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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간 해부학자

이재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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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5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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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2229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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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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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승패의 결과와 메달의 색깔에 모아진다면, 해부학자는 선수들의 몸에 주목한다. 알리의 주먹(1964년 올림픽), 코마네치의 발목(1976년 올림픽), 조던의 무릎(1992년 올림픽), 펠프스의 허파(2008년 올림픽), 볼트의 허벅지근육(2008년~2016년 올림픽), 태극궁사들의 입술(1984년~2020년 올림픽) 등 올림픽 영웅들의 뼈와 살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해부학적 코드가 숨어있다.
저자는 하계 올림픽 중에서 28개 종목을 선별하여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낸다. 복싱편에서는 복서에게 치명적인 뇌세포손상증을 가져다주는 펀치 드렁크 신드롬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국제복싱협회가 헤드기어 착용을 폐지한 연유를 파헤친다. 유도편에서는 200가지가 넘는 기술 중에서 외십자조르기가 목동맥삼각에 위해를 끼쳐 산소부족 상태를 초래해 뇌 손상에 이르는 과정을 규명한다. 육상편에서는 우리 몸의 근육조직을 이루는 속근과 지근이 단거리와 장거리 경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및 마라톤선수의 스포츠심장과 발바닥 구조에 담긴 함의를 해부한다. 축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회전(스핀)킥과 무회전킥에 얽힌 종아리근육의 구조를 해부도를 통해 풀어낸 대목에서는 우리 몸 곳곳을 다층적으로 탐사하는 해부학의 유니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스포츠를 의학의 카테고리에 가두지 않고 해당 종목의 역사적 연원과 과학기술 및 사회적 함의를 살피는 데도 지면을 아끼지 않는다. 수영선수의 전신수영복이 빚은 기술도핑, 사이클에서 불거진 스테로이드 오남용, 복싱과 사격 및 탁구에 담긴 정치외교적 속내, 자본의 논리에 함몰된 비인기종목에 숨겨진 가치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관점을 넘나드는 이야기의 향연은 그 자체가 다양성의 미학을 펼치는 올림픽과 닮았다.
[프롤로그] ‘최선’이 남긴 상처의 통증유발점을 찾아서

CHAPTER 1 알리의 주먹
01 배고픈 전사의 리썰웨폰 _복싱
02 매트 위의 위대한 요다들 _레슬링
03 상대방의 힘을 유도하라 _유도
04 무적의 돌려차기에 얽힌 비밀 _태권도
05 검을 든 자여, 퇴화의 시간을 가르소서 _펜싱

CHAPTER 2 조던의 무릎
06 공은 둥글다. 고로 축구는 알 수 없다 _축구
07 밀어야 산다? 믿어야 산다! _럭비
08 그 시절 에어 조던의 무릎은 안전했을까 _농구
09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_핸드볼
10 주먹보다 강한 손바닥의 위력 _배구

CHAPTER 3 볼트의 근육
11 아프니까 스포츠다 _육상
12 무엇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가 _체조
13 아틀라스의 정신을 들어올리다 _역도
14 말(言)이 통하지 않는 말(馬)과의 경이로운 교감 _승마
15 쓰러지지 않고 삶의 페달을 밟는 법 _사이클

CHAPTER 4 태극궁사의 입술
16 중국이 쏘아올린 작은 공 _탁구
17 코트 위 황제를 울린 팔꿈치 _테니스
18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깃털의 미학 _배드민턴
19 홀인원에 빠진 골프홀릭의 민낯 _골프
20 허리를 굽혀야 이기는 무사들 _필드하키
21 메달의 색을 포착하는 시선들 _ 사격
22 신궁의 입가에 깃든 미소 _양궁

CHAPTER 5 펠프스의 허파
23 물살에 가려진 편견과 차별 _수영
24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 _다이빙
25 수중 격투 속 승부의 참뜻 _수구
26 바람을 지배하는 욕망의 그림자 _요트
27 한 배를 탄 크루들의 뜨거운 눈물 _조정
28 물 위를 걷는 자들에 관하여 _ 서핑

알리가 입버릇처럼 말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얘기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나비처럼 날아서’는 알리 특유의 경쾌한 풋워킹을 가리킨다. 하지만 해부학자의 눈에는 벌침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의 원천이 되는 알리의 유연한 날개뼈, 즉 앞톱니근이야 말로 나비의 우아한 날개짓 그 자체다. 복서의 날개뼈가 치명적인 무기, 리썰웨폰(lethal weapon)이 되는 순간이다.
_31쪽 ‘복서의 날개뼈’ 중에서

학창시절 주먹으로 전교 순위를 정하던 사내아이들 사이에는 제법 진지한 철칙 같은 게 있었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이 불가피하더라도 상대방이 ‘만두귀’라면 자리를 피하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만두 모양으로 일그러진 만두귀는 레슬링선수들의 상징이다. 정상적인 귓바퀴는 연골과 연골막 그리고 피부가 잘 붙어있는데, 귓바퀴에 부딪힘, 쓸림, 마찰 등의 외상이 발생하면 연골막과 연골 사이가 벌어지면서 그 부분에 혈액이나 물이 찰 수 있다.
_43쪽 ‘레슬러의 만두귀에 새겨진 피와 땀의 나이테’ 중에서

세상을 살다보면 티격태격 다툼이 생길 때가 있는데, 아무리 불가피한 싸움이라도 멱살 잡(히)는 일은 피해야 한다. 멱살 잡기에서 시작해 더 과격한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멱살은 말 그대로 멱 부위에 있는 살인데, 멱은 목의 앞쪽 부분을 가리킨다. 그런데 멱살을 심하게 잡히면 큰 싸움으로 나아갈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위험할 때가 있다. 목에 심각한 압박이 가해져 후두와 기관이 좁아지고 이로 인해 공기가 폐로 들어가지 못해서 호흡을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_59쪽 ‘유도에서 뇌 손상을 일으키는 멱살잡기의 해부학적 속내’ 중에서

호날두의 무회전킥 동작을 해부학적으로 살펴보면, 공을 향하는 강력한 임팩트가 단지 발목이나 발등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회전킥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골반에서 허벅지근육을 지나 종아리근육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위가 없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종아리근육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종아리근육이 발등은 물론 발가락의 움직임에까지 깊게 관여하기 때문이다.
_105쪽 ‘무회전킥과 호날두의 종아리근육’ 중에서

농구에서 키와 속근육 못지않게 중요한 신체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팔의 길이가 꼽힌다. 슛을 쏘고 패스를 하고 블록이나 인터셉트를 하는 것은 (손을 포함한) 팔이다. 농구에서의 승패가 키와 점프력은 거들 뿐 결국 팔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던이 농구황제가 된 이유 중 하나도 긴 팔이었다. 양팔을 벌린 길이를 윙스팬(wing span)이라고 하는데, 보통 이 길이는 키와 비슷하다. 흥미로운 건 농구선수들 중에 다빈치의 인체비례를 깬 이들이 유독 많다는 사실이다.
_136쪽 ‘키와 점프력은 거들 뿐 결국 팔에 달렸다’ 중에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는 탁월한 스포츠심장과 폐활량의 소유자였다. 황 선수의 동료이자 마라톤 한국기록(2시간7분20초) 보유자인 이봉주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강심장이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몬주익의 영웅은 20대의 나이에 이른 은퇴를 해야만 했다. 원인은 발바닥이었다. 스피드형 마라토너인 황 선수는 앞꿈치로 밀어주는 ‘킥’ 때문에 유독 발바닥 부상이 잦았고, 이로 인해 선수시절 2번이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_176쪽 ‘강심장을 품은 마지막 황제들’ 중에서

해부학에서 말하는 ‘근력’ 즉 ‘힘’은 인류에게 필요악 같은 존재다. 힘은 맹수나 자연재해로부터 인간 스스로를 보호해왔지만, 계급을 나누고 착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힘에 얽힌 우여곡절은 때로는 종교와 신화로 다뤄지거나 역사로 기록되었다. 골리앗의 힘은 두려웠고, 삼손의 힘은 가혹했으며, 헤라클레스의 힘은 경이로웠다. 힘은 권모술수의 자충수에 빠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틀라스(Atlas)도 그랬다.
_205쪽 ‘아틀라스의 정신을 들어올리는 역사(力士)에 관하여’ 중에서

동체시력은 비단 클레이 사격에서만 강조되는 건 아니다. 야구와 테니스, 탁구 등 구기종목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순간적으로 포착해 내려면 동체시력이 발달해야 한다. 일본인 메이저 리거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는 강속구 투수의 공에 대처하기 위해 평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차창 밖 다른 자동차들의 번호판을 읽는 방식으로 동체시력을 높이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_311쪽 ‘사격선수가 윙크를 하지 않는 이유’ 중에서

“양궁경기에서 화살을 조준할 때 선수들은 항상 같은 입술 부위에 활시위를 고정하는 연습을 합니다. 이때 1밀리미터만 위치가 바뀌어도 화살이 과녁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양궁선수들이 항상 강조하는 ‘1밀리미터의 마법’이다. 선수들은 화살을 조준할 때 항상 얼굴의 같은 위치에 활시위를 고정하여 앵커링 한다. 그런데 하필 활시위가 입술 부위에 와 닿는 이유는 왜일까. 입술 주변은 감각이 매우 예민한 부위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화살을 조준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는 데 안성맞춤이다. 입술 부위의 턱끝신경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_326쪽 ‘궁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이유’ 중에서

수영종목에도 인종차별적 편견이 존재한다. 흔히 흑인선수들은 인체과학적인 이유라면서 높은 골밀도와 근육질 때문에 수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한 언론에서는, 흑인은 타고난 근육질 탓에 물에 뜨는 부력(浮力)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기사를 출고해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 이 역시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수영종목에서 흑인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
_332쪽 ‘물살에 가려진 편견과 차별’ 중에서

화가 호크니는 그의 작품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에서 다이빙을 한 인물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다이빙선수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이빙선수라면 저렇게 요란한 물보라를 일으키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다이빙경기에서 입수자세는 중요한 채점요소다. 입수할 때 물이 덜 튀어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은 ‘풍덩’도 아닌 ‘첨벙’이다. 심지어 ‘더 큰 첨벙’이다. 다이빙경기에서는 ‘풍덩’이나 ‘첨벙’이 아닌 ‘퐁’의 느낌으로 경쾌하게 입수해야 한다. 입수가 ‘퐁’이 되려면 물에 들어가는 순간 다이버의 몸이 물과 수직을 이뤄야 한다.
_347쪽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다’ 중에서

올림픽은 인간이 표출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짓의 향연!
해부학은 인간의 상처가 시작되는 통증유발점을 찾는 여정!
해부학과 스포츠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해부학의 개념을 정립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는 한때 콜로세움에서 주치의로 일하며 치명상을 입은 검투사를 치료했다. 당시 로마제국의 검투사는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싸웠고,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와의 격투도 피할 수 없었기에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다. 갈레노스는 검투사의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피부와 근육을 꿰매는 수술을 집도했는데, 이러한 기록은 현대 스포츠의학의 기원을 이룬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로 경기에 출전했다. 체조를 뜻하는 gymnastics는 ‘벌거숭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ymnós에서 유래했다. 해부학의 탐구대상도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다. 그렇게 올림픽과 해부학은 인간 본연의 몸이라는 근원적인 공통분모 위에서 진화해 왔다. 올림픽이 인간이 표출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짓의 향연이라면, 해부학은 인간의 상처가 시작되는 통증유발점을 찾는 여정이다.

알리의 뇌,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순간 모든 게 끝났다!
타이슨의 핵주먹, 배고픈 전사의 리썰웨폰!
이 책은 1964년 로마 올림픽 복싱 종목에 미국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무하마드 알리와 복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15쪽). 폭력과 스포츠를 나누는 경계인 ‘사각(四角)의 링’이 복서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사각(死角)의 링’이 된 사연(19쪽)을 ‘펀치 드렁크’라 불리는 만성외상성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이하 ‘CTE’)을 통해 의학적으로 풀어낸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프로복서 알리가 노후에 파킨슨병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사연과 함께 CTE가 복서뿐 아니라 미식축구선수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규명한다(22쪽). 특히 국제복싱연맹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헤드기어 착용을 의무화했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다시 헤드기어를 벗도록 규정을 바꾼 석연치 않은 조치를 의학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23쪽). 아울러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을 통해 해부학에서 ‘복서의 날개뼈’라 불리는 앞톱니근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타격의 메커니즘도 함께 소개한다(29쪽).

호날두의 종아리근육과 무회전킥, 조던의 무릎연골과 슬램덩크 등
스포츠의학의 원리를 100여 컷의 해부도와 이미지로 풀어내다
축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회전킥(스핀킥)과 무회전킥의 원리를 다룬 대목에서는 ‘마그누스 효과’ 및 ‘카르만 소용돌이’ 등 물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100쪽, 103쪽).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회전킥이 어떻게 종아리근육에서 비롯되는지를 해부도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낸다. 종아리근육 중에서 긴발가락폄근이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에 관여함으로써 무회전킥이 종아리근육에서 비롯하는 원리가 한눈에 읽힌다(106쪽). 이처럼 책에 수록된 100여 컷의 해부도와 이미지는 각 종목마다 다룬 신체 부위에 대한 의학적 이해를 돕는다.
코트 위를 영원히 평정할 것 같았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순간 해부학자인 저자는 조던의 무릎에 찬 물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는다. 무릎에 물이 찬다는 것은 무릎 주변을 덮고 있는 활막에서 나오는 끈적한 액체인 활액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는 증상을 의미한다. 무릎에 외상이 나타나면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이때 무릎의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활액의 분비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무릎 주변이 심하게 붓게 되는 것이다(135쪽). 아울러 저자는 조던의 신체를 통해 전성기 시절 ‘에어(air)’라는 닉네임을 얻을 만큼 출중했던 점프력의 비결을 규명한다(133쪽).

인간의 뼈와 근육은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의 원천이 되었나?
저자는 속근과 지근으로 나뉘는 인간의 근육이 올림픽 종목에 따라 발달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목조목 밝혀낸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육상의 경우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등 세부종목에 따라 근육의 발달 정도에 차이가 있다. 속근은 수축 속도가 빠른 근육으로 순간적으로 힘을 낼 때 사용되는 만큼 100미터와 200미터 등 단거리선수일수록 발달해 있다. 반면 지근은 수축 속도가 느린 근육이므로,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만큼 장거리와 마라톤 선수일수록 발달해 있다(168쪽).
이를테면 아주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해 엄청난 무게의 바벨을 들어야 하는 역도는 달리기에 비유하면 100미터보다도 짧은 최단거리 경주에 해당한다. 역도선수들에게서 순발력에 유리한 속근이 강조되는 이유다(203쪽).
저자는 속근과 지근의 속성상 우리 몸의 근육이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 속근과 지근이 골고루 발달해야 하는 중거리(800미터, 1500미터)가 육상에서 가장 어려운 종목으로 꼽히는 이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171쪽).

기술도핑 논란, 스테로이드 오남용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다
이 책은 최근 스포츠계에 불거진 기술도핑 및 스테로이드 오남용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저자는 스포츠과학의 진화와 성취는 눈이 부실만큼 경이롭지만, 기록 갱신에 함몰된 과학은 공허하다고 일갈한다. 기록의 주인공이 인간인지 과학인지 모호해질수록 스포츠는 길을 잃고 만다는 얘기다.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의 파울 비더만이 입은 전신수영복은 기술도핑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그는 스판덱스 소재의 전신수영복을 입고 마이클 펠프스와 이언 소프의 세계신기록을 가라치웠다. 전신수영복이 기록 단축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 입증되자 많은 선수들이 전신수영복을 입고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 해에만 수십 개의 세계신기록을 쏟아냈다. 저자는 물의 마찰저항을 줄이는 전신수영복의 원리를 통해 수영복 제조사의 ‘기술’이 선수들의 ‘기량’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규명한다(344쪽).
마라토너를 괴롭히는 족저근막염이 2시간대 벽을 깨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임을 다루는 대목도 흥미롭다. 케냐의 마라톤 영웅 킵초게는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나이키가 특수제작한 러닝화를 신고 세계기록 갱신에 나섰다. 운동화 무게를 100그램 줄이면 57초를 단축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운동화 밑창에 탄소섬유 4장을 부착해 제작한 런닝화를 신은 킵초게는 1시간59분40.2초만에 완주했다. 당시 킵초게 곁에는 5명의 페이스메이커가 V자 형태로 달리며 맞바람의 공기저항마저 줄여줬다. 하지만 세계육상연맹은 기술도핑 등을 이유로 킵초게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79쪽).
아울러 이 책은 사이클이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으로 올림픽에서 퇴출위기를 겪어야 했던 사연(230쪽) 및 체지방 감소를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REDs(Relative Energy Deficiency in Sports) 증후군에 시달리는 어린 체조선수들의 인권 문제(197쪽)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스포츠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소상히 파헤친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재호

전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라는 닉네임을 갖게 된 저자는,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실에서 미술책을 펼치며 차가운 ‘카데바’에 온기를 불어넣는 이야기를 만드는 해부학자다.
저자가 미술에 이어 천착해온 분야는 올림픽이다. 사실 해부학과 스포츠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고대 해부학의 창시자 갈레노스는 한때 콜로세움에서 주치의로 일하며 치명상을 입은 검투사들을 치료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계 올림픽 중 28개 종목을 선별하여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의 언어로 풀어냈다. 조던의 무릎, 알리의 주먹, 펠프스의 허파, 볼트의 근육에서 태극궁사의 입술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영웅들의 몸을 낱낱이 해부했다.
저자는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해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부터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해부학교실 주임교수와 의료인문학교실 겸임교수, 학생지원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지금까지 160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한국연구재단 대통령 포스트닥(Post-Doc.)에 선정되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초의학학술상’, 대한해부학회에서 ‘빛날상’ 등을 수상했다. 다수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해부생물인류학회지 편집위원장, 국제전문학술지(SCI) 〈Medicine〉과 〈Translational Cancer Research〉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알고 나면 쉬워지는 해부학 이야기〉,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가 있다.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과학창의재단)의 ‘우수과학도서’와 문화체육관광부(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작가의 말

올림픽은 대표적인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현장이다. 어떤 종목이든 내로라하는 다수의 경쟁자가 오직 하나뿐인 금메달을 놓고 치열하게 다툰다. 올림픽은 참가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쿠베르탱의 선언이 얼마나 허무한 미사여구인지 방증하는 대목이다. 치열한 경쟁원리는 소수의 승자만 각인할 뿐 다수의 패배자를 소멸시킨다. 최선이 남긴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아픈 통증유발점인 까닭이다. 아픔의 원인을 찾는 해부학자의 시선은 승자보단 패자의 상처로 모아진다.
_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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