 말했다. (216쪽)

1962년부터 1963년까지 올슨 가족은 매일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지고 씨름했다. 아무리 해도 틸리가 제시간에 집에 오지 않았다. (…) “어머니에게 사탕 가게 열쇠를 내준 것과 같았죠.” 케이시는 올슨의 도서관 출입 권한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경이로워했어요. 도무지 도서관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어요.” 올슨은 잃어버린 시간을 보충하고 있었다. 이토록 풍성한 도서관에 출입해 본 적이 없었고, 읽고 생각할 자유 시간도 많지 않았다. (236쪽)

세미나가 끝나고 청중이 흩어지자 섹스턴은 수줍게 올슨에게 다가가 메모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해 여름 섹스턴은 비서를 한 명 고용해 「창조적 과정의 죽음」 원고를 옮겨 썼다. 그들이 만든 이 이상하고 더듬거리는 듯한 문서는 공식 발표문이라기보다는 일기에 더 가까웠다. 온통 메모와 약어와 인용문이었다. 섹스턴이 이 문서를 편지와 공책과 시 초안 같은 사적인 문서 사이에 끼워놓은 것은 적절했다. 문서는 그곳에서 수십 년을 보내면서 올슨의 영향력과 두 예술가 사이 친밀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틸리는 다시 몰두하게 한다.” 언젠가 섹스턴은 이렇게 말하기도했다. 어쩌면 섹스턴은 분투의 시기에 그 문서를 꺼내 몇 줄 읽고 다시 쓸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252쪽)

스완이 작업 속도를 늦추었던 것은 60대 초반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발을 다쳐 기동에 제한이 생겼을 때뿐이었다. 그는 말년에도 모든 일을 헤쳐나가며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스완의 마지막 전시회는 별세 10주기였던 2013년 매사추세츠 프래밍엄의 댄포스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었다. 사랑하는 친구 섹스턴의 초상화를 비롯해 초기 초상화들도 전시되었다. “두 시인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훗날 시집 표지 디자인에 대해 스완은 이렇게 말했다. “내겐 에이전트가 있어서 책 작업을 하게 해주세요, 하고 출판사를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그런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그저 우정 때문에 한 일이었다.” (289~290쪽)

올슨은 라우터와 하우 부부에게 리베카 하딩 데이비스의 『제철소에서의 삶』을 한 권 건넸다. 올슨은 밤에 자려면 반드시 낮에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데이비스의 작품에 무척 감동받았고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제철소에서의 삶』은 과거 문학 가운데 여성이 쓴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작품이 꽤 많지 않을까 하는 올슨의 의심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여성과 유색인 작가로 구성된 올슨의 강의안은 정전을 바꾸고 그리하여 학과 교실의 구성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다. (319쪽)

올슨이 제안한 해결책은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이었다. “가르치는 여러분부터 여성 작가를 읽으세요.” 그는 청중에게 도전했다. 특히 전기적 비평을 권장했다. “여성의 책만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여성의 삶을 통해 여성의 삶에 대해 가르치세요. 또 자서전, 전기, 일기, 편지를 통해서도 가르치세요.” 올슨은 또 자신을 포함한 “살아있는 여성 작가들”도 읽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했다. 그들은 정말로 귀를 기울였다. 그 연설을 통해 올슨은 학계에서도 명성을 쌓았는데, 전례 없는 주장이어서가 아니라(1970년 총회에서 쇼월터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시기적절하고 정열적이며 강력한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슨 자신이 그동안 과소 대표되었던 여성 작가이자 노동계급 작가의 산 예시였다. 여전히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었고, 다른 학자들과 달리 올슨은 스스로 살아오며 분투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공개 토론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올슨의 호텔 방에 몰려가 교과과정과 교수진을 다양화할 방도를 논의했다. 그들은 목마른 나그네가 물에 끌리듯 지칠 줄 모르고 열정적인 올슨에게 끌렸고, 올슨은 그들에게 전국의 대학 교육자로서 독립적인 여정을 이어갈 용기와 힘을 주었다. (322~323쪽)

워커는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리고 벌레와 돼지풀에 맨다리를 쏘이면서도 손으로 그린 지도를 붙들고 웃자란 잡초 사이를 헤치며 아무 표지 없는 허스턴의 무덤을 향해 나아갔다. (…) 워커는 지역의 묘비 제작자를 찾아가 미래의 방문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허스턴의 무덤을 표시하기로 했다. 워커가 원한 묘비는 너무 비싸서 조금 더 저렴한 묘비에 만족해야 했다. 워커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돌 위에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조라 닐 허스턴, ‘남부의 천재’, 소설가 민속학자 인류학자, 1901~1960.” 워커는 허스턴의 생년을 잘못 알았지만(1891년에 태어났다) 허스턴이 역사에서 잊히지 않도록 했다. 이 묘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337~338쪽)

시가 너무 좋아 평론가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뉴욕 타임스』에서 1971년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겨울나무』와 쿠민의 시집을 나란히 칭찬했다(최초로 섹스턴과 플라스가 아닌 쿠민과 플라스가 나란히 읽혔다). 오츠는 쿠민의 대담함과 다양한 관점, 진정성을 칭찬하며 비록 소로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지만 쿠민이 그 초월주의자보다 더 낫고, 쿠민의 시에는 “종종 소로의 시에서는 볼 수 없어서 화가 나는 날카롭게 벼린, 단호하고, 이따금 악몽 같은 주체성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오츠는 또 쿠민과 섹스턴을 비교하기도 했는데, 대다수 비평가가 차이점을 본 반면 오츠는 두 시인에게 비록 그 방식은 다르지만 “보편적 여성”의 목소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이 비교는 각 시인의 고유함을 지켜주면서 동시에 이전 비평가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두 여성 시인을 동일시했다. (…) 이 서평에 감격한 쿠민은 오츠에게 “세심하게 읽어주어서 진심으로 기쁘다”라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썼다. (350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추도사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투쟁적인 페미니즘이 문학계에 침투했다는 신호였다. 섹스턴이 한때 출산과 신체 부위에 관한 시들로 비판을 받았다면(“육체적 경험의 애처롭고도 역겨운 면”이라고 했던 디키의 비평을 떠올려보자) 이제 그는 선견과 길잡이로 찬사를 받았다. 쿠민이 사적인 편지에서 말했듯이 섹스턴은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여성의 삶에 대한 진실을 시로 써왔다. 「마흔 살의 월경」과 「낙태」 같은 시들은 “인습 파괴자이자 개척자, 노출광의 감각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해야만 하는 직접적인 필요에서 나왔다. (…) 여성에게 글쓰기는 자아의 표현을 뛰어넘고 치료를 뛰어넘었다. 이는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언젠가 올슨이 말한 대로 “글 쓰는 여성은 모두 생존자다.” (373쪽)

『여성으로 태어남에 대하여』는 획기적인 책이었지만, 리치보다 먼저 모성에 관해 쓴 사람들이 앞서 길을 닦아놓았다. 바로 섹스턴과 올슨, 그리고 쿠민이었다. 쿠민은 ‘동등한 우리’에 대해 거의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들 덕분에 개인적 경험을 시의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고, 함께 금기를 깼으며,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같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 “역사를 조명하는 매력적인 문화 전기.” -『뉴욕 타임스 북 리뷰』
★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힌다, 아주 강렬한 소설로.” -마거릿 애트우드
★ “우아하고 소설 같은 역사. 방대한 연구를 능숙하게 서사에 녹여낸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 “기한이 지난 어느 ‘실험’에 관한 환영의 스포트라이트.” -『커커스 리뷰』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


‘방대한 연구를 서사에 녹여낸’ ‘한 편의 소설’ 같은 작품
밀도와 감동을 두루 갖춘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의 탄생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2021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오른 『동등한 우리』(원제: The Equivalents)가 출간되었다. 『동등한 우리』는 1960년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시작된 혁명적인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작가’로 도약한 여자들의 우정과 야망, 예술과 사회참여, 사랑과 상심의 서사를 엮은 논픽션이다. 문학가이자 역사학자인 지은이 매기 도허티가 여러 해에 걸쳐 발굴하고 추린 오래된 문서와 카세트테이프 녹음본, 작가들의 노트, 편지, 일기, 작품, 기사에 가족 인터뷰를 보태 집필했다.
서사 중간중간 인용된 문학작품과 미술작품에 대한 묘사, 이에 대한 저자의 절묘한 비평이 작가가 연 낭독회나 세미나의 청중이 된 듯한 현장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새로 발굴하고 재해석한 역사를 극적 장면으로 서사화하는 저자의 재능은, 가부장제를 헤집는 소설을 써온 소설가이자 에이드리언 리치와 비비언 고닉 등을 옮겨온 번역가 이주혜의 문학성을 만나 빛을 발한다. 이 적확한 만남으로 머리와 가슴을 같이 울리는, 밀도와 감동을 두루 갖춘 논픽션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
‘지적으로 추방당한’ 여자들을 불러내다

1957년 미국국립과학재단(NSF) 학교조사위원회의 유일한 여성 위원이었던 더글러스대학 학장이자 미생물학자 메리 번팅은 뛰어난 여성 학부생들이 집안일을 돌보느라 학업과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국가 과학기술력 낭비라고 보았다(당시 한 통계에 따르면 소련은 기술자의 30퍼센트와 국가 의사의 75퍼센트가 여성이라면, 미국은 기술자의 1퍼센트와 의사의 6퍼센트만이 여성이었다). 번팅은 대학으로 돌아가 ‘더글러스의 병사들’이라고 불린, 하루 한두 시간만 학교에 나올 수 있는 기혼유자녀 학생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공시켰고, 베티 프리단과 결합하여 훗날 제2 물결 페미니즘을 이끌 『여성성의 신화』(1963)의 초기 집필에 참여했다. 1960년, 하버드의 자매학교인 래드클리프대학의 총장직을 제안받은 번팅은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 설립을 추진한다. 연구소가 경력이 단절된 여성 학자를 장학생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세간의 이목을 끈다. 장학생은 최대 3000달러(오늘날 가치로 약 2만5000달러)의 지원금과 개인 작업실, 하버드의 도서관을 이용할 권한을 받았다. 선발 과정에서 ‘학위’를 갖춘 학자들뿐 아니라 학위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예술가들이 확대 선발되었고, 그중 1~2기 장학생이었던 예술가 다섯(시인 앤 섹스턴과 맥신 쿠민, 소설가 틸리 올슨, 화가 바버라 스완, 조각가 마리아나 피네다)은 ‘동등한 우리’를 이루며 위대한 작가가 되어가는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자기만의 방’
가능한 삶을 찾아가다

ㆍ 영원한 ‘이름’을 원한 앤 섹스턴
부유층에 장밋빛 뺨을 가진 아이들까지, 남 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이룬 앤 섹스턴은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교육방송을 보다가 시에 입문했다. 일찍이 어머니에게 시를 보여주었다가 표절을 의심받았던 그는 존 홈스나 로버트 로웰 같은 보스턴 남성 문인들이 연 워크숍이나 수업을 들으며 시작을 이어나갔다. 식탁에서 시를 쓰느라 결벽이 있는 남편의 눈치를 봐야 했던 섹스턴에게 래드클리프 연구소는 시를 쓸 조건(책상)과 명분(돈)을 구할 절실한 기회였다. 연구소 면접에서 그는 여성적 역할을 초월하고 싶다고, 동시대를 넘어 후손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영원한 시인이 되고 싶다고 밝힌다.

ㆍ 마땅한 ‘자격’을 구한 맥신 쿠민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살던 맥신 쿠민은 1953년 셋째 아이 임신 8개월 차에 첫 시를 발표해 고료를 받는 시인이 되었다. 그는 주로 부엌(설거지하거나 빨래를 널며)이나 자동차(아이가 수업이나 진료를 받는 동안)에서 시를 썼다. 시를 잡지에 게재할 때는 남편의 고용주에게 보증을 받아 제출해야 했다. 연구소에 지원할 당시 쿠민은 래드클리프대학에서 받은 학사ㆍ석사 학위가 있었고 40여 편의 시를 발표한 기성 시인이었다. 연구소가 원한 학문적 자격뿐 아니라 그에 ‘동등한’ 예술적 자격을 모두 갖춘 상태였다.

ㆍ 모든 것 위에 ‘시간’이 필요한 틸리 올슨
공산주의 활동가이자 노동계급 작가 틸리 올슨은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는 연구소 지원서에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을 구분해 적지 않고, 1928년부터 계속해 온 시급 2달러에서 월급 375달러까지의 노동을 모두 나열했다. 학력 항목에는 여태 받은 창작지원금을 적었고 언어나 논문 항목은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올슨의 지원서는 연구소가 생각하는 기준을 향해 던진 도전장이었다. 올슨에게는 연구소의 지원이 확보해 줄 ‘시간’이 간절했다.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소설을 완성할 시간이었다.

ㆍ 작업의 ‘동력’을 찾던 바버라 스완과 마리아나 피네다
소묘와 유화 외에 다른 매체를 실험하고 싶었던 초상화가 바버라 스완과 실물 크기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조각가 마리아나 피네다도 연구소의 일원이 되는 기회가 절실했다. 그 무렵 두 사람 다 ‘모성’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스완은 어머니, 예술가, 교사 역할을 전부 해낼 방법을 찾고 싶었고, 피네다는 학자 및 예술가와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하고 싶었다.


‘동등한 우리’
고립된 여자들을 연결하다

운 좋게도 섹스턴은 존 홈스의 워크숍에서 쿠민을, 로버트 로웰의 수업에서 실비아 플라스를 만나 일생 교감했지만, 이 시기 글 쓰는 여자들은 경쟁이 심했고 우정을 추구하거나 지키기가 어려웠다. 시의 세계는 남자의 것이었고, 여자가 그 세계에 자리를 마련하려면 남자 여자 모두와 싸워야 했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문단에서 섹스턴은 ‘남자처럼 쓴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인 줄 알았고 자신이 여자처럼 글을 쓸까 봐 두려워했다. 실제로 섹스턴을 못마땅해한 홈스는 섹스턴과 쿠민을 갈라놓으려고 수차례 쿠민을 압박했다. 문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승의 이간질에도 쿠민은 친구를 선택했고, 둘의 우정은 연구소에 들어가 1~2기 장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더욱 견고해진다. 섹스턴과 쿠민은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거나 서로 집을 방문하며 함께 시를 완성했고, 자기들만의 공동육아 시스템을 운영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우정을 세상에 숨겼다. 시인으로서 자리를 잡는 데 불리하리라 여겼고 심지어 남편들의 기분이 언짢을까 봐 염려했다. 그러다가 연구소 어느 세미나에서 둘은 동료들에게 비밀을 밝힌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질시나 의심이 아닌 응원과 환호를 받는다.
계급과 나이, 정치적 차이를 뛰어넘은 섹스턴-올슨, 당대의 정치를 즐겨 논했던 올슨-피네다, 올슨이 본 여자들 관계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스완-섹스턴. 래드클리프 독립연구소는 ‘자기만의 방’과 돈뿐 아니라 친구를, 서로를 지지해 줄 안전한 공동체를 여자들에게 제공했다.


세미나와 낭독회
페이지를 무대 삼은 여자들의 또 다른 무대

연구소의 장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자신의 관심 주제를 동료에게 공유했다. 학자들뿐 아니라 ‘동등한 우리’ 예술가들도 자기의 작업과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타고나길 무대 체질이었던 앤 섹스턴도 많이 긴장하며 이 자리에 섰고 자기비하를 섞지 않고는 발표를 진행하지 못했다. 연구소 지원 때만 해도 자기 홍보나 청중 설득에 재능 없던 피네다도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예술사 논의를 세미나에서 펼쳤다. 스완은 섹스턴과 함께 준비한 한 세미나에서 자신의 시적 이미지가 가짜라고 외치는 섹스턴에게 “완전히 진실하다”고 격려한다. “내 그림과 드로잉은 일종의 연장선이야. 내가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한 이미지들이 당신 시에 있더라”(216쪽).
올슨은 세미나 개최를 유독 어려워했다. “창조적 과정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까지 올슨은 공황에 빠졌고 매주 주제를 바꿨다. 그날 올슨의 발표는 장황하여 대다수의 공감을 사지 못했지만 섹스턴만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청중이 흩어지자 섹스턴은 올슨에게 다가가 메모를 빌려달라고 부탁했고 비서를 고용해 원고를 옮겨 썼다. 온통 메모와 약어와 인용문뿐인 이 이상한 원고는 올슨의 대표 에세이 「침묵」의 초고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연 강의가 올슨을 인기 많은 강사로 만들었다. 「침묵」을 표제작으로 1978년에 출간한 『침묵』은 성공을 거두며 올슨을 존경받는 페미니스트 비평가이자 학자로 자리 잡게 했다.


협업과 연대
친구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다

이들의 협업과 연대는 연구소 밖에서도 계속되었다. 1967년 퓰리처상을 받은 섹스턴의 시집 『살거나 죽거나』(1966)를 시작으로, 스완은 이후 출간되는 섹스턴의 거의 모든 책(『변신』(1971), 『우화집』(1972), 『죽음 공책』(1973), 유고 시집 『신을 향해 무섭게 노를 젓다』(1975))의 표지 그림을 그렸다. 쿠민 역시 『오지에서』(1972)로 1973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오지에서』의 표지 그림과 삽화 17장도 스완이 그렸다. 훗날 이 작업에 대해 스완은 다른 무엇이 아닌 우정 때문에 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두 시인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그저 우정 때문에 한 일이었다”(290쪽). 한국어판에는 스완의 딸 조애나 핑크로부터 허가받은 그림 세 점이 수록돼 있다. 1955년 스완이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그린(출산 4개월 차에 그린) 〈아기〉(116쪽)와 연구소 시절인 1961년에 그린 앤 섹스턴의 초상(141쪽), 1977년 작으로 추정되는 맥신 쿠민의 초상(346쪽)이다. 스완은 “이국의 새들” 같았던 두 시인을 그리기를 좋아했고, 연구소 밖에서도 가장 많은 협업을 이어나갔다. 섹스턴은 1973년의 한 편지에서 “내가 날 신뢰하는 것 이상”으로 스완을 신뢰한다고 고백했다.
1973년 퓰리처상 심사위원이었던 섹스턴은 『오지에서』를 강력히 밀며 동료 심사위원들을 설득했다. 퓰리처상 수상 시인이 된 쿠민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바빠졌고 쿠민과 섹스턴은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다이앤 미들브룩이 쓴 섹스턴의 전기에 의하면 섹스턴은 “친구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쿠민의 수상을 위해 싸웠다. “어떻게 보면 자기희생의 행위였다”(364쪽).


이름이 지워지거나 오명을 쓴 여자 예술가의 부활
새로운 정전을 만들다

1968년 12월, 래드클리프대학의 흑인 여성 학부생들이 입학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1969년 4월에는 하버드와 래드클리프 학생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과를 위한 교수진 채용을 촉구했다. 래드클리프 연구소도 이런 흐름에 맞춰 장학생들을 다양화했다. 1966년엔 극작가이자 소설가 앨리스 차일드레스, 1970년엔 환경 심리학자 플로렌스 래드, 1971년에는 작가 겸 교사였던 앨리스 워커가 연구소에 들어왔다. 앨리스 워커는 연구소 시절 흑인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문학적 글쓰기에 몰두했고, 업계 최초로 흑인 여성 작가에 대한 대학 강의를 열었다. 또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이자 인류학자인 조라 닐 허스턴을 복원하는 데 힘썼다. 워커가 아무 표지 없이 묻힌 허스턴의 묘지를 찾아가 “조라 닐 허스턴, ‘남부의 천재’, 소설가 민속학자 인류학자, 1901~1960”이라고 새긴 묘비를 세워주는 장면은 책에서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비록 허스턴의 생년(1891년)을 잘못 적었지만 워커는 허스턴이 역사에서 잊히지 않게 했다.
이보다 앞서 올슨도 열다섯 살 때부터 존경해 온 우상의 작품을 복간하고자 했다. 올슨은 자신의 팬이었던 학자이자 활동가인 플로렌스 하우와 폴 라우터 부부에게 리베카 하딩 데이비스의 『제철소의 삶』을 소개했다. 이 작품에 감동한 두 사람은 1972년 자신들이 운영하는 더 페미니스트 출판사에서 올슨의 비평이 수록된 『제철소의 삶』을 복간했다. 1974년에 만나 교류하게 된 올슨과 워커는 잃어버린 여자들의 문학을 되찾는 출판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더 페미니스트 출판사는 워커가 편집한 조라 닐 허스턴의 작품을 포함해, 애그니스 스메들리의 『대지의 딸』,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등을 출간했다.
연구소 시절인 1962년, 찰스강을 따라 걷던 섹스턴과 올슨은 사라 티즈데일과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에 관해 대화한다. 일찍이 홈스의 워크숍에서 티즈데일이 좋다고 말했다가 “저급한 가운데서도 가장 저급한” 시인이라는 면박을 들었던 섹스턴은 그날, 티즈데일을 좋아한다는 올슨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우리가 함께 있으면 사라 티즈데일이나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를 향한 사랑이 부끄럽지 않았다”(207쪽).
‘동등한 우리’는 남성 문인들이 골라준 정전 대신에 자신들만의 정전을 만들어나갔다.


한 편의 논픽션이 이뤄낸 기적
연쇄되고 확장되는 만남을 따라 뻗어가다

연구소 시절 섹스턴은 가장 중요한 시집을 썼고 그를 발판 삼아 ‘영원한 시인’으로 거듭났다. 쿠민은 연구소에서 다른 장르를 실험한 끝에 첫 번째 소설을 썼고 시만큼이나 산문으로도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올슨은 훗날 교육과 비평에서 크게 쓰이게 될 이론의 토대를 기술했다. 스완은 석판화를 탐험할 시간과 자원을 누렸고 일생의 동료를 만났다. 피네다는 여성 신탁 조각상 연작을 창조했고 대작을 만드는 조각가가 되었다. 설립자 번팅에게 ‘어수선한 실험’이라고 불린 세상에 없던 이 혁명적 시도는 하버드와 래드클리프가 통합되는 1999년까지 39년간 운영되었고, 마사 누스바움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 학자와 예술가를 배출했다.
1974년 섹스턴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에이드리언 리치는 추도사에서 “머리는 종종 가부장적이되 그의 피와 뼈는 페미니스트임을 그는 잘 알았다”라고 쓴다. 연구소를 구상하고 설립한 번팅도 그렇고 ‘동등한 우리’의 다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여성운동이 커지기 전부터 여자의 몸과 삶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고 뼛속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았다. 사회운동의 전개와 교차하면서 우리가 익히 아는 활동가나 이론가들 이름이 튀어나오는 책 후반부를 거치고 나면, 문학, 예술, 역사, 사회과학을 가로지르는 이 책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이 뻗어 나옴을 알게 된다. ‘찾아보기’ 기준, 책에 등장하는 350여 명의 이름을 따라, 연쇄되고 확장되는 만남을 눈여겨보면 좋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 한 편의 논픽션이 무수한 여성들의 연쇄적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 손에 잡히는 이 작은 책이 행하는 큰 기적일 것이다.” -옮긴이의 글

작가정보

Maggie Doherty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의 문예창작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터프츠대학교, 에머슨대학교, 하버드 익스텐션스쿨 등에서 논증적 글쓰기, 역사, 문학 등을 가르쳤다. 『뉴요커』 『뉴욕 타임스』 『네이션』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뉴 리퍼블릭』 등에 문학비평, 서평, 에세이 등을 기고한다. 노트, 편지, 일기, 녹음본, 시, 산문을 바탕으로, 여자들의 우정과 야망, 예술과 사회참여, 사랑과 상심의 서사를 감동적으로 엮어낸 『동등한 우리』로 2021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전기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소설가, 번역가, 독자. 쓰고 옮기고 읽는 자로 산다. 『프랑스 아이처럼』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멀리 오래 보기』 등 분야를 넘나들며, 특히 에이드리언 리치, 비비언 고닉, P.D. 제임스 같은 여성 작가의 문장을 우리말로 옮겼다. 『자두』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누의 자리』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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