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가장 위대한 내비게이션
2024년 04월 30일 출간
국내도서 : 2024년 04월 24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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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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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맨다 엘러, 길을 잃다
집어삼켜지다│나는 왜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잃을까│뇌에 답이 있다
2장 길 찾기의 시작과 끝, 기억
해마라는 아름다운 연구 대상│발작과 건망증│기억은 어디에 저장되는가│기억과 길 찾기는 구분할 수 없다│가장 외로운 죽음│미로가 뇌에 대해 알려주는 것들│모든 뇌는 지도 제작자다│지도를 뛰어넘는 인지지도│해마와 미상핵의 차이│기억이 길을 찾는다
3장 장소세포라는 길잡이
공간의 근거│호그와트를 탐험할 수 있는 이유│위치 암호화 패턴│공간과 비공간을 아우르는 미스터리│짧고 기이한 파동│뇌는 뇌의 주인보다 빠르다│전극, 또는 fMRI│1만 6000킬로미터짜리 지식│가상현실에서 길 찾기│길 찾기에 나선 바다영웅│GDP와 젠더 그리고 길 찾기
4장 우리 머릿속의 나침반과 격자
별의 소리를 듣다│기이하면서도 우아한 시스템│머리방향세포가 가리키는 곳│격자를 발견하다│어떠한 환경에서도 유효한 지도│길 찾기 능력을 보조하는 세 영역│같은 공간에서 다른 점 찾아내기│우리는 왜 ‘문’으로 출입할까│집 안에서 길을 잃다│고장 난 뇌가 말해주는 것들│자기중심적인 동시에 타인중심적인 존재
5장 길을 찾도록 진화한 존재
호모사피엔스라는 상징주의자│공간 인식이라는 결정적 차이│라텍스로 재현된 과거│6만 5000년의 공백│두정엽이 커지다│가정법 없는 언어│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네안데르탈인의 뇌│수렵하는 남성, 채집하는 여성이라는 신화│길 찾기 능력과 성 평등│인지지도를 공유하는 능력
6장 수많은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
한편 어맨다 엘러는│추측항법의 대가, 사막개미│몸으로 기억하다│뇌의 모든 영역을 활성화하는 길 찾기│정보를 통합하지 못한다면│길치의 뇌│추측은 추측일 뿐이다│쇠똥구리와 인간의 공통점
7장 오직 길 찾기 능력과 관련된 장애
팀북투의 동쪽 어딘가│독백에 빠진 뇌│“항상 길을 잃었어요”│지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억울한 길치들을 위한 모임│장애 자가 진단
8장 유전자에 새겨지는 경험
치마네족은 길을 잃지 않는다│평균의 함정│똑같은 뇌는 없다│피할 수 없는 조건, 유전│모차르트 효과와 신경가소성│문화가 다르면 길도 다르다│변형되는 커넥톰│길 찾기의 사회적·역사적 차원
9장 GPS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쪼그라드는 뇌
GPS가 일으키는 사고│엉망이 된 알고리즘과 혼란한 상호작용│편리함의 대가│해마가 침묵하다│우거진 도시의 증가하는 엔트로피│GPS라는 감옥│기능을 잃는 뇌│기억을 자극하는 새로운 GPS│길 찾기 재활│자기 뇌를 사용하라
10장 어맨다 엘러, 길을 찾다
가장 복잡한 인지작업│길 찾기라는 미스터리
부록 1 야생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해야 하는 일
부록 2 길 찾기를 잘하는 법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기억하라. 방황하는 이들 모두가 길을 잃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길을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_ 8쪽 〈저자의 말〉 중에서
사건의 시작은 이러하다. 평범한 수요일 오후의 숲.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어맨다 엘러(Amanda Eller)가 등산로에서 천천히 걷고 있다. (…) 그녀는 다양한 양치류 식물들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길에서 몇 걸음 벗어나, 쓰러져 있는 나무에 기대고 누워 잠시 눈을 감고 고요한 휴식을 취한다. (…) 다시 몸을 일으켜 등산로로 돌아가려고 하자, 어찌 된 일인지 길을 찾을 수 없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엘러는 길을 잃었다.
_ 21쪽 〈1장 어맨다 엘러, 길을 잃다〉 중에서
신경과학자들은 이제 장소세포(place cell), 격자세포(grid cell), 머리방향세포(head-direction cell) 등 길 찾기에 관여하는 매우 다양하고 특별한 뉴런 집단을 식별해 설명한다. 관련해 뇌의 다양한 영역이 우리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협력한다. 해마, 전전두엽, 해마주변 위치영역, 내후각 및 후뇌량팽대피질, 미상핵 등이 협업해서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의 지도를 제공하고 우리의 탐험을 돕는다.
_ 34쪽 〈2장 길 찾기의 시작과 끝, 기억〉 중에서
장소세포의 힘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인간이 마침내 화성에 가게 된다면, 장소세포는 우리가 화성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펜턴은 말한다. 장소세포 덕분에 우리는 전체 우주의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도 탐험할 수 있다. “우리는 호그와트라는 이야기 속 세상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_ 83~84쪽 〈3장 장소세포라는 길잡이〉 중에서
2018년 6월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은 수십 년 동안 운전을 금지당했다. 도로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길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이러한 나라에서 남녀 간 길 찾기 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_ 116쪽 〈3장 장소세포라는 길잡이〉 중에서
“방향감각이 좋은 사람들은 랜드마크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머릿속 나침반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눈을 감으면 자신이 어느 쪽으로 향해 가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더 잘 알게 되죠. 내 생각에 그런 사람들은 전정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더 잘 활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르게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_ 131~132쪽 〈4장 우리 머릿속의 나침반과 격자〉 중에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뇌는 옷장이 아무리 문과 비슷해 보여도 그것을 통해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또한 후두위치영역이 하는 일이라고 엡스타인은 말한다. 우리가 벽에 걸린 그림이나 냉장고를 통해 방에서 나가려고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후두위치영역 덕분이다.
_ 150쪽 〈4장 우리 머릿속의 나침반과 격자〉 중에서
시간이 흘러 인간의 뇌가 재구성되고 성장하면서, 일부 영역은 다른 영역보다 더 큰 변화를 겪었다. 이런 식으로 호모사피엔스는 상징주의자가 되었다. 뇌가 더 크고 둥글게 성장하면서 약간 뒤쪽에 위치한 두정엽이 급작스럽게 팽창했다. 두정엽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신체와 그 신체의 공간적인 위치에 관한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 그런데 굴절적응이 일어나면서 다수성(numerosity) 같은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고, 공감 같은 섬세한 감정을 느끼며, 무엇보다 길 찾기가 가능해졌다. (…) “시공간의 인지, 수학적 사고, 운동의 형상화 등은 두정엽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인지 영역에서 발휘된 아인슈타인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그가 스스로 일컬었던 과학적 사고방식은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에 있는 평범하지 않은 해부학적 구조와 관련될지 모른다.”
_ 182~183쪽 〈5장 길을 찾도록 진화한 존재〉 중에서
크라스틸은 경로통합을 “이동할 때 위치와 방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경로통합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막의 개미집이나 낯선 도시의 호텔처럼 돌아가야 할 장소의 위치를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다. 크라스틸에 따르면 인간의 경로통합 기술은 다른 종들에 비해 그리 뛰어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더 복잡한 시스템을 이용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발전해왔다.
_ 217~218쪽 〈6장 수많은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 중에서
이아리아의 관심사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선천적으로 방향감각이 없는 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들은 직업도 있고 다른 기능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지만, 길을 찾을 때 매우 부분적으로 장애를 겪고, 어린 시절부터 아주 익숙한 환경에서도 길을 잃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런 유형의 발달장애에 관해 언급한 문헌이 없었기 때문에, 이 증상을 ‘발달 지형학적 방향감각 상실장애(development topographical disorientation)’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명 DTD라고 알려진 증상이다.
_ 238쪽 〈7장 오직 길 찾기 능력과 관련된 장애〉 중에서
몇몇 가족을 조사한 뒤 이아리아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DTD 환자의 부모 중 최소한 한 명은 DTD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셈이다.
_ 249쪽 〈7장 오직 길 찾기 능력과 관련된 장애〉 중에서
‘인간의 뇌는 모두 비슷하다’는 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쿠바의 아바나, 벨기에의 브뤼셀은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므로 모두 비슷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브뤼셀은 메카가 아니고, 메카도 브뤼셀과는 다르다. 이런 식으로 종종 과학은 우리를 오류로 이끈다. 과학은 이상치를 무시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_ 271쪽 〈8장 유전자에 새겨지는 경험〉 중에서
한마디로 뇌는 신경가소성이 뛰어나지만, 무한대로 확장하지는 않는다.
_ 282쪽 〈8장 유전자에 새겨지는 경험〉 중에서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런던 택시 운전기사의 뇌를 떠올려보라. 해마(특히 뒷쪽)가 커지며 엄청난 길 찾기 능력을 얻었지만, 그만큼 다른 뇌 영역이 줄어들며 연관기억 능력을 희생해야 했다. 우리가 내비게이션에 너무 의존한다면, 더는 우리 몸 안의 강력한 길 찾기 시스템은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은 해마는 결국 반응하지 않게 된다.
_ 303쪽 〈9장 GPS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쪼그라드는 뇌〉 중에서
피험자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GPS 기기의 지시사항을 따라 세븐 다이얼스를 통과활 때, 스피어스는 해마가 ‘머리 굴리기(mental gymnastics)’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마는 기능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_ 311쪽 〈9장 GPS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쪼그라드는 뇌〉 중에서
길 찾기는 인간이 수행하는 가장 복잡한 인지작업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루에도 1000번씩 길을 찾는다.
_ 335쪽 〈10장 어맨다 엘러, 길을 찾다〉 중에서
“모든 뇌는 내비게이션이다!”
길을 찾는 평범한 능력을 열쇠 삼아
인간 지능의 비밀을 풀어낸
‘길치’ 생물학자의 매혹적인 두뇌 탐사기
“우리 존재에 관한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지식을 동시에 안겨준다!”
_오상진(방송인)
“시처럼 아름답게 쓰인 뇌 이해.”
_데이비드 이글먼(스탠퍼드대학교 뇌신경과학자)
우리는 어떻게 플롯이 복잡한 영화나 난해한 언어로 쓰인 시를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등 수많은 사람을 구분해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어떻게 침대에 편히 누워 VR 헤드셋을 쓴 채로 광활한 오픈월드 게임을 즐길 수 있을까? 얼핏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일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길 찾기 능력’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우리가 수행하는 각각의 일을 관장하는 각각의 뇌 영역을 찾고자 애써왔다. 가령 인지 능력이 궁금하면 전두엽에 전극을 꽂거나, 욕망의 원리가 궁금하면 스캐너로 변연계의 신경영상을 촬영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뇌의 거의 모든 영역이 활성화되는 순간을 발견했으니, 바로 우리가 길을 찾을 때다. 이 놀라운 발견은 인간을 정의하는 각종 지적 활동이 모두 길 찾기 능력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집 안에서 화장실을 찾아 갈 때 그의 뇌는 복잡한 수학 난제를 푸는 것만큼이나(또는 그 이상) 활성화된다!
물론 본인이 ‘길치’라고 해서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뇌는 쓰는 만큼 좋아진다. 실제로 해가 지면 집 근처에서도 길을 잃는 저자지만, 분자생물학자로서 고도의 연구 활동을 문제없이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매료된 저자는 뇌의 이곳저곳을 연구해온 여러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길 찾기 능력과 지능의 관계를 파헤치고는,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아냈다. ‘길 찾기 능력의 뇌과학’으로 불릴 만한 이 책은 평생 쉬지 않고 지도를 그려내는 뉴런들, 그것이 인류의 생존과 진화, 문화와 언어에 미친 영향,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으로 달라지는 현대인의 뇌 구조, 심지어 실종자의 뇌에 도사린 길 찾기 장애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무엇이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게, 상상하거나 기억했던 공간으로 전진하게” 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안내를 따라 뇌라는 미로의 구석구석을 탐험해보자. 길 찾기 능력의 경이로움에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뇌는 하나의 거대한 지도다”
우리가 몰랐던 뇌의 진짜 작동 방식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거대한 지도 그 자체다. 이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원자를 쪼갤 수 있다는 사실이나 DNA가 나선 구조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필적할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또 생각의 작동방식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머릿속 지도를 ‘인지지도(심상지도)’라고 한다.
인지지도 개념은 1948년에 최초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신경과학자인 존 오키프가 ‘장소세포’를 발견한 1978년 전까지 여전히 많은 과학자가 인간을 환경에 반응하는 기계로, 가령 벨 소리에 침 흘리는 개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장소세포가 판도를 뒤집었다. 인지지도의 기초가 되는 장소세포는 말 그대로 장소와 관련된다. 이때 단순히 장소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장소의 이모저모를 기억하고, 관련된 정보를 종합하고, 다른 모습을 상상하고, 더 나은 판단을 내리는 데 이바지한다. 한마디로 장소세포는 생각한다! 오키프는 생각의 가장 강력한 생물학적 증거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과학자들은 1987년에 ‘머리방향세포’를, 2005년에 ‘격자세포’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 세 가지 뉴런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길을 찾을 때 활성화되지만, 그 외에 현실에서 무언가를 경험할 때도, 즉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언가를 보거나 읽든, 그것을 뇌에 지도처럼 그려낸다. 가령 과거는 현재보다 ‘앞’에 있고, 미래는 ‘뒤’에 있다. 상사는 내 ‘위’에 있고, 부하 직원은 ‘아래’에 있다. 내 친구는 단골 식당 점원보다 더 ‘가까운’ 존재다. 장소세포와 격자세포, 머리방향세포는 이러한 ‘구조적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고 갱신하며 인지지도를 채워간다. 우리는 그 지도상의 ‘경로’를 따라 수많은 지식의 관계와 맥락, 경향과 인과를 이해한다. 이처럼 생각은 길을 찾는 것처럼 이뤄진다. “즉 인지지도가 우리의 뇌를 감독”한다.
그 결과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동물이 되었다. 가령 장소세포는 우리의 행동을 현실보다 20배 빠른 속도로 앞서 경험한다. 그런 만큼 인지지도는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해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연결되고 확장하며 나아간다”
길 찾기 능력이 바꿔온 세계, 바꿔나갈 세계
미래를 예측하는 인지지도는 인간의 생존과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를 밝히기 위해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그때 길 찾기 능력이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명운을 갈랐다.
우선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것부터 길 찾기 능력 덕분이었다.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을 떠나지 않았다. 이보다 더욱 결정적인 증거가 언어나 종교 같은 문화에서 드러난다. 과학자들은 이를 살펴보기 위해 화석이라는 타임머신을 이용한다. 즉 두개골 화석을 스캔하거나 라텍스를 채워 넣고 굳혀 과거의 뇌를 재현하는 것. 심지어 유전자 일부를 채취해 인공 뇌(오가노이드)를 배양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뇌를 해부하면,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호모사피엔스의 두정엽은 네안데르탈인보다 컸다. 두정엽은 공간능력을 관장하는 대표적인 뇌 영역인데, 연장선에서 시간이나 수학적 개념 등의 추상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일반인보다 큰 두정엽을 가졌다.
이러한 두정엽의 힘을 빌려 호모사피엔스는 ‘상징주의자’가 되었다. 그들은 삶의 경험과 소망을 뒤섞어 벽화를 그리고, 사후세계를 상상하며 의식을 치렀다. 무엇보다 ‘가정법’을 개발했다. ‘언덕을 오르면 유리한 고지에서 들소 떼를 사냥할 수 있을 거야’ 같은 생각처럼 가정법은 호모사피엔스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선사했다. 이로써 호모사피엔스는 인지지도를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길 찾기 능력은 호모사피엔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고 있다. 그 문을 열고 있는 것은 인지지도를 활용해 VR 관련 신기술을 개발 중인 과학자들이다. 얼마 전에 발표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지지도(특히 격자세포)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즉 우리가 실제로 어딘가(집, 학교, 회사 등)를 갈 때든, VR 헤드셋을 쓰고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화성을 탐험할 때든, 인지지도는 똑같이 활성화된다. 이로써 인지지도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는 VR 기술의 상용화와 고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날 호모사피엔스 앞에 펼쳐진 것은 지금까지 “결코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이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꺼라”
지능을 높이는 길 찾기 능력 활용법
이 책에는 과학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실종자와 길치도 등장한다. 특히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어맨다 엘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2019년 5월의 어느 날, 하와이에 사는 35세의 요가 강사인 엘러는 자주 걷던 5킬로미터 길이의 짧은 등산로에서 길을 잃었다. 2주 넘게 수색이 이어졌지만, 열대우림의 미로 속에서 그녀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왜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었을까?
저자가 엘러 같은 사람의 일화를 들려주는 까닭은, 그들의 뇌가 길 찾기 능력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가령 심각한 길치라면, ‘발달 지형학적 방향감각 상실장애(DTD)’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뇌는 인지지도와 관련된 뉴런들의 연결성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반대로 유독 길을 잘 찾는 사람이라면, 선천적으로 정보통합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길을 찾으려면 목적지와 내 위치, 방향과 고저, 랜드마크와 기타 지형지물, 걸린 시간, 이동한 거리 등의 정보를 통합해야 한다. 뛰어난 길잡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런 일에 능숙하다. 심지어 선천적인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시각정보 대신 청각정보나 촉각정보 등을 훌륭히 통합해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길 찾기 능력은 유전으로만 결정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환경에도 크게 영향받는다. 2016년부터 2년간 전 세계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은 공간능력의 성차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여성은 남성만큼 길을 잘 찾는다. 다만 여성의 사회 활동을 가로막는 문화가 그들에게 후천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을 뿐이다.
저자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GPS 기술이다. 오늘날 GPS 기술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아무도 랜드마크나 종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지 않는다. 액정 위에서 반짝이는 화살표를 따라갈 뿐이다. 너무나 편하지만, 이는 “길 찾기 능력을 약화”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보고 길을 찾을수록, 우리의 뇌는 “기능하지 않은 채 침묵”하게 된다.
길 찾기 능력은 곧 지적 능력과 연결되므로, 이는 큰 문제다. 심지어 뇌의 물리적인 구조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장소세포가 많이 분포된 기억 중추인 해마가 쪼그라든다. 이러한 손상은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처방은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뇌를 사용해 길을 찾아라! 어쩌면 완전히 길을 잃었을 때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머릿속 인지지도를 따라 우선 한 발짝을 내디뎌보라. 이 작은 시도가 뇌의 지능을 높이고 통제권을 되찾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작가정보
(Christopher Kemp) 영국 웨스트대학교에서 응용생물학을 공부하고 신시내티대학교에서 역학 및 생물통계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2010년부터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파킨슨병의 권위자인 캐릴 소트웰(Caryl Sortwell) 교수와 함께 연구 중이다.
분자생물학자로서 신경퇴행성 질환을 연구하던 켐프는 뇌의 깊고 어두운 영역에서 벌어지는 마법 같은 일에 매혹된다.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길 찾기’로, 이 일상적인 행위는 인간 정신의 비밀을 밝힐 실마리가 된다.
뇌와 뇌세포, 신경세포의 ‘작은 우주’를 구석구석 탐험한 켐프는 자신과 주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이 책을 썼다. 여러 실종자와 그들의 흔적을 쫓는 수색대, 눈을 감고도 길을 찾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들, 그들의 뇌에서 밝혀낸 길 찾기 능력의 신비로움, 그것이 인류의 생존과 진화, 문화와 언어에 미친 영향,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으로 가득한 현대에 달라지는 뇌의 구조, 심지어 길 찾기 장애까지, 경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은 인간이란 곧 길을 찾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영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기업 연구소와 벤처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을 찾던 중에 번역의 매력에 빠져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기의 연금술》 《폭염 사회》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우아한 방어》 《데이터 자본주의》 《콜드 스타트》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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